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부터 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를 시작하면서 내가 아는게 너무 없구나, 이러다가 다음 달 책은 제대로 읽을 수 있으려나 하는 걱정 중, 여러 알라디너님들이 소개한 이 책에 눈이 번쩍 뜨였다.

자고로 입문이란 말을 달고 나오는 철학 책 치고 진짜 입문인 경우가 잘 없지만 그래도 입문인데 다른 책보다야 읽을만하겠지 싶어 이번 2월에는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와 함께 이 책 <페미니즘 철학 입문>을 같이 읽기로 했다.

물로 나 혼자서 한 결심!


아 그런데 정말 이 책 대박이다.

일단 정말 입문 맞다. 

철학 입문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음에도 알아 들을 수 있다. 심지어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강의를 책으로 옮긴 것이어서인지 알아듣기 쉽게 입말체까지 구사해주신다.

정말로 옆에서 저자의 강의를 듣는 기분으로 고개 끄덕여가며 책을 열심히 밑줄치며 읽게 된다.

어떤 분야든 입문이라 함은 그 분야에 초보인 이를 어떻게든 꼬드겨서 그 분야를 공부하게 하거나 하는 식으로 실제로 입문시키는 것이 최고의 성취일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성공작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정말 페미니즘 철학을 제대로 공부해야겠구나, 아 여태까지 이거 공부안하고 뭐했지?하면서 내 머리통을 쥐어박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심지어 이 책은 뭘 읽어야 될지 아예 텍스트를 알려준다. 

이 책에서 페미니즘 철학으로 이끄는 길잡이 책들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서재지인들과 함께 읽는 책 외에 늦게 출발한 나를 위해 이 책에서 소개하는 페미니즘 책들을 매달 1권씩 같이 읽어 나가는걸로.....




여성도 인간이다라는 외침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권의 옹호>


  18세기 프랑스 혁명기를 살아간 여성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한 계몽철학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얘기했지만, 그 인간에 여성이 포함되지 않았음을 질타하며 여성도 인간임을 천명했다. 

이성에는 여남이 없고, 인간의 영혼에도 차이가 없으니, 여남은 인간으로서 동등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프랑스 혁명 당시 여성이 단두대에 설 권리가 있으면 의정 단상에도 오를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던 올랭프 드 구주와 같은 시대의 같은 주장이다.

또한 프랑스 혁명의 결과 탄생한 공화정이 국민교육법안을 만들면서 소년들의 교육만을 반대하면서 여성-소녀들의 교육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이 책은 쓰여졌다고 하낟.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페미니즘 책이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에 관한 책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 주장하는 논지는 현대 민주사회에서는 헌법에 모두 반영이 되고 이루어졌다고 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법은 법이고, 현실이 그 법을 항상 다 반영하지는 않는 법이다.

몇 년 전 정의당의 류호정 의원이 국회에 원피스 하나 입고 왔다고 국회의원 자격이 있니 없니 떠드는걸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의 의식구조는 젊은 여성 국회의원이 어떤 정책을 이야기하고 실천하는가가 아니라 옷차림이 맞네 아니네로 여성을 평가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집안의 남자를 위해 다른 모든 여성형제들이 희생하던 시기를 벗어난 것도 사실 얼마 안된다.

아직도 실제 삶의 구석구석에서 여전히 민주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타자로서 여성의 정의하다 -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19세기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달리 20세기의 시몬 드 보부아르는 타자로서의 여성에 주목한다. 실존주의 철학자였던 보부아르에게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인간이 어떤 식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이다. 이 때 인간은 주체의 입장에 섰을 때 자유를 누릴 수 있는데 여성은 역사에서 주체의 외부에 위치한 타자의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여성이 타자의 위치에 있는 한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 보부아르에 의하면 여성은 인간이 아니었고 결코 자유로운 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젠더로서의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것이 여성성의 신화를 만들어낸다. 이 여성성의 신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남자다. 그들 중심의 지배권력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남성의 대척점에 여성을 두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여성성의 신화는 특히 프로이드에 의해서 강화되어지는데, 프로이드의 가족모델에서 여자는 언제나 결핍된(바로 페니스가) 존재, 타자, 없는 존재가 된다. 이에 대해 보부아르는 이것이 바로 가부장제고, 이게 원초적으로 여성을 옭아매는 억압이라는 통찰을 보여줌으로써 2세데 레디컬 페미니즘을 예고한다. 




