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읽는다. 이것은 질병과도 같다. 나는 손에잡히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모든 것을 읽는다.
신문, 교재, 벽보, 길에서 주운 종이 쪼가리, 요리조리법, 어린이책, 인쇄된 모든 것들을.
나는 네 살이다. 전쟁이 막 시작됐다.
- P9

뭔가 읽을 것이 있을 때면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나는 계속 읽고, 그러고 나면 울면서 잠든 밤사이에 문장들이 태어난다. 문장들은 내 곁을 맴돌다, 속삭이고 리듬과 운율을 갖추고, 노래를 부르며 시가 된다.

어제, 모든 것은 더 아름다웠다.
나무들 사이의 음악
내 머리카락 사이의 바람
그리고 네가 내민 손안의
태양.
- P34

처음에는 하나의 언어밖에 없었다. 사물들, 어떤 것들, 감정들, 색깔들, 꿈들, 편지들, 책들, 신문들이 이 언어였다.
나는 다른 언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떤인간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를 발음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 P49

나는 프랑스어로 말할 때 실수를 하고, 사전들의 도움을 빈번히 받아야만 프랑스어로 글을 쓸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프랑스어 또한 적의 언어라고 부른다. 내가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하나 더 있는데, 이것이 가장 심각한 이유다. 이 언어가 나의모국어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 P53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면서 소련은 이 나라들의 경제 발전만 저해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민족 정체성까지 말살시키려고 했다.
내가 아는 한, 어떤 반체제 러시아 작가도 이 문제를 언급하거나 다루지 않았다. 자신들의 폭군을견뎌야 했던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러니까 그뿐 아니라 외국의 지배, 즉 그들의 지배까지 견뎌야 했던 ‘중요하지 않은 작은 나라들‘에대해서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 P61

우리는 아이들을 포함해 열 명 남짓의 사람들로구성된 무리다. 나의 어린 딸은 아이 아빠의 품에안겨 잠들어 있고 나는 두 개의 가방을 들고 있다.
둘 중 한 가방에는 젖병과 기저귀, 아기에게 갈아입힐 옷이 있고 다른 가방에는 사전들이 들어 있다.  - P69

내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되었을까? 더 어렵고, 더 가난했겠지만, 내 생각에는 또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어쩌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건 어떤 언어로든지 나는 글을 썼으리라는 사실이다.
- P82

사막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사회적 사막, 문화적사막, 혁명과 탈주의 날들 속에서 느꼈던 열광이사라지고 침묵과 공백, 우리가 중요한, 어쩌면 역사적인 무언가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했던 나날들에 대한 노스탤지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뒤따른다.
- P89

나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
이 언어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운명에 의해, 우연에 의해, 상황에 의해 나에게 주어진 언어다.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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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타인들 (자신만의 은밀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개인의 의식에 구멍이 뚫리는 순간의 충격이 등장하기도 한다. 자신이 아닌 삶, 자신이 모르는 삶이 있구나 하는이 인식이 어린 아이였던 울프에게 거듭 충격을 안겨주었다.  - P15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 사람이 남긴 물리적 흔적이 거의 없다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게 아닐까? 《등대로>에서 내내 던져지는 질문이다.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는 무엇이 남을까?
버지니아 울프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사라짐에 맞서는 저항이었다. 무언가를 글로 옮겨놓는다는 것은 그것을 사라지지 않게 하는방법이었다.
- P19

훗날 울프는 《밤과 낮>을 회상하면서 "관습적 문체를 연습해본"
작품이었다고 했다. 그때의 문법 수업이 나중에 규칙을 깨뜨릴 수있게 해주었다는 이야기였다.2 그때 울프가 문학의 관습에 대해서 고심했던 것은 분명하다. 작품을 끝내기 직전에 남녀 주인공을결혼시켜버리는 제인 오스틴처럼 문학의 관습을 의도적으로 활용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 P75

울프는 단편소설들을 통해 외적 사실에서 내적 삶으로의 중대한 이동을 단행한다. 생각이 실체가 된다. 예컨대 쓰지 않은 소설>의 화자는 기차에서 한 여자의 맞은편에 앉아 머릿속으로 그여자의 일대기를 생각해본다. 그 여자의 얼굴에 깃든 슬픔을 설명해줄 만한 맥없고 쓸쓸한 생활의 디테일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기차는 이스트본에 도착하고, 그 여자는 플랫폼에서 아들을 만나행복한 얼굴로 함께 떠난다. 화자에게 그 여자는 모르는 사람, 알수 없을 사람이다. 외적 사실을 가지고 사람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그저 계속 추측해보는 것이 가능할 뿐이다.
- P82

