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문재인정부를 포함해서 남북 협상이 그렇게 많이 이루어졌지만 그 속에서 재일조선인 문제를 제대로 논의해본 적은 한 차례도 없습니다. 이제라도 바뀌어야 합니다. 재일조선인들에게는한국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언어 능력만이 아니라 양국의문화를 직접 체험하면서 국경과 민족의 고정된 정체성을 넘어 다양한 자아실현이 가능한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남북한이 통일되고 식민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초월한 새로운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가 실현된다면, 한국 또는북한 또는 일본의 정체성을 강요받아왔던 재일조선인은 한 국가나민족의 정체성이 아닌 아시안(Asian)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을것입니다. 그때야말로 재일조선인의 불안정했던 법적 지위와 정체성은 자연스럽게 해결되겠지요.
- P219

결국 1960년 6월 19일 자정이 되어 안보조약 개정안이 자동적으로 성립됨으로써 안보반대 사회운동 진영이패배하게 됩니다. 격렬했던 반대운동은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지요. 한국에서는 4·19 혁명이 일어났던 바로 그 무렵입니다.
한국이었다면 개정안이 강행되더라도 곧장 폐기하기 위한 운동을 조직하고 계속 이어갔을 것입니다. 정권을 바꿔서라도 목표를이루기 위해 투쟁했겠지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일단 법이 제정되어 실행되자 완전히 패배했다고 생각하고 포기해버렸습니다. 일본사회운동의 특징일 수도 있는데, 1960년부터 거듭해서 이런 경험을 하며 점점 패배주의가 쌓였고 사회운동 자체에 대한 회의감도깊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 P241

1960년 안보투쟁 이래 일본의 사회운동이 거듭 패배하자 등장한것이 ‘적군파(赤軍派)‘ 입니다. 적군파는 1969년 분트의 극좌 세력이독립하여 결정한 조직입니다. 그들은 혁명에 군대가 반드시 필요하며, 오로지 물리적 폭력으로써만 혁명이 완수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일본에서는 혁명이 불가능하고, 일본을 혁명사령부로 삼되 전 세계의 다른 혁명주의와 연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 P246

1970년대 일본사회운동의 몰락은 이후 커다란 구조적 문제를 남겼습니다. 우선 운동세력 내에서 연대에 대한 불신이 강해졌습니다. 전학련, 전공투, 적군파 등 큰 조직에서 발생한 모순과 폐해를목격한 뒤로 수평적 연대를 하지 않는 경향이 생겨났지요. 지금도일본 공산당과 사회당은 절대 손을 잡지 않고, 시민운동단체들도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사회운동 조직은 갈수록 작아질 뿐 크게통합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사회운동이 권위주의적 체제 해체나 안보조약 폐지같은 큰 주제를 다루기보다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세울 수 있는과제들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컨대 여성운동, 원전 반대, 군사기지 반대, 장애인 해방, 소수민족 차별 해소 등으로 사회운동이세밀하게 분화되었지요.  - P248

오늘날 일본 시민운동은 자발적 집합 · 자발적 해체를 전제로 삼고 있습니다. 강령이 없거나 있어도 아주 자유롭지요. 시민 개개인이 반전, 환경보호, 장애인 평등 등 자신이 공감하는 목표를 좇는조직에 몸을 담고 스스로 조사와 연구를 합니다. 시민이 자기 돈을들여서 운동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목표를 이루든지 해서의미가 없어지면 미련 없이 조직을 해체합니다. 나중에 필요해지면 다시금 뭉치기도 하지요. 작은 규모의 조직들이 끊임없이 결성과 해체를 반복하는 것은 일본 시민운동의 중요한 특징으로 베평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P253

양기호 교수는 일본 평화주의의 광범위한 잠재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일본의 평화주의가 갖고 있는 명확한 한계도 지적했습니다. 자신들이 아시아에 저지른짓에 대해 속죄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일본은 ‘일국 평화주의‘에 머무를 뿐이라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P259

만약 한국이 계속해서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전면에내세운다면 일본 시민사회는 한국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극우주의에 전부 포섭될 것입니다. 그런 흐름은 일본의 헌법개정 및 동아시아 평화의 위협으로 이어지겠지요.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은 갈등과 혐오가 필요한 시대가 아닙니다. 한국과 공통점이 많은 덕에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일본을 직시하고 배울 건 배우면서 연대해야 합니다. 그랬을 때 비로소 우리는진정한 과거사 청산은 물론이고 새로운 동아시아 평화체제를 향해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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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익을 공부할 때는 두려움 같은 게 느껴집니다. 1800년대를 보면 한국은 전혀 근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조슈나 사쓰마라는, 우리로 치면 포항이나 영덕 같은 곳에서 서른 살 남짓한 사람들이 전 세계를 내다보며 전략을 세우고 일본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시아는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들이 밀고 나간 궤적을 보면 정말 치열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국의 우익에는 없는 점이지요. 더 중요한 건 일본의 우익이 보여주는 희생과 헌신의 전통입니다. 역시 한국 우익에는 없는전통입니다. - P94

