1. 괜히 실실 웃으면서 아이들과 눈을 맞춘다.

2. 요즘 통 도서실에 안 보이는 놈과는 특히 눈을 맞추면서 이름을 불러준다.

3. 작년에 자주 오더니 올해 안 오는 놈에게는 좀더 다정하게, '왜 이리 얼굴 보기가 힘드니? 요즘 바쁘니?'라고 관심을 표해준다.

4. 책을 대출하고 반납할 때마다 이름을 한번씩 불러주고 화면 내용을 확인해준다. - 이럼으로써 아이들 이름도 외울 수도 있고, 저학년 아이들은 뭔가 사서선생님이 자기에게 특별하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사실은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을 한 번 불러줄 뿐인데...

5. 동네에서 만나도(우리 동네 애들은 99.99% 우리학교 애들이므로) 다 알고 있는 듯이 '안녕' 하고 웃으면서 지나간다.

6. 어머니인지 선생님인지 모르므로, 만나면 나를 아는 듯한 표정을 짓는 아줌마를 만나면 무조건 고개숙여 인사를 한다. (엊그제는 은행에서 한 아줌마가 반갑게 어깨를 치며! 인사를 하기에 나도 똑같이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그 아줌마 갑자기 사람 잘못봤다며 미안하다고 가버렸다. 혼자 남은 나만 머쓱!)

6월 들어 도서실에 아이들이 확~ 늘었다. 평소 각각 200권 안팎이던 대출 반납이 거의 매일 300권을 넘어선다. 도서실에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있는 놈들도 많아졌고, 고학년 여자아이들은 나랑 수다를 떨려고 해서 난감하게 만든다. 수다가 여학생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수업시간 시작종이 치면 아이들을 몰아내야 하고, 때로는 거짓말을 하고 도서실에 앉아있는 놈들(선생님이 가도 된다고 했다거나, 선생님 출장가셨다거나...) 때문에 교실로 확인전화를 하곤 한다. 겨우 1.5칸짜리 도서실에 아이들이 북적대니, 땀냄새에 책냄새, 먼지냄새가 복합되어서... 오후가 되면 숨을 쉬기 곤란할 때도 있다.

나의 이런 팬관리 전략이 조금쯤 도움이 된 것도 같고, 매월 각반에서 대출왕을 뽑아 직접 만든 책갈피와 선물을 주는 것도 조금쯤 도움이 되었다고 판단해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힘들다. 무지무지 힘들다... 헥헥...

도우미 어머니들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된 올해, 업무량은 1.5배가 되었고, 거기에 내가 좋아서 하는 몇몇 일들까지 겹치니... 해야 할 일들에는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책을 보고 아무데나 휙 던져둔 아이들이 너무너무 많다. 다음에 와서 또 보려고 큰 책 사이에 작은 책을 숨겨놓거나 책꽂이 위에 몰래 올려둔 아이들은 그나마 귀엽다.

날씨마저 더워지니 점점 힘에 부친다.

결국! 어제는 도서검색대에서 나 몰래 인터넷 게임을 하는 놈들의 등짝을 소리나게 때려주었다. 드디어 본성이 드러나버렸다. 이 여름이 다가기 전에, 폭력 일용직으로 찍혀서 해고당할지 모른다. 그럼 사람들이 그러겠지.

어머, 세상에, 애들을 팼다구? 정식교사도 아니었대. 일용직이었대. 어머 그 아줌마 늘 웃고 다녀서 그렇게 안봤더니 완전히 가면이었던 거 아냐? 세상에 세상에, 그 체격에 체중을 실어서 애들을 때렸을 거 아냐. 애들이 남아나질 않겠네...

동네에서도 쫓겨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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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06-11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우미 엄마들도 안나오시고 힘드시겠어요.. 그런데...일용직이라면 학교에서 월급을 받고 하시는 건가요? 제가 예전에 대학 휴학할 때 초등학교 과학실 보조 일용직으로 근무했었던 것이 기억나서.. 그나저나 도서관 이용하는 아이들 책은 소중하게 다루라고 군기를 팍! 잡아 놓으시어요~

호랑녀 2004-06-11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과학보조 일용직하고 비슷하답니다. 고달픈 신세지요...
그런데 그냥 일용직답게 일하면 남들 대접도 일용직일 것 같아서, 정식처럼 일합니다. 진짜 선생님처럼...^^
그랬더니 (겉으로는) 다들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선생님 대접 해줍니다. 뭐, 제멋에 살지요.

