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의 창조
거다 러너 지음, 강세영 옮김 / 당대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류사에서 수많은 억압의 제도가 있었지만 가부장제만큼 한번도 제대로 도전도 받지 않고 굳건했던 것은 없었다. 

계급 전체적으로 봤을 때 여성들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서 더 억압을 받았던 노예들도 반란을 일으킬 줄 알았고, 중세의 농민들도 싸울줄 알았다. 근대의 노동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여성들은 왜 한번도 집단적으로 그들의 인간됨을 위해 싸운적이 없지?

개별의 여성 몇몇을 얘기하면 안된다.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건 결국 혁명이지, 몇몇 개인의 특별함이 그것을 대체할 수는 없는 법이니....


이 문제에 대해 거다 러너는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여성들에게는 역사가 없었다-그들은 그렇게 들었고, 그렇게 믿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여성들을 가장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만든 것은 상징체계에 대한 남성의 헤게모니였다. - 383쪽


이 문장은 나를 전율하게 한다. 

거다 러너가 왜 뜬금없이 가부장제가 창조되는 머나먼 메소포타미아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명확하게 알려주는 장면이다.

모든 것이 이해되는 기분이랄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것. 나의 현재가 정상이 아니라는걸 알지 못하는 것. 그것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아예 가지지 못한 것. - 가족이라는 틀 내에서 온정주의적 지배에 가려 남성의 온정에 일방적으로 매달려야 하는, 그것을 오히려 감사해야 하고 억압으로 인지하지 못하는데 어떤 싸움이 가능할까?


그래서 저자인 거다 러너는 인류 최초의 문명의 탄생의 순간으로 간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다른 인간존재를 잔인하게 대하고 그/그녀에게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노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보다 한수 높은 중요한 발명은, 지배당하는 집단을 지배하는 집단과 완전히 다른 집단으로 지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 경험은 노예제가 발명되기 이전에 남성들에게 주어졌던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자기 집단의 여성들을 종속시켰던 경험이다. 

여성억압은 노예제보다 먼저 일어나 노예제를 가능하게 만든다. - 138~139쪽


오래 전에 결혼 초에 나는 남편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질문을 하게 된 계기는 역시 가사노동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평균보다도 한 10배쯤 더 가부장적인 집에서 자란 남편은 의식과 생활의 괴리를 참 힘들어했다. 자신의 의식은 남녀평등과 가사노동분담이 당연한데 평생 한번도 해본 적이 없고 배워본적도 없어 진짜 할줄 모르는(콩나물 다리 좀 따달랬더니 1시간에 걸쳐서 콩나물 대가리를 다 따놓은 남자......ㅎㅎ) 가사노동들이 너무 너무 힘들었던 것..... 그래도 하고자 하는 의지는 충만해서 가르쳐가면서 하는거지 하는 중이었다. 

어느 날 지나가듯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노력하는 수많은 운동권 남자들이 왜 그렇게 일상생활에서는 가부장적이고 오히려 더 억압적인 경우가 많냐고? 인간평등을 배웠으면 남녀평등을 위해서도 노력하는게 당연한거 아니냐고? 그런 질문을 했었다.

아는것과 사는 것이 일치하는게 당연하다고 믿었던 시절의 질문이다.

여기에 대해 남편의 대답은 너무 간단했다.

그거 모르는 척 하면 제 몸이 얼마나 편해지는데 안다고 하겠냐? 그게 기득권이라는거다.  나 봐라! 아는 척 하다가 이렇게 힘들게 몸을 굴려야잖아! 야 청소 너무 힘들다. ㅠ.ㅠ


남자들은 다 안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것일 뿐이다.

인류 최초의 차별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는 장면이다. 

누군가를 지배해본 경험, 그로 인해 자신의 몸이 편해지고, 이익을 쟁취하고했던 기억은 달콤하다.

버리고 싶지 않은 기득권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래서 인류최초의 억압은 여성에 대한 억압에서 시작되었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이전에 여성억압이 있었던 것이다. 

남성보다 노예화 하기 쉬웠던 여성에 대한 노예화는 누군가를 노예화햇을 때 가질 수 있는 편안함을 제공했을 것이고, 첩의 존재로 인하 남성들의 성적 욕구는 손쉽게 채워졌으며 동시에 첩은 부인에 대해서는 하녀의 지위를 가지며 노동을 제공해야 하는 이중적인 억압에 직면햇으며, 친족집단전체의 이익을 위한 여성 가족 -딸-의 매매는 매매혼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창녀로의 매매까지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간다.

이 모든 것들은 이제 유지되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게 가지고 있던 권력을 내려놓는거다.

어려우면 해보시라. 집에서 내가 자식들을 위해라는 명분으로 휘두르고 있는 수많은 권력들을 한 번 내려놓고 자식들의 자유로운 삶을 전적으로 한번 줘보라고.... 못하실걸.....

