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속에서

하트잭 1 - 법의관 ㅣ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5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5년 2월

시리즈물의 매력은 시간이 흘러가며 변해 가는 주인공을 보는 데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홈즈가 왓슨을 만나 은퇴하기까지라든지, 처음 망명해온 형사 포와로가 후에 할아버지가 되 죽음에 이르기까지라든지. 변하지 않는 주인공보다 같이 늙어 가는 주인공은 매력적이다. 허구라도 소설의 주인공이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걸 발견하면 묘한 동질감마저 느낀다.

스카페타 박사의 인간관계도 첫 권 법의관과 많이 바뀌었다. 그렇게 사이 안 좋던 마리노와 꽤 친밀한 사이가 되어 있고, 애인은 바뀌고, 그렇게 싫어했던 애비 턴불은 그녀의 절친한 친구가 되어 있다. 이런 인간관계는 첫 권에서 상상도 못한 부분이니 만큼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이러다 미스 마플처럼 나이든 스카페타를 보게 되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좋을 것 같다.

이번 이야기는 정치적 다툼이란 관점이 끼여들어 스케일이 커지고 내용도 복잡했다. 여태껏 믿을 만한 동료였던 벤턴 마저 의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 스카페타 박사. 그녀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마리노 외에는 거의 모두가 의심스러운 상황에 처한다.

의혹이 가득한 한 권이다. 덕분에 좀더 긴장감 넘치게 읽을 수 있었다. 끝맛은 약간 쓸쓸했지만...

개인의 인생속을 현미경을 대고 들여다보다.

소설가의 죽음 1 - 법의관 ㅣ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5
퍼트리샤 콘웰 지음, 홍성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5년 1월

이번 스카페타 시리즈는 연쇄살인이라기보다 한 소설가의 죽음을 다룬다. 피해자는 배릴 메디슨이란 작가로 작고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누가 그녀를 죽였는가. 한 개인을 내밀히 다루며 사건을 추적하는 스카페타 박사. 그 과정을 같이 보다보면 배릴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얼마나 천재적 재능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녀의 인생이 왜 뒤틀렸는지 점차 드러난다. 유명작가와의 만남은 처음에 배릴에게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은 악몽으로 변해 버린다. 그녀 주위에 추악한 인간들은 너무 많았고,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엔 너무 작고 약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점차 피가 얼어붙는 것 같다. 배릴이 얼마나 불안해했는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가 눈에 보이는 것처럼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녀의 저항을 비웃어가며 배릴을 처참히 살해한 살인자는 끔찍하다라는 말로는 다 표현이 안될 정도이다. 한 개인이 처참히 파괴되는 것을 직접 보는 것 같아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 책이 매혹적인 것은 그 추악한 인물들에 대항해서 스카페타 박사가 끝까지 싸우기 때문이다. 악몽에서 깨어나게 하는 그녀의 추진력이 감탄스럽다.

지나치게 잔혹한

법의관 1 - 법의관 ㅣ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5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4년 11월

법의관이 주인공인 소설이란 점이 생소하면서도 매력적이었다. 언뜻 생각하기에 법의관은 시체를 검시하기만 하는데 뭐가 위험할까 싶었다. 그런데 소설 속의 주인공은 단순한 검시관 정도가 아니라 수사에 적극 참여한다. 언론에도 자주 노출되는 주인공이리만큼 위험은 주인공 스카페타 박사 옆에 항상 따라온다.

스카페타 박사는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차가운 시체를 검시하면서도 그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모습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경찰들이 시체를 앞에 두고 농담하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죽음 앞에 담담해 보였던 그녀가 실은 가장 동요하고 불안해하는 것도 인간적인 매력을 돋보이게 했다. 단지 겉으로 표현되는 게 아니어서 소설 속 주변인물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 한다.

주인공도 매력적이고 문장도 탄탄해서 술술 읽어 내려간다. 다만 읽다보면 피해자의 상태, 범죄현장, 범행방식이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지나치게 잔혹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때가 많았다. 살인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재현되는 느낌이랄까.

스카페타 박사는 리치몬드 법의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의 앞에 나타난 사건은 집안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백인여성. 새벽에 전화를 받고 현장으로 달려간 박사를 맞이한 것은 끔찍한 방식으로 살해된 여성이었다. 수사는 점차 미궁으로 빠져들고 살인은 연쇄살인으로 이어진다. 범인은 자신을 쫓는 스카페타 박사를 위협하기 시작하는데...

주인공의 내면묘사가 잘 되어있어 쉽게 몰입할 수 있고, 주변인물도 상당히 개성적이다. 첫 장부터 몰입하게 되어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책이다.

삼남매의 불행의 시작

위험한 대결 1 - 눈동자의 집 ㅣ 위험한 대결 1
레모니 스니켓 지음, 강민희 그림, 한지희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6월

처음 이 책을 집어든 것은 물론 영화 때문이었다. 보지 못한 영화대신 책을 읽어보려 했던 것이다. 일단 책은 얇고 가벼워서 읽기에 부담이 없다. 내용은 그렇지 않지만.

보들레어가 삼남매는 화재로 인해 부모님과 추억이 깃든 집마저 잃게 된다. 유산관리인 포 아저씨의 소개로 먼 친척인 올라프 백작에게 맡겨진다. 부모님의 죽음으로 시작된 삼남매의 불행은 여기에 이르러 심화된다.

올라프 백작은 기괴한 인물로 어린 삼남매를 맡겠다고 한 것 역시 그들에게 남겨진 막대한 유산을 노린 것이다. 먼지투성이 집에 사는 그는 온통 눈동자 모양의 장식을 해놓고 자신도 발목에 눈동자 문신을 하고 있다. 또한 친구들도 끔찍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이다.

선전문구는 '대결'이라 칭해지지만 내가 보기엔 '핍박'에 가깝다. 온갖 모욕과 핍박에 굴하지 않는 삼남매. 맏이 바이올렛이 성인이 되기 전에 유산을 가로채야 하는 백작은 자신의 외양만큼 추한 흉계를 꾸민다. 바로 연극을 빙자해 바이올렛과 결혼해 그 유산을 몽땅 빼앗으려 든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바이올렛, 클로스, 서니.

그들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어린아이답게 대담하고 무모하지만 기지로 번뜩인다. 그것을 지켜보는 심정은 외줄 타기 곡예사를 지켜보는 심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악몽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삼남매가 위험에서 벗어나는 날은 요원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