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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소장품 -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 ㅣ 츠바이크 선집 (이화북스)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2년 1월
평점 :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은 항상 몰입감이 대단하다.
읽다보면 작중 인물의 감정에 나까지 휘말려 드는 느낌이랄까?
아마도 주인공의 감정상태를 묘사하는데 이 작가 진정 진심이라는 느낌이다.
온 세계, 온 자연이 주인공의 감정과 함께 부르르 떨고 요동을 친다는 그런 느낌이다.
아마도 그래서 츠바이크라는 작가가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작가가 되지 않았을가 싶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는 얼마 전에 읽었던 로맹 가리의 <마지막 숨결>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 책의 첫번째 단편 <폭풍우>가 그랬다.
감정이입으로 최고랄까?
로맹가리와 츠바이크 모두 독자를 주인공의 감정속으로 휘몰아 가는데 있어서는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다만 로맹가리의 단편은 언제나 마지막 강력한 한방 어퍼컷을 날린다는 점, 그럼으로써 너의 그 감정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봐라 하면서 판을 깨버리는 면에서 내가 더 좋아하는 작가다.
츠바이크는 다르다. 주인공의 그 고양된 감정속에 계속 독자를 붙들어맨다.
어느쪽이 더 여운이 남는가는 아마도 독자의 취향이나 이들의 책을 읽을 때의 독자의 감정상태 이런 것에 따라 다르지 싶지만 어쨌든 두 작가 모두 독자를 감정의 과잉, 고양으로 이끈다는건 공통점이라 할 만하다.
덕분에 이들의 책을 읽는건 언제나 두근거림을 동반한다.
첫번 째 단편인 <아찔한 비밀>은 내내 피식거리면서 읽었다.
오스트리아 잼머링이라는 휴양도시에 휴가를 온 젊은 남작과 12살 남짓의 아이의 건강 회복을 위해 아이와 함께 휴양을 온 여성. 바람둥이 남작은 아이 엄마와의 휴가철 원나잇을 계획하고 열심히 아이 엄마를 꼬드긴다.
물론 그를 위해서 먼저 아이에게 접근해서 호감을 사는건 기본.
그러나 이 아이 에드가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초기 아이 엄마에게 남작이 접근할 기회를 주었으면 그 다음에는 얌전히 아이답게 찌그러져서 말 잘듣고 잘 자러 가고 해야 하는데 이놈이 글쎄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아직 사춘기에 들어서지도 못한 아이는 뭔가 이상하다는걸 느끼지만 엄마와 남작사이의 성적 긴장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다만 자기와 먼저 친해진 남작이 엄마와 더 친해지는걸 이해할 수 없고, 더욱이 엄마와 친해지기 위해 자기를 이용했다는걸 깨닫는 순간 맹렬한 분노에 불타오르며 어떻게든 어른들을 감시하는 것으로 복수하기 위해 애를 쓴다.
아이의 맹목적인 분노, 어른 둘의 애가 타는 성적 긴장과 아이에 대한 짜증같은 것들이 손에 잡힐 듯 느껴져 읽으면서 아 어떡해 에드가. 그냥 너희 엄마는 오랫만에 한 번 불타보려는거야 잠시만 어른들 좀 놓아주면 안되겠니? 하다가, 또 아니 남작이야 나쁜 놈이니까 그렇다치고 엄마가 아이 앞에서 그러면 안되지 하다가 하여튼 이들의 감정선을 따라 내 감정도 요동을 치면서 갈팡질팡한다. 그래 이 맛이 츠바이크의 맛이다.
아이의 무분별한 모험 이후 나름 평온을 찾는 아이와 엄마의 관계지만 정말 그럴까?
아이는 마지막 엄마의 포옹이 앞으로 자신의 삶에 쓰고도 달콤한 짐으로 남으리라는 얘기를 하면서 이 해피엔딩 아닌 해피엔딩을 맞지만 이제 아이를 졸업한 에드가의 삶에서 이 사건은 아마도 영원한 영향을 주지 않을까?
두번째 단편 <불안>은 정말 불안에 대한 탁월한 묘사를 자랑한다.
