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변태

게이 후배가 있다. 7년 전 어떤 책을 번역해보겠다고 찾아왔을 때 해사한 얼굴에

 

주황색 사파리가 인상적이었다. 바로 일을 진행했으나 얼마 뒤 다른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는 바람에 중단되었다. 딱히 볼일이 없어졌지만 워낙 똑똑하고 호감가는 친구라

언젠가 같이 일할 기회가 있기를 기대했다. 그 녀석을 다시 만난 건 3년 전이었다.

 나는 근근이 버텨오던 영화전문도서

출판을 지속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고 그 녀석을 찾았다.

 

 

저녁 무렵 대학로에서 만난 그 녀석은 살이 붙고 안색이 안 좋았지만 지적인 분위기는

더하고 있었다. 밥 대신 맥주를 먹기로 하고 골뱅이집에 들어갔다.

일 이야기에 간간이 ‘깃발 꽂는 지식인들’을 안주(참으로 질긴 안주) 삼아 너댓시간을

 보냈다. 그 녀석은 내가 말을 하면 조금은 부끄럼 타는 듯한 얼굴로 잠자코 듣고 있다가 선량하게 웃었으며 이따금씩 손뼉을 쳤다. 그날 그 녀석으로부터 받은 느낌은 특별했다. 처음엔 ‘매력있군’ 했지만, 며칠 뒤 나는 그

‘매력’이 성적인 지점에 닿아 있음을 깨달았다. 성적 취향의 경계란 얇디얇은 것이었다.

 

 

그 뒤론 그 녀석한테서 그런 느낌을 받은 기억이 없다. 그 녀석은 내 앞에서 더이상

부끄럼을 타지 않았고 술만 먹으면 악을 쓰고 차도에 오줌을 갈기곤 했다.

 “형, 나 남자 좋아해요.”

한 달쯤 지났을까. 그 녀석은 포장마차에서 만취한 채 내게 커밍아웃했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받은 느낌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 녀석은 제 애인를 나에게 소개했고 며칠 뒤 생일파티에 초대했다.

 

낙원동의 아담한 게이카페에서 열린 생일파티엔 열댓명이 참석했다. 열명 남짓한

게이들이 짝을 이뤄 참석했고 ‘일반’(그들은 이성애자들을 ‘일반’이라고 자기들은

‘이반’이라고 부르더라)은 그 녀석의 여자친구 둘과 나, 그 녀석의 남자친구 그렇게

넷이었다. 게이들의 생일파티(네가지 성이 참석한)는 유쾌했다.

적극적인 이성애자일 뿐인 나로선 그들 가운데

이정섭씨처럼 간드러지게 말하는 친구가 없다는 것부터 신기해 보였다. 돌아가면서 준비한

선물을 내놓고 덕담을 하는 식당 지배인, PD, 철인경기 선수, 스튜어드, 학생에 백수까지그들은 그저 건강하고 예의바른 남자들이었다. 그들의 짝짓기가 가진 원시성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성적 매력(육체적 의미만이 아닌)을 기반으로

짝짓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짝짓기에 돈과 계급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들에게 결혼이 없는 것은 축복이었다.

 

 그 녀석은 첫 키스를 초등학교 5학년 때 했다고 했다. 남자와 말이다.

내가 여자에게 느끼는 성욕과 안타까움을 그 녀석은 남자에게 느끼는 것이다. 그 녀석과 내가 다른 건 단지 그것뿐이다. 그 녀석은 엑스포만 피는 나를 ‘변태’라고

 놀리곤 했다. 맞는 말이다. 게이가 변태라면 남들 디스 필 때 엑스포 피는,

딱 그만큼의 변태다. 그 녀석은 아직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하지 못했다. 그 녀석이 난

 남자가 좋다라고 맘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세상은 올 것인가. 퀴어영화제가 번듯하게

열리고 게이 담론이 늘어나는 건 그런 세상이 오고 있는 징표다. 하지만 이미 찬성하거나 이해할 채비가 돼 있는 사람들끼리 생각을 재확인하고 학습을 늘리는 일이 세상을

개선시키는 건 아니다. 퀴어의 세계는 문화 담론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누가 변태인가. 꼴리면 하고 땡기면 살고 싫어지면 헤어지는 그들이 변태인가, 돈 때문에 하고 계급 때문에 살고 싫어져도 못 헤어지는 우리가 변태인가.

