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 나와서도 한동안 알라딘 플래티넘을 유지했었다. 받는 방법이야 다양하다. 출장자 편에 받기도 하고, 친정에 모아놨다가 누가 이삿짐을 싼다 그러면 그 편에 부탁하기도 하고, 누군가 한국에 다니러 갔다 오는 길에 가져다 주기도 하고. 이도 저도 여의치 않을 땐 알라딘 해외배송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알라딘 해외배송은 안할거다.
물론 알라딘의 문제는 아니다. 알라딘의 해외배송 시스템은 꽤 편리하고 요금도 개인이 발송하는 것보다야 조금 저렴하다. 문제는 인도네시아에 있다. 아무런 원칙도 규칙도 없고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이 나라. 알라딘에서 도합 예닐곱번을 주문했다. 매번 물건의 금액은 50-100 달러 선이었고, 처음 몇번은 문제가 없거나 있어도 납득 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였다. 예를 들면, 이미 한국에서 배송료를 다 지불한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나라 우체국에서 잡아둔 채 한화로 치면 1-2천원의 배송료를 요구하는 수준의 어이없지만 애교로 봐 줄 수도 있을 정도.
문제는 그 이후에 일어났다.
얼마전 남편 회사에서도 회사로 물건을 발송하고 (DHL) 나도 알라딘에서 DHL로 발송 주문을 넣었다. 내용물은 한치 틀림 없이 똑같았다. 둘다 비슷한 가격의 책이었고, 둘다 똑같이 책 외에 사소한 물건이 들어있었다. 알라딘에서 보낸 것에는 얼마전 알라딘의 사은품이었던 여행용 백이 들어있었고, 남편 회사에서 발송한 것에도 책과 원단 한마(90cmX120cm)가 들어있었다. 알라딘에서 집으로 발송한 것은 아무 문제없이 집까지 잘 도착했고, 회사에서 회사로 발송한 것은 무려 한화 3만원에 해당하는 세금을 물렸다. 같은 날 발송해 같은 날 도착한 물건이었다.
헐. 이건 뭐지. 아마 회사에서 회사로 보낸 물건이라 그런가보다, 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집으로만 보내자, 했다. 다음 주문을 넣었다. 알라딘에서 집으로, 그나마 조금 싼 EMS로 주문을 넣었다. 물건 가액은 120 달러가 조금 넘었나보다.
같은 날 옆집 사는 언니와 같이 물건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언니는 150 달러라고 물건 가액을 써 넣은 박스였고, 나는 120 달러라고 써 놓은 박스였으나, 그 언니는 세금을 물지 않았고 나는 한화 5만원에 육박하는 세금을 물었다.
헐. 그래, EMS라 그랬나보다. 나름 우체국은 국가 기업이니, 이놈의 나라는 정부가 썩을대로 썩었으니까, (옆집 언니는 왜 세금을 내지 않았을까?) 그럼 그나마 사기업이고 국제적인 기업인 DHL을 비싸더라도 이용해주마. 했다.
다시 알라딘에 주문을 넣었다. 집으로 발송, DHL 이용. 물건 가액은 하나는 70달러 하나는 90 달러.
풋. 70 달러 물건은 50달러 세금, 90 달러 물건은 55달러 세금을 매겼다.
알라딘에 전화를 하고, 한국 DHL에 전화를 하고 인도네시아 DHL에 전화를 했다.
알라딘에서는 이런 컴플레인은 처음이란다. 전혀 모르는 사실이란다. 이런 일이 있으니 공지에 올려달라 말했다. 인도네시아로는 웬만하면 보내지 마세요! 그렇게.
한국 DHL에서는 알고 있단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항상 일어나는 일이란다. 심지어 입던 옷이라 목깃에 때가 꼬질꼬질 묻어서 간 옷 조차 세금을 물린 경우를 본 적이 있단다.(전 세계적으로 중고물건에는 세금 안물린다.)
인도네시아 DHL에 전화를 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살 수 있는 물건을 해외에서 사서 들여왔기때문에 세금을 메긴 거라고 했다. 니네 한국말 책도 만들어내니 했더니 우물쭈물, 바로 말을 바꾼다. 라이센스가 없기 때문이란다. 무슨 라이센스? 물으니 대답을 못한다. 인도네시아 거주 외국인이 자국의 책을 받으려면 라이센스가 있어야 된다는 말이니? 그랬더니 바로 그렇단다. 그 라이센스 어디에 가서 받니? 했더니 대답 못한다. -_-;;;
두번째 물건은 못받는다 했다. 열받은 남편 님하, 그 책 새로 사 줄테니 걍 버린셈 치란다. 그래 그러마, 했다.
