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문명과 이스라엘 - 고대근동 3천 년
주원준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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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대근동의 역사를 학술적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입문자가 읽기에 어렵지 않게 기술되어 있다. 저자가 최신 자료를 토대로 고대근동의 역사를 이해하기 쉽게 구성하였다. 구약성서의 역사적 배경과 주변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동방의 유럽' 메소포타미아는 기원전 4천 년대에 시작되었다. 이전에는 귀족들을 위한 토기를 제작했다면 신석기가 저물 때는 상당히 실용적인 토기가 생산되었다. 토기의 형태가 귀한 물건에서 실용적인 물건으로 바뀐 것이다.


이때 메소포타미아 남부 우르크에서 인류 최초의 도시가 출현했다. 도시는 자급자족하는 신석기 문화를 단절시킨다. 교역하는 중재자로 중심지 역할을 하였고 분업화와 전문화가 생겨났다. 운하를 파기 시작했고 많은 노동자를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운영해야 했다. 이 모든 체계를 관리할 권력과 행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쳬계가 정비되고 표준 단위가 생겨났고 결국 문자가 등장하게 된다.


도시 한가운데 신전과 왕궁이 지어졌다. 초기도시에는 제정일치가 당연시되던 시대였다. 여기저기 도시가 생겨났고 서로 전쟁하고 연합하면서 점차 영토국가처럼 확장되어갔다. 사르곤이 등장하고 아카드 제국을 세워 뛰어난 무력으로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통일했다. 사르곤의 등장으로 역사의 풍경이 바뀌었다. 남부 수메르인의 시대가 가고 북부 셈족의 시대가 열렸다.


사르곤 이후 아카드어가 고대근동에 퍼졌다. 하지만 아카드인들은 고급의 언어, 수메르어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광범위하게 수메르어를 포용했다. 아카드는 문화적 황금기를 이루었고 그들의 언어는 고대근동의 국제 공용어가 되었다. 그 당시 아카드어는 고대근동 행정문서나 종교문서 등의 표준이 되었다.




기원전 22세기 우르는 남부의 수메르인들을 규합해 새로운 제국을 세웠다. '우르 제3왕조'의 시대가 열렸다. 전쟁보다는 외교가 중시되었고 문치(文治)의 시대가 열렸다. 함무라비 법전보다 더 이르게 우르-남무 법전이 선포되었다. 토판 조각으로 전하는 수메르어 법전은 인류 최초의 법전이자 함무라비 법전의 모태로 평가받는다.


아카드 제국이 무너진 혼란기에 수메르의 도시국가들은 반란을 일으켰고 제국이 몰락하자 '수메르의 재부흥'으로 다시 일어섰다. 새로운 제국을 이룬 수메르의 도시국가는 우르였다. 우르 제3왕조의 행정문서는 많이 남아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출판 문서만 4만 점에 이른다. 행정-경제 문서로 미출간된 문헌만 수십만 점에 달하는 '신 수메르 르네상스'이다.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은 번영했고 높은 수준의 도시화가 이루어져 인구밀도가 높아졌고, 농경지와 운하도 확대되었다.




이집트는 고대근동이나 현대에나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나라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축축하고 비옥해 농사가 잘 되는 검은 땅과 마르고 황폐해 쓸모없는 붉은 땅을 구별하였다. 이집트는 상과 하로 나누어 보았고 서로 다른 지역으로 인식했다. 상이집트는 전통적이고 소박한 문화였고 하이집트는 개방적이고 풍요로운 문화였다. 이집트는 처음부터 종교·정치·문화 등의 틀이 확고하게 잡히고 시작된 문명이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유럽의 절대왕권보다 훨씬 더 강력했고 우월했다. 호루스의 현현인 파라오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전능하고 전지한 존재였다. 방어 위주의 전략을 추구했고 영토를 확장하려고 하지 않았다. 상·하 이집트를 통일한 시기에 강력한 중앙집권의 단일한 왕국으로 존재했다. 경제, 문화, 학문, 행정, 농업, 건축 등에서 고대근동에서 가장 앞선 나라였다.


