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티니 씨, 그건 사랑이 아니라 정절을 지킨 겁니다. 페넬로페는 율리시스에 대한 정절을 지킨 거지, 그녀가 율리시스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아무도 모를 겁니다. 당신도알다시피 사람들은 때로 애정이 없어도 정절을 지킬 수있습니다. 사실 경우에 따라 정절은 복수를 뜻하기도 하고, 협박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고, 때론 자존심을 되찾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정절이 곧 애정의 표시는 아닙니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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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처지가 이렇게 된 것은이상이나 취미가 같아서 나의 야망을 이해하는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단지 아름다웠을 뿐 매운 것 없는 단순한 타이피스트였다. 자라온 환경과 길들여진 편견,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나의 이상과함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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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03 0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모라비아 ‘경멸‘ 읽기 시작하셨군요.
영화도 있음 ^ㅎ^

바람돌이 2021-05-07 00:27   좋아요 1 | URL
책에 대해서 약간 유보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완전 좋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네요. ㅎㅎ 그래서 영화는 별 관심이 안가고.... 더더군다나 누벨바그라잖아요. 이쪽 계열 영화가 왠만하면 다 재미없더라구요. ㅎㅎ
 

경험은 겪은 것이 아니다. 선택적인 기억이다. 경험은 철저히정치적인 것이다. 무엇을 잊고, 무엇을 의미화하는가, 내가 겪은 일은 어떤 것인가. 경험은 저절로 기억되지 않는다. 자신의경험을 인식할 수 있는 시각이 생길 때 비로소 ‘떠오르고 인지되고 해석된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에게는 자기 경험을 바로 볼 수 있는 렌즈가 주어지지 않는다. 남성의 언어가 여성의삶을 규정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자기 경험을 믿지 못한다. 자기가 겪은 일을 남 이야기하듯 말한다.  - P102

왜 때리는가? 이런 질문이 바로 폭력이다. 그들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때릴 수 있으니 때리는 것뿐이다("They do because theycan"), 단지 그뿐이다. 대신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왜 사회는 여성의 경험을 믿지 않는가? 왜 국가는 이 문제를 사소하게 다루는가? 왜 우리는 언제나 이 문제가 "사소하지 않다"고 외쳐야 하는가?
- P103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다. 자기가 먹은 밥그릇은자기가 치우는 것이다. 자기가 입은 옷은 자기가 빨래하는 것이다.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인간(개인) 미달‘ 이다. 그러므로
‘주부‘나 ‘아내‘는 정체성도, 직업도, 지위도 될 수 없다. 아내가뭄은 모두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반대로 어느 누구도 아내를 가질‘ 특권은 없다는 뜻이다.
- P113

페미니즘을 ‘하나‘로 사고하는 것 자체가 성차별이다. 나는평소 숱한 사람이 사상가들을 언급할 때 마르크스, 프로이트,
푸코, 루소…… 그리고 페미니스트 식으로 나열하는 데 분노한다. 남성들은 ‘개인‘으로 호명되는데, 어째서 페미니즘은 한 덩어리로 간주되는가? 이는 마르크스 한 사람과 모든 여성이라는식의 발상이다.  - P150

성매매, 성폭력 제도의 본질적 공통점은 남성의 성은 남성의 몸에서 분리되지 않지만 여성의 성은 여성의 몸에서 분리된다는 점이다. 남성의 성은 남성 개인의 몸에 소속되어 있다. 여성의 성은 여성 자신의 것이 아니라 국가, 가족, 그리고 그녀의소유자인 남성의 자원이거나 상징이다. 남성의 성과 달리 여성의 성은 대상화된다. 유통, 기부, 거래, 순환 등 교환 가치를 지닌다.  - P170

거듭 강조하건대 알선업자들이 다루는 것은 상품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강제냐 아니냐 혹은 협의의 강제성이냐 광의의 강제성이냐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문제는 강제성 여부라기보다는 전쟁에서의 철저한 성별 분업에 있는 것이 아닐까? 강제성 담론은 여성 인권의 시각에서 보면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게 만드는 ‘맥거핀‘이다. 왜 남성의 성은 여성을 위해 강제든 자발이든 봉사하지 않는가? 왜 국가는 알선업자든 남성의 성을매매하는 제도는 만들지 않는가? 이 질문이 황당한가? 자발적
‘담요 부대‘는 납치든 여성의 성을 종군(從軍)의 상수(常數)로놓는 전제부터 문제시하는 논의를 시작하자.
- P171