그러므로 이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필요한 것이다. 

왜냐? 이 기득권의 달콤함을 계속 유지해야 하니까....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발생한다.

여성들은 자신이 억압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벌써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전면적으로 포위되어 버린다.

전방위적인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침투는 여성이 자신의 언어를 가질 수 없게 하고, 남성의 언어로 사고하게 하며,

그러므로 몇천년간 침묵하게 만들었다.

여성들은 언어가 없었으므로........

그러므로 여성들에게는 여성사가 필요하게 된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징체계,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면 그것이 언제 어느때에 어떤 식으로 거세되어 왔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 가부장제의 창조의 순간을 앎으로써 그것이 역사적이고 영원하지 않으며, 남성들에 의해서 순전히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구성되어진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 그럼으로써 그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관계를 창조할 언어도 그 순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이 나오고 10년, 거더 러너는< 역사속의 페미니스트>와 <왜 여성사인가>라는 책을 쓴다.

여성이 자신의 상징체계, 언어를 가지게 하기 위한 노력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절판인데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평민사와 푸른 역사 출판사에 이 책 재출간 해달라고 달려가게 만드는......

절판된 책은 또 중고책이 여전히 비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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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2-07-03 20: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남성 중심 헤게모니 때문에 여성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단어와 관용어가 만들어졌어요. 이제는 그런 단어를 만나면 의심하고 왜 아닌지 질문해야 합니다.

바람돌이 2022-07-03 21:39   좋아요 2 | URL
여성들조차도 별 문제를 못느끼는 언어나 상황들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한지는 저도 오래됐네요. 그래서 오히려 계속 의심하고 생각하고 해야 하는거같아요

2022-07-04 0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7-05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2-07-04 07: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바람돌이 님. 저는 메소포타미아부터 읽어가는게 진짜 너무 힘들었는데 바람돌이 님은 왜 그래야 했는지를 알고 읽으셔서 그리고 그걸 적어주셔서 너무 좋습니다. 같이읽기의 매력은 바로 이런데 있는 것 같아요.

바람돌이 님, 날 더운데 건강 잘 챙기셔요. 그리고 우리 힘내서 읽고 쓰도록 합시다!

바람돌이 2022-07-05 12:45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이 좋은 책 선정해주셔서 저는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 너무 좋네요. ^^ 저는 역사쪽은 일단은 좀 장벽이 없어서 쉽게 접근하는 편이라 이번 책은 그래도 따라가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것들을 읽으면서 제 생각을 또 정리해보고 참 좋네요.
계속 열심히 잘 따라가겠습니다.
다락방님께 감사하기도 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

mini74 2022-07-04 09: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척 몸은 편할지몰라도 마음은 안 불편한지 ㅠㅠ

바람돌이 2022-07-05 12:45   좋아요 2 | URL
마음이 불편하면 어쨌든 작게나마 몸이 움직이지 않겠어요? 주변에 나쁜 놈들 보니까 마음 안 불편해하더라구요. 당연하게 생각하지..... ㅎㅎ

- 2022-07-07 10:42   좋아요 1 | URL
인간은 마음이 불편하면 안불편해지기 위해 합리화를 합니다. 남자는 이렇게 태어났고 여자는 저렇게 태어났으므로. 여자는 원래 감정을 더 잘살피고 여자는 원래…. 진화론에 유전자까지 가져옵니다. 자신의 편함을 위해서 세계사 전체를 왜곡하고 과학까지 왜곡합니다. ^^ 왜곡이 끝나갑니다. 그건 여남 모두에게 다행이죠.
진짜는 진짜 민낯의 진실은 합리화를 멈추고 두 눈을 다떴을 때 보입니다. 자기 편한대로 안보겠다는 사람들에게 기운빼지 말고 내 시야의 확장에 집중합시다 💕

바람돌이 2022-07-08 15:08   좋아요 0 | URL
하하하 명쾌한 공쟝쟝님!!!!
언젠가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봤는데 그게 참 효과는 없으면서 사람의 진은 있는대로 빼더라는..... 그러다보니 점점 아 그래 그냥 너 그렇게 살아. 언젠가 후회할거야 이러게 되기도 하더라죠. 한때는 또 그걸 나의 패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또 생각이 달라져요. 타인의 생각이 나와 다르고 그것이 명백하게 틀렸다하더라도 그것을 나의 말빨로 바꾸려고 하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고 또 하나의 폭력이 아닐까 싶은요. 타인이 나의 생각을 침범하고 공격하는 것에는 민감하게 반응할지라도, 내가 먼저 그를 바꾸겟다고 덤비는건 오만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하여튼 사람의 생각이 바뀌는건 정말 어렵고, 내가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는게 더 쉬운것 같고... 그래서 공쟝쟝님 말에 동의합니다. ^^

