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니텔

 내가 가상공간에서 노닐기 시작한 것은 98년이 처음이었다. 언제인가부터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등을 통해 사람들은 채팅이란 것을 즐기고, 그 안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정보도 나누고,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만남을 갖기도 했다. 온라인이라는 말과 오프라인이라는 단어가 형성된 것도 어쩌면 벙개 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난 98년부터 유니텔 생활을 했다. 당시 더 사람들이 많고 더 활발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하이텔이나 천리안 혹은 막 뜨기 시작한 나우누리에 가입하지 않고 유니텔에 가입한 것은, 철저히 컴퓨터를  사고 난 뒤 받은1개월 무료쿠폰때문이었다. 이걸로 한번 가입하게 되고 나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않았다. 단 남의 아이디로 나우누리에서 잠시 활동한 적은 있다. 당시 PC통신이라는 것은 매우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전화기에서 잡음 소리가 뚜~뚜~뚜~ 쿵푸우%^&^*&^%$$# 나면서 "연결되었습니다"라는 메세지가 등장하구 나는 사이버 세계로 들어간다. 신기하기도 했고 재밌기도 해서 난 사이버에 빠져 살았다. 대학 1학년, 2학년을 거의 그렇게 보낸 듯 하고, 머 솔직히 3,4 학년도, 대학을 졸업한 지금 이 순간도 난 가상공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독이다. 중독. 게임만 안했지. 컴퓨터 중독이다.

 철학동호회, 록음악동호회, 영국음악동호회, 학교동호회, 양띠동호회, 같은나이(년대비밀)동호회 등 여러개를 가입하고선 주로 학교동호회와 같은나이동호회에서 활동을 했다. 이곳에서는 한번 벙개를 했다하면 수십명씩 튀어나와서 통제가 힘들었다. 난 운영자는 아니었지만. 안나오면 50명. 많이 나오면 100명에 이르는 이들을 어찌 데리고 다닐 것인가? 주로 우린 대학로 캠브리지 등의 그 술집골목에서 만남을 가졌고, 한번 만나면 한층을 거의 전세내다시피 했다. 그러니 만나도 만나도 모르는 얼굴 투성이. 다 같은 나이라고는 하지만 관심분야와 공부하는 과도 달랐고, 사는 곳도  달랐다. 그 안에서 으례 젊은 남녀가 만났으니 눈이 맞아 커플이 탄생하기도 했고, 깨지기도 했으며, 누구는 찼고, 누구는 차였다. 난 아무에게도 작업걸지  않았다. 허허. 아마도 차이기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을 것이다. 혹은 서먹서먹해지는 것이 두려워서 였을 것이다. 그렇게 헤어진 몇몇 커플들은 사실 다시 만남에 나오지 않거나 나와도 서로 다른 자리에 앉아있었으니 뭐. 그땐 이들과 참 함께 한 시간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들 중 아무하고도 연락하지 않는다. 그런거 보면 참 신기하다. 아무리 친했던 사이라 할지라도 그 만남이 꾸준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남자아이들의 경우는 군대때문에 찢어진 경우가 많았다. 더불어 같은 나이인지라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이 같은 해에 떠났고 동호회는 반쪽짜리가 되어버렸다. 이후 들락거리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동호회에서는 사랑했던 첫 여자를 만났으며, 아픔을 겪었다.

 록동호회에서는 나보다 뛰어난 실력파 연주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좌절했으며, 주눅들었다.

 철학동호회에서는 세상에 아는 것 많고 글빨 뛰어난 자들이 수도 없이 많으며 역시 좌절했고, 주눅들었다.

 어쩌면 이런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의 상태, 그리고 타인들 속에서의 나를 살펴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첫번째 홈페이지, 라이코스

 난 대학 1학년 때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컴맹이고 홈피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으니 난 각종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공간에 일단 보금자리를 틀고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영 마음에 안드는 이 디자인들 하며... 이렇게 불만이 쌓여가면서 내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를 해봤고, 주어진 환경내에서 나름껏 홈피라는 걸 처음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주로 나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엔 일기라고 생각하고 쓴 건 아니고 끄적일 공간이 필요했다. 나의 머리를 정리할. 그런 공간으로 쓰다보니 사색노트가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 허접하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런 글들도 허접하겠지만.

 

 # 두번째 홈페이지, 짜깁기

 라이코스가 영 못마땅했던 나는 다른 곳을 돌아댕기다가 마음에 드는 홈피 디자인이 있으면 그 홈피 주인에게 허락을 구하고 소스를 퍼다왔다. 소스를 퍼와서 이제 막노동을 하기 시작했다. 라이코스를 뜯어고치는 것이다. 오호 그래도 뜯어고치니 좀 낫다. 어설프긴 하지만. 이때가 처음으로 내가 HTML 사전이란걸 사서 그걸 보고 막노동을 했던 때다. 난 홈피만들어주는 프로그램 나모 이런건 잘 못하겠어서 무조건 홈피를 고칠 땐 일일히 HTML 언어를 찾아다가 집어넣었다. 한번 고치는데 일주일은 걸린다.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이짓만 한다. 그럼 눈이 막 핑글핑글 돌아가고 정신이 없다. 이것도 한동안 사용하다 보니 영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는데.

