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원기자 =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위(胃) 속 세균인 헬리코박터균을 발견을 호주의 배리 J.마셜(54)과 호주의 J.로빈 워런(68) 박사팀에게 돌아갔다.

마셜 박사는 국내 한 유제품 회사의 광고에 등장할 정도로 친숙한 인물로 현재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학교 헬리코박터 파이로리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도 몇 차례 다녀간 적이 있다.

워런 박사는 현재 호주 로얄 퍼스병원 병리학자로 일하고 있다

헬리코박터균을 처음 발견한 마셜 박사팀에게 노벨상이 주어진 의미와 그들의 연구과정, 헬리코박터균의 치료 등에 대해 알아본다.

■ `위에 세균이 산다'..세계 첫 입증 성과

노벨상위원회측 자료에 따르면 마셜 박사팀이 올해 노벨생리의상을 받은 것은 헬리코박터균과 위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등이 연관성이 크다는 것을 밝혀낸 데 다른 것이다.

당시 퍼스병원의 병리학자였던 워런 박사는 생체검사가 이뤄진 환자의 위(胃) 아랫부분에서 작고 구부러진 박테리아를 발견했다. 그는 항상 이 박테리아가 관찰된 위점막 가까이에서 염증이 나타나는 것을 처음으로 관찰했다.

이에 마셜 박사는 워런 박사의 발견에 관심을 가지고 약 100명의 환자를 검사했다. 여러 차례의 생체 검사 시도 끝에 마셜은 특정 유기체가 모든 위염과 위궤양, 십이지궤양 환자에게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셜 박사팀은 이 결과를 토대로 헬리코박터균이 이들 질환에 연루된다는 가설을 의학계에 처음 제안했다. 이 때가 1983년이다.

소화성궤양은 보통 위산 생성을 억제하면 치료되지만 박테리아와 상습적인 위염이 남아있기 때문에 대부분 원래의 나쁜 상태로 돌아간다.

후속된 치료연구에서 마셜과 워런 박사팀은 헬리코박터균이 위에서 제거됐을 때 환자들의 소화궤양이 치료되는 것을 확인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 치료 불가능했던 것으로 여겨졌던 소화궤양은 마셜 박사팀의 연구로 새로운 치료기회를 맞게 된 셈이라는 게 노벨상위원회측의 설명이다.

이준행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세계 최초로 `위에 세균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세균 배양에 성공한 게 의미를 인정받은 것 같다"면서 "특히 마셜 박사팀은 헬리코박터균과 위암, 소화성궤양, 위임파선종양 등의 관련성을 발견함으로 이 질환을 치료하는데도 큰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 인정받지 못한 연구가 노벨상을 타기까지

마셜ㆍ로빈 박사팀의 노벨의학상 수상은 이미 소화기내과 의학자들 사이에서는 예견돼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이 균을 처음 발견해 내기까지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강력한 위산이 분비되는 위 속에 균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은 바로 워런 박사였다.

하지만 워런이 위속에 균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주장한 1982년 당시만 해도 학계에서는 위속에 있는 강한 위산 때문에 아무런 생물도 살 수 없다는 게 정설이었다. 때문에 그는 학회에 이 같은 내용을 보고했다가 거짓말을 했다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이 같은 오명이 과학적으로 빛을 보게 된 것은 마셜 박사 덕분이다. 마셜은 위 속에 헬리코박터균이 살고 있다는 워런 박사의 주장을 입증하고 또 헬리코박터균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냈다.

이는 위궤양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일부 위암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는 단초를 제시하는 성과를 거두게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에 따르면 마셜 박사는 위 점막의 조직을 떼어내 균의 배양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마셜 박사가 헬리코박터균의 배양에 성공한 사건은 의학계에서 유명한 일화로 통한다.

