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 - 파국의 시대를 건너는 필사적 SF 읽기
강양구 지음 / 북트리거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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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망가져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아름답다. SF가 그리는 디스토피아는 그런 지구를 구하기 위한 노력들이다. SF 속 세계와 오늘 날 과학계를 대비하며 우리가 맞이할 세상에 대해 해야 할 고민들을 쉽게 풀어주어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읽고 싶은 SF소설들이 한 가득 인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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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5-09-20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처음 보는 책이지만 읽어야 할 소설 그것도 sf 소설책들이 한 가득이라니…위험한? 책이로군요. 정말 책장이 남아나질 않겠어요.ㅋㅋㅋ
sf 소설 입문서 같은 책이겠다란 생각이 드네요. 저에게도 도움 많이 되겠어요.^^

단발머리 2025-09-21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바람돌이님은 이제 덤으로 얻게 된 sf 소설들과의 뜨거운 한 판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름답지 않은 삶도 명작이 된다 - 이주헌 미술 에세이
이주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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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을 다니다 보면 가끔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마음에 확 들어오는 작품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작품


  

             <열린 창>, 피에르 보나르, 1921년작 


  그림을 보는 순간 창을 열고 싶어지다가 아 맞아 우리 집 창에서는 저런 나무가 안 보여하게 되고, 어딘가 시골 가서 저렇게 빛이 들어오는 작은 방에서 오른쪽 귀퉁이의 여인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낮잠을 자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그러다 눈이 떠 지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창으로 나와 바깥의 신선한 공기와 바람을 맞는 그런 순간을 꿈꾸게 한다. 그래도 이 그림이 왜 좋아라고 물으면 아마도 나는 "그냥... 따뜻한 햇빛이 느껴져서..."라고만 말할 듯하다. 


  이 그림에 대해 작가인 이주헌씨는 독자에게 이렇게 설명해준다.


 일상의 평범한 공간을 그린 것이지만, 찬란한 색채가 빛을 발하면 평범함이 비범함이 된다. 비범함은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특별한 데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무관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우리 주변에도 비범함은 실존한다. 보나르는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예술로 그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 291쪽


  실내의 나머지는 모두 그림자로 덮여 있다. 그럼에도 방 안은 화사하고 싱그러운 색채로 가득하다. 그것은 햇빛이 워낙 강렬한 탓에 발생한 반사광이 실내의 음영 안에서 미묘하면서도 풍부한 색의 잔치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 293쪽


   이렇게 설명을 읽고 나면 아 이 그림이 왜 이렇게 내 맘속으로 들어왔는지가 해명 되는 기분이다. 색채 때문이었구나. 일상의 풍경에서도 이렇게 특별함을 찾을 수 있구나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다시 창을 열고 우리집 창으로 넘어오는 빛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창밖으로 보이는 시내와 나무들의 냄새를 다시 한 번 맡게 된다.


  17세기 생동하는 미소를 그린 프란스 할스의 그림은 언제 봐도 유쾌한데, 사실은 이 시대에 이렇게 웃는 얼굴을 그리는게 쉽지 않다는 설명을 들으면 프란스 할스라는 작가가 더 좋아지게 된다.



    <젊은 여인>, 프란스 할스, 1625~1630년 작


  사진이 없던 시대에 저렇게 웃는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는 남다른 속필이 필요했다고 한다. 증명사진 찍을 때 우리가 얼마나 빨리 표정이 굳어지는 지를 상상하면 이런 미소를 그려내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을거 같다. 이 시대의 초상화가 대부분 근엄한 표정인건 사람들이 다 근엄해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화가가 속필로 그 웃는 표정을 빨리 그려내는게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프란스 할스의 그림을 보면 미소와 호탕한 웃음과 수줍은 웃음과 같은 모든 웃음이 드러난다. 작가는 이것이 가능한 이유를 프란스 할스의 화법으로 설명해준다.


근대적 감각을 자랑하는 화가답게 할스는 매우 가볍고 빠른, 자유로운 붓놀림을 구사했다. 이전의 화가들은 대상을 핍진하게 재현하기 위해 대체로 붓을 비비듯이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하면 대상의 외양을 매끄럽게 표현할 수 있지만, 붓을 자유로이 놀릴 때 나타나는 회화적인 맛과 에너지 그리고 유화물감 고유의 질감은 크게 억제된다.   -73쪽


  이런 설명을 들으면 대상의 표정을 빨리 잡아채기 위해 쉴 새없이 빠른 속도로 작업하는 화가의 모습이 눈앞에 와 닿는 듯한다. 또한 17세기의 화가가 귀족이나 부자의 초상이 아니라 평민인듯한 여성의 얼굴의 건강한 아름다움을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에 감동하게도 된다. 


