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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네 마르티니(1280/85~1344)의 수태고지.

수태고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사실을 미리 알린 것.

천사장 가브리엘이 나자렛에 살고 있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신약성서의 《루가의 복음서》 1장 26∼38절에 따르면,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한 입장이었다. 그 사건은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유대의 율법에는 처녀가 임신을 하면 반드시 돌로 쳐죽이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수태고지의 내용 속에서, 그리스도 교회의 중요한 교리인 '동정녀 수태설'이 나온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무죄성과 구약 예언의 성취, 그리고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가현설(:Docetism)을 배격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아름다운 소재를 화폭에 담은 성화가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엘 그레코, 안젤리코 등의 그림은 유명하다. 지금도 성지 나자렛에 가면 이때 마리아가 살던 곳이라고 믿어지는 장소에 고지교회라 불리는 기념()교회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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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삼월은 붉은 구렁을 중에서

라이트 [Wright, Frank Lloyd, 1867.6.8~1959.4.9]

미국의 건축가.
국적 미국
활동분야 건축
출생지 미국 위스콘신주() 리치랜드센터
주요작품 라킨사() 빌딩(1904), 폴링워터(Falling water:낙수장)(1936) 등

미국 위스콘신주(州) 리치랜드센터에서 태어났다. 15세 때 아버지가 행방불명되어 위스콘신대학교를 고학으로 졸업하였다. 1887년 근대건축의 선구자 L.H.설리번의 설계사무소에서 일하였다. 1893년에 윈슬로 저택을 비롯한 주택건축을 중심으로 자신의 설계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유기적 건축 이론에 의한 '프레리하우스(초원주택)' 시리즈의 걸작을 다수 만들어냈다. 하트레이 저택(1902), 마틴 저택(1904), 쿤레이 저택(1908), 로비 저택(1909) 등의 잇단 건축은 탤리에신에서 최초로 지은 자택(1911년 이후)에까지 이어진다.
동양건축에 자극을 받으면서 여러 방면으로 뻗는 플랜, 공간적인 유동성, 대지의 수평선에 동화한 듯한 외형 등을 훌륭하게 통일하여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였다. 주택 이외에도 라킨사(社) 빌딩(1904), 유니테리언교회(1906) 등이 있으며, 라이트의 작품집이 1910년 베를린에서 출판되자, 유럽 건축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 후부터 1930년대 초까지는 불우한 시대였다. 첫번째 아내의 행방불명, 그리고 1914년 탤리에신에서 하인의 방화살인사건으로 인한 체니 부인과 두 아들의 죽음 등 불행이 잇따랐다. 이 시기의 작품에는 마야풍의 첫 작품인 시카고의 미드웨이 가든(1914), 일본 도쿄[東京]의 데이코쿠[帝國] 호텔(1922), 미라드 저택(1923) 등이 있으나, 1920년대 말에 닥친 세계적인 경제공황의 여파로 그의 활동도 부진하였다.
1936년 '폴링워터(Falling water:낙수장)'라고 명명된 카프만 저택, 1939년 존슨 왁스 본사 등 두 가지 훌륭한 건축으로, 당시 세계적으로 파급되어 있던 국제건축 양식을 소화하면서 기적적으로 부활하여, 제2차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즉 1938년부터의 탤리에신 웨스트 건설, 하나 저택(1937)에서 시작한 30∼60° 각도의 평면구성을 지닌 건축을 전개해 나갔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제2제이콥스 저택(1948), D.라이트 저택(1952), 프라이스 타워(1956), 베스 쇼롬 유대교회(1955) 등의 작품이 있고,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1959)을 완성하기 직전 애리조나주(州) 피닉스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광활한 미국의 풍토를 배경으로 고도의 기술문명을 구사하면서 그 토양과 조화되는 유기적인 건축설계를 전개시켜나감으로써 20세기의 위대한 건축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http://www.aladin.co.kr/blog/mypaper/851389

Shirley Jackson - The Haunting of Hill House

Hill House stood abandoned six miles off the road. Four people came to learn its secrets. But, Hill House, stood holding darkness within. Whoever walked there, walked alone.
 
