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플에서 아주 좋아하는 기능 중에 옛날 옛적에 내가 쓴 글을 보여주는 기능이 있는건 다 아실거다.

내가 알라딘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게 15년전부터 11년전쯤이니까 그 때 글들이 다시 올라오면서 정말 추억이 새록 새록 돋는거다. 이 때는 아이들 얘기도 많이 썼으니 아유 우리 애가 이런 말도 했었구나 하면서 신기해한다.

그런데 역기능도 있었다.

 

어제 아침 북플에 올라온 나의 옛날 글을 훑어 보는데 세상에 내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무려 2008년에 읽었다는 것.

이게 왜 문제냐고?

나 얼마전에 이 책 다시 읽었다.

 

 

 

 

 

 

 

 

 

 

 

 

 

 

2008년에 읽은 책과 2020년에 읽은 책.

2020년에 저 책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한번도 내가 이 책을 읽은 책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내용 중 아는 것들이 많이 나와도 그건 내가 다른 책에서 읽고 아는 거지, 2번째 읽는거여서 그렇다는 생각은 절대 안했다.

솔직히 이 책이 2번씩 읽고 싶을만큼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노화에 의한 기억력 상실을 애통해한다. ㅠ.ㅠ

 

사실 나의 기억력의 문제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한동안 팟캐스트의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참 열심히 들었다.

어느 날 내가 보고 싶어 하던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에 대한 방송이 나왔다.

"아 이 책 보고 싶었는데...."하면서 열심히 방송을 들었다.

 

 

 

 

 

 

 

 

 

 

 

 

 

 

아 역시 재밌겠네 하면서 열심히 듣고 있는데 방송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오는 장면 설명이 너무 익숙한 거다.

어 이장면 분명이 아는 장면인데? 어 내가 이 책을 봣나? 내가 어떻게 이 장면을 알지?

그날 저녁 알라딘 서재에 들어와서 찾아봤다.

그리고 나의 리뷰를 발견했다.

읽고 리뷰까지 쓴 책을 방송 끝까지 안본줄 알았다니...

이것은 책이 그만큼 임팩트가 없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나의 노화수준이 치매로 가고 있는 것인가?

 

 

기억과 관련된 마지막 슬픈 기억.

꽤 오래전인데 역사토론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물론 관객으로...)

그 때 발표를 맡았던 사람 중에 한명이 아는 후배였는데, 발표 자료집에 자기 발표문을 쭉 써놓고, 마지막에 인터넷에서 퍼온 글을 첨부하면서 당시 발표 주제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이 잘 정리되어서 퍼왔다고....

그 인터넷 첨부물을 보면서 "야 이사람 진짜 내 생각이랑 비슷하다. 누군지 진짜 정리 잘했네"이러면서 주절주절거렸다.

그런데 그 퍼온 글 중의 한 문장이 머리에 꽂히는거다.

이 문장 너무 익숙한데 뭐지?????

역시 집에 와서 찾아봤다.

내가 쓴 글이었다.

 

 

 

 

 

 

 

 

 

 

 

 

 

 

알라딘 서재에 쓴 글은 아니고 다른 곳에 위 책에 대해서 쓴 글이었는데......

이 때는 내가 노화를 핑계 댈 수 있는 때도 아니었으니까 읽고 까먹고 머리를 완전히 리셋하는건 결국 나의 천형인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가끔 알라딘에서 여러 책을 아우르면서 글을 쓰는 분들을 보면 막막 존경심이 솟구친다.

아 읽었다고 다 기억하는게 아닐텐데 어떻게 이렇게 쓰지?

내가 문제인건가?

나는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건가?

하여튼 광기와 우연의 역사로 인하여 또 다시 나의 기억능력에 자괴감을 한껏 느끼게 되는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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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3-07 00: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기억에서는 지워졌지만, 그 책은 나를 키웠을 거라 생각합니다. 콩나물 키우는 걸 떠올리며 말이죠.
머리를 리셋하는 건 천형보단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게다가 본인이 쓴 글을 칭찬하셨다니 그보다 뿌듯한 때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괴감은 흘려버리시고 많이 읽으시고 많이 써주시길~ 애독자의 1인으로서 바래봅니다~😊

바람돌이 2021-03-07 01:47   좋아요 2 | URL
역시 위로의 대가 툐툐님입니다. 자괴감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그래 내가 그런 사람이야라는 자만감 모드로 확 바뀌고 있습니다. ㅎㅎ