 

 # 세번째 홈페이지, 라이코스와 네띠앙의 조합

 세번째로 완전히 뜯어고친 홈피는 네띠앙과 라이코스를 조합한 것이다. 기존에 라이코스에서 못마땅한 그것들을 네띠앙이 보완해주리라 믿고 네띠앙에도 계정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네띠앙을 기본으로 하여 라이코스의 주소를 퍼다가 연결해서 홈피를 만들었다. 이것이 지금의 홈피의 틀이다. 아예 집은 이사왔지만 집안의 모든 가구는 다 가지고 온 셈이다. 하지만 라이코스에서 쓰던 게시판들이 허접해서 게시판은 슈퍼보드에 가서 사왔다. 유료 게시판으로. 검색도 되고,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 기본틀은 네띠앙으로, 기둥은 라이코스, 게시판은 슈퍼보드 이렇게 조합을 시킨 것이다.

 게시판이 슈퍼보드 말고 더 이쁘고 좋은 것도 있지만 제로보드인가 하는. 그건 내가 어캐 사용하는지 몰라서 못했다. 무료고 이쁘던데. 난 어쩔 수 없는 컴맹인지라 슈퍼보드로 만족할 밖에. 하지만 슈퍼보드의 유료게시판이 넘 돈이 많이 들어가서 - 당시 난 게시판을 8개 정도 운영했던듯 - 이걸 전부 무료 게시판으로 일일히 글을 다 옮기는 막노동을 하게 된다. 에혀. 글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옮겨. 그래도 다 옮겼다.

 지금은 홈피 제목을 "아프락사스, 넌 누구니" 로 고치고, 첫화면-아프락사스 소개-철학메모-자아탐구-사색노트-철학의 장-문화읽기-글도우미-타인의 생각-방명록 으로 10가지로 구성을 하고, 이중 게시판은 '자아탐구' 와 '사색노트' '철학의 장' '문화 읽기' '글 도우미' '타인의 생각' 의 6개로 되어있다. 기존에 음악란과 독서란 영화란을 구분했었는데 문화읽기라는 제목으로 다 통합해버렸다. 오히려 복잡시럽게 여기저기 게시판이 널려이는거보다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하는게 더 나은거 같다. 내가 싸이와 알라딘을 하기 전에는 난 주로 여기에 글을 쓰곤 했다. 외롭게. 아무도 안오는 공간속에서...  정말 여기는 나 혼자만 노는 놀이터다. 아무도 안온다. 지금은 그냥 창고 같이 쓰고 있다.

 

 # 싸이월드

 세월은 흘러흘러 전역할 때가 되어가고 밖에 잠깐 나갔더니 싸이라는 걸 하고 있다. 이게 뭐래? 머야머야? 다들 한다. 예전에 다음카페가 -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 모든 커뮤니티의 최고봉이 된 것처럼. 나도 덩달아 싸이질이란걸 하기 위해 싸이를 만들었다. 어 이거 좋네? 예전에 가입은 했었는데 그땐 홈피가 허접해서 사용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 성공할 줄이야. 요 때부터 싸이에 나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친구들도 하나 둘 찾아내어 일촌맺고 하다보니 지금은 일촌만 200명이 넘는다. 엄청나다. 싸이의 파급은 대단했다. 요전에 아이 러브 스쿨 이란 것을 통해 초, 중, 고의 동창들을 만나는게 붐이었다면 싸이는 범위를 더 넓힌 것이었다. 동창뿐 아니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검색을 해서 찾을 수 있게 하는. 오히려 이런 점이 싸이가 욕을 먹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나 역시 예전의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첫사랑도 예외는 아니었고, 찾아봤지만 동일 이름이 5명 나오는데 5명 다 아니었다. 심지어 사진을 볼 수 없는 분의 홈피에는 쪽지를 보내서 어디어디 나오신 누구 아니세요? 라는 질문을 던지기까지 했는데 아니란다. 일부러 아닌 척 할 수도 있겠지만, 방명록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이름이 익숙치 않은 걸로 봐서는 아닌거 같았다. 그 아이는 싸이란걸 할 만한 위인이 못된다. 인터넷 생활이란 걸 즐기지 않았으니.

 싸이를 하면서 나의 홈피는 두개가 되었다. 기존의 그 홈피와 이것까지. 그래서 난 글을 쓰면 두 군데 모두 올렸다. 같은 내용의 글을. 그러니 하나는 주력활동무대가 되고 하나는 죽을 수 밖에. 그래서 기존의 나의 홈피가 창고가 되어 버린 것이다.

 

 # 알라딘

 시간이 또 조금 흘러 알라딘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면서 "어? 이거 머야?" 하며, '나의 서재'라는걸 발견하게 되었다. 계정이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서재가 형성되는 알라딘. 서재활동을 안하고는 못배기게 만든다. 그리하여 나의 활동무대는 싸이에서 알라딘으로 옮겨가고. 요때부터 다시 싸이는 창고가 되어버렸다. 다만 싸이를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인간관계의 지속성 때문이다. 싸이는 이것을 도와준다. 특별히 전화연락을 하지 않고 만나지 않아도 싸이는 인간관계를 꾸준히 맺어준다. 가끔 그들의 홈피에 들어가 둘러보고 글을 남기고 그들을 기억하기도 한다. 잊혀질만한 사람들을 가끔씩 방문하면서 그들의 안부도 묻고 만나기도 한다. 워낙 홀로 생활을 잘 하는 놈이라 사람들과의 인연이 쉽게 단절된다. 내게 있어 싸이는 이를 방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알라딘에 서재를 만들고 이곳에 내 보금자리를 만들고, 페이퍼를  쓰고, 리뷰를 쓰고, 다른 이들의 서재에 들어가 댓글을 달기도 한다. 알라딘은 기본적으로 파도타기가 되어있다. 싸이만 파도타기가 가능한게 아니다. 알라딘도 파도타기가 된다. 나도 파도타기를 통해서 다른 이들의 서재에 들락거리고 댓글을 달고 공감을 이루면서 그들과 친해졌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나의 다른 관심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을 엿본다. 이것도 일종의 관음증이다. 난 그런 관음증을 즐긴다.

