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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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심지어 유일하기까지 했던 직장은 서울 한가운데, 산 중턱의, 숲 속에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23살부터 30살까지 만 7년을 일했고, 처음 2년은 혼자서 일했다.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나의 작은 자취방까지 그 숲근처에 구해놓고 혼자 외따로이 살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이를 닦고, 걸어서 15-20분쯤 되는 호젓한 산길을 혼자 자박자박 걸었다. 사무실에 도착해 문을 열고, 혼자 일을 하다, 혼자 점심을 먹고, 몇통의 전화를 걸고 받고, 그리고 다시 사무실 문을 닫고 혼자 자박자박 걸어 집으로 갔다. 하루종일 누구도 만나지 않는 날도 종종 있었고, 하루종일 입 한번 떼지 않았던 날도 가끔은 있었다.  

생각해보면 사실 그렇게 널널한 직업은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없이 많은 전화통화를 해야하는 직업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난 정말 많은 일을 해치웠고, 그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그야말로 새롭게 맺어왔는데, 게다가 처음 2년을 제외하면 내내 일하는 사람들이 들고 나는 사무실이었는데 왜 내 기억속의 나는 항상 외따로인건지 모르겠다.  

그 숲 속으로 숨어들 때, 그래, 숨어들 때, 나는 내가 '숨어든다'라는 걸 의식하며 숨어들었다. 그 숲의 산 그늘 속에 꼭꼭 숨어 숲과 함께 숨 쉬는 나무이고 싶었다. 숲은 한없이 고요했고, 침묵과 외면에 능했으며, 시침떼기도 잘 했다. 그러면서 숲은 때로 나의 기쁨과 함께 자지러졌고, 나의 슬픔과 함께 통곡해주었다. 20대 중후반의 시기에 나에게 그 숲과, 그 나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그곳은 정말, 현실적인 의미의 '내 젊은 날의 숲' 이었다.  

김훈의 이 책이 나왔을때, 그 표지의 백색과 은청색이 가지런히 섞인 문양은 겨울숲을 연상하게 만들었고, 나는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나의 유폐를 떠올렸다. 내가 혼자서 세상을 왕따시켰던 그때, 그때의 그 평화와 그 외로움과 그때 맺었던 인간관계들의 기묘한 단절감들을. 여전히 세상을 왕따시키고 싶어하는 나를.  

이 책의 내용도 그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세상에서 유폐 시키는 사람. 숲 속의 적막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 숲 속의 나무들이 그러하듯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만을 원하는 사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이 참 그렇다.  

   
  본다고 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본다와 보인다 사이가 그렇게 머니까 본다와 그린다 사이는 또 얼마나 아득할 것인가
p. 187 
 
   

 

주인공은 본다와 보인다 사이의 간극을 인정한다. 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설사 그 간극을 뛰어넘어 본다와 보인다 사이의 거리를 없앤다고 한들 그것을 그려내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이다. 영원히 넘어설 수 없는. 내가 아는 너는 이미 너라는 본질에서 벗어난 '내가 아는 너' 일 뿐이고, 네가 아는 나 역시 마찬가지이니, 내가 너에 대해 말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에 대한 깨달음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것을 인정함으로써 그것에서 벗어난다. 나는 내가 아는 너 만큼만 너에게 접근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김훈이 변했다.  

단 한번도 희망에 관한 말을 해 본적 없던 김훈이, 이 글에서 처음으로 마지막의 여운을 남긴다. 그것이 비록 희망아닌 희망이고 의미없는 희망이라고 해도, 김훈은 처음으로 사람과 사람과의 소통을 말하고 있다.  

내 젊은 날의 숲을 통과해 나오며, 숲의 치유력의 영향을 입은 것일까. 주인공이 입은 그런 치유력을 김훈도 입은 것인가. 희망을 말하는 김훈의 문체는 여전히 예리하고 날렵하지만 따뜻해졌다. 아. 김훈의 글이 따뜻하게 읽히는 날이 다 오다니. 김훈선생께서 늙으신 겐가.

나는, 33살, 내 젊은 날의 숲에서 나왔다. 순순히는 아니고 자유의지는 더욱더 아니고, 그럼에도 불가항력으로 나는 내 젊은 날의 숲을 나왔다. 나왔으되 버리지는 않았다. 숲이 준 것들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언젠가 나는, 다시 내 젊은 날의 숲으로 돌아갈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2010.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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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토끼 2011-01-0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잘 읽었어요 ^^ 매번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글 솜씨에 비해서 방문자수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블로그 모음 사이트에 가입하셔서 더 많은 분들에게 노출시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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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 올해도 원하시는 일 이루세요~!!

