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인은 약간, 특이한 데가 있는데, 아니 어쩌면, 정상적인 모습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볼때는 특이한 모습인데, 음, 동생에 관련된 거면 기겁을 하며 챙기려 든다. 보통은, 음음, 동생 갖다 내버려 달라든가, 뭐 그런게 정상 아닌가. -_-;;; 내가 너무 최악의 상상과 상황만을 보고 살아온 건가. 

해인을 임신해 있을 때 내가 들은 최악의 형제 이야기는, 큰애가 작은애를 너무 괴롭혀 엄마가 작은 애를 한집에서 키우지 못하고 친정인지 시댁인지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카더라 통신의 이야기도 아니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나와 아주 친한 친구의, 아주 친하게 지내는 전 직장 동료의 동생 이야기였다. 둘째를 낳아 돌이 되기 직전에 시댁인지 친정인지로 보내고 4살인지 5살인지 되는 큰딸만 데리고 살고 있는 그 동생의 이야기는, 나를 겁에 질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더구나 나는 그녀보다 터울도 더 작은 아이를 낳게 될 판이었으니.  

참 이상하지. 해인을 임신해 있을 즈음에 내 귀에 들려오던 이야기는 죄다 그런 이야기였다. 이제 갓 백일 된 떡애기를 한밤중에 몰래 끌어다 현관에 내 놓고 자고 있더라는 형의 이야기, 엄마나 어른이 보고 있지 않으면 동생을 발로 뻥뻥 걷어차서 다른 사람을 기겁하게 만들었다는 옆집 아줌마의 시댁 조카 이야기.  

그래서 였을까, 피만 보지 말자, 이게 내 바램이었다.  

남들이 다들 부러워 하는, (^___________________^) 다인의 잠자리 습관은 "무서운 아저씨"에 힘입은 바 큰 데, 그는 망태 할아범과 유괴범과 괴물의 이미지가 교묘히 조합된, 말 그대로의 '무서운' 아저씨로, 밤 8시가 되면 우리집에 나타나 그 시간까지 눈을 뜨고 있는 어린 아이를 잡아가는 존재다. 다른 사람들의 집엔 이 무서운 아저씨가 없는가? 다인은 네돌이 멀지 않은 지금까지도 무서운 아저씨라는 말엔 기겁을 한다.  

그런 다인이, 세돌이 지났을 무렵, 밤 7시가 되어 잠을 자자고 방에 불을 껐는데, 동생이 자지 않고 어두운 방 안을 뱅뱅 돌며 돌아다니자, 울먹울먹 하며 말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해인아, 빨리 자. 무서운 아저씨 온단 말이야." 

그 전부터 별 해꼬지가 없는 아이이긴 했지만, 종종, 동생을 챙기는 큰애가 귀여워서 나는 부러 큰애를 겁주곤 했다. 

"해인은 안자네. 나쁜 아기네. 이제 무서운 아저씨 와서 잡아가겠네." 

그럴때마다 어김없었다. 울먹울먹하며,  

"엄마, 해인은 우리 동생이잖아. 잡아가면 안되는데. 해인아, 빨리 자. 해인아 빨리 자." 

라고 말하는 것이. 막상 다인은 무서워서 눈도 못뜨고 있으면서.   

 

애를 둘을 키우니, 둘의 성격이 참 비슷한 듯 극과 극이다. 다인은 단 한번도, 정말 단 한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해인은 걸핏하면 바닥에 드러누워 땡깡질이다. 드러누울때도 머리를 다칠까봐 팔꿈치로 뒤를 지탱해가며 모로 드러눕는데 어찌나 황당한지. 그러곤 눈만 말똥말똥 뜨고 쳐다본다. 자기 안고 가란다.  

한번은, 저 버릇 고쳐야지 싶어서, 그냥 두고 간다, 하고 돌아서서 한 5미터 갔더니 해인은 멀쩡한데 내 치마꼬리를 잡고 오는 다인이 기겁을 하며 자지러졌다. 해인이 데려가야 한단다. 두고 가면 안된단다. 왜냐하면 우리 동생이니까.  

