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거나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참 답답한 부분이 이 '정치적 균형'에 관한 그들의 생각이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정치적 균형을 맞추려면 이런 진보적 견해를 실었으면, 이런 보수적 견해도 실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균형이라는 것이 산술적인 균형이 아니지 않느냐는 게 기본적인 내 생각이다. 그리고, 굳이 정치적 균형을 고려하지 않아도 될 부분에서, 정치적 균형을 애써 맞추려고 하는 것도 문제다. 그건 아마도 그 사람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의 분위기를 너무 신경쓰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현 정부 들어서 이런 '자발적 복종' 흐름이 너무 거세다. 굳이 위에서 압력을 넣지 않아도 밑에서 알아서 눈치보고, 긴다는 것.  

  예를 들면 이렇다. 학벌 사회에 관한 철학자 김상봉의 글을 싣는다 치자. 그러면, 학벌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선 당연히 현 학벌을 비판한 글을 싣는 것이 마땅한데, 학벌을 옹호하는 글이 있으면 그것도 싣는 것이 균형있지 않겠느냐는 문제제기는 나로선 당황스럽다. 오히려, 학벌 문제에 대한 비판점과 대안점이 다른 글을 하나 더 싣는 것이 균형이라면 균형이 아닐까. 있는지 모르겠으나 철학자 김상봉의 학벌 사회에 대해 또다른 차원에서 비판하면서 학벌 문제의 해답을 다르게 제시하는 글이랄지. 하나의 예를 든 것이고. 비슷한 경우는 얼마든지 널렸다.  

  우쨌든 답답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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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5-13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균형이라는 게 참 중요하면서도 참, 많은 함정을 가지고 있지요.
여러모로 진짜 답답하시겠어요. 저도 종종 답답한 상황이 발생한다는. ㅜㅜ

마늘빵 2010-05-13 14:07   좋아요 0 | URL
예상치 않은 사람에게서 들으면 더 좀 그렇다눈...

글샘 2010-05-13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게 그렇죠. 균형이나 형평성을 들고 나오면, 사회정의와 배치되는 결과를 낳구요.
사회 정의를 위해서는 '주관적 판단'이 개입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지식인들의 몫인 것 같습니다. 이 나라의 지식인들이 많은 부분 미제의 앞잡이 노릇이나 하고 있는 서울대출신 미국유학파라 문제지만 말입니다.(해방되고 미군정기에 미국이 가장 먼저 한 일이 서울대 만드는 일이었단 사실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말입니다. 국립종합대학설립안, 국대안 반대운동이라고 1946년에 심했지만, 결국 서울대는 1946년에 생겼죠.)
서울대 출신들이 친미적 행보를 걷는 걸 보면, 역시 미국의 혜안에 감탄하게 됩니다. ㅠㅜ

마늘빵 2010-05-13 14:08   좋아요 0 | URL
넹. 주관적 판단을 넣어 객관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주관적 판단을 넣으면 주관적인 견해라고 생각하는 게 대부분이니.

얼그레이효과 2010-05-13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고민하는 부분인데, 나중에 먼 댓글을 한 번 달겠습니다.

마늘빵 2010-05-13 14:08   좋아요 0 | URL
더 길게 쓰고픈데 아직은 저도 쓸 거리는 없어서. ^^ 나중에 보고 생각해봐야겠네요.

건조기후 2010-05-13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론 프로그램같은 거 보면 가장 답답한 점이에요. 최소한 인정하고 넘어가야할 상식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없으니 평균이라는 기준조차도 없는 거죠. 각자 지들 말만 한다고 그게 균형이 아닌데 말이에요.

마늘빵 2010-05-13 16:59   좋아요 0 | URL
토론도 그렇죠. -_- 음. 최소한 동의해줘야 하는 상식선이 있는데, 이걸 무시해버리면 할 말 없음.

pjy 2010-05-13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균형을 맞추기위한 가늠자가 어떤 기준인지가 참 그렇죠--;

마늘빵 2010-05-14 10:0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상식'에 기준을 보통 두면 합의가 되는데. 상식에 동의를 안 하니깐. -_-

바라 2010-05-14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대 구부리기의 비유가 생각나네요. 막대를 반대방향으로 구부리는 목적은 이미 구부러진 막대를 제대로 펴기 위한 것이지요. 예전에 종종 왜 남녀평등주의가 아니라 여성주의라는 이름을 쓰느냐 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충분하진 않아도 이런 식으로 대답했던 기억이 나네요. 균형 또는 중립이라는 말은 대개 언제나 지배층의 전유물이지 않았을까요? 도대체가 중립적이지 않은 세상에서 진정한 중립점을 찾으려면 과감한 비중립으로 우선은 가야하지 않을까요.

