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언제 읽느냐는 중요하다. 쓸데없이 고등학교 때 이 책을 읽는 바람에 내게 <압록강은 흐른다>는 도통 아무 재미도 없는 책으로 남아버렸으니..... 뜬금없이 그 시절에 이 책을 읽었던 건 아마 틀림없이 전혜린 작가 때문이었으리라.... 낭만적인 비극으로 느껴졌던 그녀의 죽음 때문에 그녀의 책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었고, 그래서 이 책까지 흘러갔을 테고.... 중요한 건 두 책 다 나에게는 공감 불가능으로 너무나도 재미없는 책이라는 기억만 남아버렸을 뿐.....

  다행히 오늘 이 책을 다시 읽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0번이라는 상징성과 출판사의 마케팅이 쉽게 이 책에 손이 가게 했다. 민음사의 이번 마케팅은 좀 많이 고맙네.... 덕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꼈다. 언제 어떤 책을 읽느냐는 역시 중요하다.


1. 전후 독일의 <압록강은 흐른다>


  독일어 원문을 읽을 수 없는 내게 이 작고 딱히 임팩트 없는 책이 왜 독일인들에게 그 해 '독일어로 쓰인 가장 훌륭한 책'이란 찬사를 듣게 했을까란 의문이 있었다. 독일어도 모르고, 독일 문학도 잘 모르는 내가 해소하기 힘든 질문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이 책에 실린 작품 해설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역자 후기 외에 편집자인 박혜진씨의 작품 해설이 따로 더 실려있는데 이 글이 참 좋았다. 작품 해설이 좋았던 경우는 드물었는데 이 작품 해설에도 나는 별 5개를 주고싶다.)


  1946년의 독일은 나치의 만행때문에 거의 전 국민이 범죄자로서의 죄의식을 느껴야 했을테다. 1935년 나치당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영상에서 히틀러를 환영하는 독일인들은 종교적 광기의 열정으로 불타오른다. '그분이 오신다. 우리를 구원하러 히틀러 그분이 오신다'라는게 당시 독일인들의 상태. 이런 광기를 일으킨 근본 원인은 당연히 절망적인 당시 독일 경제 상태이지만, 이 절망을 낚아 채 낭만적 희망으로 뒤덮은 건 나치당이었다. 


독일 낭만주의는 단순한 문예 사조가 아니었다. 숲과 강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민족의 신화와 전설에 대한 경도는 독일인이 스스로를 하나의 민족으로 느끼는 방식으로 독일 정신의 중핵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치는 바로 그 정서, '민족', '피', '고향', '숲'을 동원해 대중을 이끌었다. 고향은 순수한 게르만의 뿌리로, 숲은 독일 민족의 영혼이 깃든 성지로 신화화됐다. 낭만주의가 꿈꾸던 것들이 학살의 언어가 된 것이다. 그러니 외부 망명자도 내부 망명자도 자신들의 낭만을 긍정할 수 없었다. 당시 독일인들은 거울을 들여다 볼 수 없는 민족이었다.      -239쪽, 작품 해설, 박혜진


  삶이 힘들어질 수록 사람들은 과거를 그리워한다. 예전엔 좋았어. 한 때는 나도 잘 나갔어 같은 그런 류의 회고는 본인에게만 낭만적이지만 그런 추억이 또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 그러나 매일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자국의 사람들이 전범으로 처벌 받고 있는, 어떤 독일인도 침묵과 방조, 또는 열광적인 호응의 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시대에 독일인들은 자기 민족의 위대함을 고대의 숲에서, 게르만족의 시원에서 찾았기에 과거조차도 그들은 그리워할 수 없었겠다.


  그런 1946년에 이미륵이 이 책을 냈다.


그 때 이미륵이 나타났다. 동양에서 온 한 아웃사이더가 자신이 잃어버린 나라의 강과 산과 어머니를 독일어로 노래했다. 독일인들은 <압록강은 흐른다>에서 자신들의 상실감을 발견했다. 죄 없는 향수, 고향에 대한 그리움, 오염되지 않은 낭만이 그것이었다.   -239쪽, 작품 해설, 박혜진 


  이 작은 책을 읽는 독일인들이 느꼈을 위로, 참회, 미안함, 슬픔, 그리고 부끄러움을 인정할 용기와 나아갈 힘. 그 모든 복잡한 감정들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이 작은 소설이 시대에 남을 걸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당대의 사람들에게 공감의 위로를 던졌음으로 당대의 문학의 소명을 이루었음을 알겠다.



2.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작가에게 이 소설은 그리움이다. 고등학생인 내가 이 책을 재미없게 느낀 건 그 나이의 내가 이런 그리움을 이해할 수 없는 나이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알겠다. 


  수암은 나와 같이 자란 내 사촌 형의 이름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그의 첫 기억에 존재하는 5살 사촌 형과 아버지 앞에 앉아 한자를 배우던 기억을 소환한다. 그 옆에서 "제발 애들을 그렇게 괴롭히지 마세요~"라고 말하던 어머니의 부고 편지를 독일에서 받는 것으로 끝난다. 