엄마는 말 안듣는 저런 해인이 같은애는 키울수가 없으니 그냥 두겠다 했다. 좀 있으면 무서운 아저씨가 데리고 갈 거라고도 했다. 정 데려오고 싶거든 네가 가서 데려오라 했다. 다인은 왕왕 울면서 뛰어가 맨송맨송한 얼굴로 드러누워 땡깡질 중인 동생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등을 밀고 손을 잡아 끌며 데리고 온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게 뭔가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하기는 하는데, 진짜, 큰애가, 아직 네돌도 안된 애가 말이다, 그렇게 기를 쓰고 동생을 챙기는 모습을 봐야 내 심정이 이해가 된다. 으으으으, 그 심정은 말로는 다 표현이 안된다. 왜 윤리도덕에서 효 다음 가는 덕목으로 우애를 강조하고 있는지 알만하다. 우애란, 효의 또 다른 형태인거다.  

 

오늘, 다인이 처음으로 유치원엘 갔다.  

한국에서도 그런 교육기관에 가 본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가는 유치원이라는 데가 온통 노랑머리 칠갑에 들려오는 언어는 죄다 영어인 그런 곳이다. 한반 정원이 10명인데, 3명을 빼곤 모두 서양아이들이고, 그 3명 중에서도 다인을 제외한 2명은 영어 사용이 능숙한 아이들.  

이곳의 교육기관은 한국보다 훨씬 빨리 시작하는 편이라, 8시 15분부터 시작된 수업에 영어라곤 두어달 전부터 일주일에 두번씩 개인 레슨 선생을 붙여준 것 외엔 접해본 일이 없는 애를 밀어넣어놓고 밖에서 해인을 데리고 기다렸다. 처음엔 씩씩하게 손을 흔들고 들어갔던 다인은, 한시간이 지나 살짝 들여다 본 교실에서, 다른 아이들은 다들 제가끔 무리를 지어 각각의 선생님들과(선생님이 셋이다)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블럭을 만들기도 하고 있는데 혼자 한가운데 서서 울먹울먹 하며 또 다른 선생님에게 뭔가를 어필하고 있었다. 아니지, 어필도 아니었다. 선생님은 뭔가를 말을 하고, 아이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꾹꾹 누르며 고개만 흔들고 있었다.  

살그머니 교실문을 열고 다인에게 손짓을 하니, 아이는 그제야 꾹꾹 참았던 울음을 쏟아놓으며 내 품에 안겼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조금있다보니 엄마가 없더란다. 그래서 울었단다. 글쎄, 이런 심정 또한 첫 아이를 처음으로 교육기관이라는 곳에 보내본 엄마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아닐까.  

선생님의 양해를 구하고, 해인까지 데리고 교실에 들어가 한시간쯤을 함께 있어 주었다. 그리고 나가겠다고 하니, 다인은 안된다고 나를 붙잡는다. 그런 다인을 잡고 내가 말했다.  

"그러면 해인은 어떡하지? 다인이 친구들하고 놀고 있는데 해인이 자꾸 돌아다니고 방해를 하니까, 해인은 이 교실에 있을수가 없는데, 그럼 엄마가 다인하고 여기 있으면 해인은 혼자 밖에 나가있으라고 할까? 그럼 무서운 아저씨가 와서 데리고 갈 텐데? 그래도 괜찮아?" 

울먹이던 다인은 급작스레 언니 모드의 불을 켰다. 엄마 나가있으란다. 해인이 데리고 밖에서 기다리란다. 자기 혼자 교실에서 한번 해 볼테니, 엄마는 밖에서 자기 수업 끝날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란다. 해인을 안고, 노랑머리의 물결 속에, 나도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쏼라거리는 영어 속에 다인을 놓고 나왔다. 어쩔수 없다고, 지금이 아니면 내일이라도 내일이 아니면 모레라도, 언젠가는 적응해야 하는 수순인거라고.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과연 정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한시간쯤 지나서 다인은 다시 울면서 교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이번엔 울음이 좀 더 크다. 역시나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내가 다인을 안아주고 달래주고,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또다시 해인은 어쩌냐, 물었다. 이번에는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유치원을 안가면, 우리집엔 인제 유모 언니가 없잖아? 다인이 유치원을 안가고 집에 있으면 엄마가 다인하고 놀아야 하는데, 그럼 해인은 어쩌지? 해인을 봐 주는 유모 언니도 없는데 해인은 그럼 재채기 나라에서 부침개 타고온 재채기 할미한테 데려가라고 할까? 찰퐁이처럼? (마술피리 어린이를 아는 사람은 이 이야기를 안다.)" 

