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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주의자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68
알베르토 모라비아 지음, 정란기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평점 :
엄격하다기보다는 무관심한 부모 밑에서 자란 열세 살 소년 마르첼로는 자신의 남다름을 인지하고 괴로워한다. 이후 그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정상성에 대한 열망, 모두가 인정하는 일반적 규칙에 부합하려는 바람. ‘다르다’는 것이 ‘죄’를 의미하는 순간부터 그의 유일한 소망은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들처럼 결혼을 하고 남들과 같이 파시즘을 추종하며 평생에 걸쳐 집요하게 ‘정상’을 추구했지만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비정상으로 구성된 표면적인 정상이었다.(알라딘 책 소개글)
이 작가의 앞서 나온 책 <경멸>이 딱히 내 취향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저 소개글 때문이었다.
정상성과 비정상의 비교와 강박에 시달리는 주인공
그것이 파시즘 치하의 이탈리아와 연결되며 주인공의 삶이 펼쳐진다면 왠지 스펙트클하게 재밌지 않을까라고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아 그런데 알베르토 모라비아라는 이 작가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문학의 대표자라고 평가받는다는걸 그 새 또 까먹었다.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이 그러하듯이 이 책 역시 철저하게 현실에 기반을 둔 책일 것이라는걸 망각했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이 어디 그렇게 스펙터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앞뒤가 딱 맞아 들어가게 이해되는 삶은 또 어디 있을까?
앞에 봤던 <경멸>이 읽기 힘들었던 이유는 남자 주인공의 경멸스러운 행동이 정말 너무 경멸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내 독서인생 남자 주인공 중 찌질남 1위로 단번에 등극했으니까....
이 책 <순응주의자>역시 주인공이 정상성에 집착하게 되는 계기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나는 뭔가 남들과 다른 거 같아라는 강박을 경험하지만 또 모두가 그것에 집착적으로 시달리는건 아니다. 하지만 또 분명한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별거 아닌 경험이 어떤 이에겐 유난한 집착으로 남게 되는 경우 역시 현실적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주인공의 강박은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다 어디 한 군데씩은 뒤틀려 있으니까.....
주인공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아 정말 너무 이 인간 현실적이다.
정상성에의 집착으로 대세를 따라 파시즘 정부에 참여하고, 남들과 같이 결혼을 하고, 정상적인 가정을 가지고 싶어하고, 그 과정에서 뭔가 일탈인듯한 면이 보일 때마다 자신을 다잡고하는 모습을 보면 약간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드는 우리의 주인공!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이 놈 도대체 뭐야라는 생각을 하게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분명히 강박이라고 했는데, 한 눈에 반한 여성이 등장하자 자신의 그간의 정상성에의 집착을 모두 던져 버리고 바로 올인할 태세를 갖추어버린다.
심지어 거기에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고 말이다.
오로지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한 인간으로의 태세 변환이 이렇게 빠를 수가.....
그렇다고 그의 그 충격적인 사랑이 공감이 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주인공은 사랑을 말하는데 독자인 내가 느끼는건 지독한 자기애다.
그러므로 예기치 못하게 사랑이 끝났을 때도 주인공은 다시 정상성에 집착하던 자신으로 다시 확 돌아가버리니말이다.
지나치게 현실적이라서 매력은 눈꼽만큼도 안 느껴지고, 공감하기는 더더욱 힘들고,
그래서 책장은 점점 안 넘어가고.....
그런데 이상하게 안 읽히는 이 책을 중간에 던지지 않고 끝까지 읽게 하는 힘도 바로 이 주인공에 있다.
그래 니가 어디까지 가나 한번 보자 이런 기분이랄까?
파시즘이 끝장났을 때, 너의 인생이 뿌리부터 모두 흔들릴 때 너는 도대체 어떻게 할거니라는 궁금증에 결말까지 책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결말은 좀 충격적이었다.
인생 한방에 갈 수 있어. 네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말이야라고 말하는 듯해서....
읽은 두권의 책이 이런데 내게 다시 이 작가의 책이 출간되면 읽을거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네 읽겠습니다이다.
읽을 때는 주인공 욕을 바가지로 하며 읽고 있는데, 두고 두고 생각이 난다.
아 정말 인간이란......
저 말줄임표에 들어갈 수 있는 무수한 말들이 바로 이 작가의 뛰어난 점이라고 생각하면서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