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이 없었다면 해방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식민지 불온열전 - 미친 생각이 뱃속에서 나온다
정병욱 지음 / 역사비평사 / 2013년 7월

식민지를 들여다보는 여행 안내서 쯤으로 읽혔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식민지 불온열전>이라는 매력적인 제목만큼이나 그들의 삶을 따라가는 여행은 가슴 벅차고 안타까우며 감동적인 여정이었다. 마치 다큐멘터리 한 편을 숨죽이고 본 듯한 느낌이랄까. 몇 개의 사건 기록에서 시작한 다큐멘터리는 그들이 살았던 마을을 휘휘 돌고, 그의 가족과 친구들을 훑으며 천천히 진행된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 들었던 옛날이야기들과 독서이력이 빼곡하게 채워지고, 주인공이 망설이고 주저하는 고민의 순간들까지 조심스럽게 복원을 해낸다.

식민지 조선, 수많은 사람들이 ‘불온’을 이유로 모진 취조를 당하고 이 잡듯이 일상을 들쑤셔져 이전과 같은 생활로는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 ‘불온’이라는 것은 고작 교실 칠판에 조선 독립에 대한 낙서를 했다거나 일본 지배를 비난하는 일기를 썼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사랑방에 모여 일본이 전쟁에서 질지도 모르겠다며 잡담을 늘어놓은 것이 불온이라니. 조선을 대하는 일본 지배의 신경쇠약적 강박과 자신없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지만, 그 시대를 살았을 우리네 어른들의 삶이, 그 삶의 노곤함이 너무도 절절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이 주인공들이 얼마나 살갑던지. 글쓴이는 왜 좀 더 큰 사건, 더 대단한 인물을 다루지 않느냐고 우려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사소한 사건과 대단치 않은 보통 사람의 이야기여서 더 머리 속이 환해지고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 살신성인의 자세로 모든 것을 포기해가며 독립운동을 했던 애국지사들의 이야기를 어느새 그렇고 그런 위인전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던 걸까. 나는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대단한 경지에 이른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피곤해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충성과 불온의 이중성, 애국적이면서도 끊임없이 출세를 갈구하고 부자가 되길 희망하는 세속주의. 그 비논리와 시시껄렁함에 감정이입이 팍팍 되는 걸 보면.

첫 번째 주인공 강상규는 학교에 제출하는 충성스런 내용의 일기와 함께 개인 일기를 따로 적으며 이중생활을 했다. 학교에서는 매우 모범적인 학생으로 우수한 성적을 받았지만 향후 10년간의 독립운동 계획을 세울 만큼 독립의식이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력주의를 바탕으로 한 입신출세를 절실하게 바랐다. 독립운동을 해서 자기의 이름을 날리겠다는 것이 그에게는 매우 중요한 불온의 이유였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농부 김영배는 부자가 되는 것이 독립만큼이나 중요했다. 학생 김창환에게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것이 먼저였다. 식민지의 보통 사람들에게 민족의 독립이란, 개인의 자아실현, 사회적 관계의 정상화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였다. 식민지 조선인에게 민족이 있고 없음은 행복과 불행, 자존과 모욕, 의미 있는 삶과 없는 삶을 뜻(81)하는 것이었다. 

다큐멘터리가 끝나갈 즈음이면 스스륵 하고 어느새 시점이 현재로 돌아온다. 주인공은 그 후 어떻게 되었으며, 그들의 친구는 어떻게 삶을 마감했는지. 누군가는 교수로 재직하다가 훈장을 받았고, 누군가는 지방의 군수가 되었다. 마을을 지키던 은행나무는 보호 철책에 둘러싸이게 되었고, 주인공이 세웠다는 원두막은 사라졌다. 과거가 현재와 만나면서 과거 이야기는 뜨거운 피와 말랑한 살을 가진 인간의 이야기가 되어갔다.

