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독특한 믿음을 지닌 민족이었다. 야훼의 신이 이집트의 파라오를 이기고 백성을 탈출시킨 사건은 주변의 나라들을 놀라게 했다. 신의 아들이라고 여기던 파라오가 그저 맥없이 당한 것이다. 구약성경은 12세기의 파괴와 단절의 시기 이후의 사건에 충실한 책이다. 시라아-팔레스티나 지역의 도시국가 체제가 파괴된 상황과 출애굽시기가 잘 맞는다.
구약성경의 역사서나 예언서 등에는 아시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제국주의에 대한 소국의 인식을 나타내고 있다. 다윗고 솔로몬의 시대는 신아시리아 제국이 아직 충분히 강성하지 않았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야훼의 도성'으로 만들었지만 사울, 다윗, 솔로몬의 3대가 지나자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아시리아 제국은 바빌로니아로 이어졌다. 이때 이집트는 기운을 조금 차렸지만 이스라엘은 나라가 망했다. 네부캇네자르 2세는 기원전 597년 3월 16일 예루살렘을 함락해 온 예루살렘 주민과 모든 대신과 모든 용사 등 포로 일만명과 모든 장인들과 대장장이들을 끌고 갔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가난한 이들 말고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나라를 잃고 유다인은 유배를 떠났다. 이집트로 간 사람들, 유배를 가지 않고 본토에 남은 사람들, 바빌론으로 끌려간 사람들, 그들은 나라를 잃고 뿔뿔이 흩어졌지만 언어와 믿음을 유지했다. 유일한 하나님의 백성의 나라가 왜 멸망해야 했는지를 깨달아야 했다. 이스라엘 종교의 갱신을 위한 기초가 놓인 시기였다.
가장 혁신적이며 민족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제국, 페르시아가 등장한다. 페르시아 제국은 다양한 언어, 문화, 경제, 사회 등을 성공적으로 융화시켰고 근동에서 처음으로 백성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제국이 되었다. 페르시아는 쉬운 아람어를 제국의 공용어로 삼았고, 중요한 문헌은 다국어 문헌으로 작성했다. 거대한 영토를 잇는 도로가 정비되었고 화폐 및 주화제도가 실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