울프의 삶에서 새로운 형식의 픽션으로 이행한 시기가 일기의 리듬을 정착시킨 시기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P82

도 했다. 울프는 이미 새로운 소설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새로운 형식을 모색 중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현재를 붙잡고싶었다.
"정말 바쁨, 정말 행복함, 한마디만 할까. 시간이여, 게 섰거라.  - P100

아니었다. 하지만 미스터 램지가 자기 작업에 강박적으로 헌신하는 모습은 그대로 울프 자신의 모습이고, 미스터 램지가 보여주는야심, 기벽, 보호 받고 싶어 하는 마음, 자기 삶을 머리에 떠오른인용문에 맞게 조율하는 습관 등도 모두 울프 자신의 것들이다.
- P124

바로 이런 단순한 사실에 감정적 무게를 실을 수 있다는 것이울프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울프는 어떤 면에서는 복잡미묘한 작가지만, 울프가 늘 추구하는 것은 아무 군더더기 없는 더없이 단순한 문장이다. 완성을 앞둔 릴리에게 남은 일은 화폭의 중심에선 하나를 긋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선은 바로 그 선이어야 한다.
- P129

<파도>에서 울프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수의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우리로존재하는 것은 우리를 바로 이런 우리로 존재하게 하는 많은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다만 《올랜도가 내 모든 친구들의 윤곽을 그리기 위해서 쓰기 시작했다가 비타라는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로 끝낸 책이었다면, 18 《파도》는 여러 친구들의 삶이 "서로가 서로의 연장"이 될 정도로 긴밀하게 연결되는모습을 상상해보는 책이었다.
- P149

《파도》의 등장인물들이 어느 차원에서 "모두 하나"라면, 화자가 바뀌는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모두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핵심이다.
말하는 내용은 달라도 말하는 리듬은 똑같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은 플롯을 따르는 글이 아니라 리듬을 타는글이다."
- P154

정도였다. 울프는 읽히는 작가가 되기를 원했고 어느 정도의 돈을원했고 무엇을 쓸 것인가를 결정할 자유를 원했다.  - P167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을 거야. 계속 변할 거야. 뇌를 열고 있을 거야. 눈을 뜨고 있을 거야. 논문 같은 것은 되지 않을 거야. 동상 같은 것은 되지 않을 거야. - P176

《세월이 울프를 자살 직전까지 몰아갔다는 것, 세월과 1930년대 중반의 정치 상황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 《세월이라는 픽션은 3기니》라는 난폭한 논픽션과 짝을 이루는 작품이라는 것, 《세월》의 형식 패턴은 총체성의 비전보다는 와해와 결렬에 가깝다는 것은 모두 사실이다.  - P182

울프가 생동감"과 "보람"을 이 소설의 특징으로 꼽았다는 것도우리가 기억할 점이다.21 울프가 "사실들에게로 돌아섰던 것은거기서 "무한한 기쁨" (40년 동안 자기 손으로 매일매일의 기록을 보관해놓은 그거대한 창고에서 뭔가를 꺼내 펼쳐놓는다는 데서 오는 기쁨)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실제로 울프는 《세월》 곳곳에는 사실들에게 극도의 아름다.
움을 허용함으로써 자신이 일상의 것들을 미학적 쾌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 P183

하지만 근본적으로 울프에게는 소설이 곧 정치적 작업이었다. "생각하는 것이 나의 싸움법"
이라는 것이 울프가 전쟁 중에 사용한 표현이었다. - P187

히틀러 독재가 가부장 독재의 가장 폭력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가부장 독재에 공모하는 사회라는 점에서는 모든 가부장 사회가 히틀러 독재와 마찬가지라는 것이 <3기니>의 주장이었다. - P190

우리 스스로를 사냥개에 비유할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우리는아직 울프를 따라 달리고 있다. 죽은 지 70년이 지난 울프가 아직한참 앞에서 우리를 이끌어주고 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에서산토끼처럼 뛰어나가는 다프네처럼, 버지니아 울프는 살아 있기위해 자꾸 모양을 바꾸는 작가다.
- P231