기시는 사실상 만주국을 설계한 사람입니다. 이런 만주 경험은만주군 장교로 근무한 박정희와 잘 맞아떨어졌지요. 사실 유신 시대의 국방국가 한국은 만주국 모델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생겨난 한일 간의 유착관계에는 기시와 박정희가얽힌 만주국 인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습니다.
- P108

박정희가 1945년 이전에 물리적으로 한 친일은 그렇게 심하지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박정희는 친일파가 되기 위해 긴 기간준비운동만 한 셈입니다. 대구사범학교부터 일본 육사까지 문무를겸비해 제국에서 출세하기 위한 발을 내디디자마자 일본제국이 패망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박정희를 ‘원조 친일파‘라고 하는 이유는 집권한 이후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대한민국을 일본 극우파가생각했던 방향으로 끌고 갔기 때문입니다. 바로 일본이 만주국을경영했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 과정에서 박정희의 사상적 지도자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세지마 류조고, 그 배경에 황도파의 사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P112

해방됐을 때열다섯 정도였던 군국소년 중 많은 수가 혼동기에 청년단원이 되었습니다. 서북청년단 같은 단체가 성행했던 이유입니다. 또 이들은 스무살 무렵에 병사가 되어 한국전쟁을 치렀습니다. 정작 일본의 군국소년들은 군대가 해산돼 전쟁을 치르지 않았죠.
군국소년이었다가 청년단을 거쳐서 군인으로 한국전쟁을 치른병사들은 전쟁이 끝난 후 어떻게 됐을까요? 조봉암이 진보당사건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자 반공청년들이 법원에 쳐들어와서 빨갱이 판사를 타도하자고 외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반공청년 세대가 바로 일제가 키워낸 군국소년들입니다. - P138

해방된 지 벌써 75년인데 아직도 친일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네, 안타깝지만 아직도 친일 타령해야 합니다. 『친일인명사전 이 우여곡절 끝에 2009년, 그러니까 해방되고 64년이 지나서야나왔습니다. 발간 당시 사전에 수록된 인물 4,500여 명이 거의 다죽고 딱 두 명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저항이 심했지요. 친일파 정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일파 정리는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지금을 정리하면 친일파는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입니다. 중요한 건현실입니다. 오늘 친일 문제의 싸움터는 1920년대, 30년대, 40년대의 역사연구가 아닙니다. 친일파를 누가 이어받았는가? 그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가? 그 힘을 깨버리는 게 친일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연구는 그다음에 숨 돌리면서 하면 되지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주전장‘은 여기, 지금 이 순간입니다.
- P142


많은 이들이 조선학교가 정규학교로 인정을 받으면 일본사회의전반적인 인권 수준이 향상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일본의재일외국인 관련 정책이 대부분 재일조선인을 기준으로 세워지기때문입니다. 조선학교를 지원하지 않기 위해 모든 외국인 학교를정규학교로 인정하지 않듯이, 일본은 재일조선인을 배제하기 위해국제인권법이나 아동권리조약 같은 것들을 위반하는 일이 일어나도 방치하고 있습니다. 1992년까지 일본에 영주하는 외국인이 지문을 등록해야 했던 것은 대표적인 예이지요. 재일조선인 때문에모든 외국인에게 지문 등록을 강요했고, 국제적인 비난을 받으면서도 수십 년 동안 제도를 폐지하지 않았습니다.
- P199

재일조선인들은 해방 이래 지금까지 줄곧 똑같은 질문을 받아왔습니다. "당신의 정체성은 일본입니까, 남한입니까, 북한입니까?"
예전 한 재일조선인은 이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정체성이 그렇게나 중요합니까? 왜 정체성에 그 정도로 연연합니까? 밤하늘에는 반짝이는 별이 수없이 있는데, 어떤 별은 한국 것이고, 어떤 별은 일본 것입니까?" 재일조선인 개개인이 반짝이는 별들처럼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갔으면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이 일화는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에만 관심을 두는 편협한 시각에일침을 가합니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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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 알프스에서 만난 차라투스트라 클래식 클라우드 2
이진우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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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 옛적에 니체를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읽었던 책이 입문을 위해 이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야? 아 자서전이란게 있네?

