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니텔
내가 가상공간에서 노닐기 시작한 것은 98년이 처음이었다. 언제인가부터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등을 통해 사람들은 채팅이란 것을 즐기고, 그 안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정보도 나누고,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만남을 갖기도 했다. 온라인이라는 말과 오프라인이라는 단어가 형성된 것도 어쩌면 벙개 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난 98년부터 유니텔 생활을 했다. 당시 더 사람들이 많고 더 활발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하이텔이나 천리안 혹은 막 뜨기 시작한 나우누리에 가입하지 않고 유니텔에 가입한 것은, 철저히 컴퓨터를 사고 난 뒤 받은1개월 무료쿠폰때문이었다. 이걸로 한번 가입하게 되고 나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않았다. 단 남의 아이디로 나우누리에서 잠시 활동한 적은 있다. 당시 PC통신이라는 것은 매우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전화기에서 잡음 소리가 뚜~뚜~뚜~ 쿵푸우%^&^*&^%$$# 나면서 "연결되었습니다"라는 메세지가 등장하구 나는 사이버 세계로 들어간다. 신기하기도 했고 재밌기도 해서 난 사이버에 빠져 살았다. 대학 1학년, 2학년을 거의 그렇게 보낸 듯 하고, 머 솔직히 3,4 학년도, 대학을 졸업한 지금 이 순간도 난 가상공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독이다. 중독. 게임만 안했지. 컴퓨터 중독이다.
철학동호회, 록음악동호회, 영국음악동호회, 학교동호회, 양띠동호회, 같은나이(년대비밀)동호회 등 여러개를 가입하고선 주로 학교동호회와 같은나이동호회에서 활동을 했다. 이곳에서는 한번 벙개를 했다하면 수십명씩 튀어나와서 통제가 힘들었다. 난 운영자는 아니었지만. 안나오면 50명. 많이 나오면 100명에 이르는 이들을 어찌 데리고 다닐 것인가? 주로 우린 대학로 캠브리지 등의 그 술집골목에서 만남을 가졌고, 한번 만나면 한층을 거의 전세내다시피 했다. 그러니 만나도 만나도 모르는 얼굴 투성이. 다 같은 나이라고는 하지만 관심분야와 공부하는 과도 달랐고, 사는 곳도 달랐다. 그 안에서 으례 젊은 남녀가 만났으니 눈이 맞아 커플이 탄생하기도 했고, 깨지기도 했으며, 누구는 찼고, 누구는 차였다. 난 아무에게도 작업걸지 않았다. 허허. 아마도 차이기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을 것이다. 혹은 서먹서먹해지는 것이 두려워서 였을 것이다. 그렇게 헤어진 몇몇 커플들은 사실 다시 만남에 나오지 않거나 나와도 서로 다른 자리에 앉아있었으니 뭐. 그땐 이들과 참 함께 한 시간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들 중 아무하고도 연락하지 않는다. 그런거 보면 참 신기하다. 아무리 친했던 사이라 할지라도 그 만남이 꾸준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남자아이들의 경우는 군대때문에 찢어진 경우가 많았다. 더불어 같은 나이인지라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이 같은 해에 떠났고 동호회는 반쪽짜리가 되어버렸다. 이후 들락거리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동호회에서는 사랑했던 첫 여자를 만났으며, 아픔을 겪었다.
록동호회에서는 나보다 뛰어난 실력파 연주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좌절했으며, 주눅들었다.
철학동호회에서는 세상에 아는 것 많고 글빨 뛰어난 자들이 수도 없이 많으며 역시 좌절했고, 주눅들었다.
어쩌면 이런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의 상태, 그리고 타인들 속에서의 나를 살펴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첫번째 홈페이지, 라이코스
난 대학 1학년 때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컴맹이고 홈피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으니 난 각종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공간에 일단 보금자리를 틀고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영 마음에 안드는 이 디자인들 하며... 이렇게 불만이 쌓여가면서 내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를 해봤고, 주어진 환경내에서 나름껏 홈피라는 걸 처음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주로 나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엔 일기라고 생각하고 쓴 건 아니고 끄적일 공간이 필요했다. 나의 머리를 정리할. 그런 공간으로 쓰다보니 사색노트가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 허접하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런 글들도 허접하겠지만.