마늘빵 2010-05-14 10:10   좋아요 0 | URL
아, 그건 어디에 나오는 비유인가요. ^^ 그쵸. 중립이라면 한쪽으로 쏠린 상황에서 확 반대쪽으로 기울어봐야 하는데. 이렇게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진보로 확 기울어봐야 하고, 여자가 차별받는 사회에선 여자쪽으로 확 기울어봐야죠.

yamoo 2010-05-14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정치적 균형은 달성되기 힘든거 같습니다. 정치적이라는 어휘 자체가 균형과는 거리가 먼~~것 같습니다. 타인들과 하지 말아야 할 얘기중 하나가 정치얘기라 잖아요..^^

마늘빵 2010-05-17 17:46   좋아요 0 | URL
'정치'라는 단어가 너무 스펙트럼이 넓죠. :) 너는 정치적이야,라고 할 때의 정치와, 분야로서의 정치, 이데올로기나 사상으로서의 정치. 사실 정치 이야기는 갈등 요소를 내포하고 있어서 그렇지, 숨기기보다는 공개적으로 토론을 해야 할 거리라고 생각해요. 저는 아주 자유롭게는 아니지만 분위기봐서 정치 이야기를 꺼내놓는 편인데 토론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죠. -_- 생각이 다르면 그냥 피하려고 하지.
 
거꾸로 생각해 봐! 2 - 세상도 나도 바뀔 수 있어
강수돌 외 지음 / 낮은산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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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이란 무엇인가? 크게 네 가지 차원이 있다. 첫째, 건강과 여유다. 둘째, 존중과 평등이다. 셋째, 인정스러운 공동체다. 넷째, 살아 있는 생태계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건강도, 여유도, 존중도, 평등도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또 아무리 부자 나라가 되어도 공동체의 관계가 없거나 생태계가 병든다면 헛된 일이다.
-22쪽

어느 미국 백인 학교에 북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의 후손들이 전학을 왔다. 몇 개월 뒤 시험을 치게 되었다. 선생님이 "얘들아, 시험 칠 준비를 하자!"고 하니, 백인 아이들은 모두 책상 가운데 책가방을 올렸다. 서로 부정행위를 못하게 하려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원주민 후손들은 자기들끼리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이를 본 선생님은 약간 화가 나서 "너희들, 뭐 하려고 그러니?"라고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대답했다. "선생님, 저희는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서로 협동해서 풀라고 배웠는데요."-24쪽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투표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자격이 주어졌다면, 결코 그것에 소홀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경기장의 규칙을 만드는 일은 곧 체계를 만드는 일입니다. 엄청난 부가 당연히 행복을 보장해 줄 듯이 말하는 사람들을 경계하세요. 그들은 실제로는 세계를 도박판으로 만들어 여러분의 돈으로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웁니다.
-50-51쪽

무엇보다도 먼저 차별을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내가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는다 해도 그럴 가능성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차별을 자신의 일상적인 문제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차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회의적인 자의식을 언제나 가지고, 가능한 한 자신이 남을 차별하지 않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결국 차별이란 우리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가 차별을 없애겠다는 각오 없이는 차별은 궁극적으로 없어지지 않는다. 물론 사회적인 차별을 없애기 위한 법이나 정책이나 제도의 개선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개선도 결국은 우리 자신들의 마음이 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72-73쪽

이 시대의 자유란 내 자유의지의 실현이 아니다. 사회에서 살아남아 내 인생을 책임지기 위해서 죽도록 나를 계발하고 상품으로 내놔야 하는 자기계발의 자유다.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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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5-10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류의 책들은 꼭 봐야되는 사람들은 정말 안보는 안타까운 현실이--;

마늘빵 2010-05-11 09:13   좋아요 0 | URL
그렇죠. 안 읽어도 바뀔 수 있는, 이미 바뀐 사람들만 보고.

순오기 2010-05-12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꾸로 생각해 봐, 2가 나왔네요.