이래서 본게 <이 사람을 보라>

처음에는 키득거렸던 것 같다. 제목도 어찌나 잘 써주셨는지....

이 책 속 소제목이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뭐 이런식이었다.

아! 이 무슨 자뻑 대마왕이란 말인가?

지금의 나보다는 훨씬 위선적으로 겸손했던 - 지금은 아주 절절하게 진심으로 겸손하다. 인생의 쓴맛을 제법 본 덕분에....

젊은 시절의 나는 저 제목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더 감당할 수 없는 게 있었으니 바로 내용이었다.

아 도대체 무슨 말이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책이 정녕 한글 번역본이 맞단 말인가?

그래 한 줄 한줄은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근데 문단을 읽었는데 왜 머리속에 아무것도 안 떠오르지? 왜? 왜? 왜?

아 나는 바보인가봐....ㅠ.ㅠ

 

그래도 그 때는 시간도 많고 인내심도 있어서 어쨌든 보기는 다봤다.

다 보고 나니 뭔가 니체가 말하려는게 여태까지의 통념적인 상식과는 다르다는 그냥 느낌만 느껴졌었다.

그냥 느낌이다. 내용은 모르겠다.

 

지금보다 훨씬 용감했던 나는 다음 책으로 <도덕의 계보>를 집어들었다.

보다 보면 언젠가는 알 수 있을거야라는 별로 신빙성도 없는 느낌만으로...

그래도 <도덕의 계보>는 <이 사람을 보라>보다는 좀 나았다.

일단 뭘 말하려는지 큰 줄기는 알 것도 같았다.(여기서 알 것도 같다는 말은 중요하다. 왜냐? 안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 것같다는 것과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나는 여전히 니체를 모른다.)

 

<도덕의 계보>에서 말하는 건 결국 현재의 도덕, 도덕적 기준, 선악의 기준 이런 것들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설파하는 듯했다.

그래서 말 그대로 계보, 즉 도덕의 기원까지 따라 올라가면서 현재의 선악 이분법의 도덕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이것이 어떻게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지,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따른 삶이 왜 중요한지 등등을 얘기하고 있었다.

근데 이건 내가 이렇게 이해한 바가 이렇다는 거지, 이 책의 서술과 논리 전개 과정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으며 요약정리도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니체의 책에서 글을 읽은게 아니라 행간과 행간을 띄엄띄엄 읽었던 느낌이다.

그리고 내 맘대로 아 이건 이런 뜻인가봐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원래는 마지막 책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면서 니체의 생각을 1차 정리해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나의 용기는 딱 2권째 <도덕의 계보>까지였다.

그 후로 오랫동안 니체를 잊고 살았다.

차라투스트라까지 읽으면 나도 춤을 출 수 있을까 싶었지만, 뭐 춤을 못춰도 사는데 별 지장은 없었다.

 

지금 저 오래된 기억을 소환시킨 이 책은 니체 전문가이면서 니체의 삶의 궤적을 따라 가며 니체에 대한 이야기 또는 해설서이다. 또 한편으로는 니체처럼 생각하기를 실천하는 학자의 여행기이기도 하다.(오래전에 질린 니체를 지금 내가 읽은 건 이게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2권이기 때문이다. 숫자나 순서에 일종의 강박이 있는 나는 1권 셰익스피어가 좋았기 때문에 이 시리즈를 완독하기로 결심했고, 완독은 당연히 한권도 빼지 않고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

 

이 책 역시 참으로 니체적이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뜻이기도 하고, 니체가 생각했던 방식대로 책의 쓰여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게 읽다보니까 뭔가 아! 하는게 있다.

니체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니체를 읽는 방법이 보인다.

그러니까 니체를 읽을 때는 먼저 내 머리부터 비울 일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기본적으로 책을 읽을 때 나의 머리는 준비자세를 취한다.

특히 그 책이 인문 사회과학같은 이론서일 때는,

"자 너의 머리를 준비해! 지금부터 너의 머리를 풀가동해서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논리적으로 굴려. 그래야 너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올바른 지식과 태도에 이를 수 있을거야." 딱 이 자세다.

그런데 딱 이 자세가 바로 니체가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바로 그 지점이었던 것이다.

 

논리적 합리적이란게 무엇인가?