그 일화를 소개해 보면 당시 마샬 박사는 배양에 지친 나머지 휴가를 떠나게 된다. 이때 그는 인큐베이터에 들어있는 위 점막 균을 버리고 간다는 것을 깜박 잊어버리고 휴가를 다녀 왔더니 인큐베이터 안에서 균이 배양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마셜 박사는 위 속에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처음으로 학회에 보고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헬리코박터균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스스로 이 균을 먹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급성 위궤양이 생기고 위가 뒤틀리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고 한다.

정훈용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마셜은 위속에 살고 있는 헬리코박터 균은 그 당시 항생제를 아무리 먹어도 제거되지 않자 자신이 갖고 있던 항생제를 한꺼번에 먹고 나서야 헬리코박터균이 제거된 것을 알았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라고 소개했다.

■ 헬리코박터균 어떻게 해야 할까

헬리코박터균을 발견한 연구팀이 노벨상을 탄 만큼 일반인들은 이 균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궁금해 한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헬리코박터균은 위염, 위ㆍ십이지장 궤양을 일으키는 세균이다. 또한 세균을 없애버리면 궤양을 낫게 할 뿐만 아니라 재발을 막아주기 때문에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그러나 TV에 나오는 광고처럼 야구르트 등의 식품으로 헬리코박터균을 없앨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게 전문의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또한 한 두 알의 항생제를 먹어서도 치료되지 않는다.

현재까지 가장 좋은 방법은 고용량의 항생제 2가지를 합쳐 3가지 약물을 동시에 복용하는 것이다.

많은 양의 항생제들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약 냄새가 계속 난다든가, 속이 더부룩하거나, 구토, 설사 등의 불편이 따른다. 약품을 거르면 세균이 잘 죽지 않으므로 환자는 약을 먹는데 곤욕을 치러야 한다.

아침 저녁으로 일주일만 먹으면 되는 게 그나마 다행이지만 15%는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재발한다. 그러므로 일단 세균을 치료하기로 맘을 먹었다면, 복용 기간에는 절대 술도 금하고, 거르지 않고 100% 복용해야만 한다.

헬리코박터균은 만성 위염을 일으키면서 노인에게는 위의 위축을 가속화시켜 위암이 잘 생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준다. 그러나 이 부분은 논란이 많다. 한국인의 경우 헬리코박터균과 위암이 거의 관련성이 없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다만 위축성 위염이나 상피세포의 변형이 있는 경우 항생제로 균을 없애더라도 위암을 예방할 수 없다는 게 정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헬리코박터균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아무 증상이 없거나 단순 위염일 때는 제거하지 않는다. 위암을 예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전국민의 70%에 해당하는 헬리코박터균 감염자들을 항생제로 치료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고 자칫 항생제로 없애기 힘든 내성균들만 늘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의 감염자를 모두 치료하는 방법으로 항생제 치료법은 적절하지 않은 만큼 효과적인 예방법(백신 등)이 개발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최명규 강남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헬리코박터가 위질환의 주범임은 확실하지만 아무 증상이 없는데도 단순히 헬리코박터 균에 대한 검사를 할 필요는 없다"면서 "혹시 우연한 기회에 헬리코박터균을 발견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필요한 경우에 한해 정해진 원칙에 따라 치료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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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0-04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마태우스님 얘긴 줄 알았어요^^:;
 
여기, 공자가 간다 - 해동 선비가 찾아나선 열정과 수난의 주유천하 14년
진현종 지음 / 갑인공방(갑인미디어)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공자 가라사대, “보석은 마찰이 없이는 가공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시련이 없이는 완벽한 사람이 될 수가 없다.”

구도의 과정에 있어서 고행과 시련은 담금질처럼 작용하여 성숙한 인간으로 발돋움하게 하는 힘이 되어 준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주어 내밀한 품성을 가다듬게 하고, 세상의 이치와 인간의 의무를 조화롭게 이끌어 낼 수 있는 개인적인 행위로 나타난다. 하지만 개인을 넘는 공공적인 일이기도 하다. 공자를 비롯한 성인이라 불리는 자들이 남긴 사상과 역사는 이미 공공의 것이고, 그것은 치열한 구도의 과정을 통하여 완수된 것이지 않은가.