정말이지 누가 더 변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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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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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5-10-13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딱, 그만큼의 변태인 것 같아요. '타인의 취향'.
 

[단독]대학가 ''학부모 모셔오기'' 진풍경
[세계일보 2005-10-13 03:36]
“김군, 어머니 모시고 오게나.”

성적 부진 등의 이유로 학사경고를 받은 대학생들이 학부모를 모시고 학교에 나오는 진풍경이 현재 대학가에서 벌어지고 있다. 취업난이 심화되는 가운데 학점 미달 등의 이유로 제적당하는 학생이 늘어나자 대학들이 고육지책으로 학부모 상담제를 속속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때 초·중·고교에서 담임교사가 성적이 부진한 학생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취했던 조치와 비슷한 것으로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으나 대학가에서는 부활하고 있다.

12일 연세대에 따르면 올해 2학기부터 학사경고 1회자는 학과 지도교수와 면담하고 2회째는 학부모가 직접 학교에 찾아와 ‘학생상담센터’에서 전문상담요원과 의무적으로 상담하도록 학사경고제를 변경했다.

정갑영 교무처장은 “학생이 학사경고를 3회 받고 제적될 때까지 부모님이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학교에 구제 요청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부모님께 미리 통보하는 동시에 제적을 최대한 막기 위해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중앙대도 이번 학기부터 학사경고 2회자와 군입대 예정자의 경우 학부모에게 전화로 통보한 뒤 학과장과 직접 면담하도록 했다. 이 대학 남태우 교무처장은 “성적 미달뿐 아니라 군 입대를 하면서 휴학계를 안 내 제적당하는 등 학적 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IMF 이후로 제적생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인데, 올해 특히 많아 각 학과의 요청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고려대와 서강대 등도 이미 학부모 상담제를 시행하고 있다.

서강대는 학사경고제 외에 별도로 제적경고제를 도입, 제적경고를 받으면 학부모가 지도교수와 면담하는 것은 물론 “학업에 열중하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한 뒤에야 다음 학기에 등록할 수 있는 ‘조건부 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다.

올해 1학기에 1999년 이후 학사 제적생 수가 최고치에 달한 서울대도 비상이 걸린 건 마찬가지. 서울대는 올 1학기부터 단과대별로 제적생 방지 대책을 마련, 자체 지도하도록 했다.

서울대의 한 관계자는 “대학별로 내규를 만들어 운영 중인데 대체로 학사경고 2회 시 (학사경고 받게 된) 사유서 제출 및 지도교수 면담, 3회 시 (다시는 학사경고 안 받겠다는) 각서 제출 등이며 본부 차원에서 상담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교육부가 국회 교육위 이인영 의원(열린우리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대 제적생 수는 모두 403명으로 국립대 중 제적생 증가폭이 가장 컸으며, 수도권 상위권 대학(본교 기준) 중에는 고려대 439명(제적비율 1.56%) 연세대 417명(1.59%), 한양대 408명(1.75%), 중앙대 339명(1.85%), 경희대 314명(1.78%), 이화여대 305명(1.68%), 성균관대 241명(1.54%), 서강대 183명 (1.61%) 등이었다.

김수미 기자

 

 

 

큭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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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10-13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생들이 아니라 유치원생 같군요
 

혁명보다 어려운 것이 개혁이다. 혁명은 이름과 의식을 바꾸는 것이지만, 개혁은 몸의 형태를 바꾸는 것, 즉 변태(變態)의 과정이다. 개혁(改革)은 글자 그대로 살갗을 벗기는 것. 피가 쏟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느 시대나 개혁을 주장하는 지도층은 스스로 피 흘리는 고통을 보여줄 때만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는 테제로 유명한 맥루언의 걸작 〈미디어의 이해〉의 부제는 ‘인간의 확장’이다. 오늘날 인터넷, 휴대 전화가 우리 몸의 일부이듯, 이 책은 몸이 인식의 매개체(미디어)라고 주장한다. 앎이란, 인식 주체가 인식 대상에게로 몸을 확장하는 것. 인식과 발상의 전환을 경험하게 되면, 다시는 알기 이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안다는 것은 확장된 자기 몸에 사로잡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변화는 새로운 인식을 의미하는데, 이는 ‘머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발생한다. 알이 부화하여 나비가 되듯, 몸이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하는 변태의 고통을 뜻한다. ‘변태’가 원래 의미보다는 흔히 ‘변태 성욕’의 줄임말로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기존 질서를 수호하고자 하는 사회는 변태하는 사람을 싫어할 것이다.