이런 생각의 방법 역시 계보학적으로 따라가보면 결국 근대의 산물이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한 후에 이성과 이성의 작용인 합리성, 논리성은 모든 영역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져왔다. 사실 이건 소크라테스 이후 서양철학이 줄기차게 걸어왔던 길인데 데카르트에 이르러 한 획을 긋게 되는 것이다. 데카르트 이후 이런 이성과 합리주의의 전통은 근대의 위대한 너무도 유명한 철학자들, 우리가 안 읽어도 이름은 다 아는 헤겔, 칸트, 마르크스 이런 이들에 의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는 것이다.

 

가만히 상상해본다.

여기 홀로 칼을 빼들고 춤추는 이가 있다.

이성이 아니라 디오니소스적인 감성과 본능, 이성과 합리의 영역을 넘어선 자유, 인간이 만든 선악의 카테고리를 벗어나 자유의지대로 살아가는 삶을 꿈꾸고 주장하는 이.

근대철학의 한가운데서 근대철학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바로 니체다.

니체가 결국 정신분열을 일으킬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너무 일찍 태어난 천재였던 것이다.

포스터 모던 - 근대 너머를 너무 일찍 기획했던 니체의 마지막 삶이 광인이었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이 가버린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은 듯하다.

내가 니체의 책이 그렇게 어려웠던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앞에 말했듯이 나의 사고습관은 논리성과 합리성을 찾도록 자동 방향설정이 되어 있다.

그렇게 모던 - 근대를 뛰어넘자고 포스터모던 어쩌고 하지만 사실상 근대를 뛰어넘는건 쉽지 않다.

우리의 뇌의 작용방향은 아주 질기게도 근대의 이성을 향해 있다.

사실 이것의 가장 큰 이유는 학교교육에 있다.

답을 찾지 않는 학교 교육? 판단하지 않는 학교교육? 상상이 가는가?

제도권 학교교육이 너무 잘 되어 있어 국민 대부분이 이 과정을 거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니체의 사고를 따라가는건 정말 어렵지 않을까?

 

그래도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우리 세상에는 내가 잘 못하고 모르는 분야가 있으면 꼭 먼저 가서 해보고 알려주는 이가 있다.

어디나 선생님들이 있고, 또 인터넷의 발달로 그런 선생님을 찾아가는 것이 너무 쉬워졌으니 이것만은 복받은게 틀림없는듯하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런 분인듯하다.

그 어려운 니체를 먼저 공부하고 니체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니체가 사고했던 방식대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면서

"자 어렵죠? 여러분! 하지만 불가능한건 아니예요. 그리고 완벽하려 애쓰지 말고요. 나도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확신은 없어요. 하지만 이렇게 니체의 말을 음미해보고 이렇게 생각해보고 살아보면 불가능한건 아니예요. 니체의 말을 잘 음미해보면 우리의 삶을 좀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니체가 위대한 것은 그의 사상의 내용이 아니라 그의 사고의 방법이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나를 학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니체를 또다시 찾아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니체의 생각의 방식, 사고의 방식을 어렴풋이라도 알게 된 것은 큰 기쁨이다.

오래된 열등감 - 책을 읽고도 이해하지 못한-을 이제 살짝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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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아베 내각의 혐한정책을 지지하는 일본 국민들의 의식 속에는 1990년대 중반 이후일본사회에 축적되어온 국내외적인 안전보장의 위기의식이 있다.
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그것은 패전 이후 일본의 평화운동과혁신운동, 진보적 시민운동이 실패하고 패배한 결과라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사실 일본회의를 중심으로 하는 아베의 극우보수주의는 결코 일본사회의 대안세력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장기 집권하는 것은 미디어 여론전에서 주도권을 쥐고 음울한일본사회의 패배주의적 국민의식을 전전의 강한 군국주의 일본에대한 향수와 식민지배 의식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 P15

1965년에 역사문제는 청산하지 못했고, 1998년 체제에서도 문화개방은 했지만 역사문제는 봉합을 했는데, 2018년에 다시 제기된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인정했습니다. 과거 냉전 시대에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과 한일 양국 정부가 덮어둔 역사문제가 공식적으로 대두된 것이지요. 이는이제 한국과 일본의 정부가 식민지 지배의 불합리성 문제를 공식적으로 직면해야 된다는, 그러지 않고서는 한일관계가 진전할 수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P45

이렇게 본다면 북미 및 남북 평화 프로세스는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만약에 이프로세스가 실패하면 일본의 극우보수세력은 두 번 다시 한반도에서 남북 공존 및 북미 평화 프로세스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미국을 등에 업고 북한과 국지전을 감행할 것입니다. 여기에 한국에 또다시 보수정권이 들어선다면 그들 또한 일본의 보수세력과 이해관계가 일치할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한국전쟁의 출구에 서 있는지,
아니면 제2차 한국전쟁의 입구에 서 있는지, 우리의 미래를 가늠할수 있는 시야를 가지고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 P50