# 두번째 홈페이지, 짜깁기
라이코스가 영 못마땅했던 나는 다른 곳을 돌아댕기다가 마음에 드는 홈피 디자인이 있으면 그 홈피 주인에게 허락을 구하고 소스를 퍼다왔다. 소스를 퍼와서 이제 막노동을 하기 시작했다. 라이코스를 뜯어고치는 것이다. 오호 그래도 뜯어고치니 좀 낫다. 어설프긴 하지만. 이때가 처음으로 내가 HTML 사전이란걸 사서 그걸 보고 막노동을 했던 때다. 난 홈피만들어주는 프로그램 나모 이런건 잘 못하겠어서 무조건 홈피를 고칠 땐 일일히 HTML 언어를 찾아다가 집어넣었다. 한번 고치는데 일주일은 걸린다.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이짓만 한다. 그럼 눈이 막 핑글핑글 돌아가고 정신이 없다. 이것도 한동안 사용하다 보니 영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는데.
# 세번째 홈페이지, 라이코스와 네띠앙의 조합
세번째로 완전히 뜯어고친 홈피는 네띠앙과 라이코스를 조합한 것이다. 기존에 라이코스에서 못마땅한 그것들을 네띠앙이 보완해주리라 믿고 네띠앙에도 계정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네띠앙을 기본으로 하여 라이코스의 주소를 퍼다가 연결해서 홈피를 만들었다. 이것이 지금의 홈피의 틀이다. 아예 집은 이사왔지만 집안의 모든 가구는 다 가지고 온 셈이다. 하지만 라이코스에서 쓰던 게시판들이 허접해서 게시판은 슈퍼보드에 가서 사왔다. 유료 게시판으로. 검색도 되고,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 기본틀은 네띠앙으로, 기둥은 라이코스, 게시판은 슈퍼보드 이렇게 조합을 시킨 것이다.
게시판이 슈퍼보드 말고 더 이쁘고 좋은 것도 있지만 제로보드인가 하는. 그건 내가 어캐 사용하는지 몰라서 못했다. 무료고 이쁘던데. 난 어쩔 수 없는 컴맹인지라 슈퍼보드로 만족할 밖에. 하지만 슈퍼보드의 유료게시판이 넘 돈이 많이 들어가서 - 당시 난 게시판을 8개 정도 운영했던듯 - 이걸 전부 무료 게시판으로 일일히 글을 다 옮기는 막노동을 하게 된다. 에혀. 글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옮겨. 그래도 다 옮겼다.
지금은 홈피 제목을 "아프락사스, 넌 누구니" 로 고치고, 첫화면-아프락사스 소개-철학메모-자아탐구-사색노트-철학의 장-문화읽기-글도우미-타인의 생각-방명록 으로 10가지로 구성을 하고, 이중 게시판은 '자아탐구' 와 '사색노트' '철학의 장' '문화 읽기' '글 도우미' '타인의 생각' 의 6개로 되어있다. 기존에 음악란과 독서란 영화란을 구분했었는데 문화읽기라는 제목으로 다 통합해버렸다. 오히려 복잡시럽게 여기저기 게시판이 널려이는거보다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하는게 더 나은거 같다. 내가 싸이와 알라딘을 하기 전에는 난 주로 여기에 글을 쓰곤 했다. 외롭게. 아무도 안오는 공간속에서... 정말 여기는 나 혼자만 노는 놀이터다. 아무도 안온다. 지금은 그냥 창고 같이 쓰고 있다.
