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의 은밀한 사생활 - 탐미의 시대 유행의 발견, 개정판
이지은 지음 / 지안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는 이것이다. 부자는 먹고 싶을 때 먹지만, 가난한 사람은 먹을 수 있을 때 먹는다.”     윌터 롤리 경


인간 사회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환경적, 문화적, 계급적 차이가 가져온 차별성은 각자의 역사로 기억되어 왔다. 하나는 소수의 지배계급으로 다른 하나는 다수의 피지배계급으로, 하나는 고급과 엘리트라는 간판을 달고 살아가고, 다른 하나는 대중성과 미디오커라는 태그를 달고 살아간다. 그렇게 일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의 한계와 경계는 이미 결정되어 진다. 따라서 경험은 간접적이고 지식은 가식적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구조를 띤다.

여기는 분열된 세계, 저편에 있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치밀어 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이 책은 다수가 경험할 수 없었던 18세기의 문화와 예술과 유행, 그들만의 에피소드를 담은 책이다. 그리고 저자는 오브제 아트를 감정하는 (외모도 ‘귀족’적인)전문가답게 전문적인 지식과 대중적인 편안함으로 오브제 아트의 세계로 인도한다.

책은 역시나 화려하다. ‘엘레강스’한 궁정의 예술품을 담은 도판이 가득하다. 보기만 해도 ‘이거 비싸구나’라는 것을 ‘국보급 둔치’라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진귀한 것이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tv프로그램(특히 ‘x요일 x요일 밤에’)에서 보여지는 골동품, 문화재, 예술품에 대한 자본적가치 매기기의 천박함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그거 비싸?
브랜드는 뭐고 소비자가격이 얼마야?

물건을 보고 그것의 가치를 묻는 질문은 보통 이런식이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수 많은 오브제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보아야 할 것들이 아니다. 저자는 그것을 아름답게 만든 ‘장인’의 솜씨와 열정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노동의 예술이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그 가치를 알아보는 눈을 지녀야 진정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앤틱 가구를 산다는 것은 그것이 겪어온 역사뿐 아니라 처음부터 손으로 일일이 나무를 다듬어낸 장인들의 손길과 그들의 인생을 함께 사는 것이다. 장인이 되는 데 빨라도 20년의 세월이 걸린 시대에 그야말로 그들의 작품은 한 사람의 일생을 바친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160p


물론 이 책에는 장인의 손길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에 손 때를 묻히며 사용하던 사람들의 삶을 조명한다. ‘왕’과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을…
마치 신혼 첫날밤에 화장을 지운 아내의 얼굴에서 눈썹을 발견할 수 없는 것 같은 당황과 황당함이 넘친다. ‘더티한 궁정생활’이라던가, 난잡스러움, 정말 ‘깬다’라는 느낌을 안겨주는 왕의 일상 등 읽을 거리의 풍성함이 매력적이다.

18세기 여성들은 두 번의 투왈렛 시간을 가졌다. 첫 번째 투왈렛은 남에게, 특히 애인이나 남자에게는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 여기서 말하는 첫 번째 투왈렛은 바로 세수하는 일을 가리킨다. ~ 하지만 당시에는 세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풍습이었다. 213p

당시의 문화와 유행을 살펴보는 것 또한 신선한 느낌을 준다. 살롱에서 왁자지껄 수다를 떠는 지식인들, 거드름을 피우며 자신이 가진 ‘물건’을 전시하는 부유한 작자들, 첨단 유행의 도시 베르사유를 배회하는 ‘촌뜨기들’… 상상을 자극하는 상황들이 이 책 곳곳에 담겨있다.

유행의 첨단을 달린 베르사유는 판화가나 장식가들이 활동하는 주무대였다. 그들은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왕의 도시 베르사유에 가서 새로운 문화와 유행을 직접 목격했다. 루이 14세가 거의 모든 것을 통제하던 베르사유는 신분이 높건 낮건 모두 왕을 위해 일하는 정치 도시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궁정인들이 벌이는 연극 같은 생활을 신기한 듯 구경하는 일종의 극장이기도 했다. 136p


이 책을 읽다 보면 ‘예술은 태생부터 귀족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생을 바쳐야만이 이를 수 있던 장인들을 ‘서포터’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은 그들 귀족 밖에 없지 않은가. 먹고 살기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재능이란 꿈에 불과한 것이지 않은가.
웬지 멀게 느껴지는 그들의 세계, 하지만 저자는 예술과 삶의 가교 역할을 한다. 멀리 있어도 그것은 우리 삶의 여러 모습 중에 하나임을 일깨워준다.
'고급의 의미'도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얼마 짜리인가’가 아니라, 얼만큼의 애정과 정성이 담겨있는가를 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브제 아트라는 낯선 분야가 나에게 남겨준 것은 아름다움이란,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빛나게 하는 것이다라는 점이다.

궁중예술품은 ‘프랑스의 위대한 혁명’으로 왕정의 붕괴, 장인의 몰락과 함께 사라져 갔다. 이 책에서 묻어나는 저자의 아쉬움은 창조와 파괴의 양면성에 대한 진지한 연민이다.

정치적으로는 위대한 혁명일지 모르지만, 예술적으로는 지나치게 잔인했던 혁명이었다. 3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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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7-09-03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조와 파괴의 양면성에 대한 진지한 연민이라.. 아름다움에 대해서 아이들과 토론 수업을 한 적이 있었어요. 똘똘한 아이 하나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아름다움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처음부터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요. 그랬더니, 다른 똘똘한 아이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아름다움에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 아름다움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요. 제가 이 책을 읽었더라면, 더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줄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모든 것들은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때, 파괴될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그 파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좀 다른 측면인 것 같아요. 그래서 상업성을 띄지 않는 예술이 더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합니다. 아침부터 되게 어렵네요 ㅋㅋ

라주미힌 2007-09-0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얘들 똑똑하네.. 가시장미가 가르쳐서 그런가봐.. :-)

sokdagi 2007-09-18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멜기세덱 2007-09-19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ㅊㅋㅊㅋ

마노아 2007-09-19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이주의 마이 리뷰 당선이군요! 축하합니다. 저도 얼른 이 책 읽어야 할 텐데 여진히 책장에만...;;;;

라주미힌 2007-09-19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

마늘빵 2007-09-2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