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실리지 않을 권리는 없는가?(김영하)
여러분은 문학을 '배우'셨습니까?(김영하)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영하의 글에 백번 동의한다. 내일자 국민일보 사설에서는 교과서는 "당대의 문화적 자산이 총집결하는 곳"이고, "누구든 후손을 가르치는 일에는 최고의 것을 내놓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이어서 "개인적 선택을 허용하면 최고의 교과서를 편찬할 수 없"고, 김영하의 문제제기는 작가의 "이기주의"라고 결론을 내리는데, 개소리다. 미안하다, 독하게 말해서. 그런데 정말 그렇다.  

  나는 교과서 편집자다. 교과서 편집자로서 김영하의 주장이 널리 적용되었을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눈 앞에 그림이 빤히 보인다. 교과서를 만들 때 업무량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지고, 복잡해진다. 필자들과 회의를 하면서 어떤 글과 사진, 자료를 실을지를 논의하는 것과 더불어, 해당 저작권자가 이것을 허락할지 일일히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막판에 원고가 수없이 뒤집어지기도 하는데, 그땐 그럼 작가님, 원고가 뒤집어져서 작가님 글을 빼야겠습니다, 이런 말까지 해야 한다면, 이건 작가를 놀리는 것도 아니고. 쩜쩜쩜. 이러한 편집자의 귀찮음과 번거로움, 저작권 해결의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김영하의 주장은 백번 옳다. 편집자가 추가로 해야 하는 작업들은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교과서가 한국에서 신성하게 여겨지지만 않아도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교과서는 국민일보 사설대로 '당대의 문화적 자산이 총집결하는 곳'이며 '최고의 것'으로 간주된다. 국민일보가 이 부분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 내용이 가리키는 바가 '주장'이 아닌 '현상'인 한에서만 거짓이 아니다. 솔직히, 지금껏 교과서는 한국에서 최고의 위치를 점해왔으니까. 오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 사실 교과서에는 오류가 엄청나게 많다 - 교과서 그 자체가 신성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도 교과서에 마음껏 실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프레임 안에선 감히 그것을 거부할 권리 같은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국어와 도덕이 그간의 국정 교과서에서 이번에 검정 교과서로 바뀌었다. 현재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그 검정 교과서로 공부하고 있다. 국정과 검정은 엄연히 다르다. 국가가 만든 하나의 교과서와 여러 출판사가 저자를 섭외해 만든 여러 개의 교과서는 당연히 그 내용이나 차지하는 위상이 분명 다르다. (참고로 중학 1학년 국어는 23종, 중학 1학년 도덕은 7종이 합격했다.) 아무래도 검정 교과서 체제로 교과서 신성화 측면이 약화되는 감이 있다. 김영하 글에 댓글을 단 어떤 분이 "검정 교과서 체제를 동반한 새 교육과정 자체가 그 제재나 활동을 강압하지 않고있다는 면에서, 보다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국어교육을 추구하고 있는, 국어교육에 있어 일종의 과도기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여전히 주입식 교육, 획일적 문학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근본은 변함이 없다는, 대승적인 시각을 약간만 거두신다면 어떨까요?" 라고 제안할 수 있는 배경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현재의 교과서가 신성하다는 생각이 아주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김영하의 말대로 수업시간에 어떤 작품을 해부하고, 해석을 달며, 이를 문제집에 지문으로 넣고, 이것이 맞네, 저것이 맞네, 하며 난도질하는 사태는 면할 수가 없다. 까놓고 한국의 국어와 문학 수업 시간에 좋다는 수많은 글을 접하며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는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과서를 모두 내다버리고, 한참 뒤에 교과서에 실렸던 어떤 시나 소설을 접하며 뒤늦게 감동이 다가온 적은 있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국어 수업을 통해서 그런 경험을 한 적은 맹세코 단 한번도 없다. 물론 개개인마다 경험 유무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와 같이 느끼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그렇다면, 이 폭력 사태를 거부할 권리 또한 작가에게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하나, 김영하의 지적대로 특정 출판사가 자신의 정치 의식이나 미의식에 따라 얼마든지 문제가 있는 교과서를 저작권자들의 뜻에 반하여 제작할 수가 있다. 같은 작품이어도 앞뒤의 서술이 어떤가에 따라서 그 작품이 이렇게도 쓰이고, 저렇게도 쓰인다. 특히나 국어, 도덕, 사회, 역사 교과서는 거의 모든 페이지가 그렇게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국어에서는 지문이, 도덕에서는 예화가, 사회나 역사에서는 사료가 그렇게 쓰인다. 현 정부 들어서 있었던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사태'도 이와 관련이 깊다. 당시 정부는 문장 하나, 단어 하나까지 간섭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출판사와 저자에 대해서는 철퇴를 가했다.  