안타까운 것은, 모든 주인공들이 일제 강점기에서 살아남았음에도 불구하고 6.25를 넘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이다. 글쓴이는 주인공들의 말로를 먼저 알고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라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모든 주인공들은 분단과 전쟁을 넘기지 못하고 살해되거나 실종되었다. 강상규는 족보에서 아예 사라졌고, 김영배의 집안은 산산히 부서졌다. 그리고 누군가는 여전히 그들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거나 조심스러워했다. 일제 강점기 치열한 항일운동을 가능하게 했던 이 광범위한 불온의 역사가, 분단과 전쟁의 고비를 끝내 넘어갈 수 없었다니.

해방 이후 한국은 이러한 불온을 끝내 용인하지 못했다. 한 집안을 으깨버리고, 지금까지도 가슴에 품기만 해야 하는 이야기로 남겨버렸다. 이 역사의 질곡을 누구에게 갚으라 해야 하는 것일까.

474. [김사랑] 너란 놈

김사랑표 발라드.

일이 잔뜩 밀려 있을 때만 음악을 올리고 싶은 심보는 뭐람.

473. [에피톤 프로젝트] 믿을게

지난주 금요일 개학을 하고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

우리학교가 2학기부터 혁신학교로 지정이 되어 연일 밤 늦도록 토론토론토론 중이다.

새로운 업무체계, 교육과정, 수업연구, 학생생활지도... 손댈게 너무 많아서 매일 힘에 부치지만, 어쨌든 머리를 맞대고 있다보면 어제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을거라고, 함께 믿고 있다.

좀처럼 새 학기 기분이 나지 않지만. (애들이 아니라, 내가!!)

그래도 어쩌겠는가. 또 굴러 가야지.

지금 <식민지 불온열전>은 매우 재밌게 읽고 있고, 화장실에서는 틈틈이 <뉴욕을 털어라> 읽고 있고, 독서동아리 때문에 읽어야 할 책이 두 권 밀려 있다.

에이. 책이 밀려 있으니, 그 책들은 더 읽기 싫으네.

괜히 딴 책들 장바구니에 막 담고 있다. 막.

472. [스몰토크] 춤(Dance in the rain)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

아니 비가 온 땅을 적셔도젖은 두발로 너와 춤을 추고 싶어.

비 때문에 반 아이들과 떠나기로 했던 1박 2일의 캠핑이 무산되었다.
과천서울대공원 캠핑장에서 '이런 날씨엔 오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라는 메일이 왔다.

모처럼 집 밖에서 자면서 뛰어놀 생각을 했던 아이들은 잔뜩 김이 빠졌다. 
결국 캠핑을 함께 하기로 했던 세 반과 교정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물총을 쏘고, 축구를 하고, 런닝맨을 하며 진땅 뛰어놀기로 했다.

김샌 아이들 부추겨 세우랴, 없던 놀거리들 마련하야, 밥 해먹이랴 어찌나 땀을 뺐는지.

반 대항 축구에서는 또! 어.김.없.이 져서 남자애들은 완전 토라져 있었는데,

(이길 줄 알고 한 거냐~ 맨날 6대0, 8대0으로 지는 걸 잊었느냐구!!!)

커플 런닝맨에서 1등 하더니 좋아서, 손목 살갗이 까지는 지도 모르고 신이 났다.

겨우 저녁에 고기 먹이고, 뒷정리 하고 종례할까 해서 들어왔더니 교실에 아이들이 아무도 없다.

9시도 넘은 깜깜한 학교에서 1층부터 5층까지 누비며 경찰도둑 놀이를 하고 있단다.

손전등 들고 다니며 온 학교를 누비고 다니는데,

야--- 진짜 힘이 넘치는구나. 좋을 때다--- 하는 감탄이...

결국 10시에 되어서야 집에 보내고,

집에 잘 들어갔는지 부모님들께 확인 문자 보냈더니, 대부분 친구집에서 자고 온다고 했단다.

태규는 명묵이네서, 명묵이는 태규네서.

이 녀석들~~~!!!!

471. [블루파프리카] 이 빗속에

다행히 비가 별로 오지 않을 때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밖에 억수로 쏟아지는 비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온 아이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어서 아침부터 꿀꿀해 하는데,

나는 시원한 비 소리가 괜히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