ㅠ.ㅠ
한국에 살때, 기분이 꿀꿀해지면 책을 샀다. 책을 주문하고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도착한 책을 읽는 순간들의 즐거움이 나를 지탱했다. 그걸 아는 남편은 가끔, 내가 정말 우울해 보일 때 책 사줄까? 묻곤 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이 나라에 산다는 게 너무 힘들어 투정을 부리면, 남편은 한번씩 책 사줄까? 출장자 있는데. 했다.
헌데 이 나라에서는 책을 사는 것이 더 스트레스다.
dhl 과 싸우고 패닉 상태로 누워서 오늘도 하루키의 먼북소리를 꺼냈다.
하루키가 이탈리아에 체류하며 쓴 이 책에는 <이탈리아의 몇가지 얼굴>이라는 챕터가 있고, 그 안에 <이탈리아의 우편 사정>이라는 챕터가 있다. 그 챕터는 이렇게 시작한다.
만약 이탈리아란 나라의 특징을 40자 이내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나는 "수상이 매년 바뀌고, 사람들이 큰 소리로 떠들며 식사를 하고, 우편 제도가 극단적으로 뒤진 나라."라고 답할 것이다.
p.377
그리고 많은 페이지를 이탈리아의 우편 제도에 대한 놀라움을 토로하는데 할애한 하루키는 "아무튼 이 나라의 공공 기관은 치명적으로 번잡하고 비능률적이고 불친절하고 관료적이다. 그런데다 자잘한 규제가 많고 그런 규제가 또 반년마다 제멋대로 바뀌니 거의 아무도 규제 따위 기억하지 못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런 연유로 도처에 제도적 블랙홀이 생긴다. (p.380)"라고 말한다. 그리고 영리한 하루키는 "하나 그런 일로 화를 냈다가는 이탈리아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p.381)"고도 잘라 말한다. 왜나하면 "매일이 이런 일의 반복(p.381)"이기 때문에.
그리고 또다시, "내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감탄하는 것은, 그들이 이런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을 조금도 개선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p.382)"라는 진지한 감탄까지 해 준다. 그리고 마지막 한 줄은 그지없이 인상적이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이런 일을 써본들, 어차피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p.386)"라고.
내가 이 책을 읽은 2009년 무렵에 하루키의 이 이야기는 재미있는 우스개였다. 지금 나는, 하루키의 분노와 체념 뒤에 오는 그 허탈한 심리를 너무나 절절히 이해한다. 이건 정말이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테니까. 아, 정말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이해하는 존재로구나.
하루키의 책으로도 도저히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가 없을 때는 움베르토 에코 아저씨의 책을 꺼낸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석학(아 이 식상한 표현이라니.)이신 이 분, 정말 끝내주는 소설가이자 기호학자인 이 분 말이다. 이분이 어느날 암스테르담을 지나오다 운전면허증을 도둑맞으셨단다. 그리고 그 도둑맞은 운전면허증을 이탈리아에서 재발급 받기 위해 겪으신 일들을 글로 남겼다. 이름하여
<도둑맞은 운전 면허증을 재발급받는 방법>챕터다. 이건 도저히 요약도 안되고, 어디를 뽑아낼 수도 없다. 배를 잡고 깔깔깔 웃을 수 밖에 없는 코메딘데, 이 깔깔깔 웃는 코메디가 읽는 사람에게만 그렇다는 걸 이제야 나는 안다. 그간 웃었던 일들이 너무 미안해지는 거 있지. 이 일련의 일들에 대해 이 뛰어난 두뇌를 가지신 분은 이렇게 요약을 해 낸다. "한마디로 말해 불법의 대량화 또는 합법의 허구화(p.81)"라고.
