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문재인정부를 포함해서 남북 협상이 그렇게 많이 이루어졌지만 그 속에서 재일조선인 문제를 제대로 논의해본 적은 한 차례도 없습니다. 이제라도 바뀌어야 합니다. 재일조선인들에게는한국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언어 능력만이 아니라 양국의문화를 직접 체험하면서 국경과 민족의 고정된 정체성을 넘어 다양한 자아실현이 가능한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남북한이 통일되고 식민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초월한 새로운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가 실현된다면, 한국 또는북한 또는 일본의 정체성을 강요받아왔던 재일조선인은 한 국가나민족의 정체성이 아닌 아시안(Asian)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을것입니다. 그때야말로 재일조선인의 불안정했던 법적 지위와 정체성은 자연스럽게 해결되겠지요.
- P219

결국 1960년 6월 19일 자정이 되어 안보조약 개정안이 자동적으로 성립됨으로써 안보반대 사회운동 진영이패배하게 됩니다. 격렬했던 반대운동은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지요. 한국에서는 4·19 혁명이 일어났던 바로 그 무렵입니다.
한국이었다면 개정안이 강행되더라도 곧장 폐기하기 위한 운동을 조직하고 계속 이어갔을 것입니다. 정권을 바꿔서라도 목표를이루기 위해 투쟁했겠지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일단 법이 제정되어 실행되자 완전히 패배했다고 생각하고 포기해버렸습니다. 일본사회운동의 특징일 수도 있는데, 1960년부터 거듭해서 이런 경험을 하며 점점 패배주의가 쌓였고 사회운동 자체에 대한 회의감도깊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 P241

1960년 안보투쟁 이래 일본의 사회운동이 거듭 패배하자 등장한것이 ‘적군파(赤軍派)‘ 입니다. 적군파는 1969년 분트의 극좌 세력이독립하여 결정한 조직입니다. 그들은 혁명에 군대가 반드시 필요하며, 오로지 물리적 폭력으로써만 혁명이 완수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일본에서는 혁명이 불가능하고, 일본을 혁명사령부로 삼되 전 세계의 다른 혁명주의와 연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 P246

1970년대 일본사회운동의 몰락은 이후 커다란 구조적 문제를 남겼습니다. 우선 운동세력 내에서 연대에 대한 불신이 강해졌습니다. 전학련, 전공투, 적군파 등 큰 조직에서 발생한 모순과 폐해를목격한 뒤로 수평적 연대를 하지 않는 경향이 생겨났지요. 지금도일본 공산당과 사회당은 절대 손을 잡지 않고, 시민운동단체들도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사회운동 조직은 갈수록 작아질 뿐 크게통합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사회운동이 권위주의적 체제 해체나 안보조약 폐지같은 큰 주제를 다루기보다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세울 수 있는과제들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컨대 여성운동, 원전 반대, 군사기지 반대, 장애인 해방, 소수민족 차별 해소 등으로 사회운동이세밀하게 분화되었지요.  - P248

오늘날 일본 시민운동은 자발적 집합 · 자발적 해체를 전제로 삼고 있습니다. 강령이 없거나 있어도 아주 자유롭지요. 시민 개개인이 반전, 환경보호, 장애인 평등 등 자신이 공감하는 목표를 좇는조직에 몸을 담고 스스로 조사와 연구를 합니다. 시민이 자기 돈을들여서 운동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목표를 이루든지 해서의미가 없어지면 미련 없이 조직을 해체합니다. 나중에 필요해지면 다시금 뭉치기도 하지요. 작은 규모의 조직들이 끊임없이 결성과 해체를 반복하는 것은 일본 시민운동의 중요한 특징으로 베평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P253

양기호 교수는 일본 평화주의의 광범위한 잠재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일본의 평화주의가 갖고 있는 명확한 한계도 지적했습니다. 자신들이 아시아에 저지른짓에 대해 속죄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일본은 ‘일국 평화주의‘에 머무를 뿐이라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P259

만약 한국이 계속해서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전면에내세운다면 일본 시민사회는 한국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극우주의에 전부 포섭될 것입니다. 그런 흐름은 일본의 헌법개정 및 동아시아 평화의 위협으로 이어지겠지요.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은 갈등과 혐오가 필요한 시대가 아닙니다. 한국과 공통점이 많은 덕에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일본을 직시하고 배울 건 배우면서 연대해야 합니다. 그랬을 때 비로소 우리는진정한 과거사 청산은 물론이고 새로운 동아시아 평화체제를 향해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P2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