다음 사진은 ‘도미다 메모‘라는 것입니다. 도미다 아사히코(富田朝彦)는 천황을 보좌하는 국내청장관으로 천황의 비서였지요. 이메모에는 A급 전범이 합사된 이후 천황이 한 번도 참배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1989년에 죽은 히로히토(쇼와) 천황과생전 퇴임을 한 현재의 상황(上皇) 아키히토 천황은 1978년 이후 한번도 야스쿠니에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키히토 천황이 평화주의자이고 아버지의 전쟁에 대해서 반성을 했기 때문에 야스쿠니를 안 갔다는 평가도 있지만, 야스쿠니에 전범이 합사된 것에 불만을 품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 P58

일본이 진정한 군국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쇼만으로는부족했습니다. 절대천황제가 되어 군통수권을 천황에게 주는 것도필요하지만, 현재 일반종교시설인 야스쿠니를 국가시설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장래 벌어질 전쟁에 일본인들이 천황의 명령으로 참전하고, 전몰 장병은 야스쿠니에 합사되어야만 완벽하게 전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쟁을 할 수 있게끔 안보법을 추진하는 동시에 수상들이 야스쿠니를 참배해서 야스쿠니를상징화하고 국가시설화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 P67

야스쿠니는 명부 하나만으로, 수많은 이들이 잠든 미국 알링턴국립묘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알링턴 국립묘지는 유골이 올 때마다 묘지가 하얀 십자가로 덮이고 갈수록 면적이 넓어지고 있는데, 일본에는 그런 국립시설이 필요 없는 것이지요. 야스쿠니는 명부 하나로 수없이 많은 이들이 죽은 전쟁을 소화해버렸습니다. 그런 식으로 끔찍한 전쟁을 잊어버리게 했지요. - P70

다카하시 교수의 의견은 결국 국가나 민중이 죽음을 주도하고미화하며 계승하는 것 자체가 야스쿠니의 희생의 논리와 연결될수 있다고 원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나 민중이희생자들을 일절 추도하지 않는다면 국가폭력에 의해서 사망한 희생자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가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국의 과거사 청산에서 국가폭력이 저지른 일들의 진상을 규명하고, 국가가 그에 대해 사죄와 보상을 하는 것은 두 번 다시 국가가 동일한폭력을 행사하지 않도록 하는 과도적 조치로서 필요한 일일지도모릅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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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들에게 받는 질문 중 약간 난감해지는 게 딱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람돌이씨는 집에 가면 뭐해?"란 질문이다.

 

이 질문이 나오는 건 항상 전날의 TV프로그램 얘기를 하는 중일 경우인데, 문제는 내가 TV를 보지 않는다는 거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같이 점심을 먹거나, 잠시 틈을 내어 수다를 떨 때 화제의 90% 이상은 항상 TV 드라마거나, 예능이거나, 뉴스거나, 스포츠거나 어쨌든 TV다. 역시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건 당연히 드라마고.....

매일 얼굴 보고 사는 사람들한테 매일 아 못봤어요. 안봤어요라고 하다보면

결국 저 질문 "넌 집에 가서 도대체 뭐하고 노냐"라는 질문이 나오는거다.

 

대답이야 "저는 집에 가면 쉬는 시간에 책봐요."인데........

문제는 이렇게 대답할 때 사람들의 대응이 참 묘하다는 거다.

"하루종일 일하고 피곤한데 집에 가서 책이 봐지니?", "tv드라마 그 재밌는걸 어떻게 안보니?" "너 참 훌륭하구나." "우와! 대단하다" 등등 여기까지는 그래도 긍정적인 반응이고, 가끔은 "집에 가서까지 책 읽으려면 머리 안아파?" 내지는 약간은 아니꼽다는 표정도 있다. 진짜로..... ㅎㅎ

 

여기서 긍정이든 부정이든 저  모든 반응들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퇴근 후 책을 읽는 행위가 휴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내가 tv드라마를 안 보는 것은 뭔가 대단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다.

나도 한 때는 tv드라마 빠순이였다. 한국 드라마 뿐만 아니라 일드와 미드까지 손을 뻗친 적도 있었다.

다만 어느 날 그 드라마와 예능 프로들이 그냥 재미없어진 것 뿐이다.

 tv가 시시해진 순간, 이전 tv와 책이 나눠가지던 나의 시간을 온통 책이 차지한 것 뿐이다.

 

 

 드라마보다 재밌는 책은 너무 많다.

