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3학년이나 된 큰놈이 계속 뭔가를 찾지 못한 채 버벅댄다.
미술준비물, 자, 투명종이, 수영모자, 영어책...
나한테 욕을 먹어가면서 묻는 게 이 정도니, 대충 그냥 지나가버릴 학교준비물들은 또 얼마나 많을꼬.
오늘 아침, 우연히 아이의 책가방을 들여다보았다.
필통이 터~ㅇ 비었다. 무지하게 야단치고, 매를 들고 엄포를 놓고, 다시 다 채워놓는 거 확인하고, 지우개 빠졌다고 또 야단치고...
이렇게 난리를 한바탕 치르고 출근해서 도서실에 앉아 있자니, 내가 꼭 그만했을 때 생각이 난다.
3학년 때부터는 사람이 좀 되었던 것 같은데, 2학년 때까지는 별로 다르지 않았다. 공부는 비교적 했었는데(내 생애 공부 잘했던 유일한 순간) 내 걸 챙기는 것에는 정말 둔했다.
어느 날, 하도 지우개를 잃어버리고 다니자 엄마는 필통에 나일론끈으로 지우개를 매주셨다. 그리고 그날, 나는 필통까지 잃어버렸다.
물론, 연필 한 자루도 잃어버리는 걸 용납 못하셨던 엄마는 날 무지하게 혼내셨고, 초등학교 고학년인 울 언니는... 이것을 소재로 동시를 써서 큰상을 탔다.(얄미웠다)
뭘 무지하게 챙기지 못하는 내 아들, 누굴 탓하랴. 날 닮았다. 예전에 썼던 연습장 하나까지 꼼꼼하게 다 챙기는 남편과 날 반반 섞어서 닮거나, 차라리 그쪽을 닮지, 왜 날 닮아 지도 고생 나도 고생인지...
겨우 이 정도의 유전자밖에 물려주지 못하고도, 늘 야단쳐야 하는 내 맘도 편치않다.
좀 잘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