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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포 더 머니 ㅣ 스테파니 플럼 시리즈 1
자넷 에바노비치 지음, 류이연 옮김 / 시공사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스포일러가 다소 있습니다!)
<원 포 더 머니 One For The Money> 의 장점은 이런 것들이다.
one. 추리소설을 웃으며 볼 수 있다는 것.
늘 사람이 죽어나가는 소설을 즐기는 독자 입장에서 이런 소설의 존재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너권의 추리소설을 읽고 나면 머리와 가슴이 땅속 어딘가 어둠의 세계로 가출해버린 느낌이 들곤 해서 반드시 환기용 책들을 읽어야 했다. 연애소설을 필두로 한 상쾌한 이야기들을 말이다. 이렇게 책 선택의 강약 조절이 적당해야만 또다시 시체를 볼 수 있으며, 생과 사를 둘러싼 고뇌의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스테파니 플럼 시리즈가 계속 나와주기만 한다면, 이제 나는 이런 고민들을 안해도 될 듯하다. 추리소설의 외피를 쓰고 있긴 하지만, 사실은 한 당찬 여자의 좌충우돌 모험기에 가까운 이야기에다가, 적당한 긴장감 (성적 긴장감을 포함한 ^^)을 유지하면서도 로맨스 소설의 미덕까지 갖추었다. (사실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건 스테파니보다는 모렐리를 기다리는 맘이 더 크지, 아마.) 게다가 웃기긴 어찌나 웃긴지. 학교에서 애들 자율학습 감독하면서 보다가 죽는 줄 알았다. 우리반애들은 나 미친 줄 안다. 그 안쓰러워하는 눈빛들이란.
two. 절대 굴하지 않는 캐릭터들의 매력.
어떻게 하나같이, 모든 캐릭터들이 불굴의 정신을 가졌다. 마주르 할머니는 굴하지 않고 이상한 옷을 입어대고, 버니는 굴하지 않고 가전제품을 팔려고 애쓰며, 라미레즈는 굴하지 않고 그녀를 괴롭히고, 모렐리는 굴하지 않고 그녀를 놀려먹는다. 그러나 역시 우리의 주인공을 따라오려면 멀었지. 스테파니. 그녀는 목숨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스타크 거리를 활보하고, 굴하지 않고 모렐리를 쫓는다. 이야기의 중반부를 지나면서 그녀가 모렐리를 잡는 걸 포기했나 싶었다. 그냥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협상에 안주하려나 싶었다. 그렇다면 김빠지는 결론이 나오는 거 아냐 하고 한숨도 쉬었다. 그러나, 그녀는 불굴의 스테파니 플럼이 아니던가. 단호하게 시체가 그득한 트럭 문을 닫아버리다니. 하하. 역시 스테파니.
three. 무시할 수 없는 책의 외모.
내용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책의 판형, 꽉찬 글씨, 손에 쩍쩍 달라붙는 손맛 때문에 이 책은 이미 내게 웬만한 기본점수는 따놓고 있었다. 원체 문고판 책들을 좋아하는데다가 주로 책을 손에 들고 읽기 때문에 손맛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 사이에 책을 끼고 읽는데, 그렇게 잡았을 때 책등이 꺾이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뒤로 젖혀지면 나는 손에 쩍쩍 달라붙는다고 말한다. 물론 책의 크기나 무게와도 연관이 있지만, 모든 문고판이 손맛이 좋은 건 아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또한 책등을 보면 호기좋게 ‘스테파니 플럼 시리즈’ 라고 떡하니 씌여져 있고, 별표 문장 안에 숫자 1까지 들어가 있다. 이러니 어떻게 예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장르소설 시장에서 전작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시도인지 알고 있으므로, 이런 용기있는 기획을 했다는 것만으로 대견하고, 모두 사주고 말리라 하는 다짐이 샘솟게 되는 것이다.
이상의 이유로 다음 이야기인 <Two For The Dough>를 목빠지게 기다린다. CWA ‘유머’ 미스터리상까지 받았다니 더 말해 무엇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