책을 읽는 것은 특별히 고상한 행위가 아니며, 뭔가를 결심하고 각잡고 해야 하는 행위도 아니다.

공부가 아니라 그냥 재미있고 즐거워서 책을 읽는 일이 내게는 훨씬 많다.

책을 통해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도 좋고, 내 주변의 인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이야기도 좋고, 나에게 다른 생각과 시선을 알려주는 것도 신선해서 좋다.

재미없는 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앞부분 30여페이지만 보면 판가름 난다. 그냥 구석으로 슬쩍 밀쳐놓으면 된다.

아무도 나에게 그 책을 읽지 않는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최근에 읽은 책 중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잠을 못자고 새벽까지 나를 붙잡고 있었던 이야기들.

결국 이 글은 이 책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거였는데 하다보니 쓸데없는 서론만 잔뜩인 글이 되어 버렸다.

 

 

 

 

 

 

 

 

 

 

 

 

 

 

 

스티븐 킹의 신작 <인스티튜트 1, 2>

킹 아저씨는 정말 재미난 이야기꾼이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전 세계가 인정하는게 맞을 거다.

그렇지 않다면 이 아저씨가 이렇게 오랫동안 나오는 책마다 화제가 될 리가 없을테니까....

요 근래에는 킹아저씨의 책 중  탐정 빌호지스 시리즈와 느닷없는 휴먼 소설 <고도에서>를 봤는데, 약간은 아 이건 킹아저씨가 아니야?

왜  외도를 하세요. 제발 제일 잘하는걸 해주세요라고 빌기도 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책 <인스티튜트>가 나왔다.

기관 단체 학회의 뜻을 가지는 이 단어는 말 그대로 이 소설 속 악의 축인 어떤 기관을 가리킨다.

이 기관 또는 학회에서는 약간의 초능력을 가진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서 그들을 훈련시키고 정치적 내지는 모종의 목적을 위해 아이들을 이용한다. 주인공격인 루크라는 소년도 그렇게 납치된 아이들 중 하나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 뒤쪽이 미칠 정도로 궁금하다면 그 책은 훌륭하게 성공한 책이다.

 

도대체 루크를 잔혹하게 납치한 이 단체의 정체는 무엇이고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이들의 진짜 대단치 않은 초능력은 과연 어떻게 그들의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가?

(정말 대단치 않다. 주인공 루크의 초능력은 염동력인데 그 정도가 겨우 빈 피자팬을 떨어뜨릴 수 있을 만큼??? 피자가 있으면 안된다. 무거워서.... ^^ )

아이들이 수용소에서 다음으로 가는 저 뒷편의 시설에는 과연 무엇이 있으며 이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아 루크는 도대체 언제 탈출하며,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독자는 물론 주인공인 루크가 탈출할 것을 당연히 알고 있으며, 또 다른 등장인물인 팀과 만나 어떻게든 이 사건을 해결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이 소설에서 나오는 기본 전제가 허구임 또한 알고 있으며 말도 안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의 힘은 바로 그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게 보이는 것 아닌가?

이런 점에서 스티븐 킹은 가히 천재적이다.

 

책 전체에 비해 결말의 임팩트가 약간 떨어지는 감이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광기 또는 잘못된 신념이 습관적 관행이 되었을 때 그것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나름의 현실적인 결말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다.

너무 재밌는 책을 만나면.....

 

또 하나 요 며칠 째 나를 확 열광하게 한 책

 

 

 

 

 

 

 

 

 

 

 

 

 

 

 

 

 

<시녀 이야기>의 뒷편이 나와주었다. 무려 34년만에!!!!

34년이라니?

책 속의 시간도 겨우 15년 후인데, 실제 시간으로 34년 뒤라니.....

작가는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었던 걸까?

34년간 묵힌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즘만으로 후덜덜이라는 말이 안나올 수가 없다.

34년만의 후일담이라는 것만으로도 안 읽을 수가 없는 책이다.

그것도 <시녀이야기>의 후속편이잖아.

<시녀 이야기>를 읽은지 10년도 훨씬 넘은 것 같고, 책장에 있던 내 책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고.....

그럼에도 <시녀 이야기> 속 길리어드라는 가상국가의 충격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상태.

 

사실 나에게 <시녀 이야기>는 엄지 척 하고 싶은 최고의 작품은 아니었다.

옛 기억에 어렴풋하지만 뭔가 2% 부족한 듯한....

그래도 2%만 부족한게 어딘가? 98% 부족한 책도 천지에 널렸는데.

그렇게 <증언들>의 독서를 시작

근데 정말 <시녀 이야기>보다 훨씬 더더더 좋은거다.