  때로는 카라바조 같은 익숙한 화가의 그림의 디테일을 설명해주며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보여주기도 한다.



     <성모 마리아의 죽음>, 카라바조, 1604~1606년 작


  강렬한 빛의 대비를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나같은 독자에게는 이 그림에서도 역시 강렬한 어둠과 스포트라이트처럼 밝혀진 인물에 집중하고 그들의 비통한 표정에 집중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다시 작가는 카라바조의 빛과 그림자 뿐만이 아니라 당대의 전통이나 상식을 깨는 카라바조를 소환한다. 그림 속 성모의 몸을 자세히 보면 배가 꽤 부풀어있고, 발목도 부어있다.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성모 마리아의 죽음을 일반적인 시체의 부패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으로 그리다니.... 이야말로 신성모독이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성모 마리아의 모델이 창부다. 물에 빠져 죽은 여인을 보고 그린 것이다 등등...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성모 역시 인간인 이상 인간의 실존을 벗어날 수 없다는 자신의 신념을 그림에 표현하고야 마는 똘끼! 그래서 그 수많은 화가들 속에서도 그리고 수많은 기행에도 불구하고(기행 중에는 살인까지 있다.) 카라바조는 위대한 화가로 남는 것이다.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그리고 내가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지도 다양하다. 유명하지만 마음에 안 차는 그림도 많다. 하지만 좋은 안내자를 만난다면 그림을 지식과 감정과 화가의 마음을 같이 느끼고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주헌씨의 글을 오랫 만에 읽었는데 여전히 마음을 다해 글을 쓰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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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5-09-19 0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에르 보나르~~저도 참 좋아하는 화가요. 어떤 경계를 허물어 보려했던 화가라고 하죠. 나비파였나요...저도 저 창문 밖으로 좀 내다보고 싶네요~~보나르가 동양적 감성이 있어서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해요

바람돌이 2025-09-19 09:14   좋아요 0 | URL
나비파 맞아요. 색채로 자신을 표현하는 시작이 아니었을까싶어요. 색감이 좋아서 저는 보나르 그림이 좋더라구요. ^^

yamoo 2025-09-19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나르 하면 후기인상파 화가로 기억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보나르 화풍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최고로 좋아하는 인상주의화가들 역시 제 그림 취향은 아니에요..ㅎㅎ 하지만 보나르 그림은 보자마자 누구 그림인지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죠. 여튼 저는 나비파 그림들하고 뭔가 불협화음이 있습니다. ㅎㅎ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몰라요..ㅋㅋ

근데 이주헌 씨는 정말 다작이네요. 거의 해마다 책을 내는 거 같아요. 와~~ 진짜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바람돌이 2025-09-19 09:17   좋아요 0 | URL
그림 취향은 다양하니까요. 저는 제가 인상파 그림 별로 안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느낌이 완전히 다른 그림들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인상파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버려야겠다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야무님은 화가시니까 좀 더 예리하게 보는 부분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주한 작가는 워낙에 다작이라 한동안 안 읽었었는데요. 오랫만에 새로 나온 책을 읽었더니 여전히 좋네요.

페넬로페 2025-09-19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요즘 미술에 관련된 책 많이 읽으시네요. 올려주신 책들 다 찜해놓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저도 미술관에는 자주 가는 편인데
그냥 저는 저의 직관과 느낌에 좋은 작품이 좋더라고요.
전시회장에서 이유는 모르지만 어떤 작품이 유독 마음을 끌게 하는 것이 있더라고요.
그럼 그냥 그 그림앞에 오랫동안 서 있어요.
저는 인상파 그림 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약간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오르세, 오랑주리전도 예매해 뒀습니다^^

