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요리책>을 리뷰해주세요.
비밀의 요리책
엘르 뉴마크 지음, 홍현숙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어떤 물건을 숨기려면 어디에 두면 좋을까. 흔히 엄중히 닫힌 금고를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나무는 숲 사이에 숨겨두는 것이 가장 찾기 어려운 법이다. 사람을 가장 찾기 어려울 때는 사람 사이에 숨어 있을 때인 것이다. 그 사람이 2미터가 넘는 장신의 거구가 아닌 이상 말이다. 그렇다면 책은 어떨까. 모든 사람이 그 책에 세상을 뒤집을 비밀이 숨어 있다고 혈안이 되어서 찾는 책의 경우에 말이다.

이 책 '비밀의 요리책'에서는 한 권의 책이 등장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 책을 원한다. 어떤 이는 그 책에 불로불사의 비밀이 숨어 있다고 하고 어떤 이는 그 책에 은밀한 복음이 숨어 있어 기존의 가톨릭 체계를 뒤집을 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부분이 많은 사람들은 그런 허무맹랑한 소문을 담은 책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눈 먼 권력자들이 걸어 놓은 포상금 때문에 그 책을 가지고 싶어 했다.

때는 15세기, 장소는 베네치아였다. 음모가 판치는 땅이었고 언제나 그렇듯 빈부의 격차는 거대하게 벌어져 있었다. 거리에는 비밀경찰이며 살인자 집단인 카파 네라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십인 평의회가 지시하는 누구든 죽일 사람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주인공인 소년은 부모에게 버림 받고 거리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부랑아인 루치아노는 같은 처지의 마르코와 함께 굶주리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일을 다 할 태세였다. 소년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버려졌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노점상에서 먹을 것을 훔쳐야 할 처지였던 것이다. 만약 아이들이 조금만 나이가 많았거나 교육을 받았다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그들은 너무 어렸고 일자리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루치아노는 언제나 그렇듯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석류를 훔친다. 그런 그를 붙잡은 이가 있었다. 소년은 겁에 질리지만 그를 붙잡은 남자는 그를 때리지도 고발하지도 않았고 어디론가 데려간다. 남자는 총독의 요리사였고 도둑이었던 루치아노를 수습생으로 고용한다. 물론 수습생의 신분인터라 일은 고된 것이었고 돈도 받을 수 없었지만 만약 승진해서 야채 요리사가 된다면 돈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점은 세 끼와 잠자리가 제공되니 더 이상 굶을 필요도 노숙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루치아노는 뜻하지 않은 행운에 머리가 다 멍해졌다. 친구인 마르코는 그의 행운을 시기했지만 루치아노가 먹을 것을 주었기 때문인지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허나 루치아노가 먹을 것을 챙겨주는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다. 거기에 원래 주방의 말단으로 있던 술주정뱅이 주세페는 루치아노의 출현을 불쾌해한다. 그래서 그를 은밀히 괴롭히기도 하는데 루치아노는 꾹 참아낸다. 그 믿을 수 없는 행운을 놓치면 예전처럼 쓰레기통을 뒤져야 할 참이었기 때문이다.

루치아노를 주방으로 불러들이고 깨끗한 옷과 잠자리를 제공해 준 페레로 주방장은 예사로운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일단 결코 루치아노를 업신여기거나 때리지 않았다. 그리고 주방으로 그를 만나러 수많은 학자들이나 인쇄업자, 제지업자가 방문했다. 물론 주위 사람들은 페레로 주방장이 거장이라고 할 만한 요리솜씨를 유지하기 위해 요리책을 모으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페레로 주방장은 루치아노를 관대하게 대한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를 일요일에 불러 같이 예배를 보고 점심식사를 대접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페레로 주방장의 부인이 불쾌해 했는데도 그 모임은 한 동안 계속되었다. 루치아노는 페레로 주방장을 스승으로 하여 요리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와의 유대관계는 점차 두터워지지만 마르코로 인해서 불화가 싹트고 그와 함께 페레로 주방장을 휘감고 있는 비밀이 얽히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변해간다.

한 권의 책에서 모든 실마리가 등장하고 주인공인 소년이 거리의 부랑아에서 요리사로 성장해가는 터라 꽤나 흥미롭게 읽었다. 더구나 요리에 대한 묘사가 섬세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어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포도 한 송이에 대한 묘사부터 페레로 주방장이 만들어낸 요리는 거의 마법과도 같아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어디까지나 사자고기를 요리한 것은 제외하고 말이다. 모든 비밀이 풀려 나가고 이야기가 끝에 도달했을 때의 감탄은 읽을 때보다 더 큰 것이었다. 모든 조각이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페이지가 꽤 긴데도 재미있게 읽었다. 다른 분야의 책보다 팩션은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이 책은 매혹적이었다. 이런 팩션이라면 언제라도 환영하고 싶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거리의 소년이 성장하는 과정과 비밀, 매혹적 요리를 잘 버무린 책이란 점이 가장 강점이에요. 읽기에 따라서는 성장소설로도 팩션으로도 일반 소설로도 읽을 수 있구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15세기의 음모와 모략이 판치는 분위기를 맛보고 싶으신 분이라면 역사서 <메디치가 살인사건의 재구성>을
책과 관련된 팩션은 <살인의 방정식>이 떠오르네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요리를 만드는 것이나 맛집 프로를 좋아하는 사람, 요리에 대한 묘사를 보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구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로사, 저 애는 석류를 훔쳤어. 아무 생각도 없이 곰팡내 나는 빵을 입에 우겨넣지 않았다고. 석류는 힘들게 껍질을 벗겨서 한 알 한 알 먹어야 하는 과일이야. 시간이 걸리지. 석류를 먹으려면 정성을 쏟아야 해" (P78, 페레로 주방장이 거리의 아이 루치아노를 제자로 선택한 이유)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