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프랑스에 거주하며 '월간 말', '한겨레 21'에 기고해 온 자유기고가 이선주씨가 프랑스인들의 내면 세계를 촘촘히 관찰한 <유럽의 나르시시스트 프랑스>(민연)를 펴냈다.

서문에서 "우리의 외국관은 그간 우리의 단점을 지적하기 위해 무작정 선진국과 우열을 따지는 콤플렉스로 가득차 있었다"고 꼬집은 저자답게 그는 똘레랑스 같이 찬양받는 가치의 이면을 파헤치며 프랑스를 '있는 그대로 보자'고 요청한다.

 "나는 그들을 존중한다. 왜냐면 나랑 상관없으니까"
 
  '사데팡'이라는 상대적인 태도가 개인주의와 병행되면서 "내가 원하는 게 곧 진리"라는 식으로 복수의 진리들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각자 따로, 내가 원하는 대로' 혹은 '나와 다른 것이나 내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예 무시해버리는' 개인주의의 극치로 이어진다.
 
  그 결과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다양성이 존재하지만 서로 비켜가며 끼리끼리 뭉쳐 꼭꼭 문을 닫아버리거나 나와 상관없는 일에는 아예 무관심해져 버리는 것이 오늘날 프랑스인의 모습이라는 저자의 지적이 날카롭다. '무늬만 똘레랑스'의 속살엔 무관심과 고립이 또아리잡고 있다.

 


  "'생명의 아우성'에 귀기울이지 않는 문학은 죽었다" 
 
'사실'이 아닌 '진실'에 눈을 돌리게 하는 글
 
  그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의 백미는 태백의 폐광촌, 북한산국립공원 관통도로 공사현장, 새만금 간척사업이 한창인 부안을 둘러보고 쓴 네 편의 르포다.
 
  이 글들은 지극히 편파적이다. 한때 잠시 기사를 써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던 그이지만 이 르포를 쓸 때는 애초에 '기계적 중립성'은 관심 밖이었던 듯싶다. 쏟아지는 '사실'들 속에서 허우적대다 정작 '진실'을 부각시키기보다는 그것을 가리는 데 더 능력을 발휘해 온 '현직 기자'들에 대한 조롱일까. 감정선이 생생히 살아 있는 그의 글은 '사실'이 아닌 '진실'에 주목하도록 독자를 이끈다. 예를 들어 그는 1980년 사북사태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80년 사북사태의 광부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믿는 건 몸뚱이 하나, 몇 년 고생하면 목돈을 쥘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탄광촌으로 왔을 것이다. 다른 어떤 편법이나 탈법에 기대지 않았다는 점에서 탄광을 선택한 그들은 사회적으로 매우 건강한 욕망의 소유자다. 또 광부들치고 번듯한 집안 자식은 없을 것이며 가난에 시달릴 대로 시달리며 성장기를 보냈을 것이다. 자기 몸 하나 혹사시켜 가난에서 벗어나 좀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면 까짓 몇 년 죽도록 고생하지, 하는 그들의 결심은 또한 얼마나 정직한가. 이 건강함과 정직함은 재산이나 학벌이나 다른 뭐든 가진 게 없기 때문에 약은 수로 세상을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는, 역설적으로 너무도 깨끗한 그들 삶의 기반에서 나온다. 바로 그만큼의 '나은 삶'을 향한, 바로 그만큼의 악착같은 그들의 소망, 80년 사북의 광부들 또한 바로 그런 사람들임에 분명하다."

산업주의와 자본주의에 결박당한 세상을 구원하라
    
 
김곰치, <발바닥 내 발바닥>, 녹색평론사, 2005. ⓒ프레시안  
 

  하지만 그의 시선이 '과거'로만 열려 있다면 한 때의 진실을 증언하는 '후일담'에 머물지도 모른다. 그가 발로 쓴 르포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산업주의와 자본주의에 결박당한 기존 가치관의 전복이다. 그는 사북사태를 겪은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탄광촌의 몰락에서 다음과 같은 가치관의 전복을 시도한다. 노동운동에 대해서, 느낌으로는 누구나 다 알지만 감히 말하지 못했던 진실.
 