리처드 매드슨 (Richard Matheson) - Hell House
 


An aging millionaire seeking proof of life after death employs an unusual team of of investigators to probe the mysteries of the supposedly haunted and evil Belasco House.
 
 
Victoria Holt - The Secret Woman
 
 
To all appearances, Anna Brett was a quiet, capable young woman whose only ambition was to carry on the profitable antiques business bequeathed her by a spinster aunt. And so she was - until the memory of a cherished moment with a blue-eyed stranger suddenly returned to haunt her with savage intensity. It was then Anna discovered the secret woman who waited within her - impetuous, daring . . . and dangerous.
 
라프카디오 헌
 
1850년 6월 27일 그리스 레프카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가 1890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인 고이즈미 세쯔와 결혼한 뒤 1986년 고베에 거주하면서 고이즈미 야쿠모로 개명하고 시민권을 받았다. 이 해에 도쿄로 이주하여 동경제국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뛰어난 문학적 성과들을 남겼다. 1903년 동경제국대학을 그만두고 와세다대학으로 옮겼으나 다음해 1904년 9월 26일 협심증으로 사망했다. 일본인으로 지내며 모두 12권의 작품을 남겼다.
 
바그너 - 발퀴레의 비행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에서 가장 유명한 곡으로, 전쟁의 여신 발퀴레의 테마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발퀴레는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할 영웅들을 선택하고 이들을 천상의 발할라 궁전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모노크롬 [monochrome]

흑색 또는 그 밖의 한 색만 사용해서 표현하는 단색화나 일러스트레이션

단색 사진이나 단색 영화를 모두 일컫는 말로, 미술에서는 한 가지 색이나 같은 계통의 색조를 사용하여 그린 그림을 말한다. 단색화로 번역되며, 다색화인 폴리크롬(polychrome)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1950~60년대의 현대회화에서  이러한 모노크롬적 경향이 많이 보이는데, 색채를 통해 배어나오는 인간의 감수성을 모두 배제한 하드에지 페인팅(hard edge painting)이나, 형태와 색채의 극단적인 절제를 표명한 미니멀 아트(minimal art)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무채색이 기하학적으로 화면을 메워 승화된 감정의 극치를 보여준 절대주의의 대표자 K.S. 말레비치, 공간주의를 주창한 L. 폰타나, 비물질화를 통해 물질의 기화를 시도한 E.클랭, 무의미한 단색 화면을 통해 무념무상의 경지를 개척한 A.라인하르트 등이 대표적인 작가이다. 이들의 작품은 완벽하게 감정이 여과되었다는 호평을 받은 반면에 지나친 결벽증에 의한 삭막한 공백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F.스텔라, R.맨골드, R.라우션버그, P.만조니, E.켈리, A.마틴, R.라이만 등은 모노크롬의 대표적 작가들이다. 스텔라의 단색화는 무관계 미술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뉴욕 스쿨의 라우센버그는 흰색으로만 칠한 대형 작품을 발표하여 다른 뉴욕파 작가들과는 다른 감각을 보여주었다. 라이만은 질감이 다른 갖가지 종이를 사용하여 촉각이 느껴지는 흰색의 화면을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만조니는 털이나 솜의 질감을 가진 흰색 파이버글라스 작품을 발표하여 단순한 평면 캔버스에 변화를 주었다.
단색의 사용은 회화뿐만 아니라 미니멀 조각에서도 뚜렷이 드러났는데, J.맥클라겐은 판자에 광택 있는 원색을 칠하였으며, D.저드는 육면체에 채색을 하였고, D.플래빈은 채색된 형광등을 주재료로 사용하였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에 모노크롬 회화가 크게 유행하였는데, 서양에서처럼 다색화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서의 모노크롬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물질을 정신세계로 승화시켜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중성적 논리를 펼친 것이 특징이다.
모노크롬 성향은 1980년대 이후 기하학적 작품이나, 옵티컬 아트(optical art)의 리바이벌 형태를 구사한 P.타피의 작품에서 다시 선보였으나 과거와는 달리 사회적·문화적 메타포가 강하게 드러났다. M.탠지처럼 구상화에 모노크롬 기법을 도입하여 갈색 톤이나 청색 톤으로 일관되게 인물화와 풍경화를 구상한 작가도 있다.