여성성이라는 신화를 부수며 - 베티 프리단 <여성성의 신화>



2세대 페미니즘을 열어제낀 책. 

남성이 말하지 않는 여성성에 대해서 여성인 내가 이야기할 것이라고 선언하고,남성이 규정했던 그 여성성이 신화라는걸 밝혀내고 그 신화를 깨는 책. 그 신화를 만든 것이 가부장제라는 것을 명확히 규정해낸다.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문제가 이거야라고 할 때 진정으로 그것에 대해서 사고하기 시작하고, 거기서부터 모든 운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외침을 통해 사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구분을 하는 주체가 남성,  가부장제임을 밝히고, 가부장제의 억압이 바로 정치적인 것을 밝힘으로써 여성이 자신의 주체성을 온전히 되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럼으로써 여성들이 가부장제를 깨고 자신의 사회적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성 계급을 호명하며 자궁으로부터 해방을 선언하다.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


마르크스주의자로서 파이어스톤은 여성 자체를 하나의 계급으로 호명한다.

규정은 항상 중요하다. 이름을 불러 줄때 우리는 꽃이 되기도 하지만 이름을 명확하게 부름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성취할 수 있는지가 명확해지기도 한다.

마르크스는 계급문제가 해결되면 나머지는 모두 부차적인 문제이므로 여성문제 역시 해결되리라 낙관했지만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파이어스톤은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재생산을 강조하고, 재생산을 이끄는 중요한 단위가 가족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가족 안에서 근본적인 착취가 일어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쓰고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동안에 그 많은 자식들은 누가 돌보았을까를 생각해보면 자명한 문제다.

그럼으로써 파이어스톤은 아예 가족제도를 없애자라는 데까지 논지를 펼치고, 아동기에 대한 환상도 깨면서 사회적인 양육까지 제시하는데로 나아간다. 

파이어스톤의 논지는 주장 자체는 다른 의견들에 비해서 과격하지 않은데, 그것이 이른 결론에서는 가장 과격한 또는 급진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대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의 문제는 차치하고 이런 대안에 이르는 과정은 흥미진진할 듯하며, 동시에 이런 대안이 품고있는 문제의식이나 다양한 가족의 형태, 아동양육의 형태에 대한 고민을 살펴보는 것은 충분히 유의미할 듯하다.


자매들의 밖에 서서 자매들에게 차이의 문제를 묻다 -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



이 언니 진짜 세다. 정말 멋지다.

페미니즘 철학 입문에서 소개되는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모두 멋지지만 역시 최고는 오드리 로드 이분이다. 

앞의 페미니스트들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들이 말하는 여성은 누구냐고? 하나의 개념으로 묶인 여성이란 결국 백인 중산층 여성이 아니냐고 말이다.

여성은 하나가 아니라 복수이고, 여성이라는 말 안에 단수의 여성은 없다고 말하면서 여성 내부의 차이에 주목하라고 요구한다. 여성을 단수적 존재로 이해할 때 그것은 필연적으로 백인 여성을 중심에 두는 것이고 나머지 흑인 노동자 노인 등의 여성은 주변으로 소외된다는 것을 말한다.