아영엄마 2004-06-11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대접 받으실만하니 받으시겠죠.. 전요.. 흑흑... 아무리 덩치가 작은 편이라고 하지만 출근시간에 신발 신고 들어간다고 현관에 지키고 서 있던 주임선생님께 '야, 너 왜 실내화 안 갈아 신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답니다. 알아 보신 다음에 당황하시면서 사과하시더군요..쩝~ 나이 20살이 넘어서까지 초등학생 대접이라니.. 그보다는 요즘 애들이 워낙 성숙한 탓이겠죠? ^^;;

sooninara 2004-06-1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선생님이군요..등짝 맞아도 싸기에..괜찮을겁니다..^^

로렌초의시종 2004-06-1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이 대접받으려고 일하시는게 아니라 대접받을만큼 열심히 일하시니까 대접을 받으시는 거죠^^

호랑녀 2004-06-11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젊어보이니 좋지 ^^ 서른 넘으니, 어려보인다 그러면 뭐라도 사주고 싶더만요 ^^
수니나라님, 고맙습니다. 하긴 우리집애들 패는 것에 비하면, 그래도 양반이었습니다 ㅠㅠ
로렌초시종님, 여기 오시는 거의 모든 분들의 공통점이겠죠, 그저 책하고 같이 있기만 하면 좋은... 책보는 애들은 그저 이뻐 보이는...대접은 늘 제 몫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별로 대접받고 자라지 못해서 ㅠㅠ

2004-06-12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리 2004-06-12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뭐래도 전 님 편이어요! 여자끼리 친하게 지내요!

호랑녀 2004-06-12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부리님. 반가워요.
친하게 지내요. 여!자!끼!리!

수수께끼 2004-06-30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우 1.5칸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맨날 고건축의 칸만 하다보니...현대 건축물은...잘 모릅니다) 우선은 그 속에서 일어나는 먼지가 말도 못하겠군요....마스크는 안쓰시더라도 창문이라도 열어 젖히고 일을 하셔야 되겠네요....그리고, 지금은 이번 처럼 등짝 한번만 때려주시는데...맞을 짓을 했다면 때리는게 당연합니다.
말같지도 않은 조언 한마디 드리면...정말로 말 안듣는 학생이 있다면 본보기로 아주 심하게 꾸짖어 주세요...말씀대로 <호랑녀>의 본떼를 보여주셔야 그 다음에는 눈짓만 해도 말 잘들을 겁니다. 그런데...<사서>라는 단어는 없어진게 아닌가요? 문헌정보요원(뭐..FBI같습니다만)이 맞는 말이 아닌지요?

호랑녀 2004-07-01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헌정보요원이요? 국방부에서만 쓰는 용어인 듯...^^
도서관학과였다가 문헌정보학과로 이름이 바뀌긴 했는데, 사서는 그대로 사서입니다. 사서교사라고 하고, 공무원시험을 볼 때도 사서직으로 뽑지요.
1.5칸은, 교실 한칸 반이란 얘기에요. 수치에 영 약해서, 정확한 사이즈는 잘 모르겠습니다. 조만간 두칸 반으로 이사할 계획인데, 언제 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공기는... 좀 심각하긴 합니다. 공기청정기가 있음 좋은데, 윗분들이 신경을 안 써주시네요 ㅠㅠ. 제 전임사서는, 석달 근무 후에, 다시는 도서관에서 근무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떠나갔답니다.
 

알라딘의 서재폐인을 자처하는 자가 서재폐인에게 주는 적립금에 어찌 관심이 없겠는가.