바람돌이 2025-09-19 12:13   좋아요 1 | URL
저도 미술관에 가면 딱 그냥 직관적으로 좋은 작품이 있더라구요. 그런 작품을 발견한 날은 기분이 좋아요. 근데 이 걸작이라는것들을 진짜 배터지게 한꺼번에 보니까 아 거장은 왜 거장인지가 살짝 보이더라구요. 한 작품이 아니라 전체 작품을 관통하는 힘이 있달까? 서울에서 오르세전을 하는군요. 이번 전시는 르느와르와 세잔이 중심인거 같던데 저 기간 안에 서울 가서 볼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좋아하는 인상파 전시니 즐거운 시간 되실거예요

꼬마요정 2025-09-19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젊은 여인의 표정이 정말 좋네요. 말씀처럼 저런 표정 어떻게 저렇게 잘 포착했는지 화가의 능력이 대단합니다. ㅎㅎㅎ 저는 그림을 잘 몰라서 그냥 보고 아, 좋구나 이런 게 다인데 빛이나 색채나 배경 묘사나 역사적 사실들을 잘 버무려서 설명하시는 분들 정말 멋집니다. ㅎㅎㅎ

바람돌이 2025-09-19 12:14   좋아요 1 | URL
저도 잘 모르는데 이렇게 설명을 듣고나면 또 보이는 부분이 있네요. 우리는 비평가가 아니니까 약간의 지식과 아름다운걸 즐기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책읽는나무 2025-09-20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림을 봐도 잘 모르겠다가도 이런 전문가의 해설서를 읽어보거나 듣게 되면 그림이 다시 보이게 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근데 또 그 분의 말씀에만 빠져 보이는 부분만 보고 지나칠 때도 있으니…그림이나 어떤 작품을 감상하는 게 참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그럼에도 자꾸 들여다 보게 되고, 찾아가게 하는 것은 예술가의 힘이 크겠죠. 그리고 또 궁금해서 찾아보게 되는 해설서들.ㅋㅋㅋ
바람돌이 님의 제목이 딱입니다.
이 그림이 왜 좋을까에 대한 답을 찾을지도.^^
미술관련 역사관련 책들의 안내자는 바람돌이 님이 으뜸이십니다.^^

단발머리 2025-09-21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워낙 그림을 모르고 또 미술관 가도 입구 근처의 그림 5-6개 지나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끝까지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인데요.
바람돌이님 설명 읽으면서 그림 보니까 와~~~ 그림이 다르게 보이구요. 아, 이런 게 이런 거구나. 막 감탄하면서 바람돌이님 글을 읽게 됩니다.
젊은 여인의 그림이 참 좋네요. 잘 그리는 사람들이 그리는 거니깐 잘 그리는 거지, 라고 생각했는데, ‘자유로운 붓놀림‘에 대해서도 알게 되구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페이퍼였습니다.

이 책은 제목을 참 잘 정한 것 같아요. 그게 작가의 역량이고, 재능이겠죠. <아름답지 않은 삶도 명작이 된다>
 
초대받지 않은 형제들
아민 말루프 지음, 장소미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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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설정과 전개로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비판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싶었던듯... 그리스 이래로 줄기차게 제기되어진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인간성을 회복한다면 우리 인류는 멸망하지 않을지도 몰라라고 얘기하는 듯한데 글쎄다. 구멍이 좀 여기저기 뚤린 듯해 호불호가 갈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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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18 2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민 말루프 작가님 역사소설 더 출판해주세요라고 막 응원 중.... 현대 배경의 작품보다는 앞서 읽었던 역사소설들이 훨씬 좋았음.
 
동방의 항구들 동방문학총서 1
아민 말루프 지음, 박선주 옮김 / 훗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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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민 말루프의 열혈 독자가 된 나.

하지만 모든 작품들이 걸작일리는 없으니 이 책은 평작이구나 하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앞서 읽었던 3개의 책, 그 중에서도 특히 <타니오스의 바위>의 감동이 격렬했으므로 뭐 이런 작품도 있을 수 있지 했던 거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수많은 엄청난 사건들이 등장한다. 오스만 제국의 몰락, 튀르키예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제2차 세계대전, 중동 전쟁 등등. 이 중 어느 하나도 끔찍하지 않은 사건이 없고, 이 시대와 사건의 한복판을 통과하는 등장인물들의 삶을 기록한다면 적어도 600여 페이지는 넘는 대작이 되어야 하는데 왜 이 책은 이토록 많은 생략으로 불과 300페이지의 얇은 책이 되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그것도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면 200페이지의 책으로 나오는 게 맞을 정도로 책의 여백과 간격이 널널하다)