  "새삼 노동운동에 대해 생각해본다. 대체 무얼 하자는 운동일까. 현실 노동은 결국 자본과 공동운명체, 노동운동은 죽어라고 부모 말 안 듣는 자본의 자식일 뿐이지 않을까. 그러나 호로자식이라도 감히 지 아비를 생매장시킬소냐. (…) 더 중요한 사실은, 폐업이나 자본철수라는 극단적 상황을 떠나서도 현실의 어떠한 노동운동도 그 한계가 빤한 운동이란 점이다. 아무리 강력한 연대투쟁을 벌여도 그들은 자본의 경계 밖으로는 나갈 수가 없다. 설사 노동자들의 연대체가 정치권력을 장악한다 해도 그 또한 자본의 영역 속이다. 물론 자본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리겠지만 기존의 '자본'은, 아니 발전의 기획, 그 생산력은 고스란히 남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은 자본을 해체시키는 건 꿈도 못 꾸는 운동이다."
 
  그렇다면 그가 지향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처음 이런 르포를 써볼 것을 그에게 권한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 문학의 어리석은 관습에 매달려 계간지나 독자들 꽁무니나 쫓아다니지 말고, 김곰치 씨만이라도 이 땅의 산과 바다, 강, 나무한테 사랑받는 작가가 되지 그래요." 그렇다. 그는 몇몇 소수의 '소설 매니아'들에게 사랑받는 작가가 아니라 생명 전체에게 사랑받는 작가를 지향하는 것이다. '문학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는 점에서 그의 르포야말로 오히려 근대적 '문학'의 정체성에 부합한다.

"새만금 사업에는 대한민국의 후진성이 집약돼 있다. '영남 정권이 추진한 사업, 호남 정권이 마무리 짓자'라는 피켓처럼 지역감정이 작동하고 있고, 개발이냐 환경이냐, 완강한 시대정신이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고, 농업기반공사와 전라북도 도청의 힘겨루기처럼 중앙과 지자체의 갈등이 있다. 가난한 민중의 생존권이 있고 공동체가 깨지든 말든 제 앞가림만 하면 그만이라는 낯익은 처세술도 있다. 그러나 새만금 사업의 운명을 내다보는 데는 미래에 대한 엄청난 발상 전환도 있다. 계화도 어민 염정우 씨의 말이 그렇다. '이 사업을 막을 수만 있다면, 여기서부터 진정한 분기점이 일어나는 거 아니냐. 통일이 되어도 북한을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 있을 거다. 새만금 사업 중단은 앞으로 우리 민족의 중요한 정신적 터전이 될 수도 있다.' 자연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면, 그래서 1조원이 들어간 사업이라도 중단시킬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이 나라 민중의 새로운 저력이 될 거란 기대다. 아름다운 발상이다."
 
  '편지의 힘'을 새로 발견하다
 
  이 책에서 또 눈에 띄는 것은 시인 백무산, 지율스님, 이른바 '도롱뇽 소송'의 2심 판사 등에게 보낸 네 편의 편지다.
 
  그의 말대로 소설은 편지의 힘에 못 미친다. 편지는 무엇보다도 힘이 센 문학 행위다. "불특정 다수라는 제3자의 벽을 부수려는 소설의 꿈은 거꾸러지지 일쑤다.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수십 번 읽듯 수십 번 읽는 작가 자신 외의 독자를 만나기도 무망하다. 편지는 첫 출발부터 소설보다 힘이 세다. 오직 그(녀)가 독자다. 그의 마음을 쟁취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일대 일의 위대한 문학 행위가 편지다. 나는 완벽한 소설에의 꿈보다 완벽한 편지에의 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편지들은 매번 본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지율스님의 마지막 단식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프레시안>에 긴급하게 기고한 편지('지율스님에게 드립니다')는 단식을 중단시키지 못했고, '도롱뇽 소송'의 2심 판사 역시 예상대로 '기존 질서의 구미에 맞는 판결'을 내놓았다. 그는 편지를 통해 그(녀)의 마음을 쟁취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그의 편지는 어떤 소설보다도 더 편지를 엿본 제3자의 벽을 부수는 힘을 발휘했다. 지율스님의 단식에 지지를 보낸 (혹은 천편일률적인 개발 정책에 대해서 잠시 성찰하는 기회를 가진) 많은 시민들의 각성에 그의 '실패한 편지'가 미친 효과는 상당했을 것이다. 그는 '완벽한 편지'를 쓰지는 못했지만 역설적으로 '소설'보다 힘이 센 문학 행위의 한 전범을 선취했다.
 