주유천하 14년, 관직을 찾아 14년을 헤맨 공자의 유랑생활을 담은 이 책이 담아내려는 것은 그것의 맛보기이다. 고위관직에 있으면서도 굳이 다른 관직, 다른 군주를 찾아 나서는 공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공자 가라사대, “가지를 잘 쳐주고 받침대로 받쳐 준 나무는 곧게 잘 자라지만, 내버려 둔 나무는 아무렇게나 자란다.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남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말을 잘 듣고 고치는 사람은 그만큼 발전한다.”

공자의 뒤를 따른 자들이 있었으니 그의 제자들은 그의 제자이면서도 스승이었다. 나이는 들어 가고, 제대로 된 관직과 군주를 만나지 못한 공자는 무척이나 흔들림을 보였다. 여기 저기서 뻗쳐오는 유혹의 손길을 내치기에는 아무리 군자라 하더라도 힘든 것이다. 불경한 자에게 가려고 하자 반감을 드러낸 자로에게 늘어놓는 공자의 궁색한 변명을 보라. ‘진정으로 강한 것은 갈아도 얇아지지 않고, 진정으로 하얀 것은 물들어도 검어지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내 어찌 쓸모 없는 박이 되란 말이냐? 어찌 매달려 있기만 학 사람에게 먹히지 않을 수 있는가’

이 얼마나 인간적인 모습인가. 성인, 군자라는 완벽한 이미지를 깨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또한 제자가 아니었으면 깨져버린 신화가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제자들은 공자의 목숨까지도 보존케 하였다. 수많은 난관과 위협을 제자들 없이 이겨내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공자 가라사대, “덕이 높은 사람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그를 따르는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권위적이어서는 안 된다.
공자 가라사대,
“바다와 강이 수백 개의 산골짜기 물줄기에 복종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항상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곳에 있기 바란다면 그들보다 아래에 있고, 그들보다 앞서기를 바란다면, 그들 뒤에 위치하라. 이와 같이하여 사람들의 뒤에 있을지라도 그의 무게를 느끼지 않게 하며 그들보다 앞에 있을지라도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나이, 지위를 불문하고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가르침이고 자세 아닌가. 물론 이 책에서는 그런 구체적인 모습이 보이지는 않으나, 주유천하에 있어서 제자들의 역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훌륭한 스승은 훌륭한 제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은가.

공자 가라사대, “군자는 세 가지 경계할 바가 있다. 젊었을 때는 혈기가 잡히지 않았기에 여색을 경계하고, 장년이 되면 혈기가 바야흐로 굳세므로 다투는 것을 경계하고, 늙으면 혈기가 이미 쇠하였음으로 탐욕을 경계하라.”

이 책의 저자가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부분은 나이에 굴하지 않는 ‘열정’에 있다. 생명하나 부지하기 힘든 난세를 향하여 던진 출사표에는 대단한 결단과 용기가 서려있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노자’가 보기엔 세속적이었을 것이다.(이 책에는 노자와 공자의 세기적인 만남도 있다.) 세상 속에서 사는 이상 능력껏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노력이 부질 없을 수도 있고… 방식이 중요할까. 그것이 외적으로 향하던 내적으로 향하던 행위의 주체와 노력은 위대하다.

공자 가라사대, “군자는 말이 행함보다 앞서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지식 사회, 지식 산업, 정보화 시대… 풍족함에 있어서 어느 시대보다 꿀릴 것이 없다지만, 지성의 빈곤함은 감출 수가 없다. 옳은 것을 행하고,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우리 시대의 진정한 지성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강하다. 기다리지 말고 먼저 움직여라. 아는 것을 행하라.

