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새로운 예술에 목마른 미술가들은 철과유리, 영화와 자동차, 새로이 출연한 대중 매체에 걸맞은 양식을창출하고자 했다. 아르누보는 미술과 삶이 결합해 주변 환경의 총체적 변혁을 요구하는 예술 운동이었다. 아르누보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예술을 시민의 손에 쥐어 주었다.
- P5

페르펙타 자전거의 포스터 속 여인은 자전거의 심벌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무하‘라는 화가의 세기말 이상적인 여인의 심벌이기도 했다. 무하가 그린 포스터 속의 상품을 구매한다는 것은다시 말해 ‘무하라는 브랜드를 소비하게 되는 것과 같았다. 현대의 우리는 특정 대중 스타의 이미지가 특정 상품 혹은 기업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데 익숙해져 있지만 무하가 살던 시대에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다.
- P121

책을 위한 무하의 일러스트는 상업적 포스터보다 다양한 스타일로 구사되어 그의 철학적이고도 미학적인 관심사, 영적인 교감,
슬라브 민족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 있다.
- P134

사람들은 《일세를 보며 중세의 필사본을 연상하면서도 그것이매우 현대적이라고 느꼈다. 이렇게 무하는 프랑스 아르누보에 또하나의 새로운 장식 언어를 소개하게 된 것이다.  - P150

이 시대의 감수성이란 역시 상징주의에 있었다. 우리 시대의 눈으로 이 시대의 장식 미술을 보고 있노라면 장식은 그저 장식일 뿐표면적이며 궁극적 실체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당시 상징주의 이론은 장식적인 회화의 새로운 개념을 끌어내고 있었다.
장식 미술은 상징적이고 종합적인 형태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이상을 직감하게 하는 예술 표현의 가장 심원한 수단이었다. 물론빅토리아 시대나 에드워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장식이 내포한 상징적인 의미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보다는 훨씬 익숙한 것이었다. 또한 아름다운 미술작품은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자연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한 아르누보 작가들에게 자연의 형태는 상징적인것으로, 비의적인 종교적 의미를 띨 수도 있었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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