한국 사회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이미 신채호의 맥락을 떠나 주로 우리가 침략당한 사건을 상기하는 데만 동원된다. 피해자 민족주의도 문제지만 ‘역사‘, ‘민족‘, ‘미래‘가 모두 복수(複數)의 의미라는 점에서 이 언설은 주장되어야 할 정언이 아니라 해석되어야 할 머리 아픈 문제다.
- P187

팬데믹의 원인은 ‘돌봄 노동‘(살림)을 비하하고 ‘자연 파괴 (죽임)를 추구해 온 인간의 경제 활동이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팬데믹의 대안으로 돌봄 윤리에 관심을 보이지만, 이런 흐름은지금 여기의 ‘여성 해방‘ 과는 거리가 멀다. 팬데믹의 결과로 또다시 여성들이 강도 높은 보살핌 노동을 도맡고 있기 때문이다.
돌봄 노동의 내용은 그 자체로도 재평가해야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돌봄이 공적 영역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그 자체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 P203

마지막으로 ‘성노동‘, ‘성노동자‘ 용어에 대한 나의 분노를 분명히 하고 싶다. 이 책에 나와 있듯이 성노동은 미화된 용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노동이다. 성산업에 종사하는 일은 당연히 노동이다. 그러나 "노동이어야 한다. 노동으로 인식되어야한다."는 전혀 다른 논리다. ‘성노동‘은 성매매의 핵심, 즉 왜 이노동이 여성에게만 부여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나는 성매매를 성폭력으로 환원하는 입장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폭력을행하는 것도 당하는 것도 노동이다. 성산업에서 여성이 하는 일은 중노동이고 위험한 노동이다. 여성이 사망해도, 공권력도 가족도 나서지 않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다. 성노동‘ 담론이 여성혐오에 근거한 무지의 산물인데도 한국 사회에서 그럴 듯하게통용되는 이유는 ‘노동의 신성화‘라는 서구 근대 이데올로기를벗어나지 못하는 식민주의 인식 때문이다.
- P214

저자는 "당시 매춘 여성이 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딸들의 어두운 숙명이었으며, 누군가 그만두어도 같은 길로 굴러떨어지는 딸들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문제를 (여성이 아니라) ‘인민‘의 고통이라는 차원에서본다. 그러나 오히려 성매매의 근본 원인은 왜 프롤레타리아 남성들은 가난하다고 해서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팔지 않는지, 그리고 왜 남성의 성은 국가의 통제 대상이 되지 않는지를 질문함으로써 찾을 수 있다. 성을 파는 여성, 성을 팔아야 하는 여성의 존재는 바로 여성이 ‘인민‘의 범주에 들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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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좋은 책, 알려진 책, 많이 팔리는 책에 서평이 몰리는 현상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서평(크리틱)이 가장필요한 책은 바람직하지 않은 내용 혹은 별 내용이 아닌데 많이 팔려서 비판으로 판매량을 줄여야 하는 책이다. 물론 이런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나는 희망한다. 서평이 많이 쓰이고 비평서가 많이 출간되어야 하는 이유다.
- P11

할지 모르겠다. 공부. 자기 언어를 갖는 것은 피억압 집단에게가장 필요한 투쟁이다. 남성, 백인 문화는 피억압자의 언어를두려워하고, 이는 여성 혐오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여성들 스스로 내면화하고 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페미니즘의 대중화가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보여준다. 이제 페미니즘은 가치관이 아니라 자기 계발의 하나가 된 것뿐일까.
- P14

사회의 ‘크기‘는 고통에 대한 태도와 그것을 품을 용량(capacity)으로 가늠할 수 있다. 나를 비롯해 한글판 제목대로
"피할 수 없는 모든 고통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목소리는, 우리 자신의 그릇에 온전히 담길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불안하지 않은‘ 이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 P28