  교과서 편집자로 일하는 초기 시절에, 저작권을 일일히 해결해야 하는 줄 알고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허락을 구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출판사에서는 한결같이 아, 얼마든지 쓰시라고 말하는 게다. (저작권이 작가와 출판사 어느 쪽에 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일반적으로 작가는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책으로 내면서 저작권을 출판사에 넘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교과서에 실리기를 거부할 출판사 또는 작가는 없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일반화시켜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뿐 이를 거부하는 단 한 사람만 나와도 이 일반화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일을 하다보면 온갖 단체에서 출판사로 공문을 보낸다. 밑도 끝도 없이 교과서에 넣어달라는 것이다. 담당자는 응답을 안 하거나, 응답을 요하는 경우 고려해본다, 참조하겠다 정도로 마무리한다. 심지어 어떤 대학은 전화해서 자기네가 국내 최초의 대학으로 서술되어있는지 확인한다. 많은 이들이 교과서에 실리고 싶어하고, 이를 당연한듯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 그런가? 우리는 "교과서에 실리기를 거부할 사람이나 단체, 출판사는 없다."라는 대전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건, 언제나 반드시 타당한 명제가 아니다. 많은 작가와 출판사와 단체는 교과서에 실리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지만, 모든 작가와 출판사와 단체가 이를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저작자 개개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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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국어, 문학 수업의 현 주소
    from 자유를 찾아서 2010-05-03 23:13 
    출처 : http://kimyoungha.textcube.com/90 에 달린 댓글 소설가 김영하의 문제의 글에 나란히 달린 두 댓글이 학교 현장의 국어와 문학 교육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가르칠 수밖에 없는 학교 선생,  학원 강사, 이렇게 배울 수밖에 없는 학생, 모두 불행한 수업이다. 이참에, 아예 국어, 문학 교육 과정과 평가 방법에 관한 논의까지 확대하면 어떨까 싶다.  
  2. 공동 작업의 인세 배분
    from 자유, 그리고 자유 2012-01-08 14:26 
         공동 저작물의 인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배분해야 할까? 이 일을 하면서 부당하고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오늘은 인세 문제를 얘기하겠다. 지난 번에 이어 앞으로 계속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말을 꺼내려 한다. 드러나지 않은 일들은 수면 위로 끄집어 내어 공개적으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토론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합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
 
 
비단길 2010-05-03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의 아름다운 글 일부를 교과서에서 보고 밑줄 그어가며 시험치고, 공부한 아이들은 박완서의 글에 오히려 질린다고 하는 얘기가 있어요. 현행 국어(언어)수업은 문제가 정말 많다고 봅니다.내가 작가라 해도 내 글이 그렇게 오역되도 낱낱이 쪼개지며 아이들에게 이해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전달된다면 거부할 것 같네요. 김영하가 의미있는 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늘빵 2010-05-03 10:14   좋아요 0 | URL
저도 졸업한 뒤에도 오랜동안 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들을 읽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거의 그렇고요. 기껏해야 김수영의 풀 정도를 좋아하게 됐을 뿐입니다. 인터넷에 문학, 국어 수업을 풍자하여 떠도는 그런 글들 있잖습니까. 지문을 주고서 밑줄그어놓고 이건 비유법이 어쩌고, 여기는 자음동화, 구개음화, 청각적 머머. 이제 기억도 잘 안 나는데. 이렇게 다 분해해놓고 저자의 의도가 이건 맞고 저건 틀리고, 이렇게 다 해체시켜버리니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문학 수업이 문학에 반감을 갖는 수업으로 변질되어버렸는데. 제대로 지적한 겁니다. 저자 입장에서 책을 팔려면 오히려 교과서에 넣는게 이득이죠. 그걸 떠나서 의미있는 지적을 했어요.

BRINY 2010-05-03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1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이해의 선물'(위그든씨가 은박으로 싼 버찌씨앗을 내민 남매에게 물고기를 파는 얘기)랑, 옆집 언니가 물려준 그 전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최순우 선생님의 '강아지'(6.25때 바둑이 두고 피난갔다가 돌아와서 다시 재회하는 얘기) 읽고 눈물 펑펑 흘렸던 기억이 나는데, 나머지는...글쎄요...

마늘빵 2010-05-03 22:28   좋아요 0 | URL
그것도 아마 국어, 문학 수업처럼 문장별로 다 분해하고 토씨를 달면 아마 감동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어요.

BRINY 2010-05-04 08:47   좋아요 0 | URL
그건 그래요. 그 당시 국어선생님은 아예 참고서를 부교재를 사용하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줄치면서 문장분해, 단락분해하던 건 하나도 기억 안나고, 교과서의 삽화는 잘 기억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