울프는 겨울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아, 이게 다 기러기사냥wild geese chase 이라는 건 저도 잘 알아요. 우리가 8월에 만난다면 이 강의는 "여름의 울프"가 되겠지요. 아시다시피 울프는 여름 작가잖아요. (중략) 계절은 우리 없이도 지나가지만,
지금은 겨울이니까, 우리도 이렇게 겨울이 어떤 계절인지 이야기하면서 눈 쌓인 들판에 이렇게 작은 발자국을 찍었네요.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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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는 작품을 제작할 때 작품의 세세한 부분 모두를 구성하고디자인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런 이유로 무하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완성된 여인들의 의상, 소품, 액세서리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 때문에 그의 작품은 프랑스의 패션과 유행에 큰 영향을 끼쳤다.  - P168

무하는 비로소 포스터 화가, 삽화가로서뿐만 아니라 보석 디자이너, 조각가, 실내 장식가로서도 그 재능을 알리게 되었다. 이제파리 유행의 정점에서 사람들은 무하라는 이름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실로 다양한 방면에 재능을 보여주며 아르누보의 총체 예술‘
이념을 성공적으로 보여준 가장 독창적인 아르누보 예술가 중 한사람이 되었다.
- P175

무하에 대해 알려진 것은 대부분 파리 시대의 장식적인 포스터나 패널화에 한정되어 왔다. 미치 파리를 떠닌 그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비춰졌다. 그러나 조국에 돌아온 그는 여전히 영감이 넘치는 포스터들을 남겼다. 체코 시대의 포스터는 파리 시대의 화려함은 사라졌고 단순하고 민속적인 요소들이 강한 인상을 남기고있다.
- P240

문화와 예술, 평화와 종교적 자유에 있어 인류사에 공헌한 슬라브 민족의 역사를 그려내면서 무하가 꿈꾸었던 일은 모든 슬라브민족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과 억압에서 벗어나 이상적인 화합을이루는 것이었다. 그것은 당시 팽배해 가던 범게르만주의의 폭력성에 대한 대항이었고 민족의 독립을 고취하는 선창가였다.
- P254

제1차 세계 대전을 겪은 후에 무하가 선택한 전쟁의 장면들은전쟁의 비극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며 전쟁의 잔혹성을 통렬히 비판한다. 비트코프 전쟁이 끝난 후〉, 〈보드나니에서의 페트르 헬치츠키〉, 〈그룬발트 전쟁이 끝난 후>에서처럼 무하는 치열한 전투 장면을 그리지 않았다. 그보다는 전투 후의 참화와 남아 있는 자들의고통을 묘사했다. 그는 비참한 전쟁의 고통을 통해 평화를 호소하고 있었다.
- P259

그의 작품에서 사진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작품의 정지성과 비현실성을 강화하고 있다.  - P299

당시 이러한 상징과 장식은 이상주의와 신비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었고 또한 이것은 세기말 프랑스의 다른 동향, 심령학과 오컬트의 유행과 연결되어 있었다. - P303

이 시기 심리학의 발전은 이전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방법으로예술이 보는 이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을 밝혀냈다. 특히 최면과 암시의 기법은 이미지를 통해 직관적인 감정이나 정신을 전달하려 했던 상징주의 화가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 P305

무하는 무의식의 이미지와 최면적인 암시력에 의해모든 소비재는 영향을 받아들이기 쉬운 소비자에게 호소하는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광고, 장식 패널, 달력, 비스킷 깡통,
접시, 일용을 위한 여러 다른 제품들, 이것들은 무하에 의해 고도로 도덕적인 용도로 받아들여져 예술이 된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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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새로운 예술에 목마른 미술가들은 철과유리, 영화와 자동차, 새로이 출연한 대중 매체에 걸맞은 양식을창출하고자 했다. 아르누보는 미술과 삶이 결합해 주변 환경의 총체적 변혁을 요구하는 예술 운동이었다. 아르누보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예술을 시민의 손에 쥐어 주었다.
- P5

페르펙타 자전거의 포스터 속 여인은 자전거의 심벌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무하‘라는 화가의 세기말 이상적인 여인의 심벌이기도 했다. 무하가 그린 포스터 속의 상품을 구매한다는 것은다시 말해 ‘무하라는 브랜드를 소비하게 되는 것과 같았다. 현대의 우리는 특정 대중 스타의 이미지가 특정 상품 혹은 기업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데 익숙해져 있지만 무하가 살던 시대에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다.
- P121

책을 위한 무하의 일러스트는 상업적 포스터보다 다양한 스타일로 구사되어 그의 철학적이고도 미학적인 관심사, 영적인 교감,
슬라브 민족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 있다.
- P134

