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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 홍덕표씨 유가족들이 "경찰 책임자를 용서할 수 없다"며 울부짖고 있다. 18일 빈소를 찾은 홍씨의 며느리와 딸, 누나 은임씨와 은정씨가 오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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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마이뉴스 강성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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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일 '고 전용철씨 사건규탄 3차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최근 사망한 농민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다. 이 대회가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18일 새벽 홍덕표 농민이 사망해 영정은 하나 더 늘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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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마이뉴스 권우성 |
| 1937년 6월.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홍덕표. 아홉살 때 '고아'가 되었다. 그 뒤 옹근 60년. 지며리 땅을 갈았다. 그럼에도 땅 한 평 없었다. 평생 남의 땅에서 땀을 쏟았다. 몸을 아낄 수 없었다. 몸이 부서져라 일해야 가족을 부양할 수 있어서다.
고인의 아들도 통탄한다. "아파도 병원 한 번 가지 않고 버티셨을 만큼 어렵게 사셨지만, 이웃들이나 가족들 모두에게 항상 따뜻한 분이셨다." 아파도 병원을 가지 않았다는 증언은 가슴을 파고든다. 그랬다. 농부로 평생을 살아간 고인에게 조국은 무엇이었을까. 땅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고인에게 교육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첨단 병원'도 의미가 없었다.
아무런 교육도 치료도 받지 못한 60대 소작농
고인이 처음으로 실려간 병원이 마지막 병원이었다. 11월 15일 농업을 지키려 참가한 집회에서 공권력이 휘두른 방패와 곤봉에 맞았다. 60년 농사로 깊숙이 팔자 고랑이 패인 이마가 찢어졌다. 평생 침묵하고 지냈을 입술도 피투성이가 되었다. 병원에 실려가며 경찰에 목덜미와 머리를 맞았다고 아들에게 하소연했다. 목뼈와 척수가 온전할 리 있겠는가. 팔과 다리가 마비되었다. 10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았다. 긴 고통 끝에 12월 18일 새벽 0시 35분. 결국 숨을 거뒀다.
앞서 서울경찰청은 시인한 바 있다. "집회 현장에서 진압경찰로부터 가격을 당해 부상했을 가능성이 현저하다." 고인이 처음은 아니다. 농민대회에 참가한 40대 농부 전용철씨가 '폭력 진압'으로 숨졌다.
그런데 보라. 노무현 정권의 모습을. 겨우 현장 지휘 책임자만, 그것도 '직위해제'했다. 정확히 짚자. 직위해제란 '징계 효과'만 있을 뿐이다. 징계 자체는 아니다. 공무원 신분도 유지됨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노 정권이 얼마나 농민을, 국민을 시들방귀로 여기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경찰은 전씨가 숨지자 처음엔 "집에서 넘어져 숨졌다" 주장했다. 심지어 허준영 경찰청장은 "간경화나 술을 마신 게 원인일 수 있다"고 흘리기도 했다. 현장 사진과 증언이 나왔을 때도 언죽번죽 딴전을 피웠다.
그렇다. 서울경찰청 기동단장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 경찰청장의 발뺌을 보라. 행자부장관의 모르쇠를 보라. 국무총리와 대통령의 '태평대응'을 보라. 대체 무엇을 믿고 저럴까.
신문과 방송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부자신문은 한결같이 농민의 폭력 시위만을 집중 비난했다. 텔레비전 방송은 쌀 박람회장을 방문해 "쌀이 맛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을 부각했다.
쌀 협상안 국회비준도 마찬가지다. 농민단체가 정성들여 제시한 대안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다만 농민들을 과녁으로 '세계화'의 흐름을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반발이라고 살천스레 화살을 쏘았을 따름이다.
'뉴 라이트'의 전도사 <조선일보> 류근일은 색깔공세마저 서슴지 않았다. 홍씨가 숨진 다음날도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의 사설은 농민들이 홍콩을 '무법천지'로 만들었다고 꾸짖기만 했다(12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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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5일 농민 집회에 참가했다가 목뼈와 척수손상 등으로 사지마비 상태로 누워있던 고 홍덕표 농민. 전농 전북도연맹 등에 따르면 그는 시위대 뒤 편에서 시위를 지켜보기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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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마이뉴스 강성관 |
| 기동단장에 책임 미루며 '언론타령' 할 때인가
모든 게 막힌 상황에서 농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시위와 자살이었다. 자살은 가장 격렬한 시위, 가장 극한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던가.
실제로 2005년 11월에 두 농민이 자살했다. 그리고 두 농민이 맞아 죽었다. 그래서다. 농정에 대한 여론의 악화를 언론 탓으로 돌릴 때가 결코 아니다. 적어도 농민에 관한 한 부자신문과 노 정권은 한 목소리였다.
깊이 성찰할 일이다. 저 부자신문의 '농민 괄시'는 접어두자. 하지만 칼바람에 촛불을 지키는 농부들의 요구는 결코 무리가 아니다. 허준영 경찰청장을 곧장 파면해야 옳다. 그리고 노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라. 아스팔트에서 맞아 죽은 60대 후반 소작농의 영전에 조문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