# 싸이월드
세월은 흘러흘러 전역할 때가 되어가고 밖에 잠깐 나갔더니 싸이라는 걸 하고 있다. 이게 뭐래? 머야머야? 다들 한다. 예전에 다음카페가 -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 모든 커뮤니티의 최고봉이 된 것처럼. 나도 덩달아 싸이질이란걸 하기 위해 싸이를 만들었다. 어 이거 좋네? 예전에 가입은 했었는데 그땐 홈피가 허접해서 사용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 성공할 줄이야. 요 때부터 싸이에 나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친구들도 하나 둘 찾아내어 일촌맺고 하다보니 지금은 일촌만 200명이 넘는다. 엄청나다. 싸이의 파급은 대단했다. 요전에 아이 러브 스쿨 이란 것을 통해 초, 중, 고의 동창들을 만나는게 붐이었다면 싸이는 범위를 더 넓힌 것이었다. 동창뿐 아니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검색을 해서 찾을 수 있게 하는. 오히려 이런 점이 싸이가 욕을 먹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나 역시 예전의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첫사랑도 예외는 아니었고, 찾아봤지만 동일 이름이 5명 나오는데 5명 다 아니었다. 심지어 사진을 볼 수 없는 분의 홈피에는 쪽지를 보내서 어디어디 나오신 누구 아니세요? 라는 질문을 던지기까지 했는데 아니란다. 일부러 아닌 척 할 수도 있겠지만, 방명록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이름이 익숙치 않은 걸로 봐서는 아닌거 같았다. 그 아이는 싸이란걸 할 만한 위인이 못된다. 인터넷 생활이란 걸 즐기지 않았으니.
싸이를 하면서 나의 홈피는 두개가 되었다. 기존의 그 홈피와 이것까지. 그래서 난 글을 쓰면 두 군데 모두 올렸다. 같은 내용의 글을. 그러니 하나는 주력활동무대가 되고 하나는 죽을 수 밖에. 그래서 기존의 나의 홈피가 창고가 되어 버린 것이다.
# 알라딘
시간이 또 조금 흘러 알라딘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면서 "어? 이거 머야?" 하며, '나의 서재'라는걸 발견하게 되었다. 계정이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서재가 형성되는 알라딘. 서재활동을 안하고는 못배기게 만든다. 그리하여 나의 활동무대는 싸이에서 알라딘으로 옮겨가고. 요때부터 다시 싸이는 창고가 되어버렸다. 다만 싸이를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인간관계의 지속성 때문이다. 싸이는 이것을 도와준다. 특별히 전화연락을 하지 않고 만나지 않아도 싸이는 인간관계를 꾸준히 맺어준다. 가끔 그들의 홈피에 들어가 둘러보고 글을 남기고 그들을 기억하기도 한다. 잊혀질만한 사람들을 가끔씩 방문하면서 그들의 안부도 묻고 만나기도 한다. 워낙 홀로 생활을 잘 하는 놈이라 사람들과의 인연이 쉽게 단절된다. 내게 있어 싸이는 이를 방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알라딘에 서재를 만들고 이곳에 내 보금자리를 만들고, 페이퍼를 쓰고, 리뷰를 쓰고, 다른 이들의 서재에 들어가 댓글을 달기도 한다. 알라딘은 기본적으로 파도타기가 되어있다. 싸이만 파도타기가 가능한게 아니다. 알라딘도 파도타기가 된다. 나도 파도타기를 통해서 다른 이들의 서재에 들락거리고 댓글을 달고 공감을 이루면서 그들과 친해졌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나의 다른 관심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을 엿본다. 이것도 일종의 관음증이다. 난 그런 관음증을 즐긴다.
가끔 이벤트라는 것을 통해 재미난 활동도 해보고, 운 좋으면 책도 받는다. 알라딘을 통해 책을 그나마 조금 더 읽게 되고 관심없는 분야에 대해서도 접하게 된다. 더불어 책값으로 나가는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나기도 했고, 나의 방이 좁아지기도 했다. 알라딘에서 다른 곳으로 내가 이동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기본적으로 책을 많이 읽진 않지만 좋아하고, 책, 음악,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을 즐긴다. 그러니 내가 이곳에서 도망갈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알라딘 사람들끼리도 자주 만났으면 하는 바램. 내가 가입하고 모임이 한 세 차례 정도 있었는데 다 참석하지 못했다.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교류하고 싶은데. 모임이란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주선하면 되는거 아니냐 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난 그런데 별로 소질이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