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샹보거리>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데샹보 거리
가브리엘 루아 지음, 이세진 옮김 / 이상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람의 기억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감정에 따라 좌우되는 인간의 뇌는 어린 날의 초라한 기억을 아름답게 채색시켜 주기도 하고 더없이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서글픈 색깔로, 행복했던 날을 그늘지게 기억하게 만들기도 한다. 덕분에 사람의 기억은 때때로 변하는 것이 되어 버려서 어린 날의 기억이 정말 자신의 기억인지 고개가 갸웃해질 때조차 있다. 그것이 어른들이 웃으면서 이야기를 해 준 '들은' 기억인지 아니면 정말 자신이 '본' 기억인지 가늠이 어려운 것이다.

어린 시절일수록 그런 면이 강한데 그런 기억의 조각들이 때로 뒤엉켜서 아련한 감정을 자아낸다. 무엇을 하고 누구와 어디서 놀았는지도 기억에 나지 않지만 즐거웠던 기억이나 초등학교 시절 지겹게도 괴롭혀서 진저리가 나던 아이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을 때는 묘한 감흥이 되살아난다. 이 책 <데샹보 거리>는 후에 성장해서 작가가 되는 크리스틴의 유년기를 담고 있다. 어린 아이의 기억답게 그것은 때로 엉뚱하고 조각조각 부서지는 이야기이지만 구체적 기억은 지워져도 남는 감정의 고리를 타고 아련한 색채를 만들어낸다.

은근히 빨간 머리 앤을 떠올리게 하는 소녀 크리스틴은 식민청 관리인 아빠와 여행가 기질을 가진 엄마 사이에서 자라난다. 크리스틴의 아빠는 엄마와 나이차가 꽤 나는 편이었고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나 캐나다 매니토바 주에 정착한 상태였다. 그는 이민자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던리 우물>에 나오는 화재 사건 이후에 크게 상심하고 모든 불행을 예견하고 근심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당연히 자식들과는 거리가 생겼지만 <프티트 미제르>에서 아빠의 꾸중을 들은 어린 크리스틴이 삐져서 밥을 먹지 않자 집이 빈 틈을 타서 음식을 만들어 어린 딸과 화해를 청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크리스틴은 다양한 기억의 조각들을 불러내어 자신들의 가족을 추억한다. 여행가 기질이 있던 엄마가 <집 나온 여자들>에서 어떻게 여행 경비를 마련하고 크리스틴만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는지, 집에 돌아가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보여준다. 모험을 꿈꾸는 것도 불행을 그리는 것도 전부 상상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크리스틴은 자신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아간다. 그것은 때로는 서글픈 색채를 낸다. 수녀가 되기 위해 떠나는 언니에게 철없이 노란 리본을 달라고 보채는 아이의 입에서 리본을 가지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언니에게 가지 말고 함께 살자는 말이 터져 나올 때, 정신병원에 갇힌 다른 언니를 만나러 갔는데 한 순간 어린 동생을 알아보는 언니의 모습이 나올 때 서글픈 감정은 한숨과 함께 가라앉는다.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어린 시절과 성인이 된 이후의 가장 큰 차이는 자신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음에도 가족을 비롯한 사람들을 잃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엄마처럼 자신을 돌보던 언니가 죽거나 성직에 몸을 바쳤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가족 같던 하숙인이 직무가 바뀌어 하숙집을 옮겨갔기 때문일 수도 있다. 크리스틴은 철없는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서도 가끔씩 정곡을 찌르는 행동을 해서 사람들을 당황시킨다. 어린 아이의 눈으로 엄마가 큰 언니의 결혼을 왜 반대하는지도 알 수 없었으며 큰 언니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단언할 때 그 결심의 견고함에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린 아이의 시각이라 정작 중요한 설명 부분에서 잠이 들어 시간 간격이 커다랗게 벌어지기도 하고 잘 이해를 못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무거울 수도 있었던 이야기가 가벼워지기도 하고 크리스틴의 사춘기를 보여주는 <빌헬름>의 경우에는 어린 시절과 비교해서 달라진 모습에 놀라게 되기도 했다. 하나 즐거웠던 부분은 네덜란드에서 온 빌헬름을 크리스틴에게서 떼어내기 위해 온 가족이 동원되는데 수녀가 된 언니까지 참여한다는 점이었다. 어린 아이가 성장하면서 차곡차곡 쌓여 가는 가족에 대한 기억의 조각이라 때로는 따뜻하고 서글프며 웃게 되기도 해서 단편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알타몽의 길>에서는 크리스틴의 성장한 이후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책도 꼭 보고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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