그러나 마태님이며 진우맘님, 아영엄마님, 책울님, 책나무님... 등등의 서재를 보면서, 나는 감히 꿈꿀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야 일주일에 한두 번 글 올리는데 불과한데 바랄 걸 바라야지...그래서 좋은 글들을 읽는 데 서재폐인의 의미를 두자고 굳게 다짐!했었다. 가끔 코멘트 날리다 줍는 2천원짜리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며칠 전, 마냐님이 서재지수 30위 안에 들었다며 적립금 수령 메일이 왔단다. 축하했다. 그런데 우연히 내 계정에 들어가 보니, 나도 5천원이 들어왔다. 지난 주 서재지수 30위 안에 들었단다. (난 도무지 그 서재지수라는 걸 모르겠다. 아마 나한테 유리한 방식인가 보다.) 난 메일도 안 왔는데...

횡재다!

그 횡재를 확인하고 나오는 순간, 내 서재 방명록에 손님이 왔다는 불이 들어와 있다. 그랬더니 아영엄마님과 진우맘님이 리뷰가 당선되었다고 축하한단다. 엥? 난 돼지꿈도 안 꿨는데?

어떻게 확인하는지도 모르고, 적립금이 혹시 들어왔나 봤더니, 5천원이 전부고... 그러다 알라딘마을에 들어가 봤더니, 그런 게 있긴 했다.(전에도 알라딘마을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런 데 뜨는 사람은 엄청나게 포인트가 높은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흐흐흐... 사실이었다.

그런데 함께 리뷰에 당선된 사람들의 글을 봤더니, 내 글은 거기 낄 수준이 아니다. 거의 전문가 수준의 평론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주최측에서는 왜 나를 뽑았을까. 내 리뷰엔 추천수도 거의 없었는데...

1. 동정이다. 별 내용도 없이 이렇게 길게 썼구나. 본인 우울한 걸로는 안 되니, 아들의 우울모드까지 팔아가면서 이렇게 기를 쓰는구나. 뭐 한번 그냥 주자...

2. 격려다. 가만 보면 여기저기 서재마실다니면서 코멘트 다는 걸로 봐서는 서재폐인이 분명한데, 글은 통 안 올리니, 이런 거라도 주면 자기 서재 관리도 좀 할라나...

3. 미끼다. 이렇게 써도 받으니, 사람들이여, 리뷰 좀 써봐라. 이런 사람도 받을 수 있다...

4. 모두 답이다 ^^

어쨌든, 예전에 써둔 글을 팔아서(리뷰 꼭지도 예전의 리뷰 모음이다. 지난 주에 올렸을 뿐이다.) 5만원 적립금을 얻자니 얼굴이 좀 벌개지긴 한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잘 써야지... 마음을 먹을 수도 없다. 이미 한번 타버렸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도 해야지(솔직 버전으로 말하자면 이것도 횡잰데 두번이나 눈이 멀겠냐... 어차피 내 실력으론 안 된다)...

어쨌든 그래서 적립금을 두 번 탔다. 상을 두 개나 받아버렸다 ^^ (왜 내가 하면 문근영처럼 귀엽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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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6-09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추천을 많이 받으면 서재지수에 반영되는 거 같더라고요.
언니, 내 공헌 잊지말아요~

▶◀소굼 2004-06-09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예전이든 지금이든 호랑녀님 리뷰니까 뭐 어때요^^;[다른 분들도 많이 그러시는데;;저도 그렇고;]

로렌초의시종 2004-06-09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거듭 축하드립니다^^(나도 언제쯤이나 추천 받아서 지수 오르고 적립금 탈 수 있으려나~^^;)

가을산 2004-06-09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드려요! ^^

호랑녀 2004-06-09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감사해요. 앞으로 저도 열심히 클릭해야겠습니다. ^^
소굼님, 고맙습니다. 저는 소굼님이 도서관에 계신다길레, 당연히 사서인 줄 알았답니다. 그랬는데 알고 봤더니 공익요원이었다는...
로렌초시종님, 님도 저처럼 동정 작전으로 나가보셔요. 저 사실 그 리뷰, 추천수도 3개밖에 안 됩니다. 아무래도 주최측의 농간!입니다. 사실은 저 아직도, 어, 잘못갔는데요, 하면서 다시 뺄까봐 떨고 있다는 거 아셔요?
가을산님... 윽... 아무래도 알라딘에서 플래티넘 고객관리 차원의 행사가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