 시대적 배경만 흘려버리는 것도 아니다. 오스만 제국의 사랑 받는 공주였던 할머니의 삶의 단절, 오스만의 왕족인 아버지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의 와중에 아르메니아인 여성과 결혼하고 주인공이 탄생하는 것도 심상치 않은 사건이다. 중동 전쟁이 예비되어 지는 와중에 유대인 여성과 결혼하는 주인공 오시안. 그리고 2차 대전 중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하는 주인공의 행적들. 어느 것 하나 평범한 삶도 평범한 관계도 없는데 이 책 속에서는 그저 흘러간다. 그 모든 과정이 마치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는 듯,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늘 그렇게 다가오고 물러간다고 얘기하는 듯 어마어마한 사건과 관계들이 그렇게 흘러간다. 


 심지어 주인공 오시안은 사랑하는 아내와 얼굴도 보지 못한 딸과 30년이나 만나지 못하고 헤어져 살아야 했다. 그들이 떨어져 있던 거리는 불과 150km. 자동차로 간다면 겨우 2시간이면 닿을 거리에서 그들은 만나지 못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중동전쟁 때문인가 싶지만 그 사이에는 또한 다른 가족사가 얽혀있고, 주인공 오시안의 개인적 가족사적 불행이 얽혀있다. 


  이들의 헤어짐은 수긍이 가지만 그 헤어짐이 30년이었다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다른 소설이었다면 나는 '아 이 소설은 개연성이 너무 떨어져. 뭐 이래'라며 불 평불만을 늘어놓고 책을 던졌을 거 같다. 그러나 역시 아민 말루프는 다르다. 이야기 하지 않아도 그냥 이해가 되어 버린다. 


  이 소설은 끊임없는 생략과 흘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 어쩌면 역사의 행간과 여백을 그 생략으로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역사를 공부한다고 해서 우리가 모든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 기록되지 못하는 삶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그 역사적 사실로 그 사이에 있을 무수한 여백과 행간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행동의 많은 의미들이 바로 그 여백과 행간에 있다. 작가가 하나 하나 친절하게 짚어주는 데 익숙했기 때문에 이 책을 허술하다 여겼던 거 같다. 하지만 진실은 그 여백에 있음을 더 없이 작가는 끊임없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야기는 마지막 한 장면을 준비한다. 너무나 고요한 폭주, 여태까지의 모든 생략과 여백이 마지막 장면에서 꽉 차 오른다. 그 둘의 일생에도 못 다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나 작가가 보여주는 단 한번의 포옹으로 그 모든 것이 이해되어 버린다. 한 사람의 일생이 또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말로는 절대 다할 수 없음을, 그렇기에 결국 한 번의 포옹으로 그 모든 말을 묻는다. 


  결국 사랑이었다. 그들이 생애를 지탱해 왔고, 앞으로 또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면 뭐겠는가?

영화의 엔딩 장면처럼 그려지는 올해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 장면. 그 마지막 포옹에 나는 살짝 눈물이 났다. (왜 그런지는 스포일러가 될거라서 생략이지만 가을이 시작되는 이 때 누구든 이 소설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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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9-16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아민 말루프 전작주의자가 되셨군요. ㅎㅎ

바람돌이 2025-09-16 22:58   좋아요 0 | URL
지금 마지막 초대받지 못한 형제들 읽고 있는데요. 다른 책도 많이 번역 좀 되면 좋겠어요. 올해 레오 아프리카누스가 나왔으니까 앞으로 계속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단발머리 2025-09-16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인데 왜 30년 동안 헤어져 있어야 했나요? 스포하지 않으면서 이 소설의 감동 포인트를 꼭꼭 찍어주시니 궁금함만 가득 차오릅니다.

바람돌이 2025-09-16 23:00   좋아요 0 | URL
보셔야 합니다. 궁금하면 읽으라고 일부러 이렇게 썼습니다. 진짜 권하고 싶은 책이라서요. 단발머리님 이 책 로맨스예요. 만약 읽으시면 저한테 사기쳤다고 막 화날텐데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 수긍이 막 된다니까요. ㅎㅎ

다락방 2025-09-16 2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고요한 폭주‘ 라니요. 너무 근사한 문장이네요. 그 고요한 폭주가 너무 궁금해서 이 책을 읽어야겠습니다!!