사랑과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인생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자기 부정이다. 사랑과 운동은 목적에 헌신하기 위해, 그들 몸의 일부가 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역량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변화시킨 사람이나 사유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사랑이 깊을수록 대상과의 관계로부터 자신을 철회하기도 한다. 금연, 다이어트, 일찍 일어나기, 관계·초콜릿·카페인·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 등 사람들의 계획이 대개 실패하는 것처럼, 자기 변태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변태는 기존의 나를 상실한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며, 미래의 것이기 때문에 알 수 없어 두렵다. 특히, 연령주의 사회에서는 나이가 들면, 오후 3시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오후 3시는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고, 포기하기엔 미련이 남는 위치다. 자기 문제를 극복할 수도 승복할 수도 없고, 자기 조건에서 탈출하기도 저항하기도 힘들다. 막다른 골목을 꺾어진 골목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인간은 그리 많지 않다.

변태는 자신을 아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존재가 인간이다. 우울증으로 고통 받던 미국의 어느 소설가는 자살을 결심한다. 상처받을 주변 사람들을 걱정하여, 남들도 납득할 만한 자살 이유를 찾다가 에이즈에 걸리기로 마음먹는다. 6개월 동안 온갖 위험한 섹스를 시도하다가, 어느 날 타인에게 에이즈를 전염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두고 검사를 의뢰한다. 결과를 기다리며 그는 에이즈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죽음 앞에서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것이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비참하다.

너무 심란한 이야기인가? 모든 사람이 “나를 바꾸고 이전과 같이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책을 쓴다”는 푸코처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실은, 변태 과정에서의 좌절과 자기혐오가 변화 없는 현실의 괴로움보다 더 고통스러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그냥 생긴 대로 살까? 나를 다른 세계로 날아가지 못하게 하는 현실의 중력을 인정하며, 어차피 가끔 중독은 필요한 것이라 자위하며, 결핍은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든다고 믿으면서, 이렇게 사는 것이 나을까?

정희진/서강대 강사·여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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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12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오!! 이렇게 살지 않겠습니다. 기꺼이 뵨태가 되겠숨돠! 역쉬, 정희진 ^^b

라주미힌 2005-10-12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복돌님은 변태세요. (이상하넹 ^^;)

우아 정희진씨 글을 너무 잘 써요... 주제는 간단한데.. 변태하자.

숨은아이 2005-10-13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뚱한 소리 : 일요일에도 일해야 하는 경우엔 오전 내내 빈둥거리다가 밥 먹고 한숨 쉬고 오후 세 시 되어서야 일 시작하곤 하거든요. 그래서 난 오후 세 시에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인간이다! ^^b

릴케 현상 2005-10-13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김규항이 변태 얘기 했던 게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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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10-12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눈 보게.... 허...

라주미힌 2005-10-12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산 써클렌즈...

릴케 현상 2005-10-1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가 더 이쁘넹=3=3

라주미힌 2005-10-13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가 뭐에욤... 처음 들어보는뎅.

릴케 현상 2005-10-13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인기서재인 조선인과마로를 모르시는 건 아니죠^^ 깜박하셨나?

라주미힌 2005-10-14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은 들어봤는데.... 마로? ... 몰라욤 흐흐흐...
 

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PaperId=752233

대부분 반대의견이길레 찬성의견 내봅니다. (저도 반대는 하는데 ㅎㅎ)

법이나 제도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기 땜시 그냥 내 생각나는데로... (틀렸으면 틀린겁니다 ㅡ..ㅡ;)

 

- 표현의 자유와 익명성

표현의 자유에 익명성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들.

