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리뷰해주세요.
루머의 루머의 루머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5
제이 아셰르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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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실체가 없는 쪽이 더 무섭다. 현실주의자의 입장에서는 명확한 실체가 보이는 쪽이 공격하는 것이 더 무서울지도 모르지만 실체가 없는 것에게 공격받으면 대응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따라오는 것과 그 그림자가 '치한'이라는 이름으로 묶였을 때의 기분은 다르다. 수사물의 초반부가 두려운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살인자가 누군지 알 수 없을 때는 온갖 것이 다 두렵지만 살인자가 40대 후반의 백인 남성이며 안으로 억눌린 사람이라는 분석이 나온 이후에는 두려움이 급감한다.

그나마 그런 살인자는 실체가 있지만 소문의 경우 계속 머리가 돋아나는 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 가족오락관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서로 헤드폰을 쓴 상태에서 말을 전달하는 게임이 나왔었다. 네 사람 정도만 거쳤는데 그 말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왜곡된다. 루머라는 것도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당사자가 얼마나 악의를 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절대적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자신이 품은 선입견이나 빈약한 정보를 가지고 재구성해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그 이야기가 당사자에게 소리 없는 암살자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자신이 관련된 루머를 듣게 되었을 때는 이미 이야기는 멀리 퍼져나간 이후이고 평판은 바닥을 치고 있다.

없애려고 해도 머리가 계속 돋아나는 괴물과 같아서 없앨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다시 쓸 두 번째 기회를 기다릴 만한 마음의 강단이 있으면 모르지만 심약한 사람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만약 그렇게 되어 불행한 사고가 일어난다면 그 루머에 관련된 사람은 전부 관계자라고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당사자의 목숨을 빼앗은 것은 아니지만 일조한 것 역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책 '루머의 루머의 루머'에서는 자신에 대한 왜곡된 루머로 인해 자살한 소녀가 등장한다. 그녀의 이름은 해나 베이커, 이야기는 한 소년이 해나로부터 소포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죽은 자에게서 온 편지라는 말이 어감은 낭만적이지만 원치 않던 죽음을 선택한 자에게서 온 편지이니 그런 온건한 것일 리가 없었다. 예상대로 해나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13명을 원망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관련된 자가 자신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알아주길 바랐다. 그런데 문제의 소포를 받은 소년은 해나 베이커를 짝사랑한 클레이였다. 클레이의 입장에서는 단지 짝사랑만 했을 뿐인데 자신이 어떻게 해나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기분 나쁘다고 소포를 던져 버릴 수도 있었지만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듣지 않는다면 그녀가 취해 놓은 조치로 인해서 그 테이프 7개는 세상에 공개된다는 것이었다. 테이프 한 면에 한 명씩 해나의 죽음에 일조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것을 공개했을 때 대부분 치명적 손상을 입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해나 자신이 그랬듯이 말이다. 소포를 받게 되는 사람의 입장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끝까지 듣고 다음 해당자에게 보내야 했다. 클레이는 자신이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도 싶었지만 자신에게 그 소포가 왔다는 것은 자신도 관련이 있다는 증거였다. 또한 죽었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굴복하고 만다. 그리고 테이프를 듣는다.

이제 이야기는 테이프로 들려오는 해나의 목소리와 그에 따라 그녀의 자취를 따라가는 클레이의 이야기로 나뉜다. 아직도 죽은 해나를 잊지 못하는 클레이는 끝내 모든 진실을 알게 되고 그 진실은 지나치게 가혹했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적절한 순간의 한 마디 말은 격려가 되어 힘이 되지만 최악의 순간의 부적절한 한 마디는 독이 되어 심장에 박힌다. 자신의 말에도 휘둘리지만 타인의 말에도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루머는 독약과도 같다. 쉽사리 제거할 수 없는 괴물이면서도 당사자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기 때문이다.

이 책이 더 끔찍하게 느껴졌던 것은 주인공 클레이는 해나를 그리워하고 슬퍼하며 분노하지만 테이프에서 등장하는 다른 소년은 자신이 그저 운이 없어서 들어갔다고 말한다. 조금의 반성도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말이 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위력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같은 일이 또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한 한 마디의 말, 하나의 작은 행동이 어떤 여파를 가져올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결국 실체가 없는 악의가 가장 무섭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한 소녀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를 독특한 형식을 빌려서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죽은 자의 목소리를 담은 테이프가 도착한다는 소재가 오싹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더군요. 어떻게 해도 그녀가 죽었다는 현실을 바꿀 수 없으니까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네요.
다만 만화 '백귀야행'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에피소드가 있었지요. 한참 학교를 쉰 즈카사가 학교로 돌아가자 그 공백의 기간에 대한 추악한 루머에 시달리는 내용이었어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자신의 말이 담고 있는 힘을 간과한 누구나.
누구나 13인 중에 한 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우리랑 그 자식이랑 뭐가 다른데?"
"그 새끼는 피핑톰이야. 더러운 변태라고. 해나의 창문을 들여다봤잖아. 왜 그 새끼 창문을 깨면 안 되는데?"
"그러는 넌? 넌 무슨 짓을 했냐?"
잠시 마커스가 나를 쏘아봤다. 그러고는 눈을 깜박였다.
"아무 짓도 안 했어. 그냥 별일 아니야. 이 테이프에 나올 정도는 아니라고. 해나가 자살 핑곗거리로 삼았을 뿐이야."
(P135, 13인 중 한 명이지만 자신은 관계없다며 반성도 하지 않는 한 명의 말)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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