바람돌이 2025-09-17 11:52   좋아요 0 | URL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이 그랬습니다. 무채색이던 세상이 갑자기 변하는 기분? 저도 몰랐는데 제가 로맨티스트더군요. ㅎㅎ

페넬로페 2025-09-17 0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조건 <아민 말루프>, 읽겠습니다.

바람돌이 2025-09-17 11:52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께는 타니오스의 바위나 레오 아프리카누스를 먼저 읽으시라고 권하고싶습니다. ^^

blueyonder 2025-09-17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찾아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시네요. ^^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5-09-17 11:53   좋아요 1 | URL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아주 좋은 선택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책읽는나무 2025-09-17 2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을이 시작되려고 할 때 마지막 포옹에 살짝 눈물이 날 정도의 소설이라구요?😮
아민 말루프..✍🏻
메모해뒀어요.^^

바람돌이 2025-09-18 20:21   좋아요 1 | URL
마지막 장면만 러브스토리인 소설도 로맨스라 말할 수 있을까요? ㅎㅎ 근데 저에게는 마지막 장면이 너무 좋았습니다. 아 별로야 하던 책이 갑자기 너무 좋아로 바뀌는 신기한 경험요. ㅎㅎ 하지만 아민 말루프의 다른 책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좋았습니다.

새파랑 2025-09-18 1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국 사랑! 가을이니까 읽어보고 싶네요~! 표지에서 좀 오랜된 느낌이 듭니다만...우주점에 있나 찾아봐야 겠습니다~!!

바람돌이 2025-09-18 20:22   좋아요 1 | URL
오래된 책이지만 아직 품절되지 않았어요. 저도 책 표지가 너무 오래된 느낌이고 촌스러워서 살까 말까 막 고민했었는데 새책이 생각보다 깨끗한 상태고요. 사진보다는 저 표지 꽤 괜찮습니다. 사진발 안 받는 표지였어요. ㅎㅎ-
 















 

사이먼에 이어 애덤 이야기로 갑니다. ^^ 

앞선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아름다운 세상이여는 저에게는 아주 슬픈 책이었습니다. 로맨스가 로맨스로 안 느껴지고, 쯧쯧 어린 것들이 뭘 몰라서 고생하는구나 딱 이 모드로 읽었으니까요? 하지만 제게도 로맨스를 로맨스로 읽을 수 있는 로맨틱한 감정이 쬐끔은 남아 있었습니다. <사랑의 가설>은 로맨스로 읽혔다니까요? 물론 쬐끔입니다. 이유는 첫째는 제가 늙어서이고, 둘째는 제가 로맨스소설을 예전에 너무 많이 봐서 그 문법을 너무 잘 안다는 거고요. 뭐든지 처음 볼 때 제일 맘이 설레는 법이니까요. 그래도 오랫만에 그래 그래 애덤, 너 정도는 돼야 로맨스의 주인공이지 하면서 기분은 좋았습니다. 


  애덤은 전형적인 로맨스의 주인공입니다. 일단 잘생겼고, 똑똑하고, 재벌까진 아니지만 꽤 부자고, 그리고 숨겨진 근육이 탄탄한 몸짱이고요. 그리고 성격인데 원래 로맨스 소설 주인공은 친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친절과 관심은 여주인공에게 몰빵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중요한것, 여자 주인공을 향한 일편단심과 배려와 그리고 섹스를 잘해야 합니다. 와우! 애덤은 모든 걸 다 갖췄어요. 

심지어 올리브에 대한 가슴앓이를 할 때 이런 혼잣말을 합니다.