로렌초의시종 2004-06-09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씀을~~~~ 전 아직 냉정과 열정 사이 리뷰 추천 하나도 못 받았는걸요^^;

진/우맘 2004-06-09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너무 귀여워요. 문근영 버전이군요!
주간 서재의 달인은, 말 그대로 일주일간의 서재활동을 반영해서 순위를 매기는 것인데, 그 로직(산출방식이라는 뜻 같죠?)은 비밀에 부치셨더군요. 헌데 경험을 바탕으로 짐작해보면, 아무래도 인터넷 서점인만큼 페이퍼보다는 리뷰가 더 많은 점수로 계산되는 것 같아요.
일주일 동안 집중적으로 리뷰를 쓰신 공로가 인정되어 좋은 결과가 나왔군요. 축하드립니다!!!
좋은 책 많이 사 보시고, 행복한 일주일 되세요~
(ㅋㅋ 쓰고나니, 나 진짜 직원 같다.)

sooninara 2004-06-09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립금 푸실 이벤트 안하시나요? ㅋㅋ 축하드립니다..리뷰 5만원은 꿈도 못꾸고..
서재 오천원도 한번도 받아 보적이 없는데...부럽사옵니다..

▶◀소굼 2004-06-09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는 일은 거의 사서수준이라고 봐도 ;;[이러면 사서분들한테 혼나려나;]
히히;
수니나라님도 열심히 하셔서 오천원을!~아니 오만원도!하실 수 있을거에요:)

호랑녀 2004-06-09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굼님> 잘키운 공익요원 열 사서 안 부럽다 ^^
수니나라님> 이벤트요... 제 계정에 들어가봤더니 아직 안 들어왔던데요? 아무래도 취소된 것 같은 불길함이...
진우맘님> 아무래도 직원이 맞으신 듯. 가만 공직자는 겸업금지 뭐 이런 조항 있지 않나요?
로렌초시종님> ㅠㅠ 앞으로는 잘 누르겠습니다.

panda78 2004-06-11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정말 축하드려요! 와- 제가 알라딘 못 들어온 동안 이런 일이 있었군요! ^^
좋으시겠어요--- 호랑녀님께서 요즘 들어 올리신 리뷰들은 정말 선정되실 만 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구 호랑녀님, 책 거진 다 읽어 가는데, 어떡할까요? (정--말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호랑녀님께 빌려드릴 책도 같이 넣어서 보낼까 하는데요... 리스트 짜서 드릴까요? ^^;;

호랑녀 2004-06-11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팬더님... 그거이 요즘 들어 올리는 리뷰가 전부 작년이나 그 전에 쓴 거랍니다. 왜 갈수록 글을 못쓰게 될까... 머릿속에 든 게 바닥이 났는데, 그걸 채워주지 못하니 그런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네, 리스트짜주세요. 팬더님. 그렇잖아도 책읽는나무님께 빌린 책들 어느 정도 읽어갑니다. 헤이온와이...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저는 댓권 수준이면 됩니다.

마냐 2004-06-13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호랑녀님. 동병상련이 아니라...이럴 땐..뭐라 하는 거였죠? 암튼, 축하드립니다. 상을 두개나 타시다니..대박이네요. 다들 '선정되실 만 하다'고 하니...행복하시겠슴다. 흐흐.

호랑녀 2004-06-13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고맙습니다, 마냐님. 적립금도 들어와서, 6월말에 시험보는 아이들 문제집 샀습니다 ㅠㅠ
첨엔 정말 얼굴 들기 어렵다 생각했는데, 점점 뻔뻔해져서 행복하기도 합니다.
 

내 별자리는 양자리다.

누군가 올려주셨던 글을 보니, 재수 없기로 왕재수인 별자리다. 잘난 척, 착한 척은 혼자 다 하고, 늘 피해자인 척한다는... 음... 사실이다.

오늘 아침, 지하철역으로 기차표를 끊으러 갔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는데, 뭐가 문젠지 카드결제가 잘 안되서, 직접 간 것이었다.