되묻고 싶다. 익명성 뒤에 숨은 표현의 자유는 과연 바람직했던가?
자유를 빌미로 삼아 오히려 타인의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았던가?
표현의 자유에서 익명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큰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말 못할 표현들은 과연 어떤 성향의 것들인가?

인터넷의 집단주의 문화와 마녀 사냥식 여론 몰이는 자주 보아온 것들이다.
개인 신상 정보를 올려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는 물론이고,
허위 정보를 유포하여 정치적, 경제적 피해를 입히는 일(선거철이나 특정 기업, 개인을 상대로 한),
연예인 및 공인들에 대한 명예훼손, 개인의 잘못을 사회적 처벌로 증대시키는 짓(개똥녀나 xx대학교 도서관 폭행사건 등),
스팸메일, 음란물 유포, 인터넷 금융 쇼핑 사기 등
도덕적 해이를 넘어선 반인권적, 반사회적 법죄들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익명성은 떳떳하지 못한 자들의 방패막이다. 정당하다면 자신의 신분을 감출 이유가 없다.
숨긴 왜 숨어~!!!
익명성, 그것이 표현의 자유의 전부인냥 호도하는 것은 자유와 방종을 구분을 못하거나,
변명일 뿐이다.

익명성에 대한 과도한 의미를 두는 것 보다는
실질적으로 개인 정보의 유출에 대한 우려, 노출됐을 경우에 받을 수 있는 피해로 인하여
반민주적이거나, 여론을 압박하는 심각한 검열로 작용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실명제 반대의 주요 사안이라고 볼 수 있다.



- 정보의 바다가 검열의 바다로

인터넷 실명제 사실은 시행이 되고 있다. 다만, 법률적 강제성보다는 경제적 자발성 위주이기 때문에 인식을 잘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인터넷 쇼핑몰, 하다 못해 흔한 블로그 하나 만들려고 해도 자신의 거의 모든 신상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물론 개인의 정보가 유출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이율배반적인가)
그러나 현재에는 유출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사이트 관리자들이 그걸 팔아 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률적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인터넷 실명제는 회원 뿐만 아니라, 사이트도 해당된다.
그렇기 때문에 실명제에 대한 제도적, 기술적 취약성은 반드시 보완되어야 한다. 그리고 개인은 물론 사이트 관리자에 대한 '사법적 처벌'은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전제로 해야 한다.
신분에 대한 보장, 정보의 비밀성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하고, 회원 각자의 양심과 도덕성을 기반으로하여 파괴적인 공격성향을 줄여가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럼 범위는 어디까지 인가.
모든 사이트?
NO.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이 큰 곳만 하면 된다.
가령 선거철만 되면 나타나는 알바들~!
투기 선동하는 투기꾼들~!
먹고 튀는 쇼핑몰 사기꾼들~! 이 넘치는 곳들만 하면 되지 않을까.


성숙한 시민 의식을 기대하는 낭만적인 바람도 가져 볼 수 있겠지만,
그런 사회였으면 이미 국가와 사회라는 틀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완벽한 자유란 없다.
그 어디에 가더라도 테두리와 경계가 있으며, 처벌과 보상이 있다.
욕망은 절제로 인하여 보상받으며, 사랑은 이별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좀 쌩뚱맞나.. ㅡ..ㅡ;)

급속히 팽창하는 인터넷 문화는 저질 문화 또한 급속히 양산하고 있다.
체면은 불편한 것이다. 그래서 무질서를 원한 것이고, 익명성은 폭력성을 낳았다.
당신의 이름, 당신의 도덕성과 정체성이 살아있다면 당당하게 깃발에 꽂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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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10-13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정말 고맙습니다. 다른 분들이 가르쳐 주신 정보가 다 반대의견 뿐이라 도대체 어떤 논리로 찬성의견을 전개해야 하나 고민했는데.....님 글을 보니 반대하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무럭무럭 솟을 만큼 설득력이 있네요.
제 서재에 퍼가서 잘 활용할게요. 고마워요^^

숨은아이 2005-10-13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잘 정리해주셨네요. ^^ 저는 주민번호를 안 써도 되는 실명제 방안은 없나 고민 중입니다.

라주미힌 2005-10-13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맞다 그런 논의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