이 책의 반은 저자의 기행문이다. 공자의 발걸음을 2000년이 지난 후에 밟아 보는 것인데, 사실 쓰러진 비석 또는 반듯한 유적지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여행담을 듣는 것이 즐거운 것은 책이 줄 수 없는 무엇인가를 전해주기 때문인데, 교통편과 숙박시설에 대한 얘기들만 있는 것 같아 감흥이 떨어진다. 그것보다는 이 책 곳곳에 있는 공자의 행적을 그린 그림들이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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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0-04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고등학교 때 도덕, 윤리 책에서 배운 것 이외에는 아는게 없는지라, 많은 도움이 된 듯 합니다. 숨은아이님 잘 읽었습니다. ^^

2005-10-04 0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숨은아이 2005-10-04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의 해석, 인상 깊습니다.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근데 저자 기행문의 분량은 절반보다 많이 적습니다. 양념 노릇 정도 하는 것이라.)
 

무하마드... 라 하네요.

 

한국에서 제일 흔한 이름은...

민호와 영숙.

 

 

- 출처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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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10-04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 2005-10-04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산책님 = 무하마드? ㅋㅋㅋ
의외로 영숙씨일 수도...

릴케 현상 2005-10-04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쪽집게네요
 

[기고] '쇼의 정치', '삶의 정치'

최근 강준만 전북대 교수,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윤평중 한신대 교수 등이 '지식인의 현실정치 참여'를 주제로 공개 논쟁을 벌였다. 다만, 강 교수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반박글을 발표했던 조 수석이 윤 교수의 재반박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 논쟁은 더 이상의 동력을 상실한 듯하다.
  
  지금까지 진행된 논쟁의 초점은 정치학자 출신인 조 수석의 '변절' 여부였지만 궁극적으로는 '지식인의 역할', 또는 '현실정치와 지식인의 상관관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조 수석의 행보만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 자체가 이 정권의 출범과 그 이후의 활동에 환호하거나 최소한 지지했던 진보적 지식인들에게 '오늘 지식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보인다.
  
  <프레시안>은 이런 화두와 관련해 칼럼리스트 김규항 씨(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에게 글을 부탁했다. 김규항 씨의 글은 앞선 세 사람의 글과는 맥락을 달리하지만 2005년 한국사회의 현실을 전제로 우리 모두에게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비수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앞으로도 이 논쟁이 보다 풍부하고 현실정합성을 갖는 형태로 진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지식인이란 적어도 자기 세계관에 따라 발언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제도정치에 뛰어든 지식인들은 으레 자기가 속한 '정치적 형편'에 따라 제 세계관을 재조정하곤 한다.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는 따위 변명은 그나마 낫다. 김대환 씨처럼 방귀 뀐 놈이 성내는 식으로 날뛰거나 유시민 씨처럼 "세상은 다 그런 거야"하며 느물거리는 꼴을 보면 도리 없이 환멸감이 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들은 정치판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세상을 알게 되었다는 걸.
  
  기자와의 한담이 빌미가 되어 이 글을 쓰고 있지만 행여 강준만, 조기숙, 윤평중 씨들이 연루된 논의에 끼어들려는 건 아니다. 개인적인 이유로 당분간 시사 현안에는 관심을 접고 있기도 하거니와, 나는 조기숙이라는 분에 대해 학자로든 청와대 직원으로든 아는 게 없다. 이 글은 강준만 선생에게 쓰는 글이다. 강준만 선생이 조기숙 씨에게 쓴 글을 읽고 나는 진작부터 강 선생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하기로 했다.
  
  내가 하려는 말은 언젠가 그가 나에게 했던 말이기도 하다. 그것은 '지식인과 현실 참여'라는 매우 고전적인 주제와 관련한 것이다. 대체 이런 세상에서 지식인이 뭘 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의 지식인을 통털어도 특별한 능력과 열정을 가진 지식인이라 할 강 선생은 대체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몇 해 전 나는 홍세화, 진중권 씨와 함께 강 선생의 '<조선일보> 반대운동'에 연대했었다. 굳이 말하자면 <조선일보> 반대운동은 좌파적 운동은 아니었다.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조선일보>에 대한 계급적인 접근이라기보다는 윤리적 접근에 가까웠다. 최상층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선일보를 중간 이하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신문으로 만들자든가 하는 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세 사람이 거리낌 없이 그 운동에 연대한 이유는 <조선일보>라는 '사회적 암'을 '발견하여' 골리앗에 맞선 다윗처럼 고군분투하는 강 선생을 존경했기 때문이고, 좌파 진영(특히 강단 좌파들)이 <조선일보>에 보이는 모호한 태도를 앞장서서 성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사람은 <조선일보> 문제가 "좌파고 우파고 떠난 문제"라는 강 선생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랐다.
  