올리브를 자기 곁에 두기 위해서 하고 싶었던 말이 "내가 뭐 해줄만한 일이 없을까? 돌아가면 내가 같이 장 보러 가주고, 냉장고도 꽉 채워줄게. 새 자전거 사 주고, 질 좋은 시약도 한 상자 사주고, 올리브가 그렇게 좋아하는 역겨운 음료도 사줄게. 올리브를 울린 사람들 다 죽여줄게. 뭐 필요한 거 있어? 말만 해. 다 줄게. 내가 가진 것 다 가져."(411쪽)


  평범한 로맨스 소설 주인공이었던 애덤이 이 대사 때문에 제 마음으로 들어왔습니다.하늘의 별이고 달이고 다 필요없습니다. 그저 내가 필요한거 장 봐주고, 냉장고 채워주고, 요리도 청소도 해주면서 돈까지 벌어다 주는 남자 환상적으로 좋고요. 네 좋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없는거 아시죠? 돈도많이 벌어주고 살림도 알뜰하게 살아주고, 아이들 다 착하고 똑똑하게 키워주고, 언제나 상냥하고, 예쁘고 몸매 좋고 섹스도 잘하는 여자 현실에 없는거하고 똑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로맨스 소설을 봅니다. 연예인 나오는 드라마 보면서 힐링하는거랑 같으니까요. 단 이걸 현실이라고 착각하면 큰일 납니다. 주변의 모든 남자들이 오징어가 됩니다.(사실 못 생긴 사람을 왜 오징어라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좀 불만입니다. 오징어가 얼마나 맛있는데 말이죠. 게다가 오징어가 고등어나 조기보다 못생겼다는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 있나요?)


  현실에서는 보통 우리는 그 많은 조건 들 중에서 1-2개가 맘에 들어와 연애를 하지요.

  잘생겼거나(예쁘거나), 돈이 많거나, 몸짱이거나, 성격이 매력적이거나, 세계를 구할 열정을 가졌거나, 아니면 대화가 통하거나... 기준은 다 다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 늘 같은 것도 아니지요. 심지어 제가 지금 남편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기준은 제 아버지와 한 군데도 닮은 점이 없을 것이었습니다.(앞의 연애가 실패한건 사귀다보니 제 아버지와 비슷한 점이 보여서 정 떨어졌달까? ) 오래 전 제 주변에서는 서울대 나온 의사에 나쁘지 않은 외모의 남자가 여자는 무조건 얼굴이 예뻐야한다라는 조건만 보고 결혼하는 것도 봤습니다. (그 여자분의 다른 조건이 좀 심각했어요. 제일 문제는 성깔이 장난 아니라는, 예의라곤 전혀 없는 성격이었다죠.) 결국 우리가 아무리 로맨스 소설을 많이 보고 이상형의 상대를 꿈꾸어도 현실은 제일 중요한 것 하나가 마음으로 들어오면 그냥 끝이니까요?


  그래서 현실이 로맨스 소설과 달라도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다만 힐링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 힐링이 로맨스 소설이고, 남자들의 경우엔 무협소설같은것 정도가 아닐까요? 남자들은 연애로 힐링하기 보다는 절대강자로 무림을 평정하는 것에서 힐링을 하는 것 같으니까요? 뭐 그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이들면서 로맨스 세포가 죽고, 호르몬의 변화가 와서 그런지 저도 요즘 로맨스 소설보다는 무협소설로 더 힐링이 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매일 웹 무협소설 <화산귀환>과 <절대회귀>연재가 올라오는 띵똥소리가 제 힐링이 돼버렸어요. ㅠ.ㅠ

그렇다고 애덤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ㅠ.ㅠ

그리고 사실 이 책으로 굳이 뭔가를 쓰고 싶지는 않았는데 단발머리님이 우리 애덤을 너무 좋아하셔서 의리로 쓰는 글이 되어버렸네요. 그래서 허접하고도 허접한 글이 되어 버렸습니다. 단발머리님 미안해요. 

저는 애덤보다는 청명(화산귀환)이랑 검무극(절대회귀)이 더 좋아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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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9-16 08: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크하하하하하핳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얼마나 크게 웃었는지 제발 알라딘 세상 친구들과 이웃님들 모두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슬쩍 보았더니 이 책 <사랑의 가설>로 글을 18개를 썼더라구요. 그러니깐, 왜냐고요. 왜냐면ㅋㅋㅋㅋㅋㅋㅋ저는 로맨스 소설을 읽지 않았습니다. 읽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현실에서 이런 남자들 만나기 어렵죠? 저는 현실에서도 책에서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나만 봐왔던 사람이 티비 속의 현빈이고, 조인성이었으며.... 그들은 나와 같은 한국인이고 현실적이고 소탈해서 제게는 환상의 여지가 적었습니다. 광화문 교보문고의 외서 코너에서 널부러져있던 애덤을 처음 만났습니다. 표지에 반해 책을 들고 왔고요. 번역본 없는데 이해 안 되는데 꾸역꾸역, 저는 애덤과 올리브를 만났습니다. 그러니깐, 애덤이 저한테는 첫사랑인 것이며...