  "탐욕으로 일그러진 이 시대에 대한 가장 정직한 문학적 증언"
 
  다시 묻는다. 21세기 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이 책의 발문에서 다음과 같은 통렬한 고백을 털어놓는다.
 
  "오랫동안 우리의 역사적, 사회적 현실에 관계하여 사람들의 의식을 날카롭게 하는 데 무엇보다도 크게 기여해온 것은 문학이었다. 그 문학이 언제부터인지 하찮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문학은 이제 기껏해야 동호인들끼리의 취미활동으로 떨어져버린 게 아닌가, 나는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다. 문학이 자기 본연의 역할, 즉 가장 근원적인 정치적 발언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삶의 밑바닥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보고 들은 것을 정직하게, 비타협적으로 얘기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김곰치의 이 책 역시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여는 소중한 시도다. 하지만 이 시도가 계속되기 위해서라도 그를 외롭게 하면 안 될 것이다. 새로운 문학은 작가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함께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탐욕으로 일그러진 이 어리석은 시대에 대한 가장 정직한 문학적 증언"에 귀를 기울여보자. 생명의 아우성이 들릴 것이다.

 

from 프레시안.  강양구/기자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주미힌 2005-08-27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마음에 들어서 무리하게 TWO를 ㅎㅎㅎ.
 

최근 외국에서 체포된 알카에다 고위 간부가 한국을 테러 대상 2순위 국가로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가정보원은 25일 열린 국회 정보위 비공개 회의에서 "지난달 우방의 국가 수사기관에 체포된 알카에다 고위 간부가 올해 테러 대상 2순위 국가로 한국과 일본, 필리핀을 지목했다"고 보고했다고 정보위 관계자가 전했습니다.

국정원은 "이 알카에다 조직원은 테러 대상 1순위 국가로는 미국·영국·호주를 꼽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국정원은 테러 조직이 오는 11월 열리는 부산 APEC 정상회의를 노릴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고 대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테러대상 2순위 국가라는 뜻은 "테러가 당장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주의가 필요한 곳"을 의미한다고 국정원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남상석 ssnam@sbs.co.kr

 

 

 

'한국도 테러 2순위 국가가 되었으니 이제 (미국과 같은) 문명국이 되았다'.
'식물(신물나는)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 아니겠는고'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릴케 현상 2005-08-28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당분간 부산은 안 가야겠네요
 

  노무현이 과연 개혁을 할 의지를 가지고 있었는가는 별개로 하더라도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개혁을 원하는 국민들의 바람과 그런 국민들의 바람을 자신에 대한 지지로 연결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이런 바람은 취임 초기 그에 대한 높은 지지율로 나타났다.

 그런데 서영석의 말대로 노무현은 '개혁장사'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록 그것이 장사였다고 하더라도 공희준의 말대로 노무현은 장사를 하고 남은 이윤을 주주인 국민들에게 '개혁'이라는 성과물로 돌려주어야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노무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NATO(no action, talk only)정권이라는 이름이 초창기 노정권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말로는 급진적 개혁을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긴 것은 거의 없는 현실을 빗대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지난 4.15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다음에도 거의 변화가 없었다. 다만 지난해 말 정략적 필요에 의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처럼 약간의 액션을 취하다 만 적이 있었다.

  그런데 NATO 대통령이 이제는 말마저도 노골적으로 수구세력을 편드는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삼성 이건희로 대표되는 독점자본과 독점자본가에 의한 국가권력 장악이 그 본질인 X파일 사건에 대해 '도청'이 본질이라고 물타기를 한 사람이 바로 노무현이다. 특검을 반대하고 이건희로부터 검은 돈을 수수한 삼성 장학생들이 수뇌부를 차지하고 있는 검찰에 X파일 사건 수사를 맡기고 있는 사람이 바로 노무현이다.

  한술 더 떠서 맥아더 동상 철거를 반대하는 사람이 바로 노무현이다.

  그리고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주장하다가 이제는 한나라당에게 권력을 내놓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바로 노무현이다.

  얼마전 노무현은 자신은 한나라당과 족벌언론의 방해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식물대통령이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어제는 29%의 지지율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무현의 푸념과 하소연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역으로 물어보자. 한나라당과 족벌언론의 방해가 없었기 때문에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인가? 왜 취임 초기에는 하늘을 찌를 듯하던 지지율이 지금은 29%로 떨어진 것인가?