단일한 대오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단일한 대오는 - 실제로 단일한가와의 여부와 관계없이 - 기존의 가부장제가 여성을 타자로 만들었던 방식과 결국은 같은 방식이며 이런 방식으로는 여성 내부의 다양한 존재와 차이,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여성 내부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분열이 아니라 오히려 운동의 역량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저항운동에서 차이를 말하면 배신자 취급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당당하게 차이를 주장하고, 그 차이를 더더더 많이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운동의 역량이라는 것을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것. 철학적으로 훌륭할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진정 용기있는 여성이다. 원래 내부자 고발이 제일 어려움 법이니 말이다.

다른 여성들이 각자 다른 자신의 처지와 주장과 삶을 다양하게 얘기함으로써 각자의 다른 대안을 만들 수 있도록 하라는 주장이 어떤식으로 펼쳐질지 가장 기대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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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2-02-28 06: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좋은 책 또 좋은 책들!!!!!!!!❤️❤️❤️

바람돌이 2022-02-28 11:47   좋아요 2 | URL
진짜 좋은 책들의 행진 맞아요. ^^

책읽는나무 2022-02-28 06: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요!
바람돌이님께 수업 듣는 학생들 부럽다!!
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입문자라 이 책 사놓기만 했는데 읽어 보고, 다른 책들도 더 읽어봐야 겠네요.
어떻게 여성주의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더 많이 읽어야 겠구나!! 란 생각이 자꾸 드는 걸까요?모르는 게 넘 많아서 그렇겠죠?ㅋㅋㅋ
바람돌이님과 함께 읽어서 좋았습니다.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에요.
좋네요.좋아~^^

바람돌이 2022-02-28 11:49   좋아요 3 | URL
하하 아이들은 뭐 좋아하는 애들도 있고 싫어하는 애들도 있고... 음 아무생각없는 애들이 제일 많겠네요. ㅎㅎ 이 책 입문용으로 정말 좋았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여성주의 책 읽는데 기본 지도가 되겠구나했어요. 저도 나무님과 같이 책읽어서 좋네요. 3월에도 같이 해요^^

미미 2022-02-28 08: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철학 입문> 저도 너무 좋았는데 소개된 책들까지 바람돌이님이 잘 정리해주셔서 다른분들에게도 도움이 될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2-02-28 12:07   좋아요 1 | URL
제가 볼려고 정리하는 거죠. ㅎㅎ 이 책 읽으면서 저기 나온 책들 꼭 읽고싶다는 생각이 막막 들더라구요.

단발머리 2022-02-28 08: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반정도 읽고 아껴두고 있는데ㅎㅎ 서둘러 읽어야겠어요. 관련 책들 링크해 주시고 정리해 주셔서 넘 좋네요!!

바람돌이 2022-02-28 12:10   좋아요 2 | URL
아 저는 마지막 오드리 로드 편이 진짜 좋더라구요. 앞부분 읽으면서 드는 페미니즘에 대한 약간의 미진함을 한방에 날려주는.... 단발머리님의 평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2022-02-28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8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02-28 17: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아들을수 있다는 말에 용기 얻어봅니다 ㅎㅎ

바람돌이 2022-03-02 01:11   좋아요 1 | URL
철학이라는 말에 주눅들지 않아도 됩니다. 네 저는 주눅들었었으나 이 책은 정말 쉽게 썼어요. mini74님의 리뷰도 기대하겠습니다. ^^

희선 2022-03-01 00: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철학 입문》을 보시고 거기에서 소개하는 책도 보시려는군요 멋지네요 그런 게 바람돌이 님 뿐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도 좋을 것 같아요 여기에서 글을 보는 사람한테도...

바람돌이 님 삼월이에요 좋은 삼월이기를 바랍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2-03-02 01:12   좋아요 1 | URL
삼월은 제게는 항상 너무 바쁘고 정신없는 달인지라 항상 3월이여 오지마라를 외칩니다. ㅎㅎ 그래도 올해는 제가 조금 여유가 있을 거 같아 마음이 조금 덜 부담스럽네요. 그래서 열심히 읽어보려고요. ^^ 희선님도 좋은 삼월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