그런데 카드결제를 위해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자꾸 에러가 나는 것이다. 역무원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비밀번호가 맞느냐고 묻는다. 뭐 내 사진까지 떡 붙어있는 포토카드라(물론 처녀시절의 사진이지만) 훔친 카드는 아닌 것 같은데, 비밀번호가 틀렸단다.

이 여자가 날 뭘로 보나, 내가 내 카드 비밀번호도 잊는 그런 사람으로 보이는가, 지네 시스템이 문제란 소리는 하기 싫어서... 증말 새벽부터 왕짜증이야, 이러니까 고속철도가 욕을 먹지, @#$%^&%#$

속으로 무지하게 궁시렁대면서 관두라고 왔다. 겉으로야 싫은 소리 안했지만 내 표정에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집에 오다 갑자기 생각났다.

난, 비밀번호를 누른 게 아니라 전화번호를 눌렀던 것이다!

게다가 나 스스로를 과신한 나머지 다시 생각해보지도 않고, 내가 틀렸을 리가 없다고, 당연히 그쪽 시스템이 잘못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정말 왕재수 아닌가!)

다시 돌아가서 끊을 수는 없었다. 그 역무원이 얼마나 나를 비웃을지 생각해 보니, 도저히 돌아갈 수 없었다. 그 역무원 없을 때 다시 가기로 했다.

나 아직 삼심대 중반인데...

설마 이렇게 이른 시기에 오는 치매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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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4-05-31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수도 있죠..편하게 생각하자구요...
그런데 심각하긴 하네^^

호랑녀 2004-06-02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
울 언니가, 넌 마흔도 안돼서 그러니? 라고 하더군요...
기차표, 결국 그냥 인터넷으로 끊었습니다. ^^

다연엉가 2004-06-09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아유^^호랑녀님... 저는 맨날 남편이 니가 아이들 안 잃어버리는 것이 용하다고 놀려댑니다. 저한테 위로받으세요.^^^^

호랑녀 2004-06-09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책울님... 그런데 위로받기보다는 함께 슬퍼집니다 ^^
 

며칠째, 3학년이나 된 큰놈이 계속 뭔가를 찾지 못한 채 버벅댄다.

미술준비물, 자, 투명종이, 수영모자, 영어책...

나한테 욕을 먹어가면서 묻는 게 이 정도니, 대충 그냥 지나가버릴 학교준비물들은 또 얼마나 많을꼬.

오늘 아침, 우연히 아이의 책가방을 들여다보았다.

필통이 터~ㅇ 비었다. 무지하게 야단치고, 매를 들고 엄포를 놓고, 다시 다 채워놓는 거 확인하고, 지우개 빠졌다고 또 야단치고...

이렇게 난리를 한바탕 치르고 출근해서 도서실에 앉아 있자니, 내가 꼭 그만했을 때 생각이 난다.

3학년 때부터는 사람이 좀 되었던 것 같은데, 2학년 때까지는 별로 다르지 않았다. 공부는 비교적 했었는데(내 생애 공부 잘했던 유일한 순간) 내 걸 챙기는 것에는 정말 둔했다.

어느 날, 하도 지우개를 잃어버리고 다니자 엄마는 필통에 나일론끈으로 지우개를 매주셨다. 그리고 그날, 나는 필통까지 잃어버렸다.

물론, 연필 한 자루도 잃어버리는 걸 용납 못하셨던 엄마는 날 무지하게 혼내셨고, 초등학교 고학년인 울 언니는... 이것을 소재로 동시를 써서 큰상을 탔다.(얄미웠다)

뭘 무지하게 챙기지 못하는 내 아들, 누굴 탓하랴. 날 닮았다. 예전에 썼던 연습장 하나까지 꼼꼼하게 다 챙기는 남편과 날 반반 섞어서 닮거나, 차라리 그쪽을 닮지, 왜 날 닮아 지도 고생 나도 고생인지...

겨우 이 정도의 유전자밖에 물려주지 못하고도, 늘 야단쳐야 하는 내 맘도 편치않다.