페넬로페 2022-07-04 16: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성주의 책 같이 읽지는 않지만
가부장제라는 말만 들어도 아득해진 느낌입니다.
이 거대하고 견고한 것을 어디서부터 다루어야하고 어떻게 깨부셔야 할지 무척 힘들겠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모르는 척하면 편해진다~~
남펀이 잘 써먹는 수법이예요 ㅠㅠ

바람돌이 2022-07-05 12:57   좋아요 3 | URL
이놈의 가부장제는 지금은 얼마 남지 않았다 싶기도 해요. 그런데 진자 제대로 가부장제가 없어지려면 세대 물갈이가 완전히 한바퀴는 돌아야 되려나 싶기도 하고..... 그러면 그 다음엔 또 다른 무엇이 있을지 두렵기도 하고...
세상이 바뀌는건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희선 2022-07-06 02: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척하면 편하다 맞는 말이네요 많은 사람이 모르는 척하고 살겠습니다 지금은 알려고 하고 아는 사람도 전보다 늘었겠지요 그러면 좋을 텐데...


희선

바람돌이 2022-07-08 15:09   좋아요 1 | URL
그래야 세상이 점점 더 살기가 나아지겠지요. 요즘은 개인의 생각이나 사생활이 워낙에 공개되고 드러나서 그런지 생각이 나아지는 사람도 나빠지는 사람도 더 많이 보이는 거 같아서 판단을 하기가 좀 힘들어요. ㅎㅎ

- 2022-07-07 1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이 책을 다 읽고, 책정리도 다하고, 리뷰도 쓰고, 님들의 리뷰를 하나 하나 살펴보면서, 아 진짜 이번달에는 편한 맘으로 빨리 읽자 ㅋㅋㅋ 반성중인 공쟝쟝입니다!
바람돌이님의 리뷰엔 남편의 자기고백이 있군요ㅋㅋㅋㅋ 깨알 재미 ㅋㅋ

저도 거다러너의 다음 책들 …너무 읽고 싶어요! 혹시 재출간 되면 알려주세요😍

바람돌이 2022-07-08 15:12   좋아요 1 | URL
재출간 알림은 신청해놨어요. 알림 오면 재깍 알려드립죠. ㅎㅎ
저는 인간의 생각이 바뀌고 그에 따라 행동이 바뀌는게 얼마나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인지 남편 보면서 알았어요. 생각은 정말 합리적이고 진보적이고 타고난 품성까지 착하고 순한 사람인데, 그 행동이 진짜 내 맘에 들게 변하는데는 한 20년 걸리더군요. ㅎㅎ 요즘에야 겨우 저의 이상형에 가까워졌습니다. ㅎㅎ
이번 달 책은 책장은 잘 넘어갈 거 같은데 읽기가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아 손대기가 막 겁나서 자꾸 밀리네요. 지금 압둘라자크 책 한 권 남았는데 그거 마저 읽고 읽으려구요.

단발머리 2022-07-07 14: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성들은 자신이 억압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벌써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전면적으로 포위되어 버린다.
전방위적인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침투는 여성이 자신의 언어를 가질 수 없게 하고, 남성의 언어로 사고하게 하며,
그러므로 몇천년간 침묵하게 만들었다.
여성들은 언어가 없었으므로........
그러므로 여성들에게는 여성사가 필요하게 된다.

저는 바람돌이님의 이 지적이 앞으로 페미니즘 운동의 중요한 키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은, 같은 여성이 아니라 같이 사는 남성과 스스로를 동일시해버리는 거요. 특히 기혼 여성인 경우 그럴 가능성이 훨씬 더 크고, 더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목소리, 여성의 역사를 되찾아오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여성들을 어떻게 페미니즘 운동의 자리에 함께 앉게 할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혁명은 소수에 의해 인도되는거 같지만 결국엔는 구성원들간의 연대가 필요할테니까요.

이 책 정말 좋은 책인거 같아요. 계속 좋은 리뷰들이 올라오고 있어서 넘 행복합니다. (from 이 책을 겁나 좋아하는 1인)

바람돌이 2022-07-08 15:39   좋아요 0 | URL
많이 나아졋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같이 사는 남성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건 흔하죠. 사실 그게 제일 편하잖아요. 그래서 뷰티산업과 명품산업, 성형산업 등은 여전히 성행하구요. 가부장제가 몇천년인데 이런 것들이 쉽게 변할까요? 그럼에도 세상이 변하고 있고, 많은 여성들의 삶과 생각이 변하고 있는건 맞다고 생각해요. 그 속도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빠르지 않아서 속은 타지만요.
혁명이 소수에 의해 시작될 수는 있지만 그 진행과 완성은 결국 구성원들의 연대에 의해야만 이루어진다는건 역사가 증명하잖아요. 그러니 이 좋은 책 열심히 읽고 같이 얘기하고 일상에서도 잘 떠들고... 그렇게 살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