사람들은 《일세를 보며 중세의 필사본을 연상하면서도 그것이매우 현대적이라고 느꼈다. 이렇게 무하는 프랑스 아르누보에 또하나의 새로운 장식 언어를 소개하게 된 것이다.  - P150

이 시대의 감수성이란 역시 상징주의에 있었다. 우리 시대의 눈으로 이 시대의 장식 미술을 보고 있노라면 장식은 그저 장식일 뿐표면적이며 궁극적 실체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당시 상징주의 이론은 장식적인 회화의 새로운 개념을 끌어내고 있었다.
장식 미술은 상징적이고 종합적인 형태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이상을 직감하게 하는 예술 표현의 가장 심원한 수단이었다. 물론빅토리아 시대나 에드워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장식이 내포한 상징적인 의미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보다는 훨씬 익숙한 것이었다. 또한 아름다운 미술작품은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자연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한 아르누보 작가들에게 자연의 형태는 상징적인것으로, 비의적인 종교적 의미를 띨 수도 있었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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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오래된 집 - 근대건축에 깃든 우리 이야기
최예선 지음 / 샘터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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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짐이라 뛰지는 못하지만 걷는걸 좋아한다.

오래된 집이든, 종교 공간이든, 현대의 멋진 건물이든 모든 아름다운 건축물을 좋아한다.

건축물을 보며 걷는걸 가장 좋아한다.

다만 전문적인 건축용어들은 너무 어려워서 패스

건물들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삶과, 그곳에 배어 있을 삶의 흔적들을 찾아 읽고, 보고,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가령 이런 사진- 15쪽 최순우 옛집

 

 

이 단정한 방에서 어쩌면 최순우 선생은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에 나오는 글들을 간간히 썼을지도 모르겠다.

코로나가 좀 잦아들면 서울 나들이를 해야겠다.

저기 최순우 옛집에 가서 선생이 생전에 어루만졌을 책상을 보고, 그가 거닐었을 뜰을 거닐면서 우리 미술에 대한 최순우 선생님의 그 마음을 잠시라도 느껴보고 싶다.

 

최순우 옛집이 좋은 건 사람 사는 집다운 온기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떠나고 문화재가 된 집들은 삶의 온기가 주는 애틋함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곳은 내셔널트러스트 사무국과 회원,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많은 정성과 노력으로 살뜰하게 매만지며 정성을 기울인다. 그리하여 가을에는 빨갛게 익어가는홍시를 볼 수 있고 사철 따뜻한 감잎차를 마실 수 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품격 있는 집 한 채를 지키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움은 그토록 애써서 지켜야 하는 일이다.- P21

 

어쩌면 이 책의 저자도 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이 책에 나오는 오래된 집들을 같이 따라 여행하다 보면 그런 저자의 마음이 한껏 느껴진다.

 

때로 집은 주인이 바뀌면서 완전히 다른 삶과 마음들을 품기도 한다.

친일파의 집이었다가 민족주의자의 집으로, 남편을 잃고 홀로 60여년을 지킨 아내로 주인이 바뀐 백인제가옥은 얼마나 많은 눈물과 의지와 희망을 품고 있을까?

친일파 한상룡의 그 허영에 찬 과시욕이 남아있을 테고, 그곳을 용도 변경하여 흥사단원들이 모임을 가졌던 흔적도 집은 가지고 있으리라... 무엇보다도 납북된 남편 백인제씨를 기다리며 60년간 그 집을 지켰을 아내의 한 평생이 녹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삶의 흔적이 어딘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집은 알게 모르게 주인을 닮아간다.(126쪽 장욱진 가옥)

 

 

저 집의 풍경에 매달린 물고기 한마리에서 장욱진 화백의 그림 냄새가 물씬 풍긴다.

막 그린 듯 천진한, 그러면서도 애잔한 그의 그림과 이 풍경은 이토록이나 어울린다.

슬핏 스쳐지나가면 그냥 집일 뿐이지만 기둥 하나 서까래 하나 문짝 하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집에 살았던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옛적 전라도 장성의 필암서원을 갔다가 기겁했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강당이 대문쪽 정자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당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속깊은 뜻이야 모르겠지만 그 건물배치가 보여주는 갑갑함이라니...

"학생 너희들은 자나 깨나 오로지 선현을 공경하고 배우고 익히거라.

헛된 풍경이니 풍류니 하는 삿된 것에는 눈도 돌리지 말거라"라고 건물이 엄숙하게 훈계하는 느낌이었달까?

이처럼 건물에 스며있을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하면 오래된 집들을 산책하는 즐거움은 더욱 커진다.

