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행기에 거리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젊은이들이 희망 없는 눈으로 거리에 나와 앉아 있다는 문장을 읽은 기억이 난다. 여행자가 다가가서 왜 그러고 앉아 있냐고 묻자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 여행기를 읽으면서 그래도 아직 우리나라에는 이 정도는 아니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 따라서는 젊은 사람들이 패기가 없어서 그렇다지만 패기 있고 야심찬 소수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 책 <위풍당당 개청춘>은 그런 20대의 눈으로 본 세상살이라고 할 수 있다. 선로를 따라 잘 달리던 열차 같던 삶이 학창시절이었다면 졸업 한 이후에는 말 그대로 갈 곳 없게 된 청춘이다. 꿈을 키우라지만 때로 그 꿈이 한 푼 값어치도 없고 취업에 목을 매게 된 세대다. 시작점은 일단 그렇다. 하지만 점점 뒤로 갈수록 갈피를 잃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20대의 입장에서 날카로운 사회비판이 나오나 싶었지만 저자는 자신의 삶 이야기를 할 뿐이다. 취업을 하지 못해서 3년간의 백수생활을 말할 때도, 취업이 되어서 말단 직원으로써 고충을 겪을 때도, 결혼을 해서 손자며느리로 살아야 하는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고충을 털어놓는다. 그게 때로 공감이 되기도 되지 않기도 했다. 사람의 삶은 누구나 평범하지만 동시에 독특하다. 그 고생의 자락이 변명으로 들리는 순간 공감은 힘을 잃었던 것이다. 물론 그녀가 털어놓는 일상은 회사 내에 개를 키웠으면 하는 소망이라던지 사이트의 죽음, 아버지의 한량기질 등을 말하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을 털어놓을 때는 독특한 흥미를 자아냈다. 반면 불평은 어디까지나 비판이 아닌 불평으로만 들려서 다소 지루한 감이 있었다. 취업만 하면 열심히 살 것 같던 마음이 변했다고 자신도 말하고 있지만 취업 전에는 승자가 만든 게임의 불공정과 모든 것이 운임을 비난하고 취업 후에는 항상 을로 살아야 하는 서러움과 삶의 지루함을 말하니 내심 어쩌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전에는 룰은 바꾸지 않은 기성세대에 대해 불만을 토했다면 자신이 기성세대에 들어간 이후에는 지겹다고 불만을 토하니 할 말이 없어졌다. 그렇기에 비판서가 아닌 투덜거리는 에세이로 보기에는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남편이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터넷 세상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의 어려움, 야구에 몰두하는 새로운 즐거움, 네이버에서 지식을 찾으면서 달팽이를 연구하는 것까지 일상의 소소한 맛이 잘 살아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어려움이 없을 수 없고 누구나 짐을 지고 간다. 겉으로는 안 그래 보이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노력만 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된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어버려서 쓴웃음을 지으며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몇 있었다. 그리고 초반에 그런 말을 했으면서도 변화를 주도하는 누군가가 아닌 안정을 찾자 바로 안주하고 지루해하는 저자의 평범함이 납득이 가기도 가지 않기도 했다. <위풍당당 개청춘>, 사는 게 다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