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에 단 한 번도 써먹을 일이 없을 줄 알았던 2급정사서 자격증과 사서사 자격증을 써먹을 일이 생겼다.
아이들 학교에서 도서도우미를 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사서교사가 그만 둔다는 것이다. 신혼이었던 선생님은 남편을 따라 부산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남편이 발령이 났다나.
그런데 이 자리가 일당을 받는 자리라서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는 도서도우미 회장의 회유와 협박에 넘어가서 내가 덜컥 맡았다. 몇 달만 맡으면 될 거라는 말도 한몫했고, 내 아이들이 다닐 학교의 도서실이니 마음껏 재미있게 운영해보자는 말도 한몫했다. 그래서 결국, 9 to 5 출퇴근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결혼하고 처음이다.

드디어 첫 출근.
새벽부터 일어나서 아이들 준비시키고, 밥 먹이고, 초등학교 두 아이와 4살 늦둥이까지, 세 아이의 손을 잡고 8시 30분 경에 집을 나섰다.
평소의 내 걸음으론 1분 거리인데, 아이들과 함께 가니 10분이 더 걸린다.
셋째네 어린이집(학교 바로 앞에 있는)에 들러 셋째 보내고, 다음엔 1층에서 둘째 보내고, 3층에서 큰애 보내고, 그리고 4층의 도서실로 출근했다. 자주 들르던 곳이었지만, 내 자리다 생각하니 아늑하게 느껴진다. 물론 조금은 겁도 나고.

난데없이 교감선생님 호출. 일주일에 한두 번이나 얼굴을 보면 된다던데 출근하자마자 무슨 일일까.
방송으로 하는 아침조회 시간에 카메라 앞에서 전교 어린이들을 상대로 인사를 하게 하셨다. 헉, 이럴 줄 알았으면 좀 갖춰입고 올건데. 도서실이 좀 심난해서 첫날부터 작업복 차림으로 출근했다가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큰애와 둘째네 교실에선 난리가 났단다. 지 친구 엄마인 아줌마가 선생님이 되었으니. - 걔네들은 아직도 나를 아줌마라고 부른다...얘들이 증말...(아줌마라고 불러도 좋다. 책만 많이 읽어라!)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가는데, 점심시간에 갑자기 2학년 여자애가 울면서 나타났다.
선생님, 저 신발 잃어버렸어요...엉엉...
도서실 앞 사물함에 신발주머니를 뒀는데, 없어졌단다. 그냥 가면 선생님이 챙겨놓겠다 했더니 엄마한테 혼난다고 절대 안 된단다. 그럼 기다렸다가 점심시간 지나고 아이들이 좀 가고 나면 찾아보자 했더니 그것도 안 된단다. 학원에 늦는다나...
음, 사서교사의 역할이 이런 거구나...
결국 어떻게 신발주머니를 찾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이런 일이 또 일어난다면 참 당황스러울 것 같다. 여전히...

오후에는 내내 아이들이 숨겨놓은 책 보물찾기를 했다.
키큰 녀석들은 서가 위에 숨겨놓고, 어떤 녀석들은 히터 뒤에, 또 어떤 녀석들은 다른 책들 사이에 교묘하게 숨겨놓았다. 주로 만화책들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대출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이 다음에 와서 읽으려고 숨겨놓은 것이다.

이런 나쁜...^^


그거 다 찾아서 제대로 꼽고 보니, 하루해가 금방 가고, 나의 첫날도 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재미있다.

(돈만 많이 주면 금상첨화일텐데... 했더니, 돈 많이 주는 자리라면 내 차지가 될 수는 없었을 거라고 남편이 충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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