이 나라에 살려면 한국으로치면 외국인 등록증 같은 걸 받아야 한다(이름은 KITAS다). 이건 여권과 함께 항상 소지하고 있어야 하고 매년 갱신해야 하며, 심지어 이민 당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집으로 불심 검문을 나와 소지 여부를 확인하기도 한다(당해본 적은 없지만, 꽤 흔한일이다.) 이 중요한 것이 말이다. 크하하, 나는 지금 없다. 일년에 절반은 내가 가지고 있지를 못한다. 절반이 뭐야. 2/3 정도는 이 나라 정부에서 들고 있는 것 같다. 꼭 가지고 있으라고, 안가지고 있으면 안된다고, 벌금을 물린다고 추방을 하겠다고 난리지만 실제로는, 아니, 줘야 가지고 있지. 나는 매년 7월에 이 거주 허가를 갱신해야 하는데 5월경에 이민국 브로커를 통해 이민국에 여권과 끼따스를 비롯한 부속 서류들을 넘겼다. 그리고 7월도 지나서 8월에(푸하핫!) 이민국에 가서 갱신을 하기는 했다(뭐, 이 갱신 과정으로 이 나라에 불법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을 걸러낼 수 있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자 갱신을 하기는 했는데, 아직도 여권과 끼따스와 기타 등등의 서류는 10월이 된 지금까지 내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 있는지는? 누가 알라나. 아마 브로커는 알겠지.
이민국에 가보면 이민국 직원이 좀 있고, 외국인이 있고, 그 이민국 직원 전부와 갱신을 위해 와 있는 외국인 전부를 합한 수의 세배쯤 되는 브로커들이 있다. 서류에 사인하라는 말조차, 눈 앞의 외국인에게 하지 않고 바로 옆의 브로커에게 한다. 나름대로는 이 나라의 고용창출이라나. 푸하하하하핫. 하긴 뭐, 이 나라는 도로는 좁고(10년째 도로는 확충되지 않고, 자동차는 10배가 늘었다.) 교통 체증은 심화되니 도로를 건설하는 게 아니라 3 in 1 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도심으로 들어오는 차는 무조건 3명 이상이 타고 있어야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그러자 조끼(joki)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도심으로 들어가는 도로 근처에 손가락 하나를 내밀고 하릴없이 서 있는 사람들. 말하자면, 한국에 예전에 남산 터널이 3명 이상이라야 무료 통과할 수 있다는 제도를 만들었을 때 전설처럼 들려오던 그 앞에 서서 차를 타고 같이 터널을 지나주는 알바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똑같은 거다. 그게 정상적인 직업이 되고(장인자리가 사윗감에게 "자네 직업이 뭔가?" 하면 "네, 저는 조끼 일을 합니다." 가 되는) 나름 고용창출을 했단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아아 웃고 있어도~ 나는 눈물이 난다~~~
하루키 말대로 "어차피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이고, 에코의 말대로 "불법의 대량화 또는 합법의 허구화" 인 것이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남편이 DHL과 통화를 다시 했다. ㅠ.ㅠ 남편은 그 책을 폐기처분하라 말했다. 아아아아아아아. ㅠ.ㅠ 내가 이 그지같은 나라에 왜 날 끌고 왔냐고, 나는 도저히 못산다고 발작을(종종 일으킨다. -_-;;) 할 조짐이 보이자 미리 선수를 친다. "새로 사 주께! 똑같은 거 사서 출장자 편에 받아다 주께!!!" 아. 마음에 좀 안정이 온다.
마지막으로 은희경의 책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곳. 아니 모든 인간이 가진 개인성을 다양함으로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그리고 배려하는 사회는 규칙이 많고 복잡할 수밖에 없다.
p.244
규제가 많은 것, 좋게 보자면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사는 이민의 나라이기 때문에 필요하겠지요.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함게 살자면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 불만을 최소화하려면 규칙과 규제가 많아질 수밖에요. 사회의 우선 가치는 물론 공정함fair이고 말이죠. (걸핏하면 소송, 그러니 변호사가 그리도 많고...)
p.250
미국은 이러하군.
저는 이 나라에서 아직 2년 남짓 더 살아야 한다. 뜻밖에 모범생 기질이 다분하고 규칙에 어긋나는 것을 못견뎌하는 나에게 이 나라는 참 견디기 힘든 나라.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고, 법과 규칙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나라.
ㅎㅎㅎ 운전 면허증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 나라에서는 면허를 돈을 주고 사거든요. 그리고 그것또한 갱신을 해야 하는데, 뭐 면허증이 없으면서 운전을 해도 교통 경찰에게 뜯기는 돈이 있을 때보다 세배쯤 많아진 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_-;;; (참고로,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어도 돈은 뜯긴다. 단 벌점이나 기록은 전혀 없다. 걍 돈만 주면 된다. 교통경찰하면서 돈 구하긴 참 쉽다, 이 나라는.)
살려고 애쓰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