 가끔 이벤트라는 것을 통해 재미난 활동도 해보고, 운 좋으면 책도 받는다. 알라딘을 통해 책을 그나마 조금 더 읽게 되고 관심없는 분야에 대해서도 접하게 된다. 더불어 책값으로 나가는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나기도 했고, 나의 방이 좁아지기도 했다. 알라딘에서 다른 곳으로 내가 이동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기본적으로 책을 많이 읽진 않지만 좋아하고, 책, 음악,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을 즐긴다. 그러니 내가 이곳에서 도망갈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알라딘 사람들끼리도 자주 만났으면 하는 바램. 내가 가입하고 모임이 한 세 차례 정도 있었는데 다 참석하지 못했다.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교류하고 싶은데. 모임이란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주선하면 되는거 아니냐 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난 그런데 별로 소질이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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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8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놀자 2005-07-28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99년에 유니텔에서 놀았는데...ㅎㅎ

마늘빵 2005-07-28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99년에도 유니텔에서 놀았어요...

릴케 현상 2005-07-29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거래 안 해요???

히나 2005-07-29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랏 98년에도 피씨통신이란 걸 했군요? 전 주로 95년부터 96년까지 천리안, 하이텔에서 놀았어요 주로 영퀴, 끝말잇기 같은 시덥잖은 것들을 하면서.. 암튼 그리워라 그 파란 화면 위의 '이야기'들.. ^^

비로그인 2005-07-29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천리안..;;

마늘빵 2005-07-29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 저 9월 9일에 한표했어요. ^^
스노드롭님 / ㅎㅎㅎ 그때가 더 좋았던거 같아요. 온라인문화가 많이 깨끗했을때죠.
비숍님 / ㅎㅎ 천리안은 한번도 안가봤어요. 전 유니텔과 나우누리만... ^^ 또 머 있었는데 나중에 새로 나온게. 그게 먼지 기억이 안나네요.

연우주 2005-07-29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 이제 무차별 검색 거부할 수 있어요. 게다가 일촌별로 폴더 공개 설정을 정해놓을 수도 있구요. 저, 그래서 더 싸이 열심히 하고 있어요. ^^;

마늘빵 2005-07-30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검색 거부가 되는군요. 일촌은 그룹별 공개는 알고 있는데 머리 복잡하게 쓰기 싫어서 걍 다 일촌공개했어요. 싸이는 아는 이들과의 만남 장소로만 이용할래요.
 

 

 내가 인터넷 가상공간에 터를 잡기 시작한 것은 대학 1학년 때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와서 유니텔,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등의 인터넷 통신이 유행했었고, 난 그 중 생긴지 얼마 안된 유니텔에 들어가서 놀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사이버 공간의 채팅방은 건전했다. 요새는 순수한 의도의 채팅방들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학교홈을 찾아 가입을 했고, 거기서 놀았으며, 록 동호회와 철학 동호회에도 기웃거렸다.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에 비해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았고 소수의 사람들끼리의 친밀함은 더욱 따스했다. 주로 학교홈에서 활동을 하던 어느날 처음으로 벙개 라는 것을 했고, 5-6명이 모인 그 자리는 정말 편안했다. 이곳에 우리학교 사람은 아니지만 자기 오빠가 우리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우리 학교홈에 가입해 놀던 여학생이 있었는데 얼굴을 모른 채 평소 그녀가 쓰는 글을 읽고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약간 엽기적인 면도 있는 듯 하고, 생각이 깊은 것 같고, 외로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두운 면도 있어 보이는 그녀를 나는 좋아했었나보다.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한참을 만나지 못했다. 서로 얼굴도 모른 채 사이버 상에서 대화를 하고 서로의 글을 읽었다.

 그러다 언제나와같이 학교홈에서 벙개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 그녀가 처음으로 나왔다. 학교 근처의 어느 한 호프집에서의 만남. 겨울이었다. 털스웨터같은 것을 입고 앉아있는 그녀를 난 처음 봤지만 한순간에 알았다. 글로 접했던 채팅으로 접했던 그녀의 이미지와 일치했다. 하지만 그녀에겐 이미 학교홈에 있는 다른 선배가 있었고, 나는 먼 발치에서 마냥 볼 수 밖에 없었다. 남친이 있음에도 그녀와 나는 가상공간에서는 여전히 대화를 나누었고, 문자질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그 선배와 깨졌고, 내게 전화했다.

 "뭐하니?"

 한살 어리지만 항상 내게 반말이었다.

 "어 동아리 방에서 애들이랑 드럼치구 기타치구 해"

 전화속 목소리에서 약간 우울함을 느꼈다. 그리고 말했다.

 "영화보여줄까?"

 "그래 좋아"

 그리곤 단 둘이 처음 만남을 갖었고, 아마도 그때 영화 '가위'를 봤을 것이다.

