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분노로 잠이 안 올 때 나만의 작은 요령이 있다. "나는 먼지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nothing)."를 계속 중얼거린다. 그러면 어느새 괴로움에서 조금 멀어진다. 하찮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의미, 우연, 찰나, 이 세 가지 조건에 의해 세상에 던쳐진 아무것도 아닌 존재. 미물(微物)도 아니다. 어디에도 닿지 않는 순간의 빛, 작고 보잘것없어서가 아니라 잠깐 지나가는 것이기에 보이지 않는 존재다.
다짐해도 다짐해도 금세 잊혀지는 내 좌우명, "지구에 머무는 동안 타인과 자연에 민폐 끼치지 말고 조용히 사라지자." 그러므로 괴로움에 몸부림칠 일도 없다. 조금만 견디면 된다. 괴로운 시간은 대개 "인생은 대단하다. 고로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때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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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곳은 마음껏 열고, 닫을 곳은 닫는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기분이 좋아서 주절주절 말할 때와, 멍하니 혼자 있을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거릴 때, 여러 가지 상황에 놓이는 것이 인간이니까, 방도 거기에 맞춰 역할을 분담하는 게 좋다, 고. - P271

"한 점의 틈도 그늘도 없는 완벽한 건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그런 것은 아무도 못 만들어. 언제까지나 주물럭대면서 상대방을 기다리게 할 만한 것이 자신한테 있는지, 그렇게 자문하면서 설계해야 한다네."
- P286

마리코의 형태는 태어났을때부터 쭉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있다. 지금 옆에 앉아서 숨을쉬고, 말하는 마리코가 사랑스러웠다. 성급한 욕망과는 색채가다른 감정이 내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마리코의 침실에 벌레 소리가 울려 퍼진다. 서로의 손이 움직이고, 몸이 닿고, 말이 형태를 이루기를 그만둘 때, 닫힌 입이 다시 살짝 열린다. 바닥에 가라앉아서 잠들어 있던 감각이 자극을받아서 떠오른다. 몇 번을 되풀이해도 싫증나지 않고 좀더 강하고 선명하게 태어나는 이 감각은 어디에서 솟구치는 것일까. 아무리 깊게, 흔들리고, 자기가 사라질 것처럼 느껴도 언젠가는 돌아올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이 감각이 사람의 마음속 저 깊이태어나면서부터 있었던 암흑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그리운 어둠, 우리는 그 따뜻한 어둠 속으로 서로의 숨결을 확인하고 호흡을 맞추면서 한없이 내려갔다.
- P311

자연의 형태나 색채가 합리적인 이유만으로 태어났다면 예컨대 꽃에게, 새에게, 나무에게 이다지도 많은 종류와 변화가 초래되었겠는가. 박새의 가슴께에 흑백으로 그려진 무늬는 왜 그렇게 생겼는지, 각각의 개체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형태나 색은 그것을 지니는 자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먼 옛날부터 시간을 들여 찾아왔고, 그냥 계승되어가는 것이다.
- P328

그러나 움막이라면 아주 잠시라도 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불을 멍하니 보는 여백 같은시간이 있었을 거야. 인간에게 마음이 싹튼 것은 그런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집 안에 계속 있으면 점차 견딜수가 없어져서 밖에 나가고 싶고, 자연 속을 걷고 싶고, 나무와꽃을 보고 싶고, 바다를 보고 싶다고 원하게 되지. 인간의 내면같은 것은 나중에 생긴 것으로 아직 그다지 단단한 건축물은 아니라는 증거일 거야. 집 안에서만 계속 살 수 있을 만큼 인간의내면은 튼튼하지 못해. 마음을 좌우하는 걸 자기 내부에서가 아니라 바깥에서 찾고 싶다. 내맡기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 P337

젊을 때는 시간이 되는대로 도면에 달라붙어 숨이 막힐 듯한 완성을 목표로 일했다. 그 때문에 등한시한부분이 손도 대지 못한 채 남겨진 것은 알아채지도 못하고.
잘된 것도, 잘못된 것도 해체하면 똑같이 사라진다. 그러나 그것을 마음속 깊이 아쉽다고 생각한 일은 별로 없다. 해체되는 집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조금 더 과장해서 말하면 그 나름의 운명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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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갓 구운 빵이니까 올리브오일에 발사믹, 거기에 후추를 갈아서 찍어먹자고. 그거면 배가 불러도 머리는 잘 돌아가니까. - P104

나는 이 조용하지 않은 고요함이 좋았다. - P104

"그러니까 나는 부엌일을 안 하는 건츅가 따위 신용하지 않아. 부엌일, 빨래, 청소를 하지 않는 건축가에게 적어도 내가 살 집을 설계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어."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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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런저런 감정이 밀려올 때 마치 ‘감정 = 나‘인 것처럼 ‘이런 일로 슬퍼하는 / 불안해하는 / 화를 내는 내가 싫다.‘ 같은 평가 ‘질‘을 그만두도록 해요. 그저 슬플 때는 ‘내가 지금 슬프구나‘, 기쁠 때는 ‘내가 지금 기쁘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거예요. 감정은 평가할수록 나빠질 수 있다는 것, 기억해요. - P40

많은 괴로움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나를 괴롭히기 때문에 발생하곤 합니다. 곱씹기가 대표적인 예인 셈이죠. 딱히 겪지 않아도 되는 불필요한 불행을 스스로 늘려 가는 것이니까요. 곱씹기는 내가 나를 고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합니다.
고민이 많고 내가 나한테 자꾸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을 때,
모두 머릿속에서 내가 나한테 떠드는 말일 뿐 실제가 아니라는 걸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자아야, 좀 조용히 해.‘라고 속으로 말해 보는 것도 좋아요. 사는 건 이미 충분히 힘든데 겪지 않아도 되는 불필요한 불행까지 스스로 만들지는 말아야 하잖아요.
- P45

싫어하는 사람이 남이라면 심한 경우 절교를 하거나 연락을 차단하는 등 다신 보지 말자고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면요? 나의 행동, 생각, 외모가 싫다면 하루하루가 불행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나는 나를 차단할 수도, 나와 헤어질 수도 없으니까요.
이렇게 나 자신과는 결코 떨어질 수 없고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결코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떠올려 봐요.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한다던가 자꾸 지적을 해 대고 너 참 한심하다며 나를 깎아내리는 말을 자꾸 하는 사람과는 한 시간도 같이 있고 싶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내가 만약 나에게 이런 최악의 사람이라면, 끊임없이 잔소리와 나쁜 말들을 쏟아 낸다면,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항상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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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원래 그래 같은 말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믿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감각을 아직 떨쳐 내지 못했다. 나는 어떤 말을 들으며 자랐는가. 사회는 전쟁터라는 말, 함부로 사람을 믿지 말라는 말, 착하면 손해라는 말, 만만하게 보이면 안 된다는 말. 약육강식, 각자도생, 승자독식,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덮기 전에도 숱하게 들어온 말들, 그런 말을 비난하면서도 이용하던 사람들. - P133

바이러스는 아직도 진화하는 중일까. 겨우 백신을 만들어도 바이러스의 진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도 누군가는 계속 연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은 그런 종족이다. 사명감이나 책임감 같은 이상한 감정이 탑재되어 있다. 세상이 이렇게 망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며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에는 이 재앙을 살인과 광기의 축제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내개는 책임감도 광기도 있다. 그 두 가지가 전혀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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