좀 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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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5-28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혼내지 마세요.
전 신발 안 신고 학교 간 적도 있는걸요.
실내화 갈아신을 때서야 화장실 슬리퍼를 끌고 온 걸 알고 얼마나 황당했던지.
그 정도면 애교로 봐주세용~

호랑녀 2004-05-28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그래도 바르게 잘만 컸는데 말예요 ^^
그런데 제가 더 아이를 야단치는 건, 제가 살아보니 주변정리 못하고(사람관계는 깨끗했슴다) 흘리고 다니는 게 영 불편하더라구요. 그래서 내 자식은 좀 안그랬음 좋겠는데...
누굴 탓해요...-.-;;

sooninara 2004-05-2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식은 부모의 제록스죠^^ 저도 울 아이들이 나보다 성격이나 모든면이 나아보이는데도..불만이 많아서..에구...매일 잔소리로 시작해서 잔소리로 하루 해가 저물어요..

호랑녀 2004-05-28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날 밤, 제가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있는데,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헉, 우리집이었어?
뭐가?
아파트 현관에서부터 어떤 여자가 소리를 지르면서 애를 잡길레, 저 무식한 여자... 했더니, 당신이네?
@*%$%*$#@...

다연엉가 2004-05-28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호랑녀님 저 무식한 여자 그 여자 여기 또 있습니다^^^

호랑녀 2004-05-2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쪽 소리는 여기까진 안 들리고, 그냥 우리 현관에선 우리집(3층) 정도 소리만 들려요 ^^
이제는 딸한테 전화왔네요.
엄마 배고파
어쩌라고~ 엄마가 나가는 거 하루이틀이냐? 여기저기 뒤지믄 먹을 거 있잖앗!!!

다연엉가 2004-05-28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호랑녀님 그렇게 하면 뒤져서 먹습니다.^^^그렇게 강하게 키웁시다.(^^)

진/우맘 2004-05-29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져서....ㅋㅋㅋ 갑자기 어제 본 <돼지책>이 떠올라요.^0^

호랑녀 2004-05-29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하게 크는지, 천덕꾸러기로 크는지...ㅉㅉ
진우맘님은 다른 고민들이 또 있으시겠지만, 그래두 아이들 먹을 거는 시부모님이 챙겨주시겠네요 ^^
우리 아이들은 돼지책을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나봐요. 엄마가 있어도 집이 돼지우리 같아서인가?

AeroKid 2004-05-31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분의 아이키우기 를 보면서, 저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또는 아이를 돌아보지요..
어떻게 자랄까? 내 이 한마디 손길 한번마다...

호랑녀 2004-06-02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에어로키드님! 다른 사람 서재질에 제 서재 쉰내나는 줄 모르고...^^
내 손길 한번, 내 따뜻한 말 한마디마다 아이가 더 잘 자라겠지요... 그런데 그래도 저는 문제입니다. 따뜻한 손길, 따뜻한 말도 잘 못하니...-.-;;

아영엄마 2004-06-04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왜 유독 큰 아이에게만은 너그러울 수 없는지... 오늘도 저는 아이에게 바락~ 소리를 지르고 말았답니다.. 평소에도 숙제 안하고 놀려고만 해서 한번, 두번, 세번.. 네번째에는 결국 고함이...ㅠㅠ 오늘도 동생 데리러 나가기러 해 놓고 시간 다되어 가는데 책 본다고 눈을 못 떼고 있는 녀석에게 몇 번 이야기 하다 안되니까 고함을.. 에휴.. 이 엄마가 발전이 없네요..쩝

호랑녀 2004-06-05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애에 대한 기대가 더 커서일까요, 아님 한번 실망해봐서, 둘째에 대해서는 좀더 너그러워질까요...^^
전 사실 둘쨰에 대해 특별히 너그럽지도 못해요. 가끔씩은, 내가 아동학대를 하는 건 아닌가, 회초리는 들더라도 마음은 어루만져주어야 하는데, 난 그것도 못한다 싶어서 자책합니다... 아우, 엄마 어려워~
 

6학년 여자애들 둘과의 대화

A : 아, 딱 1억원만 있으면 좋겠어. 천만원으로는 좀 부족하고, 1억원은 되어야겠어.

B : 야, 로또해. 방법은 로또 뿐이야. 니네 엄마 아빠가 1억원 달라면 주겠냐?

나 : (잠깐 끼어들어서) 1억원이나 되는 돈이 어디에 필요한대?