 타인에 대한 통제권을 지닌다는 것. 흑인에 대한 백인의 지배가 문화적으로 합의된 사회에서 흑인의 몸은 백인의 것이다. 백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강간, 고문, 살인, 감금이든 모두 합법‘적‘이다. 압도적 폭력을 마음으로, 평화로,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해자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가해자 편에서 박수를 치는 것과 같다 - P36

나는 용서를 이야기할 때 전제되어야 할 것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내 글은 비관적일 뿐 아니라 이 책과 무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조악한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데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나는 용서 지향적 사회보다 평등한 복수‘가 가능한 정의로운 사회를 원한다. 이것이 먼저다.
- P57

이 책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와 ‘인간관계를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의 차이를 알려준다. 무병장수는 행복의 조건이 아니다. 아프더라도 이해와 돌봄의 인간관계가 지속된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건강과 그렇지 않은 상태의경계, ‘잘 아플 권리‘, 고통은 삶의 조건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의 방식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 P68

나는 예전에 세월호 사건을 두고 "잊지 말자."라는 말이 누구의 관점인가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이는 그 사고와 무관한 이들의 다짐이다. 유가족들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당사자가아닌 이에게는 망각이 필연이고, 당사자에겐 기억이 필연이다.
"잊지 말자." 대신 유가족의 시각에서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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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1-04-27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6페이지 밑줄 저두 그었어요. 68쪽두. :) 잘 자요 바람돌이님

바람돌이 2021-04-27 23:25   좋아요 0 | URL
앗 찌찌뽕!!!
같은 생각을 발견할때의 기쁨으로 잠들겠습니다. 수연님도 잘 자요. ^^
 

 어떤 종류는 편집광적으로 단 한 가지 생각에 갇힌 인간들 모두에 대해 나는 평생 호기심을 꺼왔다. 한 사람이 자신의 영역을 제한하면 할수록 다른 한편에서는 무한성에 더더욱 가까이 다가가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 세상을 등진 것 같은 그들은 자기만의 특별한 재료로 흰개미처럼 기이하고 유일무이한 하나의 압축된 세계를 만든다. - P18

그러나 생각 자체는, 사실 생각이 그렇게 실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버팀목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생각은 맴돌며 무의미하게 자전하기 시작하거든요. 생각도 무를 건디지 못합니다. 뭔가를 기다렸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또다시 기다렸지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요.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관자놀이에 통증이 느껴질 때까지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혼자 있었습니다. 혼자..... 혼자서......
- P46

두 시간을 두 다리로 서 있어야만 했던 그대기실에는 달력이 걸려 있었어요. 제가 인쇄된 것, 활자에 굶주려서그 숫자, 벽에 걸린 7월 27일 이라는 몇 안 되는 그 숫자를 얼마나 응시하고 또 응시했는지 당신에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을마치 저의 뇌 속에 집어넣듯 삼켰지요. 그리고 다시 기다리고 또 기다렸으며, 문이 언제 열릴지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 P52

 책!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순간 제 몸 전체를총알처럼 관통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책을 훔쳐라! 아마 성공할 거야,
그걸 네 방에 숨겨놓고 읽을 수 있잖아, 읽을 수 있어, 읽을 수 있단말이야, 마침내 다시 책을 읽을 수 있다고! 이런 생각이 제 안에 솟구치면서 강한 독처럼 퍼져나갔습니다. 갑자기 귀가 윙윙거리고 심장이방망이질 치기 시작하더군요. 두 손이 얼음처럼 차가워져서 더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 P54

게임의 즐거움이 게임의 욕망이 되었고, 게임의 욕망이 다시게임의 강박과 광기와 광적인 분노가 되어 깨어 있는 시간뿐 아니라점차 잠자는 시간까지 파고들었습니다. 전 오로지 체스만 생각했습니다. 체스의 행마와 관련한, 오직 그 문제만을 생각했지요.  - P65

그는 어떤 죽음을 느꼈고 불멸의 사랑을 느꼈다. 그의 영혼 속에서 무엇인가가 터져 나오는 듯했다. 그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여인을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을 생각하듯 육체 없이도 정열적으로 생각했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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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27 00: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가지 이야기가 다르면서도 둘다 너무 좋다는 ^^

바람돌이 2021-04-27 21:39   좋아요 1 | URL
아 저는 체스 이야기는 좋았고요.
낯선 여인의 편지는 꽝이었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