남천 ( Nandina domestica )

남천(南天)은 매자나무과 Berberidaceae에 속하는 상록의 관목으로 높이는 1∼3m 내외인데 우리나라의 남부지역에 야생하거나 또는 관상용으로 식재(植栽)하고 있다. 잎은 가죽질이고 삼회우상복엽(三回羽狀複葉), 크기는 작고 장란형(長卵形)이거나 피침형이며 길이는 3∼ 10cm에 이르고 끝은 뾰족하다. 5∼6월에 흰색의 꽃이 피고 원추화서로 정생(頂生)한다. 열매를 맺는 시기는 10∼12월로 열매는 적색, 구형이다. 남천의 과실은 여느 식물이 낙엽, 낙과할 때 홀로 그 미려적색(美麗赤色)의 과실을 뽐내기 때문에 이 계절의 관상수로 상찬(賞讚)받는 것이다.
생약(生藥) : 남천의 과실, 줄기, 뿌리를 다 약용하고 있다. 남천은 화학분류(化學分類)적인 견지에서 보면 매자나무과에 속하기 때문에 그 약용성분의 다양성이 기대된다. 생약으로는 남천실(南天實) Nandinae Fructus이 있는데 중국에서는 남천죽자(南天竹子)라 하고 별칭 천촉자(天燭子), 남죽자(南竹子), 홍파자(紅把子) 등으로 불리우고, 뿌리는 남천죽근(根), 줄기나 줄기껍질은 남천죽경(梗), 잎은 남천죽엽(葉)이라 해서 다 약용된다. 중국에서는 적남천(赤南天)이 상용되나 백남천 Nandina domestica ThunB. var. leucocarpa도 약용된다.
성분(成分) : 성분은 알칼로이드가 주이고 lignan 유도체, biflavonoid 등이 들어 있을 뿐 아니라 알칼로이드에 속하지만 magnoflorin과 그 유도체가 있어 다각적인 응용의 추구가 요망된다.
· 남천실의 성분: 0-methyl domesticine(nantenine) isocorydine, protopine, Nandinine, Domesticine sinoacutine, magnoflorine 외에도 수종 알칼로이드가 함유되어 있다.
· 남천죽경의 성분: Domesticine, Nandinine Berberine, magnoflorine과 그의 styphnate, episysyringaresinol이 있고 그 외에도 수종의 알칼로이드가 있다.
· 남천죽근의 성분 : Domesticine, Nantenine이 주축을 이루고 그밖에 수종의 식물염기가 들어있다.
· 남천죽엽의 성분: Nantenoside A,B. magnoflorine, biflavonoid인 amentoflavone 등이 함유된다.
약리(藥理) : 줄기나 뿌리에는 Nandinine이 함유되어 있지 않아 이에 의한 약리작용은 기대하지 못하고 남천실에는 Nandinine과 Domesticine이 함유되어 있어 이에 의한 약리작용 을 지니고 있다.
·횡문근(橫紋筋)에 대한 약리: Nandinine과 Domesticine의 두 종류의 식물 염기는 횡문근에 대해서 직접적인 마비작용을 유기시키는데 이는 종전의 간접적인 작용설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이들 식물염기는 호흡중추(呼吸中樞)에 대해서도 억제 또는 마비시키는 작용이 있다.
·평활근(平滑筋)에 대한 작용: Nandinine은 동물실험에서 소량에서는 흥분, 다량에서는 억제한다고 하였다.
·중추신경에 대한 작용: Domesticine, Nandenine은 morphine like action(화학적 구조의 유사성)이 있다. 또 온혈동물의 심장기능에 대해서 억제 효과가 있고 응용 또한 다양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진해제(鎭咳劑)로 개발되어 있으나 기타 진경 진통제로서의 기능도 기대된다.
동양의학(東洋醫學)적 응용 : 폐를 다스리며 청간(淸肝)의 효과가 있다 하였다. 해소·천식·백일해·간실증(肝實症)에 응용된다. 외감(外感)에 의한 풍사에서 오는 기침에는 잘 듣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그 실체는 과학적으로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더럴 [Durrell, Lawrence George, 1912.2.27~1990.11.7]

