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와인 이야기 - 개정판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나이토 히로후미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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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와인은 기념일에 한 병을 열거나, 좋은 사람들과의 자리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드는 음료 정도로 여겼다. "세계사를 바꾼 와인 이야기"를 읽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한 잔의 술이 인간의 욕망과 권력, 신앙과 경제를 매개하며 세계사의 굵직한 장면들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는 사실이 의외로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연표식 설명 대신 사건 중심의 서사로 전개된다. 각 장이 하나의 역사적 분기점을 다루고 있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이해가 가능하며, 전문적인 양조 지식이나 테루아 같은 기술 용어를 깊이 요구하지 않는다. 덕분에 와인에 문외한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정보의 밀도는 결코 가볍지 않지만, 문장은 교양 에세이에 가까운 호흡으로 흘러간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고대 그리스다. 좁은 농토를 가진 평민들은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나누며 토론 문화를 형성했다. 심포지엄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같은 철학자들이 물에 희석한 와인을 곁들여 사유를 나누던 장면은, 민주정치의 발달과 문화적 활력이 일상의 음료와 맞닿아 있었음을 보여준다. 와인은 취기를 넘어 사유를 촉진하는 촉매였다.


중세로 넘어가면 와인은 종교와 권력의 중심에 놓인다. 성찬에서 예수의 피를 상징하는 와인은 신성한 매개가 되었고, 수도원은 포도 재배와 양조의 거점이 되었다. 카롤루스 대제는 와인의 정치적 가치를 활용해 왕국을 안정시키고 경제를 활성화했다. 교회를 중심으로 포도밭을 확장하며 사회를 재편하려 했던 그의 정책은, 와인이 통치 전략의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같은 와인이 유럽에서는 신의 음료가 되고, 이슬람 세계에서는 금지의 대상이 되었다는 대비 또한 인상 깊다. 제1차 세계대전 참호 속에서 와인은 병사들의 사기를 지탱하는 ‘승리의 술’이 되었고, 위생이 열악한 환경에서 물과 소독약을 대신하는 보급품으로 사용되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의지할 수 있었던 한 잔의 음료가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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