 이후 잦은 만남이 있었고, 햇빛 내리쬐는 날 서울대공원에 놀러가기도 했다. 사람들이 꽤 많았다. 깊숙히 공원안으로 들어왔을 때 비가 내렸다. 소나기였다. 쏴아쏴아. 이런! 난 우산이 없었다. 그녀는 우산을 가지고 있었다. 우산을 펴고 내가 손에 쥐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다 사라졌다. 저어기 멀리 정자에 피해있었다. 우리는 우산을 가지고 느긋하게 내려왔다. 천천히. 갑자기 내린 소나기는 바닥에 흥건히 빗물을 고이게 만들었고, 신발이고 양말이고 바지고 다 젖었다. 우산을 받쳐 든 나는 그녀가 비를 맞을까봐 그쪽으로 기울였고, 내 오른쪽 어깨는 죄 젖었다. 그녀가 내쪽으로 다시 기울이면 난 다시 그녀쪽으로 기울이고. 천천히 내려와 정자에 도달했다. 우리는 앉아 비를 피했고 젖은 내 어깨를 손수건으로 닦아줬다.

 아마도 그때였지 싶다. 서로 눈이 맞은 것이. 그리곤 다음에 만났을 때 여의도 공원에서 한참을 돌아댕기다가 난 어렵게 아주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앉아서 한 세시간은 보냈을 것이다. 사귀자고. 조건이 있단다. 집에는 알리지 말자고 한다. 집에서 남자친구 사귀는거 안좋아한다고. 그러자고 했다. 또 두 가지인가 더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두 다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 사귀었다. 여의도 공원을 떠나 집으로 향하는 길. 꽉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리고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약 3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우린 헤어졌다. 어느날 밤 걸려온 전화.

 "우리 헤어지자"

 "... "

 난 울먹이며 말했다.

 "왜...."

 "오빠를 좋아하는거 같지만 사랑하는거 같진 않아"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순간 머리 속에 이 생각이 떠올랐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면 될 거 같았다. 하지만 답은 내 머리 속에 없었다. 가슴 속에도 없었다.

 "... "

 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다음날 우린 만났다. 전에 그녀가 종로를 지나가다 이쁘다고 했던 목걸이를 난 어젯밤 그녀의 전화를 받기 전에 준비해놨었다. 돈이 없어 그때 당시 사주지 못했지만 점심 굶고 용돈 모아 목걸이를 샀고, 다음에 만나면 주려고 했는데... 주기전에 이별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목걸이인 것을. 헤어지는 마당에 난 그거을 전해주었다. 목에 걸어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날 안아줬다. 그녀의 집으로 바래다주었다. 그게 끝이었다.

 다시 시간이 많이 흘러 일년쯤 지나고, 난 군에 입대했고, 100일 휴가를 앞두고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에게서. 그녀가 내게 메일을 보냈노라고. 난 내 홈페이지와 메일계정을 동생에게 맡기고 갔다. 동생이 알려준 것이다.

 "보고싶다. 100일 휴가 나온다며? 만나자... "

 기뻤다. 하지만 순간이었다. 또 다시 우리가 만난 날은 세차게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왜 만나기만 하면 비가 오는건지. 이번에도 옷이 죄다 젖었다. 커피숍.

 "우리 다시 사귀자"

 내가 말했다.

 "아냐. 그건 아닌거 같아."

 그녀가 말했다.

 부대 복귀. 몇 차례 편지를 보냈고, 전화를 했지만 다시 연락이 끊겼고 그게 다였다. 나와는 달리 인터넷 공간을 별로 안좋아하던 그녀는 다음메일도 쓰지 않았고, 싸이도 안했으며, 그 어느 곳에도 터를 만들지 않았다. 절대 찾을 수 없다. 집도 이사갔다.

 

 시간이 많이 흘러 제대했고, 졸업했으며, 돈벌이에 나섰다. 그리고 한 사람을 다시 만났다. 함께 면접을 봤고, 함께 교육을 받았고, 함께 일했다. 함께 밥을 먹었으며, 함께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며 손을 잡았고, 우린 사귀자는 말 없이 사귀었다. 서로 열정적으로. 시간이 흘렀고 난 다른 곳에 갔고 만날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난 바빴고 이것저것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며, 그녀를 만나는 동안에도 다른 생각이 항상 머리 속을 채우고 있었다. 잠깐 헤어졌고, 다시 만났으며, 또다시 헤어졌다.

 "헤어지자"

 내가 말했다.

 "그래"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순간 냉정히 돌아서버린 내 모습에 적잖이 충격받은 듯 했고, 실망한 듯 했으며, 배신감을 느낀 듯 했다. 당연했다. 정말 한순간이었으니까. 나도 놀랐을 정도로. 나도 이유를 모를 정도로. 다만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었고, 현존하는 나의 마음, 실존하는 나의 마음은 이미 멀어졌다는 것이었으니깐. 난 그것만 믿고 돌아섰다.

 욕도 많이 먹었다. 난 침묵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으므로. 다시 시작하자는 말도 들었다. 이번에도 침묵했다. 내 마음은 이미 돌아섰으므로.

 그토록 짧은 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사랑한 적도 처음이었고, 짧은 시간 동안 여러곳을 돌아다니고, 서로의 주변 사람들을 소개받고 한 것도 처음이었다. 그녀 때문에 밤을 샌 것도 처음이었고, 그렇게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웠던 것도 처음이었다. 이전의 사람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유형의 사람이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좋은 사람이었다.

 

 본래 이런 주제로 글을 쓰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쓰다보니 연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처음에 내가 쓰려던 것은 가상공간에서의 집짓기였는데...

 

 첫번째 그녀가 헤어짐의 이유로 든 말.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 를 나는 아직 모른다. 좋아함이 깊어지면 사랑하는거 아냐? 난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 두번째 그녀와 헤어지게 된 원인. 그것은 어쩌면 나의 현실도피였는지도 모른다. 주어진 현실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사랑을 유지하기는 더 어렵다. 그러나 헤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미안하다. 처음의 그녀 YS에게도, 나로 인해 상처받은 그녀 MA에게도. 난 부족하고 미숙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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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7-26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 제목도 연애면서. 그나저나 그나이에 100일 넘는 연애를 못한다는건 정말 충격이에요.