저의 애덤 애정 포인트는 당근 ㅋㅋㅋㅋㅋ 당근 일편단심입니다. 로맨스 소설의 저자가 대부분이 여성이고 독자는 거의 다 여성인 상황에서 남주들은 ‘여성 독자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죠. 여주에게 진심이고, 진지하고요. 제가 처음 이 소설을 읽고 알라딘 이웃님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이웃님 중 몇 분들이 이 로맨스의 설정, 즉 교수인 애덤과 대학원생인 올리브의 관계가 미국의 현실에서는 법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심각하게 금지되는 관계임을 알려주셨습니다. 대부분 비댓으로요 ㅋㅋㅋㅋㅋ 저는 저 나름으로 애덤과 올리브를 방어하기는 했는데, 이 관계의 묘한 위험성에 대해서는 저도 알고는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음을 굳이, 여기 바람돌이님 서재에서 밝혀 둡니다.

제가 샐리 루니 책에 떠오르는 또 하나의 감상이 있었는데, 머리 속으로만 대충 얼개를 잡아두고ㅋㅋㅋㅋㅋ 쓸지 안 쓸지 모르지만, 머리 속에서만 빙빙 맴도는 그런 거 있잖아요. 어제 바람돌이님의 댓글을 보고 요거를 꼭 써야겠다, 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이전에 써 둔 거 하나 올린 후에 ㅋㅋㅋㅋㅋㅋ 얼른 써서 돌아오겠습니다.

의리로 써 주신 글, 너무 좋았어요. 아침내내 아닌 종일토록 행복할 거 같아요. 감사해요, 바람돌이님!!

바람돌이 2025-09-16 19:09   좋아요 1 | URL
깜짝 놀랐습니다. 로맨스 소설이 이 책이 처음이라는 것과 이 책으로 글을 18개 썼다는거에요. ㅎㅎ 저는 고등학교 때 할리퀸부터 로맨스소설에 빠졌던 사람인지라... 단발머리님과 저의 감흥이 정말 다를 수 밖에 없었군요. ㅎㅎ
그래도 오랫만에 애덤 좋았습니다. 단발머리님 덕분에 애덤을 만나 잠시 설레었으니 제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ㅎㅎ 단발님 올릴 글이 오늘 올린 글은 아니지요? 행복한 맘으로 기다리겠습니다. ^^

건수하 2025-09-16 0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협소설..까지는 안 보지만 저도 로맨스보다는 SF 같은거 좋아합니다. 삼체 재밌었구요...
로맨스는 이제와서 더 알아야겠냐? 뭐 이런 느낌입니다. 힐링이 되지만요 ^^

<사랑의 가설>은 로맨스, 그리고 이공계 대학원생의 삶 때문에 제게 힐링이 됐습니다 :)

바람돌이 2025-09-16 19:12   좋아요 1 | URL
저도 지금은 SF쪽이 더 좋습니다. 그건 로맨스는 이미 너무 많이 봐서 더 이상 새로운 로맨스는 없구나해서요.
요즘은 무협도 새롭습니다. 예전과 좀 다른 무협소설들이 나오는데 와 하면서 봐요. ㅎㅎ

저는 이 작가의 사랑의 가설보다는 러브 온드 브레인이 더 좋았습니다. 이공계 여학생들의 현실적인 고민들도 더 많이 공감되었구요. ㅎㅎ 앗 단발님한테는 비밀입니다. 제가 러브 온더 브레인 더 좋아한다는거요. ㅎㅎ

단발머리 2025-09-16 22:57   좋아요 2 | URL
속닥거려도 다 들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애덤 없는 로맨스가 무슨 로맨스란 말입니꽈!!

바람돌이 2025-09-16 23:03   좋아요 1 | URL
앗 비밀인데..... 단발님 왜 훔쳐보고 그러세요. ㅋㅋ

건수하 2025-09-16 23:08   좋아요 1 | URL
러브 온더 브레인도 읽어봐야겠군요. 조금 천천히 ^^

샐리 루니 소설도 궁금한데, 읽어야 할 책도 있고…. 로맨스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싶지 않아서 참고 있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