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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쯤 되었을 것이다. 무릎에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내가 마더 슈거에게 ‘가정주부 질환‘ 이라 말하던 그것이 엄습했음을 깨닫는다. 내 안의 긴장이 시작되었고 평화는 이미 사라졌다. 스위치가 켜지고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재닛에게 옷을 입히고 아침을 먹여 학교에 보낸 다음 마이클에게도 아침을 차려줘야지, 차가 다 떨어졌다는 거 잊지 말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이 쓸모없지만 틀림없이 불가피한 긴장과 더불어 원망의 스위치도 함께 켜진다. 무엇에 대한 원망일까? 불공평이겠지. 세세한 것들을 걱정하느라 그렇게도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원망, 이 원망이 마이클을 겨눈다. 머리로는 그게 마이클과 아무 상관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나는 정말 그가 원망스럽다. 하루 종일 비서며 간호사며, 온갖 일을 하는 여자들이 뒤치다꺼리를 하며 그에게서 이런 압박감을 덜어줄 테니까.

오래전 마더 슈거와 상담하던 중에 나는 그 원망, 그 분노가 비개인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건 차라리 우리 시대 여자들의 질환이다. 여자들의 얼굴이나 목소리에서, 혹은 그들이 사무실로 보내오는 편지들에서 나는 매일 그걸 목격한다. 그들의 감정은 불의에 대한, 비개인적인 독성에 대한 원망이다. 그게 비개인적인 것임을 알지 못하는 운 나쁜 여자들은 이러한 감정을 남편이나 연인에게 떠안긴다. 반면 나처럼 운 좋은 여자들은 그 감정에 맞서 싸운다. 피곤한 싸움이긴 하다.

그래, 내일. 나는 생각한다. 내일은 책임을 질 거고, 미래를 직면할 거고, 더이상 비참하게 지내는 일 따위는 단호히 거부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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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아닌가 싶어. 어쩌다 한번씩, 아마도 한세기에 한번쯤, 말하자면 신념에 따른 행동이 출현하곤 해. 신념의 우물이 차오르며 얼마 후 한두 나라에서 그것이 거대하게 솟구치고, 그러다 전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움직임이 되는 거야. 그것이 상상력의 소산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전 세계를 위한 어떤 가능성을 상상한 결과물이기에 그런 일이 생기는 거지. 우리 세기에 그런 일은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났어. 그리고 중국에서. 이후 그 우물은 말라버렸어. 네가 말한 것처럼 잔인함과 추악함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에, 그런 다음 우물은 다시 서서히 차오르겠지. 그러고서 또 한번 고통스럽게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앞으로 나아간다고요?" 그가 물었다.
"그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고통스럽게 나아간다고요?"
"그래, 꿈은 매번 더 강력해지니까. 사람들이 뭔가를 상상할 수있다면 그 일을 쟁취할 때가 오는 법이야.
"뭘 상상한다는 거죠?"
"네가 말한 그거. 선량함 말이다. 친절함. 더이상 짐승으로 살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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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 아줌마나 엄마, 그런 사람들은 단지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여러가지 모습으로 살잖아요.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이 사람들은 변화할 수 있고 어떤 다른 삶을 선택할 수도 있어요. 성격이 변한다는 게 아니라 한가지 틀에 박혀살지 않는다는 뜻이죠. 만약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혹은 혁명 같은 변화가 일어난다면……" 혁명이라는 말에 리처드가 가쁜 숨을 성마르게 들이마시는 동안 토미는 잠시 기다렸다가 다음 말을 이었다. "그래야만 하는 순간이 닥치면 이 사람들은 뭔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하지만 아버지, 아버지는 절대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가 아는 방식 그대로만 쭉 살겠죠. 전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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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성이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성. 그가 쉬차를 버리지 않았다면 쉬차가 그를 버렸을 터였다. 그것이 삶이 가진 폭력성이자 슬픔이었다. 자신을, 타인을,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건 그 서글픈 본성 때문일지도 몰랐다. 서로 보듬으면 덜 쓸쓸할 것 같아서. 보듬고 있는 동안만큼은 너를 버리지도 해치지도 않으리란 자기기만이 가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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