장욱진 화가의 집에서는 구불구불한 기둥들이 그의 그림과 꼭 닮아서, 사랑스럽다.

 

집만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다.(162쪽 영천 임고초등학교)

 

오랜 역사를 가진 시골의 초등학교는 숲을 품고 있다.

건물은 오래되어 낡고 불편해서 리모델링을 들어갈 수 밖에 없겠지만 이 숲을 저 아름드리 나무를 가진 것 만으로도 이 학교는 보존되어야 한다.

저 나무들 아래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유년을 추억을 쌓았을까?

내 기억 속 학교 하나는 목련나무 하나로 남아있다.

봄이 되면 아름드리 크게 훌쩍 솟은 나무에서 목련꽃이 피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 나무만큼 아름답게 목련꽃을 피우는 나무를 본적이 없다.

매일 등하교길에 한참을 꽃을 바라보던 순간은 또한 내 삶이 그래도 아름다웠을 것이다.

 

이 책속에 아름다운 공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쓸쓸히 쇠락해가는 소록도의 공간에서는 한센병 환자들의 아픔이 만져지고, 그들을 위해 봉사했던 오스트리아인 간호사 2분의 희생과 봉사가 같이 잊혀지는 안타까움도 전해진다.

식민지 시절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지어졌던 영단주택지역의 흔적, 김구선생의 최후를 간직하고 있는 경교장, 피난민들의 고달픔을 품고 있는 부산 아미동, 감천동지역들......

 

적산 가옥인 부산의 정란각의 구조를 보면서는 예전에 다녀왔던 군산의 적산가옥을 떠올린다.

군산 지역 최대 지주로 군림했던 일본인의 집을 보면서 성채를 떠올렸었다.

이들은 돌아갈 생각이 없었구나, 영원히 이 땅에서 조선의 농민들을 부리며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겠구나라는게 건물 전체에서 풍겨나왔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적산가옥들이 그렇지 않았을까?

 

구룡포의 일본인 거리를 보는 마음은 작가도 씁쓸해하듯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자고로 집이든 거리든 이야기를 품고 있어야 한다.

관광지화 되어버린 그곳에 그 시대를 살았던 어민들의 삶이 없음으로 해서 생명없는 복원이 되어버렸고,

이대로라면 아마도 얼마 안가 찾는 이 없는 쓸쓸하게 퇴락한 관광지가 되지 않을까?

부산의 용호동 일대는 옛적에 백합조개 산지로 유명했었다.

그곳의 어민들은 그 조개를 캐는 것으로 그럭저럭 살만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이 들어오고 어업령이 내려지면서 백합조개를 캐기 위해서는 허가를 받아야 하게됐다.

졸지에 조선인 어민들은 조개를 캘 수 없게 되어버렸고, 일본인 업자 밑에서 임금노동자로 일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였다.

지금 용호동에는 그 때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그 삶의 거리를 복원하지 못한다면 구룡포 지역은 반대로 삶의 자취들은 남아있으나, 그곳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빠짐으로 해서 죽어가는 거리가 되어가는 것이겠지.

 

많은 건물들을 소개하면서 각자의 이야기들이 너무 짧다는 것이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다.

깊은 울림을 느끼기에는 짧은 분량들이 방해한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건물을 보는 작가의 시선은 제목처럼 따뜻하다.

어딘가 거닐고 싶은 봄이다.

이 책 한권을 끼고 작가가 느꼈던 그곳을 확인하고, 작가가 보지 못한 곳을 찾는 기쁨도 누려보고 싶은

그런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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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1-04-05 09: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런 멋진 풍경의 시골 초등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으나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여고에 다니는 동안 숲에 둘러싸여 초록빛 동산에서 시간을 보낸 것이 그때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많이 스며들었던 거 같아요. 어떻게 살고싶다 어떻게 살아야겠다 그런 꿈을 품은 데 영향도 있었구요. 가슴 아픈 공간도 부러 찾아다니고 싶네요, 봄 기운 맞아서. 부산도 가고 싶어요!!