별생각없이 불륜에 빠져든 이레네라는 여성이 그 사실을 한 여성에게 들키게 되고 협박을 받으면서 일어나는 이레네의 마음속 폭풍을 잘 묘사하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안락한 가정의 편안함을 버릴 생각이 일도 없기에 이레네는 전전긍긍한다.
그녀의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풍, 불길한 예감 어느 하나 공감이 가지 않는게 없어 어쩌면 작가가 이런 불안을 실제 겪은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물론 츠바이크의 삶을 생각하면 그건 아닐 거 같지만.....
다만 결말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장르소설같은지라 소설 전체의 완성도는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의 감정의 고양을 묘사하는 능력은 여전하다.
세 번째 단편 <세 번째 비둘기의 전설>은 노아의 방주에서 노아가 보낸 세 번째 비둘기를 모티브로 당시 전쟁에 고통받던 유럽에 대한 평화의 메시지로 읽힌다. 다만 워낙 짧고 소설이라기보다는 에세이로 읽어도 무방할듯....
네 번째 단편인 <모르는 여인의 편지>는 민음사판에서 읽었던 단편이다. 이 소설에 대해서 혹평을 했던게 기억나는데, 내 요지는 이봐요 츠바이크씨, 여자는 이런 식으로 사랑하지 않아요였었다. ㅎㅎ
이 책의 역자해제에 보면 이 소설을 보는 다른 관점이 소개되는데 흥미로웠다.
실제 츠바이크의 초기 삶이 이 소설 속 남자 주인공 유명 소설가 R과 비슷했다는 것, 첫 번째 부인과 결혼해 있으면서도 일년에 두달 정도는 마음대로 여행을 떠나고 그 동안 온갖 여자들과 연애를 하고, 심지어 그 연애이야기를 상세히 편지에 써서 첫번째 부인에게 보냈다지. 누가? 츠바이크가.... 완전 나쁜 놈!!!! 느낌표 백개쯤 붙여야 할듯.
그래서 이 소설은 자신의 그런 지난 삶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 역자의 해제인데, 츠바이크의 실제 삶을 알고 나니 이 소설이 반성문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좀 들기는 한다.
반성일지, 자랑일지 어느쪽일지는 글쎄 츠바이크씨만 알겠지.
다섯번째 단편인 <보이지 않는 소장품>은 츠바이크 소설에서는 드물게 온화한 휴머니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우화 같은 소설이다. 아 츠바이크가 이런 소설도 쓸 수 있었구나 싶어 신선하게 느껴지는, 그러나 그 덕분에 츠바이크만의 매력을 느끼기는 힘든 소설.
여섯번째 단편 <어느 여인의 24시간>이야말로 이 소설집의 백미라 할만하다.
그의 장점인 휘몰아치는 감정과 그것의 비정상적인 광기,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생을 한순간에 일탈과 파멸로 몰아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린듯 완벽한 부르조아적 삶을 살던 이 여성, 어느날 남편은 죽고, 아들들은 다 컸고, 어디에도 자신의 존재가치는 보이지 않는 간단히 말하면 돈은 있고 할일이 없어서 삶이 권태로운 40대초반의 여성이 있다.(이 대목에서 솔직히 나도 좀 이렇게 할일이 없어서 권태로워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건 안비밀. ㅠ.ㅠ)
삶의 무료함에 지쳐가던 이 여성이 어느 한 날 몬테카를로의 한 도박장에서 한 젊은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 순간부터 24시간동안 평생 겪었던 것보다 더 격렬하고 더 많은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된다.
사실상 우리들이 일상에서 이런 감정을 겪을 일은 그다지 없어 비현실적이다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건 겪어보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일. 또한 그것을 이렇게 탁월하게 당연하게 그 감정의 진화를 인정하게 하는 것 역시 츠바이크의 작가적 능력일 것이다.
살아간다는건 늘 짜릿함보다는 일상의 무료함과 반복에 지친다는게 더 맞는 얘기일 듯하다.
그러 날, 소설을 통해 일상의 지지부진함을 벗어나고 싶다면 잠시 츠바이크의 책을 들여다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