마늘빵 2005-07-26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러게나 말이에요. 그냥 만난 사람은 많은데... 제가 별로 사람들간의 접촉이 없어서 그런가. 맨날 왕따놀이하느라.

책속에 책 2005-07-26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쩐지 마음아픈 얘기네요..연애도 사랑도 어려워요..@.@

이매지 2005-07-26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그 미묘한 차이는 저도 아직은 모르겠어요-
인간 관계는 어려워요 어려워.

릴케 현상 2005-07-27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런 경험 해 본 적 없어서 신기한 느낌이에요^^

마늘빵 2005-07-27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드리머님 / 네... 연애도 사랑도 어렵습니다. 어릴때나 조금 나이 먹었을 때나...
이매지님 /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요. 정도의 차이같은데.
산책님 / ^^ 사랑의 경험은 누구나 다 다르겠죠. 산책님에겐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경험들이 있을테고...
나침반님 / 첫방문 감사합니다. 저도 제가 행복하기 위해 연애도 사랑도 했던거 같은데요. 몇년을 하루처럼 만난다는 것...
 


  슬슬 대박의 기미가 보인다. 예고편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며 관객들의 이목을 끌던 <아일랜드>가 개봉했다. 극장마다 이 영화를 빼놓은 곳이 없고, 심지어 내가 이 영화를 봤던 극장에서는 <아일랜드>만 8개 상영관 중 4개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박.조.짐.

<나쁜녀석들> <더록> <아마게돈> <진주만> 등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마이클 베이 감독. 그리고 말 해 더 무엇하랴 <트레인 스포팅> <필로우북> <이완 맥그리거의 인질><벨벳 골드마인><물랑루즈><스타워즈><블랙호크다운><영아담> 등을 통해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모두 한가닥씩 한 영화들이고, 뭐하나 빼놓을만한 작품이 없다. 최근 그가 상영관에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스타워즈 3 : 시스의 복수>를 통해서인데 이 영화 막 내린지 얼마 안된 지금 <아일랜드>라는 영화로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난 사실 그에게 별다른 매력은 못느끼겠지만 많은 여성들이 그를 좋아라 하는 것 같다. 도대체 너의 매력이 뭐니.

<아일랜드>의 또다른 주연인 스칼렛 요한슨. 그녀의 이름은 솔직히 처음 들어본다. 이 여자 84년생 이라고 하는데 헐. 나보다 나이 많아보이던데?? 84년이면 몇 살이지? 22살? 22살 치고는 이 여자 경력이 꽤 화려하다. <나홀로 집에 3> <베이브는 외출중> <프릭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등의 영화들에 출연했었다고 하는데 솔직히 난 모른다. 그 중 내가 본 영화는 <나홀로 집에 3> 와 <프릭스> 정도인데 거기서 누구로 나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주위에 이미 <아일랜드>를 본 사람들의 일반적인 평가는 기대만큼은 아니고 그냥 볼만한 영화 라는 평이 다수를 이룬다. <우주전쟁>을 볼 때도 주위 사람들의 혹독한 평가에도 꿋꿋하게 영화를 보고 나 역시 그들의 의견에 합류했다. <아일랜드>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관람후 소감이 다 거기서 거기인듯 하다. 나 역시도 그다지 확 사로잡는 그런 뭔가를 느끼지는 못했고, 최고의 영화다 라고도 말 못하겠고, 그냥 그럭저럭 괜찮았던 영화라는 정도로 소감을 요약할 수 있을 듯 하다.


* 조던 2 - 델타로 나오는 스칼렛 요한슨. 리얼세계에서 그녀는 모델이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 후 인간복제는 현실화 되었고, 사람들은 조금 더 오래토록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욕심으로 일종의 보험을 들어놓는다. 자신의 복제인간을 배양하여 나의 건강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면 그들을 이용해 보완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로 장기가 파손되어 긴급히 내 몸에 맞는 장기를 대체해야한다면 그 누구보다 나의 유전자로 복제된 복제인간의 그것을 가져오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또,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면 내 남편의 정자를 복제인간에게 수정시켜 대신 아이를 낳게 할 수도 있다. 담배를 많이 피워 폐암에 걸렸다면, 술을 많이 마셔 위암에 걸렸다면, 복제인간의 폐와 위를 내것으로 새롭게 가져올 수가 있다. 절대 건강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막지대의 땅 속에 묻혀있는 또다른 삶. 그곳에는 진짜 세계의 사람들의 복제인간들이 모여 살고 있다. 그들은 그곳 이외의 공간의 존재는 전혀 모른다. 우리들은 지구환경오염으로부터 생존한 인간들이며, 이곳에서 오직 아일랜드라는 환상세계, 꿈의 세계로 가는 희망을 간직한 채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이 통제받는 사회. 일어나자마자 스케줄을 알려주는 전광판, 방금 본 소변에서 나트륨이 과다 검출됐다는 등, 잠자는 동안 꾼 꿈이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으니 검진을 받아보라는 등의 메세지들이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먹을 것도 마음대로 못먹고 몸의 영향분을 조절하여 필요한 영향소만 주입하도록 되어있고, 남녀간의 사랑도 금물이며, 신체 접촉도 당연히 금지된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부족한 것 하나 없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또다른 이상세계 지상낙원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일랜드로 가기를 희망한다. 매일같이 무작위 추첨을 통해서 아일랜드로 갈 사람들이 뽑힌다. 그러나 그들이 상상하고 희망하는 아일랜드는 말 그대로 상상이고 희망일 뿐이다. 실제 그런 곳이란 없다. 아일랜드는 오히려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 사회다. 곧 바로 죽음과 직면하게 되니깐. 리얼 세계에서 건강에 위협을 느끼는 이들은 때가 되면 보험처럼 들어놨던 복제인간을 통해 신체 일부분을 이식받게 된다. 피부, 눈, 심장, 콩팥, 위, 폐 등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

