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인간아 > 인간이기에, 인간을 극복할 수 있다. 인간이 되려는 노력은, 인간을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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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기에, 인간을 극복할 수 있다. 인간이 되려는 노력은, 인간을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위의 문장은 오노레 발자크에게 보내는 헌사다. ‘오노레 발싸, - 또는 발자크 - ’와 ‘오노레 드 발자크’라는 두 이름의 간극은 성(聖)과 속(俗)이라는, 도저히 하나로 합쳐지기 어려운 현상이 인간이라는 존재에 이토록 조화로운 세계로 융화될 수도 있다는 거대한 불멸의 증거다. 도대체 예술가의 운명은 ‘인간’에 종속당하는가, 아니면 ‘인간’을 뚫고 튀어나와 거대하게 외따로 존재하는 건가. 이런 나약하고 졸렬한 질문은 발자크라는 거대한 인간의 그림자도 뚫지 못한다. 단숨에 모든 인간적인 평가와 능력을 뛰어넘은 존재는 그 자체의 삶이 예술이다. 가네샤의 화신이면서 간달바처럼 노닐며 탐욕스럽게 인간의 추한 욕망을 향기처럼 내뿜으며 허공으로 치솟아오른 발자크는 예술이, 현실이라는 극단에서 어떻게 비약할 수 있었는가를 가장 기이하게 보여준 소설가다.


  발자크의 문학을 말하는데 꼭 필요한 단어는 ‘모순’이다.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발자크에게는 먹혀들지 않았다. 인간희극이라는, 그의 소설전집 전체는 137권의 작품으로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그의 생애 동안 완성한 작품은 97편 정도이다. - 안타깝게도, 겨우 97권이다! 인간의 창조력은 아직 그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러니 아직도 ‘인간’이라는 의미는 계속해서 확장중인 현재진행형이다. 적어도 발자크는 천재나 영웅도 도달하지 못한 그 미지의 가장 깊은 바닥까지 가본 것은 분명하다. - 평생 동안 빚을 갚기 위해 하루 열다섯 시간의 집필 시간을 엄수하면서 소설과 희곡과 잡문과 팜플릿과 편지를 써대던 정력의 화신, 안락한 환경에서 어머니처럼 자상하게 자신을 돌봐주는 사랑하는 여인과 더불어 펜으로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던 불굴의 작가, 결코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던 위대한 유머와 의지의 인간이었던 발자크! 그는 평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빚을 창작의 토양으로 삼았고  뒷문으로 집달리와 빚쟁이를 속여 피해다니면서도 정력적으로 소설을 써대던 규칙적인 여유를 잃지 않았으며 최악의 현실에서도 늘 최대의 몽상과 최선의 낙천적인 희망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발자크가 현실과 인간을 조롱하며 오로지 자신의 펜으로 온 세계를 정복하고 또 자신만의 위대한 세계를 창조하려고 할 때 모든 권력과 부귀영화와 여인들과 귀족들은 그에게 존경과 경배를 보냈다. 그러나 발자크가 때때로 몽상과 아득한 미지의 탐욕으로 향락과 부귀와 안락한 일상과 평안한 유혹을 좆을 때마다 그것들은 여지없이 발자크를 쓰러뜨리고 극한으로 몰아넣었다. 이 모순은 예술의 신이 발자크라는 인간에게 베푼 극한의 축복이었으리라. 발자크라는 예술가는 죽을 때까지 인간이기보다는 소명을 받은 창조자의 삶을 부여받았다는 증거라고도 볼 수 있다. - 발자크는 “최고의 영감들은 내게는 언제나 가장 깊은 두려움과 곤궁의 순간에 나타나곤 합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신탁을 받아들였고 인정했던 것이 아닐까. - 실제로 그의 걸작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단숨에,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노동력과 집중력과 반복되는 퇴고를 통해 완성되었다.


   성스러운 이상에 도달하고자 이 미욱하고 보잘것없는 현실을 벗어나려 애쓰다보면 사무친다. 그냥, 다만 인간이라는 사실이, 인간이 아닌 많은 것들을 억압하는 본래면목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겨우 이정도가 내 본질의 진면목이라니 하는 자괴감이 든다. 그러나, 나와 같은 인간인, 그러나 인간이었던 - 그는 있는 힘껏 삶을 통해 인간이 어디까지 확장되었음을 증명했다. 그렇기에 인간이면서 또한 인간을 너머선 세계를 창조했다. 그래서 인간이었던! - 오노레 드 발자크를 보라. 나는 그를 알자마자 그에게 위안을 얻는다. 왜나고? 발자크의 위대한 예술의 기저에는 인간의 본능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노골적으로 기괴하게 뒤틀린 인간의 욕망을 가지고도 불멸하는 예술의 올림푸스로 위대한 흔적을 남기면서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기 때문에. 발자크도 나와 같은 인간이기에. 그러니 나도 희망이 있다. 인간인 나도 언젠가는 ‘인간’을 벗어나리라. 서둘러 죽음이 내 ‘인간’의 껍질을 벗겨버리기 전에.


  위대한 인간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건 인간을 벗어나 다른 인간이 된다는 말로 다가온다. 인간이면서 인간으로 해내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 그래서 ‘인간’을 확장시키고 상승시키고 더욱 숭고하게 진화시키는 일이 위대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른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같잖다’라는 말의 의미는 상당히 유감이다. ‘나와 같지 않다’라는 말은 마땅히 위대한 인간을 위한 존경과 경배의 의미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인간을 벗어나려고 인간의 약점을 모두 짊어지고 투쟁했던 발자크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 평전은 뛰어난 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가장 뛰어난 평전이라고 손꼽을 수 있다. 그의 걸작 <천재와 광기>의 첫머리에서 우리는 ‘발자크’의 모습을 기쁘게 발견할 수 있다. 이 평전을 토대로 하여 발자크 평전은 시작되었으리라.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이 유럽사의 치밀하고 깊이 있는 통찰 위에 위대한 거인 발자크의 일생을 호탕하고도 세밀하게 새겨 넣었다면 <천재와 광기>에서는 그의 작품들의 주인공들을 통해서 발자크의 특징이나 세계관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것만으로도 발자크라는 존재를 만끽할 수 있었으리라. 더구나 나아가 이 책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읽게 된다면, 오, 이토록 황홀한 심사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 <천재와 광기>에 수록된 예술가들 중에서 다시금 완전한 장편전기로 새롭게 탄생한 존재는 발자크가 유일하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발자크에 대해 가졌던 애정과 존경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있으리라. -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책을 만나게 되었고, 오랫동안 이 책을 읽고, 또 되새겨 겨우 이정도의 감흥을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애통하다. 발자크라는 ‘인간을 벗어난 위대한 인간’을 알게 된 건 내 생의 축복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자크의 모습을 내게 완전하게 알려준 존재인 슈테판 츠바이크 역시 위대한 인간으로 손꼽을 수 있으리라. 츠바이크가 보여주는 한 인간의 삶은, 현실의 진정성과 인간의 위대한 가치를 되새기게 해준다. 츠바이크가 내게 끼친 해악은 나를 이렇게 고백하게 만든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발자크의 작품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발자크라는 인간에 대해서 아는 체하고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싶어집니다. 이게 바로 츠바이크 문학의 위대한 폐해입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또다시 츠바이크에 대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라고.

 

  ** 이 훌륭한 책의 재출간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부디 많은 독자들이 이 가치 있는 책을 널리 읽을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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