다인은 이번에도 기겁을 하며 머리를 흔든다. 그리곤 또 씩씩하게 눈물을 싹싹 닦고 내가 한번 해 볼게, 한다. 엄마는 해인이랑 밖에서 기다려, 한다.  

그렇게 다인을 교실에 들여보내고 입맛이 쓰다. 도대체, 동생이 뭘까. 4돌도 안된 아이의 응석을 단숨에 멈추게 하는 위력적인 존재인 동생 말이다. 그 동생의 약빨이 기가 막히다는 걸 알아서 손 쉽게 동생을 내세워 이런 저런 것들을 강요하는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가. 

8시 15분에 시작된 수업은 중간의 30분간의 스낵타임을 포함해 12시 45분이 되어야 마쳤고, 돌아오는 길에 다인은, 이제는 유치원에 안간단다. 자기는 5살이니까, 6살이 되면 유치원에 간단다. 원래 6살에 유치원에 가는 거란다. 그걸 또 한참을 붙잡고, 한국에서는 4살이었으니까 유치원에 안가는 거지만 원래 5살이 되면 유치원에 가는 거야, 라고 꼬드겼다. 선생님과 미리 이야기를 해서 내일 유치원에서 책 읽어 주는 시간에는 다인이 좋아하는 영어책을 읽어주기로 약속을 해 놓고, 집에 와서는 그 책을 두세번 읽어주었다. 말하자면, 유치원생에게 예습을 시킨 격이다.  

아. 나는 극성 엄마인 것일까.  

아이라는 건, 대견해지는 만큼, 엄마의 가슴을 아리게 하기도 한다. 4돌된 아이의 대견함이란, 얼마나 속으로 힘들게 힘들게 애쓴 결과일까.  

 

이런 과정을 거쳐서라도 유치원을, 그것도 한국애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곳을 굳이굳이 찾아서, 보낸 것이 맞는 것일까. 아.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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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8-20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궁, 다인이가 처음으로 유치원생활에 적응하려니 얼마나 낯설고 힘들까요. 그런데 저는 주로 먼스터를 활용하는데 이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점점 두려움을 주는 강도가 커지고 있어요. 재우려고요 ㅋㅋㅋ 저는 왜이리 옛날 구전동화가 무섭나 했더니 다 선조들의 지혜가 묻어 있는 거더라구요. 이 페이퍼는 둘째의 지름심을 부릅니다^^

루체오페르 2010-08-26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따님의 자매애가 예쁘네요. 평생 가길 바랍니다.^^

덕수맘 2010-09-14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아시마님 다인이 좀 있으면 적응할거에요...아마 제가 이글을 쓸때쯤이면 적응이 살짝 됐겠죠..어디서나 아이들은 금방 친해지게 되있으니까요.저는 아직 둘째가 없어서 늘 궁금하기는 했는데 우리덕수가 동생 생기면 어떡해 할까?가끔 그러거든요.엄마 동생 좀 나아줘 그럼 낳아주면 뭐하게 갖고 논다고 하더라구여. 제생각에는 같이 논다는 표현을 잘 못한게 아닐까 싶어여.가끔 동생들이 있으면 하는 생각을 하나봐여. 여튼 다인의 편한 유치원가는 모습을 늘 기도할게요..타국에서도 늘 평안하기를요...

찌야마미 2010-10-31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이글읽다가 뒷부분에서 울뻔했당 다인이의 모습이 어떤건지 알꺼 같아서....첨으로 엄마 떨어지는데가 말두 안통하니 참으로 힘들었을꺼같당 근뎅 그놈의 동생이 뭔지 참고 이겨나가야 했던 울공쥬 대단하넹....이제는 씩씩하게 잘 다니고 있겠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