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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많은 것이 희미해져간다. 세상이 무너져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사랑도 빛이 바래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젊음도 시들어간다. 그 시간이 가혹하게 느껴져서인지 아니면 인간의 힘으로 비틀 수 없는 시간의 절대성에 대한 감탄인지 시간은 많은 소설 속의 좋은 이야기 거리가 되어 왔다. 주로 시간 여행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 분위기는 과거의 여인과 사랑에 빠져 버려 시간여행을 모색하는 남자처럼 환상적인 것들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집에 실려 있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도 그에 못지않다. 씁쓸한 분위기가 섞여 있어서 몽환적인 분위기는 덜하지만 그 기묘한 상상력은 경계도 한계도 없다. 이야기의 주인공 벤자민 버튼은 단편의 제목대로 거꾸로 된 시간을 살게 되었다. 이야기를 쓰게 된 동기 자체는 마크 트웨인이 한 발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삶에서 생의 최고 대목은 가장 처음에 오고 최악의 대목은 가장 끝에 온다는 뜻의 말이었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노인으로 태어나 아이로 사라지는 인생을 살게 된 남자의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다. 표지에 쓰인 말대로라면 벤자민 버튼에게 운명은 처음에는 잔인했으나 나중에는 친절했을 것 같지만 실상은 별로 그렇지 않았다. 그는 노인으로 태어나서 병원의 직원들을 비롯해서 지역 유지인 아버지를 경악시킨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그래도 유연했다. 이미 어른의 키이고 말까지 하며 시가를 피기도 하는 아들이 창피하기는 했지만 아이를 포기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자신이 처한 재난에 어쩔 줄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할아버지도 자신의 동갑내기 친구로 보이는 손자를 반길 수만은 없었지만 후에는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벤자민 버튼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일반적인 아이들처럼 굴 것을 강요하기는 한다. 그리고 벤자민 역시 그 기대를 어느 한도 정도까지는 응해준다. 몸 여기저기가 아파왔지만 부모가 안 되어 보였던 것 같다. 그는 몸만 노인인 것이 아니라 노인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여유를 가지고 사물을 대한다. 사람을 태하는 태도라고 다르지 않아서 아기임에도 아버지가 처한 난처한 상황을 이해한 것이었다.

자신에게 그리 어울리지 않지만 아버지의 요구에 최대한 부응해서 전혀 비슷해보이지 않는 동갑내기들과 어울려 장난을 하려 해보기도 한다. 그로 인해서 창문이 하나 깨지는데 이 일을 벤자민의 아버지는 상당히 뿌듯해 한다. 늙은 몸으로 아이의 역할을 다하려니 버거운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지만 벤자민의 어린 시절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늙은 시절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를 시기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점이 하나 발견된다. 시간이 갈 수록 벤자민의 몸은 젊어지고 활기가 더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스무 살 즈음이 되자 오십 살 정도로 보였고 이제 아버지의 친구 같은 외모가 되었다. 그는 치기어린 젊음은 아니었지만 넉넉한 여유를 가진 활기를 얻었다. 그리고 그 때 아내를 처음 만난다. 이 결합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실상은 동갑내기라고 해도 좋았지만 벤자민의 외형을 보아서는 지나치게 나이차가 많은 한 쌍이었던 것이다. 이때까지 벤자민의 인생은 점차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한 때 아들을 수치스러워 하고 숨겼던 아버지는 이제 아들을 자랑스러워했고 예전에 다소 홀대했던 것을 미안해할 정도였다. 이때까지는 좋았다. 그는 적당히 젊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의 시간도 다른 사람이 것과 마찬가지로 멈추지 않고 그 사실은 이제 문제를 가져온다.

다른 사람과 다른 시간의 방향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결코 그 시간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단지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이야기 전개였던 것이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다른 사람과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시간여행자들의 변형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 외에도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경계 없는 상상력을 마음껏 자랑하고 있다.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에서도 결코 알려지지 않았던 은밀한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산 전체가 다이아몬드라는 것이다. 이처럼 피츠제럴드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말하면 과장이 심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낭만적 환상을 글로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하면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소설에 있어서 상상력은 미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환상으로 탑을 올린 이야기는 보통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며 씁쓸함을 감고 끝이 난다. 생각해보면 환상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화려한 상상력으로 인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는 점이 좋았어요.
한 순간의 신기루랄까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과거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 '시간여행자의 사랑'이란 책이 생각나네요.
굳이 공통점이라면 시간이라는 소재밖에 없지만
환상적인 분위기가 좋았던 책이었어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한 순간의 환상을 달콤하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나도 더 이상은 몰라. 어쨌거나 우리 잠시 동안 그냥 사랑하자고. 한 일 년 쯤. 당신과 나 말이야. 그건 우리 모두가 시도해볼수 있는 신성한 취기의 일종이니까. 온 세상에는 오로지 다이아몬드들뿐이야, 다이아몬드들과 어쩌면 환멸이라는 초라한 선물. 난 그 마지막 건 가져봤으니까, 그걸 그냥 별스러울 것도 없는 흔한 일로 생각해버릴 거야."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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