  떠나왔더라도 다시 돌아가리라 희망하면 글은 더 객관적이고 치열해질 수 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갈 이유가 모두 사라진 고향은 애틋함과 슬픔과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다. 그 모든 기억들을 소환하면서 돌아갈 곳이 없는 곳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미륵의 독일에서의 삶의 단편들을 짚어보면 그는 진정한 휴머니스트이다. 모두가 나치에 저항한 백장미단의 쿠르트 후버교수의 가족을 외면할 때, 자신의 배급 식품을 그들과 나누고 길에서 후버 교수의 아내를 만나면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부인이라고 인사를 하는 것은 그 시대에는 큰 용기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그의 그런 심성이 어떻게 형성되어졌는지를 알게 된다. 어릴 적 유교 교육을 받았던 이미륵은 학문의 목적이 올바른 삶이 태도를 길러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함을 배웠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라며 그 교육의 이면도 알게되겠지만, 이미륵에게 유교와 동양의 시인들은 딱 사람됨의 중요성을 아는 것에서 멈췄다. 오히려 그것이 더 좋은 사람 이미륵을 만들었으리라.....


  번역된 그의 문장은 유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바로 그 평범한 문장들에 고향의 가족, 친구, 산천, 그리고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하나 하나 묻어있다. 이런 간절한 그리움은 그가 바로 그곳을 떠나왔기에 보이는 것일테다. 


단지 늦은 저녁 시간에 모든 주위가 고요해졌을 때만 나는 이따금 강을 따라 걷거나 어느 버드나무 아래의 벤치에 앉았다. 조용히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가볍게 찰랑거리면서  강물은 언제나 지체 없이 흘러가곤 했다. 자주 나는 그 물이 그렇게 자꾸만 흘러 언젠가 마지막에는 한국의 서해안에 다다를 것이다, 어쩌면 연평도나 어쩌면 그 외로운 송림 포구에까지도 다다를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 222쪽


  국경에서 도도히 흐르는 압록강을 바라보며 하나의 세계가 단절되고 미지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고, 이제 독일의 작은 강변에서 강물이 바다로 흘러 고향땅까지 이어지듯 자신의 세계가 고향과 이어져있음을 자조하는 20대의 어린 청년이 눈 앞에 그려진다. 이런 기억의 소환이 또한 그를 살게 했으리라.... 


  내가 만약 이미륵과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면 내가 그리워했을 풍경은 이 바다가 아니었을까?





3. 나의 <압록강은 흐른다>


   작가의 그리움이 문장마다 느껴지는 감동과는 별개로, 또 다른 의미에서 이 책은 너무 흥미로웠다. 1899년생인 작가가 살았던 한국은 격동의 시대였고, 비분강개의 시대였다. 그러나 시대가 그러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일상을 살아간다. 어린 아이의 눈에 비치는 모습이 다는 아니었을지언정 이 책 속에서 묘사되는 21세기 초반 한국의 삶의 풍경들은 아름답고, 평화롭고, 그리고 끝내 위태로웠다. 


  듣기 좋은 칭찬만 듣고 달콤한 간식들을 대접받는 명절의 즐거움, 나도 고독하다며 어린 아들을 앞에 두고 술을 가르치는 아버지, 한일합방기 의병운동으로 잡혀가던 농민들의 모습, 소란스럽고 정신없는 기차가 들어오는 마을의 풍경과 기차 소리 사이로 들리는 헌병에게 매맞는 소리, 일본인들에 의해 도굴이 일상화되면서 무덤의 유골들이 나뒹구는 산야의 풍경, 고아로 자라 선교사에게 입양되었지만 미션계 학교를 선택하지 않아 내쳐진 친구, 인체 해부 수업에서 시신을 보며 "향이라도 좀 피우지 않고!"라고 중얼거리는 근대 학교의 모습들.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은 흔히 비분강개와 친일파의 길 2가지로 흔히 묘사된다. 하지만 사실 사람들이 있는 곳은 저 2개의 길 사이 어딘가이다. 비분강개하며 신념대로 모두 독립 운동을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친일이라는 사람이 아닌 길을 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삶은 바로 그 넓은 스펙트럼에 있음에도 묘사되지 않던 사람들의 삶이다. 그들이 1919년의 3월에는 목놓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살아간다. 시간이 흐르면 좀 더 나은 삶이 오리가 생각하면서.... 그런 사람들의 소중한 삶이 기록들이 내게는 무척이나 소중하게 다가왔다. 역사책이나 대하 소설에서 볼 수 없는 그 평범함이 아름답게 여겨졌던 것이다. 


 이 책을 감포 앞바다에서 일부 읽었다. 가격이 너무 싸서 펜션을 하나 예약하고, 가족들이 1박 2일을 보냈는데 언젠가는 또 이 평범한 하루가 그리워지리라 생각하게된다.  이 자리에서 이 포즈로 책 읽는 거 너무 근사하지 않나? ㅎㅎ(물론 얼마 읽지는 못하고 끊임없이 먹기만 했다는 건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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