마늘빵 2010-05-12 09:19   좋아요 0 | URL
1권하고는 약간 글의 성격이 다릅니다. ^^
 
롱테일 경제학
크리스 앤더슨 지음, 이노무브그룹 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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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와 경제는 수요곡선의 머리부분에 위치한 주류상품들이나 주류시장들과 같은 상대적으로 소수인 히트상품들에 초점을 맞추던 상황에서 점점 꼬리부분의 거대한 틈새시장으로 관심을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진열공간의 제약과 유통의 장애에 구애받지 않는 시대가 열림에 따라 특정한 소수의 고객들을 타깃으로 한 상품들과 서비스들은 주류상품만큼이나 경제적인 매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수요가 이런 새로운 공급을 따라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꼬리는 말라죽고 말 것이다. 꼬리는 다양한 상품들의 형태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그것에 이끌리는 사람들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롱테일 수요의 진정한 유형은 고객들이 무한한 선택권을 제공받을 때 드러난다. 그것은 총판매액, 총사용빈도, 혹은 선택권이 엄청나게 커져서 경제적, 문화적 세력을 형성하게 된 새로운 틈새상품들을 구매한 사람들의 참여로 나타난다. 롱테일은 수많은 틈새상품들로 출발하지만 그 틈새상품들이 자신들을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전까지는 의미가 없다. -115쪽

롱테일 시대의 6가지 주제
1. 가상공간의 시장에는 히트상품보다 틈새상품이 훨씬 더 많다.
2. 틈새상품을 구매하는 데 드는 비용이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다.
3. 필터기능들이 수요를 꼬리에 몰려들게 한다.
4. 꼬리 부분의 수요가 증가해 곡선이 점점 더 평평해진다.
5. 틈새상품들의 총합은 히트상품들과 경쟁가능한 시장을 형성한다.
6. 여러 가지 장애물이 사라진 상태의 수요곡선이 나타난다. -115-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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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그레이효과 2010-05-12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학부 시절, 출판론 시간 때. '아마존'의 성공전략 공부하면서. 롱테일 경제학이란 걸 처음 접했는데. 오랜만에 다시 이 개념을 보게 되니 반갑군요.^^

마늘빵 2010-05-12 09:18   좋아요 0 | URL
어느 책에서 얼핏 들어봤는데, 이번에 읽게 됐네요. 참 재밌습니다. ^^ 출판론이란 과목도 있군요 근데. 이 시간엔 뭘 배우나요.

얼그레이효과 2010-05-12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확히 제 기억으론, 출판기획과 마케팅이란, 강의명이었던 것 같아요. 한울 아카데미 사장님께서 직접 오셔서, 한 학기 강의해주셨는데, 그 당시 제 기억으론 보자..(악,,공부 안한 것 들통나면, 안되는데.--;) 책은 출판사를 통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전략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가? / 현대 사회에서 책의 존재란? / 그리고 과연 전자책은 앞으로 유리할 것인가? 등등 가지고 토론도 하고, 그랬죠^^;;. (거기에 양념처럼 곁들여진 한국 출판사 브랜드들의 비화까지 ㅋ)

마늘빵 2010-05-13 09:27   좋아요 0 | URL
아, 그런 강의도 하는군요. 들어보고 싶은데요. 저도 관심이 많아서. ^^ 관련 계통에 있다보니.
 
교과서에 실리지 않을 권리는 없는가?(김영하)
여러분은 문학을 '배우'셨습니까?(김영하)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영하의 글에 백번 동의한다. 내일자 국민일보 사설에서는 교과서는 "당대의 문화적 자산이 총집결하는 곳"이고, "누구든 후손을 가르치는 일에는 최고의 것을 내놓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이어서 "개인적 선택을 허용하면 최고의 교과서를 편찬할 수 없"고, 김영하의 문제제기는 작가의 "이기주의"라고 결론을 내리는데, 개소리다. 미안하다, 독하게 말해서. 그런데 정말 그렇다.  

