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하신단 페이퍼를 보고는 너무나 평범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서 쓸 게 없다고 낙심하던 차였는데...
다른 님들의 페이퍼를 읽다보니 문득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서 이렇게 누추한 펜을 들었습니다 ^^

한때 저는 프로야구 선수와 결혼하는 게 꿈이었어요. 야구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내가 야구 선수가 되지 못한게 억울(?) 하더라구요. 다른 운동이나 스포츠는 못하지만 야구는 잘 할 자신 있어요. 치고 냅다 달리면 되잖아요, 그까이꺼~

한옥집에 살 때 였는데, 아마 제가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을 거에요.
플라스틱 배트와 플라스틱 야구공, 야구 글러브를 선물받은 오빠를 쫓아 다니면서 야구를 즐겼지요.
착한 오빠는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저를 옆에 앉혀 놓았지만
집에 오는 순간 저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기꺼이 오빠가 저와 야구 놀이를 해주었지요.

그날도 마당에서 오빠가 슬라이드 볼을 던지고 저는 냅다 치고 달리고 신나게 놀고 있었어요. 
마지막 투혼을 발휘하여 오빠가 힘껏 공을 던지고 질세라 힘껏 공을 받아친 순간!
슈우우우웅................퍼어억!!!!!!@@@@!!!!!!

한옥집 마루 유리문 아시죠?
그 두꺼운, 너무나 두텁고 불투명해서 문을 닫고 있으면 밖에 누가 왔는지 잘 보이지 않는
그 두꺼운 유리가 깨진겁니다... 유리가 생각보다 좀 약하더라구요 ;;;;

저녁에 엄마한테 얼마나 혼났던지요.
오빠가요. 오빠가 혼났습니다. 어린 동생이 뭘 아느냐고.... (오빠 미안 ^^;;)
저는 혼날까봐 낼롬 자고 있었답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무조건 자는 게 상책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자고 일어나니 평상시와 다를 바 없더라구요.
이 버릇은 그 다음에도 한 번 더 써먹게 되는데요,
그건 다름 아닌 우리 동네에 나타난 기괴한 소녀때문이었어요.

우리동네에는 제 또래의 아이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늘 또래 친구들 서너명과 어울려 다녔죠.
어느날 우리 동네에 이사 온  A.
A 는 활발하고 예뻤지만 자기 멋대로 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이었어요.
대부분 다 온순하고 착한 아이들이었는데 A 가 나타난 이후로 아이들이 좀 겁을 먹었지요. 
게다가 A에 대한 이상한 소문도 돌았어요.

밤마다 A와 A엄마가 산에 올라가 제를 지낸다.
A가 지날 때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 (향냄새)
A는 한밤중에 우리들 집을 돌아다닌다... (산타클로스냐? )

우리는 점점 A를 멀리하게 되고 피하게 되었지요.
어느날, 소꿉놀이에 여념이 없는 우리들 앞에 A가 나타났습니다.
후미진, 우리들만의 아지트 같은 골목이었는데 A가 거기까지 찾아올 정도라면
우리를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알 수 있었죠.
소스라치게 놀란 아이들은 A를 보자마자 일사불란하게 도망을 쳤습니다.
와중에... 저는, 그 소꿉장난감을 두고 갈 수가 없어서 (정말 귀여운 것들이 많았거든요) 
A의 눈치를 보면서 몇가지를 챙겼답니다. 주섬주섬...(나중에 이웅평 대위가 넘어왔을 때도 이걸 챙겼다지요...-_-;;) 
그때였습니다. A의 발이 제 소꿉놀이를 짓밟기 시작한 것은. 
A를 떠민 것도 A가 막 움직이기 시작한 즈음이었으니 
소꿉장난감에 대한 애정과 저의 민첩함이 반짝반짝 빛나는 대목이죠 ㅎㅎ

쓰러진 A는 주저앉은김에 마구 울더군요. 
저도 따라 울었습니다. 
저도 따라 울면서 소꿉장난을 결국 다 챙겨갖고 왔다는...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과 열의는 그때부터 생겼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때처럼 좀 그런 면이 있구요 ㅎㅎ
그때를 교훈삼아 내가 좋아하는 것은 어떻게든 지킨다, 하는 자신감도 생겼죠.

그날 A를 떠민 것을 엄마가 알게 될까봐
저는 또 집에 와서 실컷 잠을 잤습니다. 
A가 머리를 풀고 하얀 원피스를 입고 돌아다니는 꿈은 그날 꿨는지
며칠 후에 꿨는지 정확하진 않은데
A에 대한 기괴한 소문에 제가 더 보탰다는 건 확실해요 ^^;;

아주 가끔은 정말 괴로운일이 있을 때,
도저히 해결의 실마리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깊이 잠을 자기도 해요.
어린 날 처럼 저절로 다 해결되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날이 춥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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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11-20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은 얌전한 소녀였군요!
(산사춘님 글을 읽고 올라오니 그런 생각밖에는...흐흐~)

라주미힌 2005-11-20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식호흡하는 사진인가봐요 ㅎㅎ
자고 나면 세상이 달라졌으면 좋겠네요...

mong 2005-11-20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랑소녀였던 플레져님의 어린시절?
ㅎㅎㅎㅎ

로드무비 2005-11-21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희숙의 낮잠에서 깨어나니 온세상이 낯설고 어쩌구~
하는 노래가 생각나네요.
플레져님, 원하는 책 받으시나봐요.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