바람돌이 2021-04-05 10:12   좋아요 1 | URL
저는 섬마을 초등학교를 다녀서 저것과는 또 다른 풍경의 기억을 갖고 있어요. 점심시간에 바닷가 내려가서 굴따고 파래 뜯고..... ㅎㅎ 방학이면 아침에 바다 들어가서 밥먹을 때만 들어오는 생활요. 진짜 어디든 가고 싶은 봄입니다. 마음만 설레발... 수연님 부산 오시면 제가 찐하게 밥살게요. ^^

수이 2021-04-05 10:26   좋아요 1 | URL
저는 밥보다 술과 함께 하는 안주를 사랑합니다 바람돌이님. 말씀만으로도 감사해요. 아 진짜 바람돌이님 만나러 부산 휙 다녀올까요 언제 ^^

바람돌이 2021-04-05 10:28   좋아요 1 | URL
아니 밥 다음에 술은 당연한거 아닌가요? 제가 좋아하는 술집들도 쫘악 ~~ ㅎㅎ

수이 2021-04-05 10:39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자꾸 그러시면 저 날 잡아서 진짜 가요!!! 🤔

붕붕툐툐 2021-04-06 00:59   좋아요 0 | URL
그 날에 전 무족권 낍니다!ㅋㅋ

바람돌이 2021-04-06 11:21   좋아요 0 | URL
수연님도 툐툐님도 무조건 okok ^^

scott 2021-04-05 09: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숲을 품고 있는 학교, 나무그늘에서 맘껏 뛰어노는 아이들,,,,
자연과 함께 숨쉬며 살아가야하는 아이들인데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로
나무는 커녕 뛰어놀 공간 시간도 없고
더더욱 코로나 떄문에 원격 강의를 들어야 하는,,,,
바람돌이님에 리뷰 속 사진들 보며
지난날의 그곳 그나무 떠올려봅니다.

바람돌이 2021-04-05 10:15   좋아요 3 | URL
요즘 아이들의 안타까움이죠. 에휴... 볼 때마다 안쓰러워요.
우리집 애들 어릴 때 보니까 장난감이고 뭐고 다 필요없더라구요. 그냥 아무데나 풀어놓으면 알아서 너무 잘 놀던데..... 요즘 애들은 마스크와 원격수업의 추억을 너무 강렬하게 가질 것 같아 안타까워요.

syo 2021-04-05 1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가 사진에 붕어빵 올려놨어.....

바람돌이 2021-04-05 11:50   좋아요 2 | URL
지금 배고프시죠? 그래서 포악해지신듯.... 역시 사람은 먹어야죠. 빨리 三씨랑 밥 드세요. ^^

붕붕툐툐 2021-04-06 01:00   좋아요 0 | URL
아~ 놔~붕어빵ㅋㅋㅋㅋㅋㅋㅋㅋ

mini74 2021-04-05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석의 무우징게국 끓이는 냄새 난다던 여우난골족 그 집이 생각나네요. 집이란 생활일땐 몰랐는데 떠나오면 참 그리운 곳이 되는 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1-04-05 21:23   좋아요 2 | URL
전 도대체 그 무우징게국이 뭘까가 궁금해요. 어릴 때 살던 집 놀던 곳 왠지 꼭 한번은 가보게 되더라구요. 뭔가 그립고 애틋해요. 그쵸?

붕붕툐툐 2021-04-06 0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남의 집 구경이 그렇게 좋더라구요! 집엔 그 사람이 고스라니 담겨 있는거 같아요~ 그러니 주인이 바뀌면 집도 변하는거 같아요!
숲이 있는 초등학교 너무 좋아요~😍

바람돌이 2021-04-07 14:00   좋아요 0 | URL
다들 좋아할 거 같아요. 집이란게 참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이나 마음 같은게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저는 예전에는 별 생각없었는데 요즘은 내집을 보여주는건 부담스럽더라구요. ^^

희선 2021-04-07 0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품격 있는 집 한 채를 지키려면 많은 사람이 있어야 할 듯합니다 오래됐다고 안 좋게 여기는 사람도 있잖아요 숲이 있는 학교라니 좋을 듯하네요 아직 남아서 여러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곳도 있지만, 이제는 사라진 곳도 있어서 아쉽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1-04-07 14:03   좋아요 0 | URL
사람들마다 생각이나 판단의 기준은 정말 다양해서 한 번씩 깜짝 깜짝 놀라게 되어요. 오늘도 아 이렇게 생각이 다르구나 하는 거 또 실감한 사건도 있네요. 어쨌든 학교는 나무가 있고 운동장이 넓고 좀 그래야 할 거 같아요. 그래서 저 시골학교가 오래 오래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초딩 2021-05-08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앙 바람돌이님 이달의 당선작 진심 축하드립니다!
넘넘 멋져요 ^^

바람돌이 2021-05-08 22:5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이 더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데미안으로 쓰신 글 같은걸 저는 못 쓰는 글이라 굉장히 멋지다소 생각하면서 읽었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