작품은 15년후 각자 다른 입장의 3인 - 길리아드 공화국의 여성정책을 전담 집행하는 기구의 리디아 아주머니(여기서 아주머니는 계급), 길리아드에서 체제 순응적으로 귀한 꽃 - 그래봤자 아이를 낳을 도구에 불과하지만 -으로 자란 아그네스, 그리고 인접국가 캐나다에서 자라고 있는 소녀 데이지의 증언들을 모아놓았다.

 

이 중 가장 흥미롭고 공감이 가는 인물은 리디아 아주머니였다.

길리어드 공화국이 만들어질 때 지식인 여성들이 어떻게 공격당하는지, 여성들을 어떤 식으로 모든 정치 사회적 행위에서 배재시키고 말 잘듣는 고분고분한 도구, 꽃으로 만드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책의 서사는 리디아 아주머니의 서사만 따라가도 흥미진진하고 한편의 작품이 될 수 있을 정도이다.

 

아무것도 없는 하층민 가정에서 태어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판사까지 되었던 강한 자존감을 소유한 리디아라는 권력에 굴복하는 과정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책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자동적으로 나라면 어떨까를 생각하는데 절대로 무조건 무너질 수 밖에 없을거다 싶다.

예전에 본 책 중 어딘가에서 유대인 수용소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본 기억이 있는데, 그게 의외로 어떤 순간에도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자신을 가꾸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못먹고 굶으면 육체가 죽지만, 최소한의 물과 화장실 시설 등이 주어지지 않아 최소한의 위생이 유지될 수 없으면 인간의 자존감이 무너진다.

분비물의 냄새와 흔적을 온 몸에 묻히고 나와 타인이 모두 서로에게 악몽이 되는 순간 인간의 마음은 죽는 것이다.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길리아드의 남자들을 보면서 이 체제가 만들어진 과정, 이유, 그리고 몰락의 이유까지 이해가 갔었다.

그런 인간의 바닥까지 치고 갔던 리디아가 끝내 복수를 생각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나는 그것이 인간의 신비라고 항상 생각한다.

누구보다 비굴한 것이 인간이지만 누구보다 용감하고 고귀한 것이 또 인간이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의 밑바닥을 겪고도 일어설 수 있는 인간의 존재

<증언들>이라는 이 책을 한 순간도 손에서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강력한 리디아 아주머니라는 캐릭터의 힘이었다.

 

이 책에서는 또 한명의 인상적이 여성이 나온다.

그 여성은 단역이다.

단 한장면, 단 한줄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 여성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복수와 죽음을 택하는 여성이다.

스타티움에서 동료를 살해하라고 명령받았을 때 그 명령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으려면 어느만큼의 용기가 필요할까?

그런데 참 역사를 보면 늘 그런 사람들이 있어왔다.

그 아름다운 사람들이 세상을 그래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준다.

 

 

소설이 가지는 흡입력과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2권의 책으로

나는 역시 드라마보다는 책읽기가 더 즐겁다는 것을 한 번더 확신한다.

책 읽는게 뭔가 특별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소리높여 알리고 싶다.

드라마만큼 아니 드라마보다 더 재밌어서 보는게 책이라고....

책을 읽는다는건 뭔가 그리 거창한 행위도 아니고,

책을 읽는다고 아주 똑똑한 것도 아니며,

그저 아주 많이 즐거운 행위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내 주변에 나와 같이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좀 많아졌으면,

휴식시간에 드라마 얘기 말고 책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좀 더 많아졌으면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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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9-24 1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퇴근하면 티비 보는 대신 책을 보는데요, 책이 너무 재미있기도 하지만 책을 읽는 시간이 저에겐 휴식 시간이에요. 업무 모드, 근무 모드의 저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요. 그래서 저는 책읽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자기 전에 책을 한 장이라도 읽어야 뭔가 오늘 하루도 내가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썼구나, 하고 마음이 편안해져요. 제겐 휴식입니다.