인도 다르질링 출생. 아일랜드계(系)로 캔터베리의 세인트 에드먼즈 칼리지를 졸업하였다. 런던 나이트 클럽의 피아노 연주생활을 시작으로 아테네 ·카이로 ·아르헨티나 등 해외 각지를 전전하다가 죽기 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정주하였다. 초기에는 시작(詩作)이 주였으며, 《나의 나라》(1943) 《도시 ·평야 ·사람들》(1946)과 같은 우수한 시집을 발표하였다. 이로 인해 고전적인 수법으로 지중해의 풍토를 노래한 특이한 시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문학적 재능이 충분히 발휘되어 그의 문명(文名)을 결정적으로 높이게 한 작품은 《알렉산드리아 4중주 Alexandria Quartet》로 불리는 4부작 대하소설, 즉 《주스틴 Justine》(1957) 《발타자르 Balthazar》(1958) 《마운톨리브 Mountolive》(1958) 《클레아 Clea》(1960) 등이며, ‘현대의 사랑의 탐구’를 주제로 하여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추구하는 일종의 실험적 소설로, 더럴 자신도 상대성원리에 입각한 독특한 구성법의 소설이라고 말하였다. 또 이 작품은 현실 파악의 불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바로크풍 산문의 매력을 부활시킴으로써 새로운 로마네스크 소설의 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그 외에 《전시집(全詩集) Collected Poems》(1960) 《아일랜드의 파우스트》(1963) 등 극작(劇作)이 있다.

Deborah Crombie - All Shall Be Well

Superintendent Duncan Kincaid digs deep into a friend's past - all the way back to her childhood in India - to find a clue to her murder.
 
엘링턴 [Ellington, Duke, 1899.4.29~1974.5.24]
 
미국의 재즈피아노 연주자·작곡자·편곡자·밴드리더.
국적 미국
활동분야 예술
출생지 미국 워싱턴
주요작품 《흑갈색의 환상곡》(1927), 《할렘》(1950)
워싱턴 출생. 7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고등학교시절에는 헨리 그란트에게 사사하였다. 1918년 드럼 주자 S.그리어 등과 재즈를 연주하기 시작하고 그후 뉴욕에 진출, 할렘을 근거지로 소편성의 밴드로 활동하다가 1927년 말부터는 클럽에 출연하여 성공을 거두었으며 얼마 후 레코드와 연주여행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곡을 자신의 악단에서 연주하는 방법으로 출발하여 이 방법으로 일관하는 한편 그의 악단을 '내가 좋아하는 악기'라고 불렀으며, 그의 작품은 그의 악단에 의해 진가를 발휘하였다.
그 음색과 정서는 독자적인 특성을 지녔으며, 《흑갈색(黑褐色)의 환상곡 Black and Tan Fantasy》(1927), 《할렘 Harlem》(1950) 《Mood Indigo》 등 명작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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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볼

위스키에 소다수를 타서 8온스짜리 텀블러에 담아 내는 음료.
어원은 미국의 속어(俗語)로서 기차를 발차시키기 위해서 내는 신호를 가리켰으나, 그것이 술집에서 하는 게임(다이스)의 호칭이 되었고, 다시 바뀌어 음료의 호칭이 되었다는 설과, 골프의 클럽하우스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손님 술잔에 공이 날아들어 이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는데, 어느 것이나 다 속설일 뿐이다. 그러나, 본래는 반드시 위스키에 한하지 않고, 스피리츠(독한 술)를 소다수(진저 에일도 포함된다)로 희석한 음료의 통칭이었다. - 네이버 백과사전

  • 루크레차 보르자

체사레 보르자의 동생.
Lucrezia (or Lucrecia) Borgia April 18, 1480 - June 24, 1519) was the bastard daughter of Rodrigo Borgia, the powerful Renaissance Valencian who later became Pope Alexander VI and Vannozza dei Cattanei. Her brother was the notorious despot Cesare Borgia. Lucrezia's family later came to epitomize the ruthless Machiavellian politics and sexual corruption alleged to be characteristic of the Renaissance Papacy. In this story Lucrezia was cast as a femme fatale, a role she has been portrayed as in many artworks, novels and films.

