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익을 공부할 때는 두려움 같은 게 느껴집니다. 1800년대를 보면 한국은 전혀 근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조슈나 사쓰마라는, 우리로 치면 포항이나 영덕 같은 곳에서 서른 살 남짓한 사람들이 전 세계를 내다보며 전략을 세우고 일본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시아는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들이 밀고 나간 궤적을 보면 정말 치열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국의 우익에는 없는 점이지요. 더 중요한 건 일본의 우익이 보여주는 희생과 헌신의 전통입니다. 역시 한국 우익에는 없는전통입니다. - P94

기시는 사실상 만주국을 설계한 사람입니다. 이런 만주 경험은만주군 장교로 근무한 박정희와 잘 맞아떨어졌지요. 사실 유신 시대의 국방국가 한국은 만주국 모델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생겨난 한일 간의 유착관계에는 기시와 박정희가얽힌 만주국 인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습니다.
- P108

박정희가 1945년 이전에 물리적으로 한 친일은 그렇게 심하지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박정희는 친일파가 되기 위해 긴 기간준비운동만 한 셈입니다. 대구사범학교부터 일본 육사까지 문무를겸비해 제국에서 출세하기 위한 발을 내디디자마자 일본제국이 패망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박정희를 ‘원조 친일파‘라고 하는 이유는 집권한 이후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대한민국을 일본 극우파가생각했던 방향으로 끌고 갔기 때문입니다. 바로 일본이 만주국을경영했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 과정에서 박정희의 사상적 지도자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세지마 류조고, 그 배경에 황도파의 사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P112

해방됐을 때열다섯 정도였던 군국소년 중 많은 수가 혼동기에 청년단원이 되었습니다. 서북청년단 같은 단체가 성행했던 이유입니다. 또 이들은 스무살 무렵에 병사가 되어 한국전쟁을 치렀습니다. 정작 일본의 군국소년들은 군대가 해산돼 전쟁을 치르지 않았죠.
군국소년이었다가 청년단을 거쳐서 군인으로 한국전쟁을 치른병사들은 전쟁이 끝난 후 어떻게 됐을까요? 조봉암이 진보당사건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자 반공청년들이 법원에 쳐들어와서 빨갱이 판사를 타도하자고 외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반공청년 세대가 바로 일제가 키워낸 군국소년들입니다. - P138

해방된 지 벌써 75년인데 아직도 친일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네, 안타깝지만 아직도 친일 타령해야 합니다. 『친일인명사전 이 우여곡절 끝에 2009년, 그러니까 해방되고 64년이 지나서야나왔습니다. 발간 당시 사전에 수록된 인물 4,500여 명이 거의 다죽고 딱 두 명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저항이 심했지요. 친일파 정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일파 정리는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지금을 정리하면 친일파는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입니다. 중요한 건현실입니다. 오늘 친일 문제의 싸움터는 1920년대, 30년대, 40년대의 역사연구가 아닙니다. 친일파를 누가 이어받았는가? 그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가? 그 힘을 깨버리는 게 친일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연구는 그다음에 숨 돌리면서 하면 되지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주전장‘은 여기, 지금 이 순간입니다.
- P142


많은 이들이 조선학교가 정규학교로 인정을 받으면 일본사회의전반적인 인권 수준이 향상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일본의재일외국인 관련 정책이 대부분 재일조선인을 기준으로 세워지기때문입니다. 조선학교를 지원하지 않기 위해 모든 외국인 학교를정규학교로 인정하지 않듯이, 일본은 재일조선인을 배제하기 위해국제인권법이나 아동권리조약 같은 것들을 위반하는 일이 일어나도 방치하고 있습니다. 1992년까지 일본에 영주하는 외국인이 지문을 등록해야 했던 것은 대표적인 예이지요. 재일조선인 때문에모든 외국인에게 지문 등록을 강요했고, 국제적인 비난을 받으면서도 수십 년 동안 제도를 폐지하지 않았습니다.
- P199

재일조선인들은 해방 이래 지금까지 줄곧 똑같은 질문을 받아왔습니다. "당신의 정체성은 일본입니까, 남한입니까, 북한입니까?"
예전 한 재일조선인은 이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정체성이 그렇게나 중요합니까? 왜 정체성에 그 정도로 연연합니까? 밤하늘에는 반짝이는 별이 수없이 있는데, 어떤 별은 한국 것이고, 어떤 별은 일본 것입니까?" 재일조선인 개개인이 반짝이는 별들처럼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갔으면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이 일화는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에만 관심을 두는 편협한 시각에일침을 가합니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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