증언들 갖춰놓기만 하고 안봤는데 얼른 보고 싶네요.
그리고 스티븐 킹이 이야기꾼이라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바람돌이 2020-09-24 16:03   좋아요 1 | URL
저도 마찬가지예요. 원래 좋아서 하는 일이 휴식이죠. 저는 좀 변화한거 같아요. 책이야 늘 좋아해서 옆에 두기는 하지만 열렬하게 좋아하는 것들은 조금씩 변화해왔어요. 영화에서 드라마로 여행으로..... 그리고 요즘에 이르러 그 열렬함이 책으로 좀 옮겨갔다는 느낌이 들어요. ㅎㅎ

증언들 빨리 보세요. 재밌어요. ㅎㅎ 제 생각에 다락방님도 리디아 아주머니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보실듯해요. ㅎㅎ

stella.K 2020-09-24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드라마든 책이든 좋아서 빠져 들면 좋은 거죠.
둘 다를 좋아하기는 힘들 거라고 봅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긴 하지만...
저는 젊었을 땐 드라마가 시큰둥했습니다.
근데 나이들기 시작하면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드라마도 괜찮은 게 많아요.
저는 드라마를 보느라 영화가 좀 멀어졌어요.
이러다 또 언젠가 책이 좋아지고, 영화가 좋아지는 날이 오겠죠.

저는 뭐하느라 킹 아저씨 책을 못 읽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킹 아저씨의 색다른 도전이 저는 좀 궁금하네요.
암튼 글을 너무 잘 쓰셔서 소개해 주신 책 다 읽어 보고 싶군요.
그러고 보면 바람님은 책을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 저는 요즘 ebs에서 하는 강연 프로 졸면서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어떤 강연은 내 분야가 아니라 좀 듣기 힘든 것도 있는데
자꾸 듣다 보면 어느 날 책 읽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머리에 들어 오든 안 들어 오든 그냥 듣고 있습니다.ㅋ

바람돌이 2020-09-24 16:24   좋아요 1 | URL
드라마 마지막 본게 김혜수 나오던 시그널이네요. ㅎㅎ
아 저 드라마 진짜 재밌었어요.
올 여름에는 네플릭스 드라마 막 추천받고 그랬는데, 한편을 보고 나도 뒷편이 안 궁금하더라구요. ㅎㅎ
그냥 이게 싸이클이 있는거 같아요. 돌고 도는게 인생이듯, 취향도 돌고도는듯... 아 유행가 가사같다. ㅎㅎ

제가 제일 못하는게 강연듣기예요. 귀가 모지리예요. ㅎㅎ
강연 듣고 있으면 최소 3분의 1은 못알아듣습니다. 딴 생각하다가요. ㅎㅎ

stella.K님도 언젠가 킹아저씨를 만나시기를요. 재밌어요. ㅎㅎ진짜루요. ㅎㅎ

파이버 2020-09-24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티비는 잘 안봅니다.... 집에 티비가 없기도 하지만 영상물은 정보가 귀와 눈으로 한꺼번에 들어오다 보니 피곤😪하더라구요ㅠㅠ

스티븐 킹은 영화로만 접했는데 항상 소재가 신선한 것 같아요 바람돌이님 리뷰 덕분에 언젠가 소설책도 도전해보고 싶어졌어요!

바람돌이 2020-09-24 22:49   좋아요 1 | URL
시실 우리들 대부분이 tv와 책을 다 즐길만큼 시간이 안되는게 문제인 것같아요. 전 나중에 퇴직하면 tv와 책을 다 껴안고 살지도 모르겠어요. ㅎㅎ

킹의 소설은 아 피곤하다 스트레스 쌓이네싶을 때 읽기 좋은 것 같아요. 읽다보면 책 말고는 다 잊어버리거든요. 그럼 내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도 시간이 좀 흘러 거리를 가지고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지요. 어쨌든 결론은 재밌다입니다. ^^

문화향유자 2021-06-28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 전 TV를 전혀 안 보는건 아니고, 본방사수는 안합니다. 보고 싶은거는 인터넷에서 다운을 받아서 봐요. 그게 항상 보는게 정해져 있어요. 영화는 많이 보지만 드라마는 잘 안 봅니다. (2시간이면 끝날이야기를 쭉쭉 늘려서 짧게는 10회, 길면 20회 넘게 봐야하는 시간이 아까움)
저도 TV프로그램 잘 모르고, 드라마도 잘 모르니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많이 당했어요. 안보는게 그렇게 이상한가? 모르는게 그렇게 이상한가? 그것말고도 할게 많은데, TV보는거 말고는 다 쓸데없는 일로 보이는거 같아서 의아하더라구요.

바람돌이 2021-06-29 09:15   좋아요 0 | URL
가끔은 tv를 안봐서 내가 부끄러워해야 하나? 이런 느낌 있죠. ㅎㅎ 근데 또 알고보면 그 사람들 대부분이 저한테 별 관심없더라구요. 그래서 이제는 그냥 가만 있습니다. ^^ 책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는 모임이 딱히 많지 않다는게 가끔 좀 외롭기는 해요. 그래서 여기 서재에서 계속 놀고있는듯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