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도서관에서 9월 동안 책읽는반 만들기 행사를 하고 있다.
도서부 활동에 삶의 의미를 찾는 녀석도 있고, 책을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이 제법 있는지라,
아이들이 무척 열심이다. 물론 상금이 걸려 있기도 하고.
애들이 담임 닮아 그렇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큰 전지에 9월 동안 읽은 책을 포스트잇에 정리해서 붙이는 행사인데,
미술 전공하려는 아이들이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매일 애들이 붙어 앉아서 다닥다닥 이런 모양새를 만들었다. 스스로도 뿌듯한지 애들은 연신 사진을 찍어대고, 다른 반 아이들도 구경오고, 그럴수록 애들은 더 으쓱거린다. 그래서 나도 한 장 찍는다.

아이들 읽으라고 내 책 살 때마다 한 권씩 학급문고를 산다.
교육적으로 좋을 만한 이런저런 추천도서를 산다기보다는, 우선 재미있는 책을 고른다.
이 아이들은 책이 재밌다는 것을 모르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책보다 훨씬 재미있고 자극적인 매체들이 널린데다, 독서는 공부라고 배우며 자란 탓이기도 하다.
읽은 책에는 속표지에 몇날몇일 누가 읽었는지 간단한 글을 남겨 화살표로 이어가게 하는데, 그 화살표가 길어질수록 사온 나도 기분 좋고, 아이들도 신기해 한다.
억지로 독서시간을 만들거나 하진 않는다. 다만 자연스럽게 심심할 때 시간날 때 책을 집을 수 있도록 가까이에 둘 뿐이다.
내가 읽지 않고 여기저기 리뷰만으로 사 놓은 책도 많지만, 이왕이면 나도 읽으려고 노력한다. 지금 읽고 있는 건, <시를 만나러 갑니다>라고, 국어선생님이 써주신 시읽기 책이다. 얇기도 하고, 이야기와 연결지어 조곤조곤하게 안내하고 있어서 새삼 즐거운 독서가 되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여기 있는 시중 한 편을 외워오면 책을 사주겠다고 했더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책이기도 하다.
어제는 야자 감독을 하며 이장욱의 <천국보다 낯선>을 읽었다. 민음사에서 나온 오늘의 젊은작가라는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이 시리즈는 작품의 내용이랑 상관없이 꽤 애정하는데, 표지가 예술이기 때문... 장정이나, 표지 그림이나, 서체가 모두 마음에 들고, 책 한 장 넘기고 표지 쓰다듬고, 책 한 장 넘기고, 표지 쳐다보는 그런 책이었다.
이야기는 무척이나 몽환적이다. 길고 길 터널 속에 들어와 웅웅 거리는 느낌. 유령처럼 희끄무레한 것이 둥둥 떠다니며 나를 이끄는 느낌. 누가 죽은 건지 알 수 없고, 무엇이 영화인지 알 수 없고, 무엇이 진실인지 모호한... 덕분에 나는 오늘 굉장히 미스터리한 꿈을 꾸었다. 얼마나 굉장했냐면, 꿈 속에 내가 굉장한 꿈을 꿨다면서 깨어나 남편에게 장황하게 설명해주는 꿈이었다. 꿈 속의 꿈. 그럼 이것도 메타 꿈이라 해야하나. ㅋㅋ 소설과 닮았다.
드디어 스티븐 킹을 시작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비디오로 봤던 피를 뒤집어쓴 캐리의 모습이 너무 공포스러워서 스티븐 킹 곁에는 가지도 않았었는데, 그래도 역시 피할 수 없는 작가이니. 그래서 젤 얌전한 걸로.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네 계절로 이름붙인 네 개의 단편 중 첫 권인데, 영화로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역시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두번째 이야기는 조금 오싹했다. 어둠에 물드는 소녀의 이야기를 절대 사실이라 믿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거리를 좀 두고 읽었다. 가을과 겨울의 이야기는 좀 더 있다가 읽어야겠다.
하진의 <전쟁 쓰레기>도 무척 인상적이고 가슴이 아팠다. 중국군의 이야기지만, 배경이 한국전쟁이었기 때문에 남의 이야기로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 그 안에서 펼쳐진 이념의 싸움은 얼마나 인간을 초라하게 만드는지... 끊임없이 어느 편인지를 증명해야만 살아남는 시대에 살았던 우리네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으로서의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