복제인간 링컨 6 -에코는 여기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 그는 통제된 구역의 리얼인간과 접촉을 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지구상에 멸종했어야 할 생명체를 발견한다. 그리고는 한밤중에 통제구역의 뚜껑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리얼 세계로. 그곳에서 이미 아일랜드로 갔어야 할 동료들의 죽음을 엿보게 되고, 충격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날 밤 추첨에 당첨된 절친한 동료 조던 2- 델타를 구하기 위해 금남의 구역으로 들어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뛰쳐나온다.



* 복제인간의 배양 모습.

영화 <아일랜드>는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복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복제양 둘리가 체세포 분열을 통해 자라났고, 지금은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배양에 힘쓰고 있다. 복제에 관한 인류의 기술을 날로 발전해가고, 함께 영화를 본 동물생명자원학과의 친구에 말에 따르면 그렇더라도 인간을 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은 하지만, 나는 왠지 무섭다. 영화 속의 모습이 단지 영화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혹은 다른 의도로 자신의 클론을 만들어 필요할 때 그들을 죽이는 것은 정당한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해서 아마도 감독은 "그렇지 않다. 그들도 생명이고 인간이다." 라는 대답을 내놓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다수의 관객들이 그와 같은 감독의 의도에 공감을 할테고.

함께 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쟤네 둘이 도망칠 때 빨리 잡혀들어가야되는데 라고 생각했어."

"클론은 클론일 뿐이야. 클론이 어떻게 인간이 될 수 있어."

"인간이 자신의 생명이나 건강을 위해서 지금도 온갖 동물들을 이용해서 실험하고 있는데, 차라리 그러면 같은 종족을 대상으로 그런 실험을 해야된다고 생각해.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관점에서 인간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부적 인권이 있다고 하고, 동물은 그렇지 않다고 하고. 그럴바에야 차라리 같은 종족인 클론을 만들어서 그들을 대상으로 실험하고 이용하면 되는거지."

순간 뒷통수를 팡~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구나. 하하. 나도 인간이 자신들의 미적 욕구와 건강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다른 종족인 동물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다. 우리들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화장품, 식품, 약 등의 모든 것은 동물을 대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라는 결과가 도출된 다음에야 인간에게 적용되고 있다. 즉 인간은 동물을 이용하여 자기이익을 꽤하고 있다.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지구를 지배한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생각. 인간만이 가장 우월하고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부적인 인권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 정말 무섭다. 이건 도덕책에서도 이렇게 가르친다. 아이들에게. 인간이 더 우월하다고. 쩝. 그래서 난 도덕책이 싫어.

하지만 그렇다면 다른 종족이 아닌 같은 종족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야한다. 좋다 여기까지는. 그런데! 왜  하필 클론을 만들어 그들을 이용한단 말인가. 같은 종족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 온전히 태어난 리얼 인간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숨쉬고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는 존재들이다. 분명 아파 누워있는 식물인간 상태의 리얼인간보다 그들이 훨씬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들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복제된 상품으로 취급한다. 영화 속에서도 그들이 도망 칠 때 리얼인가은 말한다. "제품이 도망치고 있다" 라고. 하하하. 물건이 도망치다니. 이런.

만약 인간의 신체가 복제 가능하다면 나는 클론을 만들 것 아니라 신체의 일부만을 만들라고 말하고 싶다. 필요한 부분만 말이다. 콩팥이 필요하십니까? 그럼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심장? 폐? 눈? 피부? 만들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생명체로서의 클론을 만들어 그들을 이용하고 폐기처분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걔들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생산된 제품일지는 모르지만 완성된 제품으로 출고되었을 때 그것은 상품이 아니라 인간이다. 살아있고 느끼고 생각하는 인간. 리얼인간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친구는 인간복제는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하는데,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지금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도 점차 기술이 발전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보완점을 찾아낼 것이고, 결국 영화와 같이 우리는 완전한 형태의 복제인간을 만들어 낼 날이 올 거라 믿는다. 그들을 인간 취급할 것인지, 상품 취급할 것인지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리얼인간들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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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7-26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보셨군요...
신체의 일부만을 만들라고 말하고 싶다.<---영화 내용에 나오잖아요^^ 그러면 부작용이 크다고

책속에 책 2005-07-26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월광천녀'라는 만화 보셨어요? 전 이 영화 내용 듣고는 바로 그 만화가 떠오르던데...얼개가 비슷하거든요...각국의 지도자급의 자녀들의 클론을 만들어 외딴섬에서 격리시켜 키우다가 신체일부를 적출해가는 것까지....그 이후엔 알수없는 우주와 신 혹은 힘에 의해 줄거리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로 꾸며지지만요..
인상적이었던 것은 original 인간보다 클론이 더 강하게 성장해요..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이렇게 추상적으로 쓰지만..아무튼 자신이 클론이라는 사실에 대한 분노, 살고 싶다는 열망, 원망등이 클론을 더 강한 개체로 만들지요..
과학이 인간의 신체를 정복할 수는 있지만 결국 인간의 정신 또는 혼이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다고나 할까요...소름끼치도록 오싹해지는 만화지만 꼭 한 번 보시길 추천합니다~^.^