  답은 자명하다.
  개혁장사를 한 노무현이 그 이익을 '개혁'이라는 성과물로 주주인 국민들에게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은 그로부터 등을 돌렸고 그 결과가 29%의 지지율로 나타난 것이다.

  진실은 이런데도 노무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연정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국민에 대해 "국민을 제왕으로 생각하고 필요할 때는 직언하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저는 대통령을 신하로 생각하고 지금 과감한 거역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정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국민에 대한 반역을 과감한 거역이라고 치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진짜로 말조차 하지 못하는 식물대통령이 되어서 더 이상 그의 입에서 수구적인 발언을 듣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Name  
   시시 평론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인간아 > 인간이기에, 인간을 극복할 수 있다. 인간이 되려는 노력은, 인간을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199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이기에, 인간을 극복할 수 있다. 인간이 되려는 노력은, 인간을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위의 문장은 오노레 발자크에게 보내는 헌사다. ‘오노레 발싸, - 또는 발자크 - ’와 ‘오노레 드 발자크’라는 두 이름의 간극은 성(聖)과 속(俗)이라는, 도저히 하나로 합쳐지기 어려운 현상이 인간이라는 존재에 이토록 조화로운 세계로 융화될 수도 있다는 거대한 불멸의 증거다. 도대체 예술가의 운명은 ‘인간’에 종속당하는가, 아니면 ‘인간’을 뚫고 튀어나와 거대하게 외따로 존재하는 건가. 이런 나약하고 졸렬한 질문은 발자크라는 거대한 인간의 그림자도 뚫지 못한다. 단숨에 모든 인간적인 평가와 능력을 뛰어넘은 존재는 그 자체의 삶이 예술이다. 가네샤의 화신이면서 간달바처럼 노닐며 탐욕스럽게 인간의 추한 욕망을 향기처럼 내뿜으며 허공으로 치솟아오른 발자크는 예술이, 현실이라는 극단에서 어떻게 비약할 수 있었는가를 가장 기이하게 보여준 소설가다.


  발자크의 문학을 말하는데 꼭 필요한 단어는 ‘모순’이다.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발자크에게는 먹혀들지 않았다. 인간희극이라는, 그의 소설전집 전체는 137권의 작품으로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그의 생애 동안 완성한 작품은 97편 정도이다. - 안타깝게도, 겨우 97권이다! 인간의 창조력은 아직 그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러니 아직도 ‘인간’이라는 의미는 계속해서 확장중인 현재진행형이다. 적어도 발자크는 천재나 영웅도 도달하지 못한 그 미지의 가장 깊은 바닥까지 가본 것은 분명하다. - 평생 동안 빚을 갚기 위해 하루 열다섯 시간의 집필 시간을 엄수하면서 소설과 희곡과 잡문과 팜플릿과 편지를 써대던 정력의 화신, 안락한 환경에서 어머니처럼 자상하게 자신을 돌봐주는 사랑하는 여인과 더불어 펜으로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던 불굴의 작가, 결코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던 위대한 유머와 의지의 인간이었던 발자크! 그는 평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빚을 창작의 토양으로 삼았고  뒷문으로 집달리와 빚쟁이를 속여 피해다니면서도 정력적으로 소설을 써대던 규칙적인 여유를 잃지 않았으며 최악의 현실에서도 늘 최대의 몽상과 최선의 낙천적인 희망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발자크가 현실과 인간을 조롱하며 오로지 자신의 펜으로 온 세계를 정복하고 또 자신만의 위대한 세계를 창조하려고 할 때 모든 권력과 부귀영화와 여인들과 귀족들은 그에게 존경과 경배를 보냈다. 그러나 발자크가 때때로 몽상과 아득한 미지의 탐욕으로 향락과 부귀와 안락한 일상과 평안한 유혹을 좆을 때마다 그것들은 여지없이 발자크를 쓰러뜨리고 극한으로 몰아넣었다. 이 모순은 예술의 신이 발자크라는 인간에게 베푼 극한의 축복이었으리라. 발자크라는 예술가는 죽을 때까지 인간이기보다는 소명을 받은 창조자의 삶을 부여받았다는 증거라고도 볼 수 있다. - 발자크는 “최고의 영감들은 내게는 언제나 가장 깊은 두려움과 곤궁의 순간에 나타나곤 합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신탁을 받아들였고 인정했던 것이 아닐까. - 실제로 그의 걸작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단숨에,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노동력과 집중력과 반복되는 퇴고를 통해 완성되었다.


