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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사람이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촌극을 벌이게 될 때가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잽싸게 건너뛰고 지나가고 싶은 순간이다. 마음에 두고 있는 아이 앞에서 꼴사납게 고꾸라지거나 발표를 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허둥지둥 손을 휘둘러서 안심하라고 웃어보였지만 알고 보니 다리에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몰랐다는 둥 일상 속에서도 웃지 못 할 상황들이 피어난다. 하지만 그 웃지 못 할 상황을 객관적으로, 게다가 마음 편하게 웃으면서 읽을 수 있다면 어떨까.

이 책 <유모어 극장>은 엔도 슈사쿠의 유머러스한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첫 번째 단편 <마이크로 결사대>를 제외하고는 일상 속에서 있을 법한 촌극들이 펼쳐진다. 그게 묘하게 사실적이면서도 독특하게 다가와 유쾌하게 읽어나갈 수 있다. 소개글대로 모든 단편들은 폭발적으로 웃음을 자아내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피식 웃게 되는 면이 있다. 그리고 그 웃음의 잔향이 텁텁하지 않으니 읽고 난 이후의 기분도 좋은 편이다.

외과수술을 의사들의 몸을 축소해서 환자의 몸에 들어가 행한다는 내용의 <마이크로 결사대>는 그 독특한 상상력과 결말에 감복할 지경이지만 <우리 아버지>같은 경우에는 잔잔한 감흥을 남기기도 한다. 침팬지가 인간에게 호감의 감정을 표한다는 내용의 <아르바이트 학생>의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심정과 주인공, 주인공의 상담을 들은 사람의 옛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특히나 인상 깊었다.

같은 동 아파트 내 주부들의 대립관계를 나름대로 긴장감 넘치게 묘사한 <여자들의 결투>같은 경우에는 결말이 예상되기는 했었다. 하지만 팽팽한 경쟁 속에서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주부들의 심리를 적절히 묘사하고 있어서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았다.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는 <우리 아버지>였는데 어디에나 있을 법한 아버지의 모습과 그가 가지고 있는 숨은 비밀이 슬며시 풀어지면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한때 젊지 않았던 어른이 어디에 있겠는가. 아들의 여자친구를 보면 멋쩍어 하고 딸의 남자친구를 보면 분개하는 평범한 가장이 바람을 핀다는 오해를 사지만 그 뒤에는 그가 청춘일 때의 옛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구조와 아들이 아버지를 보는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져서 기분 좋게 웃을 뿐만 아니라 살짝 가슴 찡한 느낌마저 들었다.

표지만 보면 지나치게 가벼운 이야기일 것 같지만 작가의 명성에 걸맞은 단편들이라 흡족할 때가 많았다. 단편답게 전개도 결말도 마음에 들었고 가볍게 뚝뚝 끊어 읽기 좋았다. 그러면서도 단숨에 읽어나갈 정도의 흡입력을 품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다면 그 정도로 족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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