고대 이집트는 통일된 왕국이 세 번 있었고, 순서대로 '고왕국-중왕국-신왕국'으로 부른다. 그리고 분열딘 시기를 왕국 사이의 기간이라고 정해 중간기라고 부른다. 역시 순서대로 '제1중간기-제2중간기-제3중간기'라고 부른다. 이렇게 여섯 시기를 교차하면 3천 년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대략 2천5백 년 이상을 채운다. 그리고 다음에는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게 시달리던 '약체 이집트'의 시기와 페르시아에 정복당한 '식민지 이집트'의 시기로 이어지며 고대근동 시대가 끝난다. 이후에는 그리스와 로마의 통치를 받는 시대가 따라온다.




상인의 나라, 앗슈르가 교역으로 번성하면서 두각을 드러냈다. 메소포타미아 북부는 남부만큼 비옥하지도 않고 비가 잘 내리지 않았다. 앗슈르인들도 운하를 파고 농사를 지었지만 일찌감치 국제무역에 눈을 떴다. 앗슈르는 이웃 국가들보다 힘이 세지 않았디만 무역 조건을 협상하는 능력이 있었다. 참고로 앗슈르는 도시의 이름이고 아시리아는 영역국가의 이름이다.


기원전 2천 년대 전반기에 이집트를 제외한 지역은 어지러웠다. 메소포타미아 남부는 우르 제3왕조가 무너졌다. 시리아 지역에는 많은 나나들이 새로 나왔다. 다양한 도시국가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난세에 영웅이 등장한다. 바빌론의 함무리비는 기원전 2천 년대 메소포타미아를 평정했다. 바빌론의 안정기에 수메르-아키드 문학은 황금기를 누렸다. 하지만 바빌론이 무너지고 100여 년간 기록이 없는 암흑시대가 온다.




이스라엘을 독특한 믿음을 지닌 민족이었다. 야훼의 신이 이집트의 파라오를 이기고 백성을 탈출시킨 사건은 주변의 나라들을 놀라게 했다. 신의 아들이라고 여기던 파라오가 그저 맥없이 당한 것이다. 구약성경은 12세기의 파괴와 단절의 시기 이후의 사건에 충실한 책이다. 시라아-팔레스티나 지역의 도시국가 체제가 파괴된 상황과 출애굽시기가 잘 맞는다.


구약성경의 역사서나 예언서 등에는 아시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제국주의에 대한 소국의 인식을 나타내고 있다. 다윗고 솔로몬의 시대는 신아시리아 제국이 아직 충분히 강성하지 않았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야훼의 도성'으로 만들었지만 사울, 다윗, 솔로몬의 3대가 지나자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아시리아 제국은 바빌로니아로 이어졌다. 이때 이집트는 기운을 조금 차렸지만 이스라엘은 나라가 망했다. 네부캇네자르 2세는 기원전 597년 3월 16일 예루살렘을 함락해 온 예루살렘 주민과 모든 대신과 모든 용사 등 포로 일만명과 모든 장인들과 대장장이들을 끌고 갔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가난한 이들 말고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나라를 잃고 유다인은 유배를 떠났다. 이집트로 간 사람들, 유배를 가지 않고 본토에 남은 사람들, 바빌론으로 끌려간 사람들, 그들은 나라를 잃고 뿔뿔이 흩어졌지만 언어와 믿음을 유지했다. 유일한 하나님의 백성의 나라가 왜 멸망해야 했는지를 깨달아야 했다. 이스라엘 종교의 갱신을 위한 기초가 놓인 시기였다.


가장 혁신적이며 민족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제국, 페르시아가 등장한다. 페르시아 제국은 다양한 언어, 문화, 경제, 사회 등을 성공적으로 융화시켰고 근동에서 처음으로 백성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제국이 되었다. 페르시아는 쉬운 아람어를 제국의 공용어로 삼았고, 중요한 문헌은 다국어 문헌으로 작성했다. 거대한 영토를 잇는 도로가 정비되었고 화폐 및 주화제도가 실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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