   성스러운 이상에 도달하고자 이 미욱하고 보잘것없는 현실을 벗어나려 애쓰다보면 사무친다. 그냥, 다만 인간이라는 사실이, 인간이 아닌 많은 것들을 억압하는 본래면목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겨우 이정도가 내 본질의 진면목이라니 하는 자괴감이 든다. 그러나, 나와 같은 인간인, 그러나 인간이었던 - 그는 있는 힘껏 삶을 통해 인간이 어디까지 확장되었음을 증명했다. 그렇기에 인간이면서 또한 인간을 너머선 세계를 창조했다. 그래서 인간이었던! - 오노레 드 발자크를 보라. 나는 그를 알자마자 그에게 위안을 얻는다. 왜나고? 발자크의 위대한 예술의 기저에는 인간의 본능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노골적으로 기괴하게 뒤틀린 인간의 욕망을 가지고도 불멸하는 예술의 올림푸스로 위대한 흔적을 남기면서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기 때문에. 발자크도 나와 같은 인간이기에. 그러니 나도 희망이 있다. 인간인 나도 언젠가는 ‘인간’을 벗어나리라. 서둘러 죽음이 내 ‘인간’의 껍질을 벗겨버리기 전에.


  위대한 인간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건 인간을 벗어나 다른 인간이 된다는 말로 다가온다. 인간이면서 인간으로 해내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 그래서 ‘인간’을 확장시키고 상승시키고 더욱 숭고하게 진화시키는 일이 위대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른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같잖다’라는 말의 의미는 상당히 유감이다. ‘나와 같지 않다’라는 말은 마땅히 위대한 인간을 위한 존경과 경배의 의미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인간을 벗어나려고 인간의 약점을 모두 짊어지고 투쟁했던 발자크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 평전은 뛰어난 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가장 뛰어난 평전이라고 손꼽을 수 있다. 그의 걸작 <천재와 광기>의 첫머리에서 우리는 ‘발자크’의 모습을 기쁘게 발견할 수 있다. 이 평전을 토대로 하여 발자크 평전은 시작되었으리라.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이 유럽사의 치밀하고 깊이 있는 통찰 위에 위대한 거인 발자크의 일생을 호탕하고도 세밀하게 새겨 넣었다면 <천재와 광기>에서는 그의 작품들의 주인공들을 통해서 발자크의 특징이나 세계관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것만으로도 발자크라는 존재를 만끽할 수 있었으리라. 더구나 나아가 이 책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읽게 된다면, 오, 이토록 황홀한 심사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 <천재와 광기>에 수록된 예술가들 중에서 다시금 완전한 장편전기로 새롭게 탄생한 존재는 발자크가 유일하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발자크에 대해 가졌던 애정과 존경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있으리라. -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책을 만나게 되었고, 오랫동안 이 책을 읽고, 또 되새겨 겨우 이정도의 감흥을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애통하다. 발자크라는 ‘인간을 벗어난 위대한 인간’을 알게 된 건 내 생의 축복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자크의 모습을 내게 완전하게 알려준 존재인 슈테판 츠바이크 역시 위대한 인간으로 손꼽을 수 있으리라. 츠바이크가 보여주는 한 인간의 삶은, 현실의 진정성과 인간의 위대한 가치를 되새기게 해준다. 츠바이크가 내게 끼친 해악은 나를 이렇게 고백하게 만든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발자크의 작품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발자크라는 인간에 대해서 아는 체하고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싶어집니다. 이게 바로 츠바이크 문학의 위대한 폐해입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또다시 츠바이크에 대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라고.

 

  ** 이 훌륭한 책의 재출간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부디 많은 독자들이 이 가치 있는 책을 널리 읽을 수 있게 되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잔혹과 매혹’은 한 살인사건과 그 분석에 매달린 프랑스 지성인들의 이야기다. 1933년 프랑스의 한적한 시골도시 르 망에서 하녀로 일하던 파팽 자매가 주인 모녀의 눈알을 맨손으로 뽑아 죽인 엽기적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시신은 난자당했고, 동성애 관계이던 범인 자매는 “이제 제대로 됐어”라는 말을 남기고 순순히 잡혀간다.