  그 운동이 대중적으로 어지간히 확산되었을 때 세 사람은 다시 본연의 좌파적 행보에 좀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운동은 폭발을 거듭하며 대대적인 사회개혁 운동으로 발전했고 결국 정권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정권은 이제 임기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자 이제 한번 살펴보자. 그래서 세상은 변했는가? 언론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고 했고 정치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고 했는데 세상은 정말 변했는가?
  
  그렇다면 우리 눈앞에 펼쳐진 이 참혹은 무엇인가?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빈곤층을 비롯한 빈곤의 확대, 가장 충성스러운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시장 개방과 공공영역의 사유화, 이어지는 민중의 삶의 파탄, 제국주의 침략 전쟁 동조와 평택 미군기지를 비롯한 반민중적인 국방 외교 정책…. 끝없이 나열되는 이 참혹은 과연 무엇인가?
  
  나는 이제 개혁의 가장 중요한 기획자였고 여전히 그러한 강 선생에게 이 참혹에 대해 묻고 싶다. 나는 그에게 여전히 이 참혹이 '개혁의 후퇴'에서 일어났다고 보는지, 혹은 이 참혹이야말로 개혁의 정체라고 보는지, 개혁이란 "사회문화적 표피를 변화시키지만 경제 질서와 계급 관계라는 본질은 끝없이 후퇴시킨다"는 내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덧붙이자면, 나는 강 선생이 왜 오늘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따위 보수 정당들을 주요한 출연자로 하는 기만적인 쇼에 왜 그리 적극적인지 묻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조차 "이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정책이나 이념에서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고백하는 판에 왜 강 선생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차이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한낱 청와대 직원이 된 지식인의 행보에 왜 그리 관심을 갖는지 묻고 싶다.
  
  나는 매우 성실한 미디어 학자인 그가 이 쇼가 갖는 진정한 의미를 모를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보수 정당 간의 존재하지도 않는 차이를 부각하고 사소하기 짝이 없는 에피소드들을 끝없이 만들어냄으로써 대중들로 하여금 마치 그런 문제들이 세상의 실체이거나 정치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대중들로 하여금 정작 자신들의 문제인 오늘의 참혹은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여기게 만드는 쇼의 의미를 말이다.
  
  나는 알 수 없다. 대중들을 미궁에 빠트리는 <조선일보> 문제에 대해 그토록 열정적이던 강 선생이 왜 오늘은 대중들을 미궁에 빠트리는 그 쇼에 없는 역할까지 만들어가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오랜 휴식 없는 싸움에 지친 걸까? 강 선생이 그 기만적인 쇼의 정치에서 삶의 정치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나는 강 선생이 오늘 우리 눈앞에 펼쳐진 참혹을 "좌파고 우파고 떠난 문제"로 여기고 정직하고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최초의 우파 지식인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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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아침 신문을 읽다가) 어찌 이리 옳은 말만 골라 하나

여성의원 50%의 꿈

세상읽기

 
저는 공적인 회의든 사적인 동문회든 여성이 없는 모임이라면 잘 참석하지 않습니다. 그게 술자리라면 더욱 피하는 편입니다. 지나친 일반화인지 모르지만, 남성들만의 모임은 은근한 잘난 척과 정치평론말고 화제랄 것이 거의 없습니다.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모임일수록 그렇습니다. 그래서 할 말이 없어지면 폭탄주가 돌기 시작하지요. 서열까지 매겨진 남성들의 모임이라면 화제 고갈에도 가속도가 붙습니다. 주로 ‘넘버 원’만 말하고, ‘넘버 투’는 맞장구를 치며, ‘넘버 쓰리’ 밑으로는 웃기만 해야 하니, 화제가 금방 동이 날 수밖에요. 내면의 깊은 나눔 없이 밤새 술만 마시고도 친구가 되었다고 믿는 분들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좋아서 술을 마신다는 남성은 하나도 없으니,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술자리는 ‘업무의 연장’이지 않습니까.^^

