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투를 빈다] 서평을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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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빈다 - 딴지총수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김어준 지음, 현태준 그림 / 푸른숲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어느 날 욕실에서 손을 씻는 동안 머릿속에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 계기는 얼마 전에 읽은 책에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눈을 가리고 시간을 보내본다는 것이었다. 타인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머릿속의 수많은 생각의 파편 중에서 하필 그 기억이 떠오른 것은 집안에서 유일하게 창문이 없는 장소인 욕실에 있다는 점이 큰 몫을 했다. 불을 끄고 문을 닫고 눈까지 감으면 굳이 눈을 천으로 가리지 않아도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움직여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단순한 호기심으로 행한 일은 큰 충격을 가져왔다. 빛이 있고 눈이 보일 때의 공간과 어둠이라는 장막으로 시야를 뒤덮은 공간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사실 욕실의 크기가 큰 것도 아니고 조금만 팔을 뻗으면 금세 손이 벽에 닿을 것이 뻔했다. 더구나 몇 년 째 살고 있는 집의 욕실이니 더없이 익숙한 장소였다.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간단한 사실 하나로 당혹감과 공포감을 맛보게 되었다.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고 문의 손잡이를 찾기 위해서 문을 더듬어 내려갔다. 잘못 움직여서 어딘가에 부딪히거나 혹시 미끄러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휩싸인 채로 말이다.
사람의 인생이 이런 상황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방사능 거미에게 물려서 신기한 능력이 생기는 것은 책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사람은 큰 차이 없이 살아간다.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다는 공식은 어느 사람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된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 정신적 여유로 삶의 질이 바뀌기는 하지만 단순화해서 생각하면 큰 차이는 없다. 중국의 황제조차 늙는 것을 막지 못했고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사람의 인생은 뻔하다. 그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인생은 어둠 속에서 손잡이를 찾아 손을 뻗는 것과 비슷하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고 하지만 그 사실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힘들 때가 많다. 이 지구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왔으니 그 사람들의 삶을 반복하는 것 같은 일상을 보내면서도 자신이 입장이 되면 모든 것이 새롭고 또 어려울 때가 있다. 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고민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어둠 속의 체험은 눈을 뜨고 빛을 되찾으면 된다지만 사람의 인생에 빛을 들일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마음가짐뿐이다.
결국 그런 마음가짐을 얻을 때까지 어둠 속에서 곤혹스러워 하는 사람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고민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 특히 인생의 갈림길이 지나치게 많아 보일 때 더 그렇다. 그런 면에서 이 책 '건투를 빈다'는 유쾌했다. 거미줄에 휘감겨 있는 것처럼 고민에 휩싸여 있었는데 한 마디를 할 때마다 그 거미줄이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내용은 어느 사람이 저자 김어준에게 고민을 상담하고 그가 답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간이 저자의 생각이 담겨 있는 페이지는 덤이라 할 수 있었다. 읽고 나니 덤 쪽이 더 인상적인 맛이 있었지만 고민에 대한 답변이 직설적이지만 통쾌하다.
다른 사람의 고민에 대한 답변은 은근히 뻔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기 때문에 책임을 회피한 적당한 격려 일색이기 때문이다. 사실 격려가 아니라 직접적인 행동에 대한 충고를 하는 것도 타인에 대한 지나친 간섭에 들어가니 누군가의 고민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는 그저 들어주는 것 뿐 셈이다. 허나 딱 잘라 꿈을 향해 움직이라거나 남자친구를 인류애적 관점에서 놓아주라고 하는 충고를 듣는 것은 통쾌한 맛이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슷한 고민을 말하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요점은 어디까지나 '정면돌파'지만 조목조목 분석해가며 열변을 토하는 저자의 말을 읽는 것도 즐거웠다. 유쾌하게 읽다보면 주변에 안개처럼 얽혀 있던 고민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 행복해지라는 말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기분이었다. 타인의 고민과 그에 대한 답변으로 마음을 위로받고 후련한 기분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전혀 예상치 못한 고민을 말하는 경우에는 그저 흥미로운 일을 구경하는 심정으로 읽게 되었다.
다 읽고 난 소감은 한 마디로 '후련하다'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다 읽고 나니 누군가의 고민도 그에 대한 저자의 답변도 그리 생각나지 않았다. 오히려 중간 중간 들어간 저자의 맥락 없는 이야기가 더 인상적이었다. 잡초를 뽑다가 이어지는 뜬금없는 생각이나 어머니에 대한 회상 같은 것 말이다. 단 하나 저자의 답변 중에 기억나는 게 있다면 '상황에 당당하게 맞서고 건투를 빈다'는 말일 것이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의 고민을 단순화시키고
타인의 고민과 그에 대한 답변을 들어봄으로써
상황을 객관화시켜주는 것이 좋았어요.
역시 가장 좋은 점은 고민을 위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경우
한 번에 그 고민을 날려보내 주는 점이었지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타인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에 대한 통쾌한 답변을 준다니 딱히 떠오르는 책이 없네요.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을 추천해볼까도 했는데 조금 다른 것 같구요.
타인의 고민과 그에 대한 답변에서
다시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부분에서는
얼마 전에 읽은 '홈리스 중학생'을 추천하고 싶네요.
사람의 삶에 대한 생각과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거든요.
두 책을 다 읽고 나니 읽은 후 느낌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네요.
둘 다 좋았구요.
• 서평 도서와 동일한 분야에서 강력 추천하는 도서
이 책이 인간관계 분야에 있더군요.
인간관계 분야라면 얼마 전에 읽은
'나는 매일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된다' 추천할게요.
제목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나름 유용한 책이었어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연령불문하고 고민 많은 사람들이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겠지만
굳이 연령대를 정한다면 20대에게 권하고 싶네요.
격렬한 고민으로 몸을 떠는 나이니까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자신이 이기적이란 사실 자체를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기심은 존재의 기본 권리다. 문제는 이기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과연 어디서 그 한계를 긋느냐 하는 것이다. 그 한계선을 이어 붙이면 그게 곧 자신이다.
(P144)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