광분한 프랑스 대중은 이들의 공개 참수를 요구했지만, 지식인들은 인간의 본성을 시사하는 ‘상징’을 읽어내려고 이 사건을 부단히 뒤졌다. 지난 70년 동안 수많은 소설과 연극, 영화가 탄생했고, 사건은 지금도 문학 작업의 모티브로 자리를 내어놓지 않고 있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편집증적 범죄의 전형에 대한 들춰내기를 시도한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에로스트라트’에서 주인공 알베르에 파팽 자매를 오버랩했고, 보바르는 사건의 본질적 희생자는 파팽 자매라고 역설한다. 좌파 지식인들은 “주인 마님의 피부를 갖고 싶었다”고 동기를 밝힌 점을 들어 살인을 ‘계급적’ 행위로 해석했다. ‘심연’ ‘의식’ ‘살인의 상처’, 다큐멘터리 ‘파팽 자매를 찾아서’ 등은 그 영상 텍스트들이다. 국내 무대에 올려진 장 주네 원작의 ‘하녀들’은 이 사건이 우리 주변에까지 와 있음을 깨우치게 하는 사례다. 파팽 자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20세기 프랑스 담론인 셈이다.

 

‘악마의 사도’는 도킨스가 25년간 써 온 글 가운데 일부를 추린 것이다. 일부는 기고문이고, 또 일부는 강연 원고다. 과학적 사고로 세상을 읽어낼 수 있도록 작은 창을 제시하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처럼 그가 만들어낸 중요한 생물학적 개념에서부터 다윈주의의 위대함을 역설한 글까지 다종다변한 잡문들이다. 진화의 문제뿐 아니라 윤리, 종교, 대체의학에 관한 글도 실려 있다.

그러나 저자의 명성만 믿고 덤비기에는 난감한 면도 있다. 친절하지도 않을뿐더러 모호한 표현이 수시로 발을 건다. 이 분야 최고 번역자의 손을 거쳤으므로 번역상의 오류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과학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이는 책의 일반적 특성으로 볼 수 있다. 즉 과학서적을 읽을 때는 그에 맞는 최소한의 문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화생물학의 새로운 장을 연 도킨스의 전작을 읽지 않고 이 책에 도전하면 재미가 덜할지도 모른다. 역으로 생물학적 개념이 조금이라도 정리되어 있다면 그의 날카로운 위트를 ‘쿨’하게 즐길 수 있다.

과학과 진리에 대한 믿음은 이 글들을 관통하는 기본 주제다. 뉴에이지 신비주의와 영성까지도 이 틀에 맞춰 재단해낸다. 다윈주의는 ‘나’라는 존재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문이다.

 

1930년대 중반, 군국주의 국가 권력에 저항하던 일본 좌파 지식인들의 전향이 러시를 이룬다. 저자는 이들의 전향에서 일본 정신사의 가장 중요한 코드를 찾아낸다.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 쓰루미 슌스케의 대학 강의 노트를 출판한 책.

 

 

 

20세기 세계 어문학사 연구자인 블라디미르 프로프(1895~1970)는 이렇게 언명한다. "민담과 설화가 풍부한 민족이 바로 문화민족이다"라고. 그에 따르면 한 나라의 문화가 주변국을 압도할 수록 그 나라의 이야기와 이야기의 구조는 주변국을 지배한다. 그런 프로프는 이 책을 통해 이야기에 관한 자세한 연구방법과 의미를 일러준다. 기본적으로 러시아 민담에 대한 연구이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와 민담의 비교연구, 민담 연구의 세계적 학파와 연구가들, 유럽 문학 형성에 있어서 이야기의 역할 등에 대해서도 조명하고 있다. 특히 민속문학 연구의 귀중한 참고자료들이 각주 형태로 빼곡이 수록되어 있어 한국의 이야기 연구가 들, 민담 및 설화 연구가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스코틀랜드 북서쪽, 북대서양 한가운데 위치한 세인트킬다 섬에서 자연이 주는 소박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수천 년 전의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간직했던 망망대해의 외딴섬의 일상과, 문명의 개입으로 인한 몰락의 과정을 담은 책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anda78 2005-08-27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민담 연구.. 넘 재밌겠어요... ;;
하튼 라주미힌님의 탐나는 모월 모일 때문에 보관함이 터진다니까! >_<

라주미힌 2005-08-27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판다님을 위한거지용.. 호호..

2005-08-27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