그걸 알기 때문일까요. 최근 벌어진 술집 폭언 사건의 이른바 ‘진실’에 대해 저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주성영 의원의 기고만장한 태도를 보고, “그 당은 여성 표를 포기했나?” 하는 의문을 잠시 가졌을 뿐입니다. 오히려 제가 주목한 것은 그 자리에 여성 의원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술자리가 남성들만의 모임이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화제 빈곤형’ 남성일수록 심지어 욕설을 통해서라도 불평등관계의 여종업원을 ‘대화’에 동참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므로, ‘동석’과 ‘서빙’의 경계 자체가 모호할 때가 많으니까요. 어쨌든 그날의 남성들은 사장과 종업원을 자신과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뱉어낸 말은 동료에게라면 결코 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여성 의원, 검사가 한 명이라도 동석했더라면 처음부터 그럴 수 없었겠지요.

술자리에서는 얼마든지 “♧♧년”이라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 이번 기회에 인생관을 좀 바꿔야 할 겁니다, 세상이 바뀌고 있거든요. 그러나 우리 유권자들의 생각까지 거기 멈춰서는 안 됩니다. 흔히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예술이라고 하지요. 그런데도 이 땅에서는 대화의 훈련이 전혀 안 된 남성들이 주로 국회의원을 합니다. 지역구도보다도, 카트리나보다도, 그게 훨씬 심각한 재앙입니다. 우리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부패, 무능력, 비효율, 폭력의 문제 대부분은 여성이 국회의 50%를 점유하게 되는 날, 말끔히 해결될 겁니다. 최소한 대구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추태는 없겠지요. 여성들이 술을 못 마셔서가 아니라, 그렇게 더럽게는 안 마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다음 선거에는 제발 여성들을 국회로 보냅시다. 그게 바로 개혁입니다.

이쯤 되면 불쑥, “군대도 안 가는 여성들에게 어떻게 의석 절반을 주냐”고 되묻는 ‘절대 평등파’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분들께는 “여성이 아기를 낳지 않느냐”는 반론이 주로 제시되곤 합니다. 저출산의 위기 속에서는 출산이 곧 국력인 까닭입니다. 그러나 저는 같은 남성으로서 오래 전부터, 논리를 떠나, 꼭 한 번 이렇게 외치고 싶었습니다.

여성들이 술 따르는 이상한 술집들로 넘쳐나는 나라, 국회의원과 검사가 성적인 욕설과 희롱을 하고도 멀쩡할 수 있는 나라, 가정과 직장에서 남녀 불평등이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는 나라, 그런 차별 공화국에서 여성들이 (주 의원을 포함한) 우리 남성들과,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주는 것 자체’가 국가를 위한 봉사 아닙니까. 군 복무 못지않게 고통스러운, 그러나 만기제대도 없는 끔찍한 의무입니다. 국가를 위한 봉사는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김두식/ 한동대 교수. 변호사

[한겨레신문] 기사등록 : 2005-10-02 오후 05:25:20 / 기사수정 : 2005-10-02 오후 05: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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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 이리 옳은 말만 하시나...... 신문 읽다 알라딘 들어와 글남기기는 두 번째다.
 
 대화의 훈련이 전혀 안 된 남성들이 주로 국회의원을 하는 나라에서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주시는 것만으로도 이 땅의 여성들은 엄청난 봉사를 하는 거지.
그럼..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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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0-03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기제대 없는 끔찍한 의무.. ㅎㅎㅎ

가을산 2005-10-03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릴케 현상 2005-10-04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제대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