히나 2005-07-26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동물도 아니고 우리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보험상품'으로 학대하는 게 가능할까요? 그래서 우리는 외계인을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리잖아요.. 암튼 마이클 베이 감독에게 큰 걸 기대한 건 아니지만 스칼렛 요한슨은 괜히 나왔다 싶더군요.. ^^;

마늘빵 2005-07-26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 그랬었나요? 그런 말이 나왔나..? 왜 기억이 안날까. 훕...
데이드리머님 / 만화 제목은 들어본거 같은데 보진 못했어요. 흠 내용이 거의 흡사한가봐요. 이 영화에서도 클론과 리얼인간이 만났을 때 클론이 더 뛰어나보이죠. 링컨.
스노드롭님 / 그러게나 말입니다. 겉으로는 똑같죠. 그런데 사람들은 상품취급하잖아요. 흠. 먼 미래에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꼭 읽어야 할 한국단편 35선
현진건 외 지음 / 타임기획 / 1993년 5월
평점 :
절판


 

 이 소설로 오늘 수업하고 왔다. 철학연구소에서. 흠. 연구소가 자꾸만 일반 논술학원이나 학교 국어시간으로 변질되어 가는거 같아서 요즘 수업을 하면서도 별로 마음에 안든다. 책 선정하는 것도 그렇고, 교재도 그렇고. 어쨌든 오늘은 중학교 1학년과 현진건의 또다른 작품 <B사감과 러브레터>라는 소설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 짧은 소설을 전부 다 읽은건 이번이 처음인거 같다. 분명 이 소설 중고등학교 책에도 나왔던거 같은데 -전문은 아니지만- 왜 다 읽진 않았을까. 부분적으로만 기억이 나고 전체는 생소한 걸로 봐서 난 이 책을 처음 본게 틀림없다. 예전에 최인훈의 <광장>과 <회색인>을 읽을 때도 그러더니. 중고등학교 정규 국어 수업을 제대로 받았다고 하는 - 난 모범생이었으니깐 날 표준으로 보아도 좋아 (퍼퍼퍽) - 내가 이 소설을 비롯해 한국 근대 소설들이 생소하다면 우리네 학교교육은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

 현진건의 작품으로는 <빈처><운수좋은날><B사감과 러브레터><무영탑><적도> 등이 있다고 하는데, 그나마 친숙한게 며칠전 읽은 <운수좋은 날> 뿐.

 <B사감과 러브레터>는 <운수좋은날>보다도 더 짧다. 10분도 안걸린다. 정말이지. 과거엔 왜 이렇게 짧은 단편들이 많았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한국 근대 소설에는 대부분 이와 같은 짧은 단편들 뿐이다. 지금 우리네 소설계는 적어도 최소한 400쪽 정도 두께의 한권짜리 소설이 제일 짧은거 아닌가? 누구 내게 이 의문점을 해소해주오.

 <B사감과 러브레터>. 등장인물. 여학생 셋. B사감. 남학생. 끝.

  여학교 기숙사를 담당하는 B사감. 절대 그녀의 손에 들어오는 러브레터는 온전치 못하다. 뜯어서 내용파악까지 다 하고 해당 여학생을 불러낸다. 이 남학생 어디서 만났어! 밖에서 행실치 온전치 못했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 아냐?! 등등등. 그 못생기고 주름진 얼굴에 안경위로 째려보는 그녀의 눈을 감당할  여학생은 없다. 그런데 어느날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여학생 셋 방에서 나와 소리나는 곳으로 조용히 걸어간다. 어이쿠. 이게 뭐냐. B사감의 문을 살짝 열어보니 이 노처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네. 웃찾사 동수를 불러다 내어 안고 애정행각을 하는 것인가. 허공에다 대고 뭔짓이래.

 그녀들의 반응이란,

 "저게 웬일이야"

 "아마 미쳤나 보아"

 "에그 불쌍해"

 세 여학생의 이 각양각색의 반응들. 첫번째의 놀라움과 두번째의 사실감과 세번째의 안쓰러움이 한데 엮여 전달되는 반응. 그랬군...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못생기고 늙어서 남자가 여태 없었지. 그리고 자기가 없으니깐 질투심에 여학생들에게도 남자들이 접근 못하게 하려고 했던게지. 그리고는 밤에 혼자 이상한 짓거리를 하며 가슴 속에 억눌린 욕망을 어떻게든 풀어보려 했던게지.

 인간의 욕망을 부정할 수는 없다. B사감이 학생들 앞에서 보여준 겉모습과 그녀들이 잠든 야밤의 B사감의 진실된 모습은 극명하게 다를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녀도 여자다. 흙. 그녀도 인간이다. 어찌 욕망이 없을소냐.

 도덕적 엄숙주의가 우리네 과거를 지배했다면 지금은 이것으로부터 많이 해방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하고, 자신의 마음을 해방시킨다. 욕망을 발산시킨다. 그렇담 이제 문제는 없는걸까. 또다른 의문이 생겨난다. 나의 마음 속에서.