A : 일단 컴퓨터 3대 사구요, MP3하고 핸드폰 좋은 걸로 사구요. 그리고 동방신기 판을 엄청 사서 순위 팍팍 올라가게 하구요. 

나 : 컴퓨터하고 MP3하고 핸드폰이 공부하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3가지라고 하더라.

B : 로또만 되면 돈 있는데 뭐하러 공부해요? 동방신기랑 결혼해서 판 내주고 같이 살면 되지. 그런데 선생님, 진짜로 우리는 로또 사면 되도 돈 못받아요?

나 : 아마 그럴걸? 미성년자는 로또 같은 복권 못 하게 되어있지 않나?

B : 아, 진짜 재수없어. 뭐든 지네 맘대로야. (휑 ~ 쾅 ! => 문 닫고 나가는 소리 )

이 아이들뿐 아니다. 다른 아이들과 얘기할 때도 느낀 건데, 장래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은 어떤 직업이 일 덜하면서 돈 많이 버는가 하는 것이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아이들도 정말 많다. 고귀한 사명의식이나 봉사정신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의사가 되고싶어 하고, 정의의식 없이 법관이나 변호사가 되고싶어 한다. 물론 연예인과 프로게이머를 원하는 아이들도 많은데, 그 이유는 신나게 놀면서도 몇억씩 팍팍 버니까 란다.

누가 아이만을 탓할 수 있겠는가. 아이만을 탓하기에는 너무 많은 아이들이 그렇다. 이건 아이들의 아빠 엄마, 그리고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땀의 소중함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땀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들에게 자유는 방종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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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4-05-26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을 알고 조금더 현실적으로 변하겠지요. 그 아이들은 지금 자신의 꿈이 현실적인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런 직업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기에, 조금씩 세상을 알면서 꿈을 바꿔가겠지요. 지금 그 아이들의 꿈은 슈바이처 박사나, 퀴리 부인의 삶과는 또다른 의미에서 비현실적이잖아요?

아영엄마 2004-05-27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요즘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나요?
앗 인사!! 호랑녀님~ 가끔 님의 닉네임보고 찾아온다는 것이 좀 늦었네요... 아이가 셋이라는 글을 본 것 같은데... 그리고 학교 사서선생님이시라더니 와보니 페이퍼가 올라와 있군요. 앞으로도 요즘 아이들의 이야기 종종 올려 주세요~ 즐겨찾기 해 놓을께요~ 아, 저의 서재에도 들려 주시고..^^*

호랑녀 2004-05-27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가끔 마주치시는 분이네요. 우울모드 올려두신 글도 봤는데, 그냥 첫인사 드리기에는 좀 우울한 모드라서 답글을 못달았는데...^^
예, 저도 한참 손이 가야 할 5살짜리, 2, 3학년짜리 아이 셋에다,
일당받는 직장에다(일당받는 직장은 하루 빠지면 돈이 사흘치가 나간답니다. 주차에 월차수당까지),
집안일에는 도움이 안 되는 남편에다(그나마 월급은 잘 들어오는 공무원인데 6남매 장남입니다)...
아이 아플 때 봐줄 수 있는 친척은 아무도 없으면서, 제가 얼마 전 반기를 들 때까지는 주말마다 시댁식구들 북적거렸죠...
그렇게 삽니다 ^^

호랑녀 2004-05-27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렌초시종님, 답글 단다면서 자꾸 잊었어요 ^^(학교컴이 무지 느려요)
뭔가를 굉장히 열심히 하고 나서 뿌듯한 기분~ 요즘 아이들(이런 말 쓰는 거 무지 싫어하지만)은 이런 걸 잘 못 느끼는 것 같아요.
돈이 많다고 행복한 건 분명히 아니잖아요? 하이타니 겐지로의 말처럼, 그럼 요즘 애들이 옛날 아이들보다 훨씬 더 행복해야 하니까...

제가 아직 철이 없어서, 저는 아직도 돈보다 소중한 그 무엇인가가 있다고 믿으니까...(그래서 가난한지 모르지만 -.-;;) 벌써부터 돈 돈 하는 아이들이 참 안타깝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