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타인들 (자신만의 은밀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개인의 의식에 구멍이 뚫리는 순간의 충격이 등장하기도 한다. 자신이 아닌 삶, 자신이 모르는 삶이 있구나 하는이 인식이 어린 아이였던 울프에게 거듭 충격을 안겨주었다.  - P15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 사람이 남긴 물리적 흔적이 거의 없다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게 아닐까? 《등대로>에서 내내 던져지는 질문이다.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는 무엇이 남을까?
버지니아 울프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사라짐에 맞서는 저항이었다. 무언가를 글로 옮겨놓는다는 것은 그것을 사라지지 않게 하는방법이었다.
- P19

훗날 울프는 《밤과 낮>을 회상하면서 "관습적 문체를 연습해본"
작품이었다고 했다. 그때의 문법 수업이 나중에 규칙을 깨뜨릴 수있게 해주었다는 이야기였다.2 그때 울프가 문학의 관습에 대해서 고심했던 것은 분명하다. 작품을 끝내기 직전에 남녀 주인공을결혼시켜버리는 제인 오스틴처럼 문학의 관습을 의도적으로 활용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 P75

울프는 단편소설들을 통해 외적 사실에서 내적 삶으로의 중대한 이동을 단행한다. 생각이 실체가 된다. 예컨대 쓰지 않은 소설>의 화자는 기차에서 한 여자의 맞은편에 앉아 머릿속으로 그여자의 일대기를 생각해본다. 그 여자의 얼굴에 깃든 슬픔을 설명해줄 만한 맥없고 쓸쓸한 생활의 디테일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기차는 이스트본에 도착하고, 그 여자는 플랫폼에서 아들을 만나행복한 얼굴로 함께 떠난다. 화자에게 그 여자는 모르는 사람, 알수 없을 사람이다. 외적 사실을 가지고 사람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그저 계속 추측해보는 것이 가능할 뿐이다.
- P82

울프의 삶에서 새로운 형식의 픽션으로 이행한 시기가 일기의 리듬을 정착시킨 시기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P82

도 했다. 울프는 이미 새로운 소설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새로운 형식을 모색 중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현재를 붙잡고싶었다.
"정말 바쁨, 정말 행복함, 한마디만 할까. 시간이여, 게 섰거라.  - P100

아니었다. 하지만 미스터 램지가 자기 작업에 강박적으로 헌신하는 모습은 그대로 울프 자신의 모습이고, 미스터 램지가 보여주는야심, 기벽, 보호 받고 싶어 하는 마음, 자기 삶을 머리에 떠오른인용문에 맞게 조율하는 습관 등도 모두 울프 자신의 것들이다.
- P124

바로 이런 단순한 사실에 감정적 무게를 실을 수 있다는 것이울프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울프는 어떤 면에서는 복잡미묘한 작가지만, 울프가 늘 추구하는 것은 아무 군더더기 없는 더없이 단순한 문장이다. 완성을 앞둔 릴리에게 남은 일은 화폭의 중심에선 하나를 긋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선은 바로 그 선이어야 한다.
- P129

<파도>에서 울프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수의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우리로존재하는 것은 우리를 바로 이런 우리로 존재하게 하는 많은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다만 《올랜도가 내 모든 친구들의 윤곽을 그리기 위해서 쓰기 시작했다가 비타라는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로 끝낸 책이었다면, 18 《파도》는 여러 친구들의 삶이 "서로가 서로의 연장"이 될 정도로 긴밀하게 연결되는모습을 상상해보는 책이었다.
- P149

《파도》의 등장인물들이 어느 차원에서 "모두 하나"라면, 화자가 바뀌는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모두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핵심이다.
말하는 내용은 달라도 말하는 리듬은 똑같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은 플롯을 따르는 글이 아니라 리듬을 타는글이다."
- P154

정도였다. 울프는 읽히는 작가가 되기를 원했고 어느 정도의 돈을원했고 무엇을 쓸 것인가를 결정할 자유를 원했다.  - P167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을 거야. 계속 변할 거야. 뇌를 열고 있을 거야. 눈을 뜨고 있을 거야. 논문 같은 것은 되지 않을 거야. 동상 같은 것은 되지 않을 거야. - P176

《세월이 울프를 자살 직전까지 몰아갔다는 것, 세월과 1930년대 중반의 정치 상황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 《세월이라는 픽션은 3기니》라는 난폭한 논픽션과 짝을 이루는 작품이라는 것, 《세월》의 형식 패턴은 총체성의 비전보다는 와해와 결렬에 가깝다는 것은 모두 사실이다.  - P182

울프가 생동감"과 "보람"을 이 소설의 특징으로 꼽았다는 것도우리가 기억할 점이다.21 울프가 "사실들에게로 돌아섰던 것은거기서 "무한한 기쁨" (40년 동안 자기 손으로 매일매일의 기록을 보관해놓은 그거대한 창고에서 뭔가를 꺼내 펼쳐놓는다는 데서 오는 기쁨)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실제로 울프는 《세월》 곳곳에는 사실들에게 극도의 아름다.
움을 허용함으로써 자신이 일상의 것들을 미학적 쾌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 P183

하지만 근본적으로 울프에게는 소설이 곧 정치적 작업이었다. "생각하는 것이 나의 싸움법"
이라는 것이 울프가 전쟁 중에 사용한 표현이었다. - P187

히틀러 독재가 가부장 독재의 가장 폭력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가부장 독재에 공모하는 사회라는 점에서는 모든 가부장 사회가 히틀러 독재와 마찬가지라는 것이 <3기니>의 주장이었다. - P190

우리 스스로를 사냥개에 비유할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우리는아직 울프를 따라 달리고 있다. 죽은 지 70년이 지난 울프가 아직한참 앞에서 우리를 이끌어주고 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에서산토끼처럼 뛰어나가는 다프네처럼, 버지니아 울프는 살아 있기위해 자꾸 모양을 바꾸는 작가다.
- P231

울프는 겨울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아, 이게 다 기러기사냥wild geese chase 이라는 건 저도 잘 알아요. 우리가 8월에 만난다면 이 강의는 "여름의 울프"가 되겠지요. 아시다시피 울프는 여름 작가잖아요. (중략) 계절은 우리 없이도 지나가지만,
지금은 겨울이니까, 우리도 이렇게 겨울이 어떤 계절인지 이야기하면서 눈 쌓인 들판에 이렇게 작은 발자국을 찍었네요.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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