 모순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B사감. 누구나 모순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나도 이를 부정하지 않겠다. 나 역시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분명 같지는 않다. 단정적으로 다르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같지는 않다. 나에게도 나의 내면에 타인에게 섣불리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다. 인간이라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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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마리 2005-07-24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근래에 현진건 작품을 새로 발견하게 되었는데...
인간 심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면이 여느 근대소설과 좀 다르게 보이더라구요.
빈처 등에서 지식인에 대한 자의식과 반성도 엿보이고..일본 사소설의 영향을 받은 듯도 보이고. 여튼 근대 소설에서 현진건은 분명 특수한 위치에 있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마늘빵 2005-07-24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찍 일어나셨네요? ^^ 좋은 아침입니다. 근데 덥네요. 현진건 말고도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읽어볼 생각이에요.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접하던 그 느낌이 아닌 다른 새로운 느낌을 받고 있는 중이거든요.

로즈마리 2005-07-2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그렇담, 이인직의 <혈의 누>도 추천해요. 친일파인 걸 의식하면서 보면 재미가 더 쏠쏠하답니다. 전 중고등학교 때, 지루한 책인 줄 알고 안 봤었는데, 최근 보니까, 그냥 드라마같은 책이더라구요. 문학적인 가치보다는 시대적인 가치가 더 높지만, 분명 새로운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얼마 전에 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유학와서 <혈의 누>를 가지고 논문 쓴다는 얘길 들었는데, 호오~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마늘빵 2005-07-26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네 ^^ <혈의 누> 영화도 있는데. 전혀 다른거죠? ㅋㅋ
 
꼭 읽어야 할 한국단편 35선
현진건 외 지음 / 타임기획 / 1993년 5월
평점 :
절판


 

 상품화된 '책'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한국단편 35선'이라고 하면 타임기획에서 나온 책 말고도 지금껏 수십권을 나왔겠다. 그 책을 보나 이 책을 보나 다 똑같다. 내용은 모두 같단 말이다. 단지 어느 작가의 작품을 어떤 순서로 실었느냐 하는 것의 차이일 뿐. 그래서 한국단편을 이야기할 때는 상품이 되어 출간된 책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난 이 책에 담긴 35개의 단편 각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읽은 소설은 현진건의 '운수좋은날' 

 내가 작가 현진건을 접한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국어 시간이 아니었나싶다. 중학교에서 접한 것 같지는 않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진건, 이상, 황순원, 최인훈 등의 작가들을 중 고등학교 국어  시간이 아닌 다른 기회를 통해 접하기는 힘들 것이다. 달리 이 책들을 소개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께서 미리 추천을 해줬다면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내가 국어시간에 접했던 현진건과 지금 접한 현진건은 다르다. 물론 동일인물이다. 하지만 느낌이 다르다. 그때 난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을 비롯한 여러 소설과 수필을 껍질을 까발리고 회를 뜨고 내장을 뜯어내고 이건 무슨 효과네 저건 뒤에 나올 뭐시기를 위한 복선이네, 이 단어의 의미는 뭐네 하면서 철저히 까발리고 분석하고 뜯어 널었다. 우리나라 국어 교육이란게 이렇다. 오늘날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연히 현진건의 <운수좋은날>의 그 묘미가 들어올리가 없지. 국어만 이런게 아니라 내가 가르치는 도덕도 마찬가지다. 난 도덕 교과서를 없애고 싶다.

 대학을 졸업한 나이가 되어 접한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은 내게 꽤나 놀라움과 감동을 주었다. 그 내용에서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가 그 짧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에 감동을 받았다는 말이다. 소설의 내용이 아닌 현진건이란 작가에게. 이런 탁월한 놈.

 현진건은 1900년에서 1943년까지 살았다고 하며, 김동인, 염상섭과 함께 국내 단편 소설의 모형을 확립했다고 한다. 사실 이것도 그렇다니깐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거지 내가 그가 국내 단편 소설의 모형을 확립했는지 어쨌는지는 알 길이 없다. 전문가들이 그렇다고 하니깐 그런가보다 하는거다.

 현진건을 분류하기로는 사실주의 작가로 뽑는데, 그들에 의하면, 사실주의라는 것은,

 "객관적 현실을 가능한 한 충실하게 재현, 묘사하려는 태도, 창작방식을 말한다. 작가의 주관적 요소보다 객관적 현실을 중시하는 리얼리즘은 반리얼리즘적 조류(이상주의, 공상적 낭만주의, 형식주의)와 함께 예술의 발생 이래 양대 조류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리얼리즘은 자연발생적인 것이며 반리얼리즘적인 여러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리얼리즘은 근대 시민사회에 들어와 비판적 리얼리즘으로 확립되었다."

 라고 한다. 그렇구나. 끄덕. 내래 알길이 있다. 그렇다니깐 그런가부다 하지.

 현진건이 이 소설에서 드러낸 그 아이러니함. 그건 정말이지 탁월했다. 이 짧은 소설 안에서,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 아이러니를 그토록 극명하게 드러낸 작가가 있던가. (하긴 내가 뭐 소설을 많이 읽어봤어야 나의 이러한 감상이 일반적으로 먹혀드는 거지. 난 소설을 잘 안읽는다.)

 예전에 일기랍시고 쓴 나의 글에는 '운수좋은 날'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어 아이러니를 표현하려고 했던 글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쓴 글인데. 음. 1999년 혹은 2000년 쯤. 지금보니 그다지 효과적으로 표현한거 같지도 않다. 하지만 그땐 정말 나도 현진건과 같은 탁월한 아이러니를 표현하고자 했었다.

 한편으로 운수 대박 터진 날이건만 한편으로 극도로 슬픈 날이구나. 치워라 치워라. 발로 팍팍 차보지만 일어나지 않는다. 꿈쩍도 안하는 아내. 어쩐지 오늘 운수가 좋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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