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균형>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은 없는 세계무역센터 건물 사이에 줄을 연결하고 줄타기를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예술가라고 생각했고 높은 건물 사이에서 맹렬하게 부는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타기를 시도했다. 뒤늦게 그를 발견한 경찰들은 양쪽건물에서 대기하며 그가 줄에서 내려오기만을 기다렸다. 본인은 줄을 타고 있을 때가 매우 편안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목숨을 건 도박이며 자살행위로 보였을 것이다.

가끔 아슬아슬한 균형이 이루어져 놀라게 될 때가 있다. 서커스의 곡예사들이 그렇고 줄을 타는 광대들이 그렇다. 그 아슬아슬한 균형이 놀라우면서도 오싹한 것은 그 균형이 놀랍게 이루어졌더라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짧은 시간동안 지속된 균형 속에서 쇼가 끝나고 그 균형에서 무사히 내려온 사람들을 보면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된다. 하지만 그 균형이 자신이 의도한 것도 아니었고 줄 위에 서게 된 것이 거대한 폭력에 의한 것이라면 다른 선택지가 없다. 그 놀라운 균형이 영원하기를 빌던가 그 균형이 깨어져 떨어진 순간 살아남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 <적절한 균형>은 제각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재봉사 옴과 이시바, 의류수출사업을 해보려는 디나, 대학생 마렉 등 전부 주어진 상황 안에서 몸부림을 친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평범한 삶이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인 1975년의 인도는 빈민굴조차도 높은 방세를 내지 않으면 살 곳을 구할 수 없고 물은 아침에만 공급되어 사람들의 몸에서 악취가 들끊는다. 대학교 기숙사에서는 쓰레기 같은 음식을 학생들에게 먹으라 주고 신입생 환영을 빙자해서 끔찍한 폭력이 자행된다.

더구나 인도는 카스트 제도가 있어 불가촉민인 옴과 이시바의 가족들은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 상태였다. 상위 카스트의 사람에게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던 둑히는 상황에 분개해 아들인 이시바와 나라얀을 재봉사로 만들지만 브라만의 폭거를 전부 막을 수는 없었다. 이시바는 조카인 옴을 데리고 도시로 일을 구하러 나타나고 학생인 마렉과 만난다. 일자리를 구하던 재봉사 옴과 이시바가 하숙집을 구하던 마렉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전부 디나의 집으로 모여들지만 앞날을 갑갑하기만 한 부분이 많았다.

빈민굴에 살게 된 재봉사들은 낮은 임금, 좋지 않은 주거환경, 뇌물이 만연하고 때로 어처구니없는 제도에 고통 받아야 했던 것이다. 디나 역시 가부장적인 오빠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고 자립하기 위해서 재봉사들과 끊임없이 신경전을 펼친다. 반항적인 옴은 디나의 뒤를 밟아서 디나가 납품하는 수출입 업체를 알아내려 한다. 자신들이 만든 옷을 바로 납품해서 디나가 얻는 수수료를 자신들의 것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기묘한 공방전은 마렉이 기숙사를 떠나 하숙집으로 들어오면서 잠깐의 균형을 얻는다.

문제는 그 균형이 4.5미터 정도 되는 장대 위에 어린 아이를 올려놓고 엄지손가락 만으로 지탱하면서 이 손으로 또 저 손으로 던지면서 유지하는 수준의 것이었다는 데에 있었다. 그들의 아슬아슬한 균형은 도시미화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휘둘리고 깡패들이 난입해 무너지기 직전에 처하기도 한다. 무의미한 정치싸움, 시크교도 학살 등 인도의 비참했던 현실을 드러낸 작품이라 불안해하면서 읽었다. 더 서글펐던 것은 한때의 아슬아슬한 균형이 깨어져 떨어지고도 삶은 계속되었다는 점에 있었다. 국가 혹은 시대가 자행하는 폭력 속에서 무력한 개인의 모습이 마음 아프기도 했고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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