  나는 교과서 편집자다. 교과서 편집자로서 김영하의 주장이 널리 적용되었을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눈 앞에 그림이 빤히 보인다. 교과서를 만들 때 업무량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지고, 복잡해진다. 필자들과 회의를 하면서 어떤 글과 사진, 자료를 실을지를 논의하는 것과 더불어, 해당 저작권자가 이것을 허락할지 일일히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막판에 원고가 수없이 뒤집어지기도 하는데, 그땐 그럼 작가님, 원고가 뒤집어져서 작가님 글을 빼야겠습니다, 이런 말까지 해야 한다면, 이건 작가를 놀리는 것도 아니고. 쩜쩜쩜. 이러한 편집자의 귀찮음과 번거로움, 저작권 해결의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김영하의 주장은 백번 옳다. 편집자가 추가로 해야 하는 작업들은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교과서가 한국에서 신성하게 여겨지지만 않아도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교과서는 국민일보 사설대로 '당대의 문화적 자산이 총집결하는 곳'이며 '최고의 것'으로 간주된다. 국민일보가 이 부분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 내용이 가리키는 바가 '주장'이 아닌 '현상'인 한에서만 거짓이 아니다. 솔직히, 지금껏 교과서는 한국에서 최고의 위치를 점해왔으니까. 오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 사실 교과서에는 오류가 엄청나게 많다 - 교과서 그 자체가 신성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도 교과서에 마음껏 실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프레임 안에선 감히 그것을 거부할 권리 같은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국어와 도덕이 그간의 국정 교과서에서 이번에 검정 교과서로 바뀌었다. 현재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그 검정 교과서로 공부하고 있다. 국정과 검정은 엄연히 다르다. 국가가 만든 하나의 교과서와 여러 출판사가 저자를 섭외해 만든 여러 개의 교과서는 당연히 그 내용이나 차지하는 위상이 분명 다르다. (참고로 중학 1학년 국어는 23종, 중학 1학년 도덕은 7종이 합격했다.) 아무래도 검정 교과서 체제로 교과서 신성화 측면이 약화되는 감이 있다. 김영하 글에 댓글을 단 어떤 분이 "검정 교과서 체제를 동반한 새 교육과정 자체가 그 제재나 활동을 강압하지 않고있다는 면에서, 보다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국어교육을 추구하고 있는, 국어교육에 있어 일종의 과도기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여전히 주입식 교육, 획일적 문학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근본은 변함이 없다는, 대승적인 시각을 약간만 거두신다면 어떨까요?" 라고 제안할 수 있는 배경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현재의 교과서가 신성하다는 생각이 아주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김영하의 말대로 수업시간에 어떤 작품을 해부하고, 해석을 달며, 이를 문제집에 지문으로 넣고, 이것이 맞네, 저것이 맞네, 하며 난도질하는 사태는 면할 수가 없다. 까놓고 한국의 국어와 문학 수업 시간에 좋다는 수많은 글을 접하며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는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과서를 모두 내다버리고, 한참 뒤에 교과서에 실렸던 어떤 시나 소설을 접하며 뒤늦게 감동이 다가온 적은 있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국어 수업을 통해서 그런 경험을 한 적은 맹세코 단 한번도 없다. 물론 개개인마다 경험 유무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와 같이 느끼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그렇다면, 이 폭력 사태를 거부할 권리 또한 작가에게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하나, 김영하의 지적대로 특정 출판사가 자신의 정치 의식이나 미의식에 따라 얼마든지 문제가 있는 교과서를 저작권자들의 뜻에 반하여 제작할 수가 있다. 같은 작품이어도 앞뒤의 서술이 어떤가에 따라서 그 작품이 이렇게도 쓰이고, 저렇게도 쓰인다. 특히나 국어, 도덕, 사회, 역사 교과서는 거의 모든 페이지가 그렇게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국어에서는 지문이, 도덕에서는 예화가, 사회나 역사에서는 사료가 그렇게 쓰인다. 현 정부 들어서 있었던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사태'도 이와 관련이 깊다. 당시 정부는 문장 하나, 단어 하나까지 간섭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출판사와 저자에 대해서는 철퇴를 가했다.  

