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엔 길이 없어 - 박태일
그리움엔 길이 없어
온 하늘 재갈매기 하늘 너비를 재는 날
그대 돌아오라 자란자란
물소리 감고
홀로 주저앉은 둑길 한끝.
돼지저금통에 그리움이 가득 쌓이면.. 엄마가 돌아온대..
피붙이와 떨어져 살아야만 하는 '어머니'의 선택은 너무나 비자발적이다.
양육이란 나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여건에 따라 포기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던가.
시대가 아픔을 만들어내고, 그 아픔은 약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여성과 아이들에게 축적되어지는 짐이 힘겹게 보인다.
사회는 엄마와 자매에게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로지 설명없는 상황을 만들어 줄 뿐이다.
고모에게 맡겨지고, 할머니에게 맡겨지고, 엄마는 기약없는 약속만을 남겨두었다.
흘러흘러 떠내려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 성장해가는 모습에는
누군가의 운명이... 그리고 다시 인내해야 할 미래가 엉긴다.
배고픔을 메뚜기로 채우고, 메뚜기를 팔아 돼지저금통을 채우다가
100원짜리를 10원짜리로 바꾸어 희망을 앞당기려 하는 아이의 바람이 시리다.
아이의 소망은 너무나 간절한데, 그것을 알기엔 어른들의 눈은 탁한 세계에 시선이 멈춘다.
세대의 초월도 인간적 연대도 아이들에게 자행되는 강해지기를 막을 순 없다.
아이들조차 스스로의 삶에 완벽하게 적응해 가야만 하다니..
이른 나이에 들이닥친 아이들에게 어떤 믿음을 줄 수 있는가.
민둥산에 나무 한 그루를 심으러 갈때 부르는 노래에 희망은 어떠한가.
나무가 없는 산에 나무가 필요하듯...
사랑없는 삶, 믿음없는 삶, 의미없는 삶에는 부재가 더욱 존재의 이유를 드러내놓는다.
우리는 그것을 아마도 희망이라 부르는 것 같다.
카메라의 건조한 시선은 '여성'에 대한 어떠한 대답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질문을 만들어내고, 공감의 언어를 뱉어내게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아이들을 비롯한 여성들의 아슬아슬한 연기 또한 리얼리티의 맛을 더하였다.
영화 전반에 축적되는 그리움의 무게를 엔딩크레딧에 한 뭉치 더 올려놓는 바람에
가슴 속 밀도는 더욱 높아짐을 느낀다.
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