Not enough is known about the historical Lucrezia to be certain whether any of the stories about her active involvement in her father's and brother's crimes are true. Her father and/or brother certainly arranged several marriages for her to important or powerful men, in order to advance their own political ambitions. Lucrezia was married to Giovanni Sforza (Lord of Pesaro), Alfonso of Aragon, Duke of Bisceglie, and Alphonso d'Este (Prince of Ferrara). Tradition has it that Alfonso of Aragon was an illegitimate son of the King of Naples and that Cesare may have had him murdered after his political value waned.
-- Wikipedia

이 인물을 소재로 쓴 도니제티의 오페라도 있다.

  • 헤라클레이토스의 강물

You cannot step twice into the same river, for other waters are continually flowing on it. There is nothing permanent except change. Nothing endures but change.

우리는 똑같은 강물 속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물들이 그 위에 계속 들어오기 때문이다. 변화 이외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화를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다.

만물은 유전한다(Everything flows. 또는 All things are set in motion and flow.)는 주장을 편 헤라클레이토스의 위의 말에서 인용한 표현. 그리스의 고대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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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S Thresher (SSN-593)

The second USS Thresher (SSN-593) was the lead ship of its class of nuclear-powered attack submarines in the United States Navy. Her loss at sea during deep-diving tests in 1963(10 April) is often considered a watershed event in the implementation of the rigorous submarine safety program SUBSAFE.

-- Wikipedia

Loss of USS Thresher

In company with SKYLARK (ASR-20), THRESHER put to sea on 10 April 1963 for deep-diving exercises. In addition to her 16 officers and 96 enlisted men, the submarine carried 17 civilian technicians to observe her performance during the deep-diving tests. Fifteen minutes after reaching her assigned test depth, the submarine communicated with SKYLARK by underwater telephone, apprizing the submarine rescue ship of difficulties. Garbled transmissions indicated that--far below the surface--things were going wrong. Suddenly, listeners in SKYLARK heard a noise "like air rushing into an air tank"--then, silence.

Efforts to reestablish contact with THRESHER failed, and a search group was formed in an attempt to locate the submarine. Rescue ship RECOVERY (ASR-43) subsequently recovered bits of debris, including gloves and bits of internal insulation. Photographs taken by bathyscaph TRIESTE proved that the submarine had broken up, taking all hands on board to their deaths in 5,500 of water, some 220 miles east of Boston. THRESHER was officially declared lost in April 1963.

Subsequently, a Court of Inquiry was convened and, after studying pictures and other data, opined that the loss of THRESHER was in all probability due to a casting, piping, or welding failure that flooded the engine room with water. This water probably caused electrical failures that automatically shutdown the nuclear reactor, causing an initial power loss and the eventual loss of the boat.

-- http://www.submarinehistory.com/Thresh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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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신앙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

방첨탑()이라고도 한다. 하나의 거대한 석재로 만들며 단면은 사각형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져 끝은 피라미드꼴이다. 태양신 신앙과 관계가 있고, 고왕국()시대에 아브시르에 있는 제5왕조의 네우세르라 왕묘의 태양피라미드 신전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분묘의 기념비로 건립되었다. 중()왕국시대 이후로는, 국왕의 통치 기념제 때에 신전탑문 앞에 한쌍이 건립되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것은 헬리오폴리스(태양의 도시라는 뜻)에 있는, 제12왕조의 세누세르 1세가 건립한 것으로 높이 20.7 m이다.

제18왕조의 투트모세 1세 이후로 제왕()이 명문()을 4면에 새긴, 애스원의 화강석제의 오벨리스크를 카르나크의 아몬 신전 앞에 세웠는데 대부분 유럽에 반출되어, 현재는 투트모세 1세(23.2 m, 143 t)와 하트솁수트 여왕(29.6 m, 325 t)의 것이 하나씩 남아 있을 뿐이다.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 불리는 투트모세 3세의 것은 19세기에 워싱턴 D.C.과 런던으로 각각 가져갔다. 아스완의 채석장에는 길이 41.7 m의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하나 있다.

     

콩코르드광장의 오벨리스크            카르나크 신전 오벨리스크

-- 모두 네이버 백과 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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