  교과서 편집자로 일하는 초기 시절에, 저작권을 일일히 해결해야 하는 줄 알고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허락을 구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출판사에서는 한결같이 아, 얼마든지 쓰시라고 말하는 게다. (저작권이 작가와 출판사 어느 쪽에 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일반적으로 작가는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책으로 내면서 저작권을 출판사에 넘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교과서에 실리기를 거부할 출판사 또는 작가는 없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일반화시켜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뿐 이를 거부하는 단 한 사람만 나와도 이 일반화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일을 하다보면 온갖 단체에서 출판사로 공문을 보낸다. 밑도 끝도 없이 교과서에 넣어달라는 것이다. 담당자는 응답을 안 하거나, 응답을 요하는 경우 고려해본다, 참조하겠다 정도로 마무리한다. 심지어 어떤 대학은 전화해서 자기네가 국내 최초의 대학으로 서술되어있는지 확인한다. 많은 이들이 교과서에 실리고 싶어하고, 이를 당연한듯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 그런가? 우리는 "교과서에 실리기를 거부할 사람이나 단체, 출판사는 없다."라는 대전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건, 언제나 반드시 타당한 명제가 아니다. 많은 작가와 출판사와 단체는 교과서에 실리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지만, 모든 작가와 출판사와 단체가 이를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저작자 개개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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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국어, 문학 수업의 현 주소
    from 자유를 찾아서 2010-05-03 23:13 
    출처 : http://kimyoungha.textcube.com/90 에 달린 댓글 소설가 김영하의 문제의 글에 나란히 달린 두 댓글이 학교 현장의 국어와 문학 교육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가르칠 수밖에 없는 학교 선생,  학원 강사, 이렇게 배울 수밖에 없는 학생, 모두 불행한 수업이다. 이참에, 아예 국어, 문학 교육 과정과 평가 방법에 관한 논의까지 확대하면 어떨까 싶다.  
  2. 공동 작업의 인세 배분
    from 자유, 그리고 자유 2012-01-08 14:26 
         공동 저작물의 인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배분해야 할까? 이 일을 하면서 부당하고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오늘은 인세 문제를 얘기하겠다. 지난 번에 이어 앞으로 계속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말을 꺼내려 한다. 드러나지 않은 일들은 수면 위로 끄집어 내어 공개적으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토론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합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
 
 
비단길 2010-05-03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의 아름다운 글 일부를 교과서에서 보고 밑줄 그어가며 시험치고, 공부한 아이들은 박완서의 글에 오히려 질린다고 하는 얘기가 있어요. 현행 국어(언어)수업은 문제가 정말 많다고 봅니다.내가 작가라 해도 내 글이 그렇게 오역되도 낱낱이 쪼개지며 아이들에게 이해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전달된다면 거부할 것 같네요. 김영하가 의미있는 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늘빵 2010-05-03 10:14   좋아요 0 | URL
저도 졸업한 뒤에도 오랜동안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들을 읽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거의 그렇고요. 기껏해야 김수영의 풀 정도를 좋아하게 됐을 뿐입니다. 인터넷에 문학, 국어 수업을 풍자하여 떠도는 그런 글들 있잖습니까. 지문을 주고서 밑줄그어놓고 이건 비유법이 어쩌고, 여기는 자음동화, 구개음화, 청각적 머머. 이제 기억도 잘 안 나는데. 이렇게 다 분해해놓고 저자의 의도가 이건 맞고 저건 틀리고, 이렇게 다 해체시켜버리니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문학 수업이 문학에 반감을 갖는 수업으로 변질되어버렸는데. 제대로 지적한 겁니다. 저자 입장에서 책을 팔려면 오히려 교과서에 넣는게 이득이죠. 그걸 떠나서 의미있는 지적을 했어요.

BRINY 2010-05-03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1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이해의 선물'(위그든씨가 은박으로 싼 버찌씨앗을 내민 남매에게 물고기를 파는 얘기)랑, 옆집 언니가 물려준 그 전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최순우 선생님의 '강아지'(6.25때 바둑이 두고 피난갔다가 돌아와서 다시 재회하는 얘기) 읽고 눈물 펑펑 흘렸던 기억이 나는데, 나머지는...글쎄요...

마늘빵 2010-05-03 22:28   좋아요 0 | URL
그것도 아마 국어, 문학 수업처럼 문장별로 다 분해하고 토씨를 달면 아마 감동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어요.

BRINY 2010-05-04 08:47   좋아요 0 | URL
그건 그래요. 그 당시 국어선생님은 아예 참고서를 부교재를 사용하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줄치면서 문장분해, 단락분해하던 건 하나도 기억 안나고, 교과서의 삽화는 잘 기억나네요.
 
아이폰 어플 개발 7일 만에 끝내기
유도욱 지음 / 살림 / 2010년 4월
절판


애플사는 모든 개발자 혹은 기획자에게 기회를 주면서 동시에 위기를 주고 있다. 쉽게 말해서, 멋진 어플리케이션 하나를 만들면 세상의 모든 곳에 팔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세계 어디에서든 이 어플리케이션이 필요한 사람은 다운받을 것이고 그 수익금은 어플리케이션 제공자가 가져간다. 동시에 애플사는 전 세계 모든 기획자와 개발자들을 경쟁 상대로 만들어 버렸다. 즉,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의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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