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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리네 집 1 - 나 땜에 너 땜에 산다 ㅣ 보리 만화밥 2
장차현실 지음 / 보리 / 2015년 8월
평점 :
여느 집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 복닥거리며 바쁘게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 또리네 집.
그림 그리는 엄마랑 재혼한 연하의 남편이랑 사춘기 다운증후군 은혜랑 어린 또리가 함께 산다.
새해 아침, 식구들이 자길 버리는 악몽을 꾸다 깨서, 꿈인게 너무 다행이라 여기는 엄마는 생각한다. 식구들에게 늘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오히려 가까운 사람에게 소홀하기 쉬우니.. 그러자면 나 스스로 밝고 가벼운 마음이 되도록 애써야 할 거라고!
(첫 에피소드부터 마음에 든다. 나도 항상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가 있다. 결론은 늘 하나. 내가 밝고 가벼워져야겠다.)
작가 장차현실이 보여주는 가족이야기는 무척 솔직하다. 부부사이의 찐한 애정행각도 있고, 사춘기 은혜의 성에 대한 호기심에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엄마는 은혜가 그렇게 자란게 반갑지만 장애 여성의 성 정체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세상이 두렵다. 이런 현실에서도 은혜가 여자로 꿋꿋이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는 엄마는 은혜의 성적 호기심에 가능하면 자세하게 이야기해준다.
그러던 어느날 은혜의 한마디!
˝나 잠 못잤어요. 사랑하면 하는거 나도 알아요. 사랑하면 하세요, 근데.... 문닫고 하세요.˝
ㅋㅋㅋㅋㅋ 더 웃기는 건 그날밤 이 부부의 이불속 대화다.
사회성이 강한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 관계맺고 싶어하는 욕구가 크다. 그래서 친구관계, 애정관계에도 기대가 크다. 순수하고 맑은 은혜는 남의 속뜻을 읽지 못한다. 엄마는 그런 은혜에게 거짓말을 가르치고 싶다. 겉으로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는 은혜에게 속마음과 다르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건 무척 어렵다. 그럴 때 엄마는 우울하다.
˝세상에 불필요하게 태어난 생명은 없다. 누구나 원하는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것을 배려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애들 키우며 밥벌이 하느라 늘 바쁜 엄마는 선배의 장례식장에서 잊을뻔 했던 친구들과 선배들을 만났다.
여자들은 우정을 이어가는 게 무척 힘들다. 하루하루가 눈코뜰새없이 지나가버리니 모임이나 인맥을 꾸준히 만들어가는 남자들과 달리 애초 있던 우정을 지키기도 힘이 든다. 그렇게 친구를 다시 만나는데 십년이나 걸렸던 엄마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바닷가로 놀러간다.
엄마 장차현실은 26살에 다운증후군 은혜를 낳았고 전남편과는 이혼했다. 어느날 겁없는 남자 동일이 그들에게 다가왔고 또리가 태어났고 그들은 가족식을 올렸다. 아이들과 함께 하니까 결혼식이 아니라 가족식! 엄마는 바란다. 여러 모습의 가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따뜻한 세상을.
학교를 졸업한 은혜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번다. 세상에 나온 은혜에게 또 이런 저런 시련이 닥친다. 아니, 우리가 보기엔 시련이라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은혜는 늘 당당하다. 그런 모습이 참 좋다.
그런 은혜지만 남과 다른 자기 외모를 알아채면서 힘들어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엄마는 은혜가 자기 모습에 당당하길 바라지만 은혜는 세상에 들끓는 미적 기준에서 점점 멀어져만 간다. 어느날 엄마가 아는 사람의 사진전에 모델로 참여하게 된 은혜. 오랜동안 그들을 주눅들게 했던, 아무에게도 보이지 못했던 몸을 드러내고 당당하게 사진을 찍는 사진전. 나도 기사로 본 것 같은데, 은혜도 그 사진전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딸을 보며 우리나라가 이렇게 빨리 발전하니 복지도 그럴거라 생각했다. 아이가 자랄즘엔 좋아지겠거니 한거다. 그런데 복지가 자라기 전에 아이가 먼저 자랐다. 돈이 없으니 닥치는대로 일을 해야 했다.
은혜가 자라는 동안 사람들한테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어른이 되었을 때도 늘 많은 사람들 속에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은혜는 변변한 친구 하나 없이 스물한 살이라고 보기엔 너무 늦되고 지루하게 살고 있다. 은혜가 이렇게 외로운 20대를 보내게 될 줄은.... 이럴 줄 몰랐다.
은혜가 기숙사로 들어가며 방에 남겨 놓은 편지의 첫 마디.
˝엄마 내가 못나게 태어나서 미안해.˝
엄마는 이십년 후 내 옆에 있는 은혜를 그려본다.
가족들과 함께 울고 웃고 아둥바둥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이나 다를게 없다. 그래서 읽다보면 같이 웃고 같이 울고 공감하며 힘을 얻는다.
작가는 그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여자들에게 이 말을 건넨다.
˝지금의 힘든일은 미래의 좋은 일의 포석! 됐어! 꼭 잘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