아시마 2011-01-03 19:12   좋아요 0 | URL
네. ^^ 그렇군요.
올해도 원하시는 일 이루세요. ^^

blanca 2011-01-02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다시 내 젊은 날의 숲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김훈의 문장은 '벼린다'는 용어가 항상 떠올라요. 한겨레21의 편집장 일기를 보니 문체가 거의 비슷해서 기자 문체라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아시마님의 문장들도 정결하고 깔끔하고 그래요. 아시마님이랑 저랑 동감 아니면 한 살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올해가 왔을 때 가슴이 덜컥 내려 앉더라구요. 내가 나도 나마저 결국 중년으로 들어가는구나, 싶어서. 게다가 아시마님, 전 아직 둘째도--;; 이렇게 육아로 소진되는 (물론 생산적이고 고귀한 과정이라고 상찬할 수도 있겠지만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잖아요) 시간들로 나는 늙어가는 구나, 싶어서요. 아시마님 페이퍼에 또 중언부언하고 갑니다. 좋은 리뷰 잘 읽고 가요.

아시마 2011-01-03 22:15   좋아요 0 | URL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예요.. ^^
김훈의 문장은 지우개의 문장이죠. 길게 길게 써 놓고 지우고 또 지우고 지워나간 문장이라는 느낌. 하긴, 김훈의 어느 인터뷰에서였나 에세이에서였나, 여<칼의 노래>에서 죽은 여진을 대하는 대목이요. 그 부분을 원고지 두장쯤 썼다가 싹 지우고 "내다 버려라." 한 마디만 남겨 놓고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날 하루는 글 안쓰고 종일 나가 자전거 타고 놀았다더라구요. ㅎㅎ 그런게 "벼린다" 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듯해요.
결국 벼리는 것도 깎아 내는 거니까.

그리고, 김훈의 글을 볼 때나 조선희의 글을 볼때나 느끼는 거지만, 언론인, 기자로서의 문체가 있는 것 같아요. 최대한 팩트에 근접한, 군더더기 없는 문장. 제 문장이 정결하고 깔끔하다니... 오, 최고의 찬사이십니다. ㅎㅎ

전 아마, 블랑카님과 동갑인 것 같은데요. ^^ 학번은 아마 하나 빠를테고요. 저는 올해가 왔을때 정말 오히려 아무생각도 없었어요. 우리 나이를 벌써 중년이라고 하기엔 전 너무 억울하단 말이죠. 전 아직 중년 안할랍니다. -_-;;;

육아로 소진되는 시간들로 나는 늙어간다는 말, 정말 저도 동감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독서라는 취미를 통해서 그 시간들을 무미하게 보내지만은 않잖아요. 전 지난 5년간 정말 애 둘 임신해서 낳아서 젖먹이고 기저귀 갈다 다시 임신하고 젖먹이고 기저귀 갈고... 의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음음, 기억나는 건 육아의 기억 절반과 내가 읽은 책들의 기억 절반인걸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좋아요. ^^아

둘째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제가 님의 방명록에 쓴 그대로입니다, 푸하하하하하하하! 제 둘째는 두돌이 지났습니다아아아아!!! 으쓱으쓱.

저절로 2011-01-03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은 항상 젊어요 그죠, 정작 나는 늙어가는데 말이죠.
언젠가 나는, 다시 내 젊은 날의 숲으로 돌아갈 것이다...왠지 짠해지는걸요.^^

아시마 2011-01-03 22:18   좋아요 0 | URL
옴마나, 그 문장이 뭔가 의미심장해 보였나봐요. ㅎㅎㅎ
젊의 날의 숲과 겹쳐져서 그런가 ^^
숲이 항상 젊지는 않은 것 같아요. 늙은 숲은 없지만, 그래도 어린숲과 젊은 숲, 장년의 숲은 있다는 느낌이거든요. 예를 들면, 제게 지리산의 숲은 젊은 숲이고 설악산의 숲은 장년의 숲이거든요. 그 차이가 뭐냐 물으시면, 음음,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고 답했는데 왜 홍시맛이라고 했냐 물으시면,

이라는 답을 차용할밖에요. ^^

근데 아잉... 이분들이 왜 새해 벽두부터 늙음을 말하실까나.
저 처럼 철이 없으면 아무 생각 안하고 살 수 있는데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