붕붕툐툐 2021-03-07 10:49   좋아요 1 | URL
아이쿵~ 진짜 위로의 대가이신 바람돌이님께 이 말을 들으니 저도 어깨에 뽕이 차오르네여~ㅎㅎ

mini74 2021-03-07 00: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 당연한 거 아닌가요? 막 두번 세 번 읽고 두 권 세권 사고 ㅎㅎ 저도 그래요.ㅎㅎ저희 남푠이 그러더라고요. 밥 먹는 것만 안 까먹음 된다고 ㅎㅎ

바람돌이 2021-03-07 01:48   좋아요 3 | URL
아 밥먹는거 안까먹는건 정말 자신있어요. ㅎㅎ 우리집 남편이가 가끔 밥먹는거 까먹고 일하다 왔다고 저한테 배고프다고 난리칠 때 절대 이해 안되는 사람이 접니다. 그래서 제가 다이어트를 못해요. ㅎㅎ

scott 2021-03-07 00: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 신판 다시 갖고 싶다앙 ㅎㅎ바람돌이님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넘 책을 많이 읽으셔서 뒤로 밀려난것 뿐 ^ㅎ^

바람돌이 2021-03-07 01:49   좋아요 3 | URL
안돼요. scott님. 완역판 나온거 보고 살짝 물욕이 생겼지만 저는 잘 누르고 있어요. ㅎㅎ
근데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건 아닌 것 같아요. 진짜로요. ㅎㅎ

희선 2021-03-07 01: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읽었던 걸 잊어버렸다 해도 나중에 기억했잖아요 재미있게 본 거여도 시간이 가면 잊어버리기도 할 거예요 잊어버렸다고 생각해도 기억은 다 사라진 건 아니다는 말도 있던데, 그 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자신이 본 책이 늘어나면 잊어버리겠습니다 사람은 기억하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하죠


희선

바람돌이 2021-03-07 01:59   좋아요 4 | URL
광기와 우연의 역사는 기억 못했어요. 저는 끝까지 처음 읽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니까요? ㅎㅎ
그래도 책 읽은건 잊어버려도 되는데 사람은 안 잊어버리면 좋겠어요. 물론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요. 희선님 말씀 덕분에 또 힐링이 됩니다. ^^

미미 2021-03-07 08: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보면 작가들조차 자신이 쓴 책에 대해 잊곤 한다고 나와요. 바람돌이님은 너무나 정상이예요~이렇게 재밌는 상황을 인식했다는 걸로도 아주 젊은 뇌의 상태를 잘 유지중이시라 생각해요.
자신의 글에 대한 재발견 이기도 했으니까 멋진경험이기도 하구요.^^♡

바람돌이 2021-03-07 20:14   좋아요 2 | URL
작가들은 한 작품 쓸 때마다 영혼을 갈아넣지 않나요? 음 그렇다면 영혼은커녕 잡담만 널어놓는 제 글을 제가 잊어버리는건 지극히 정상적인 거겠군요. 마음이 좀 펀안해집니다. ㅎㅎ

미미 2021-03-07 20:20   좋아요 1 | URL
참고로 같은 해 11월에 이화북스에서 <광기와 우연의 역사>완역판이 나왔어요. 옮긴이도 다르구요ㅋ

그레이스 2021-03-07 09: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쥐스킨트도 같은 현상을 얘기하던데요.
서재에서 책을 뽑아서 몇페이지 읽다가 의자에 앉아 한권을 다읽고 같은 문장에 감동받고 쳌 하면서 비로소 자기가 읽었던 책이었다는 생각에 잠시 멍해지는 현상.
제 기억으로는 <깊이에의 강요>였던것 같은데....
저도 가끔...
그래도 개정판을 사셨네요^^

붕붕툐툐 2021-03-07 10:51   좋아요 2 | URL
그래도 개정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03-07 20:17   좋아요 2 | URL
같은 문장에 감동받고.. ㅋㅋ
사람의 생각이란게 잘 안 바뀌니까 아마 저도 그럴거같아요. ㅎㅎ
아 저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어요. 따지고 보면 구판과 개정판을 각각 읽은거니 다른 책이라고 우겨볼랍니다. ㅎㅎ

psyche 2021-03-08 07: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일이 너무 많아서..... 저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ㅎㅎ

바람돌이 2021-03-10 23:26   좋아요 0 | URL
psyche 님 다행입니다. 저만 그런게 아니라서... ㅎㅎ

유부만두 2021-03-08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로 윗 댓글처럼 ... 저도 그래서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

바람돌이 2021-03-10 23:27   좋아요 0 | URL
글쎄말예요. 저도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이러다 다들 까먹고 다시 사는 책, 다시 읽는 책이 누가 더 많은지 경쟁이라도 해야 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