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읽어야 할 한국단편 35선
현진건 외 지음 / 타임기획 / 1993년 5월
평점 :
절판


 

 이 소설로 오늘 수업하고 왔다. 철학연구소에서. 흠. 연구소가 자꾸만 일반 논술학원이나 학교 국어시간으로 변질되어 가는거 같아서 요즘 수업을 하면서도 별로 마음에 안든다. 책 선정하는 것도 그렇고, 교재도 그렇고. 어쨌든 오늘은 중학교 1학년과 현진건의 또다른 작품 <B사감과 러브레터>라는 소설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 짧은 소설을 전부 다 읽은건 이번이 처음인거 같다. 분명 이 소설 중고등학교 책에도 나왔던거 같은데 -전문은 아니지만- 왜 다 읽진 않았을까. 부분적으로만 기억이 나고 전체는 생소한 걸로 봐서 난 이 책을 처음 본게 틀림없다. 예전에 최인훈의 <광장>과 <회색인>을 읽을 때도 그러더니. 중고등학교 정규 국어 수업을 제대로 받았다고 하는 - 난 모범생이었으니깐 날 표준으로 보아도 좋아 (퍼퍼퍽) - 내가 이 소설을 비롯해 한국 근대 소설들이 생소하다면 우리네 학교교육은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

 현진건의 작품으로는 <빈처><운수좋은날><B사감과 러브레터><무영탑><적도> 등이 있다고 하는데, 그나마 친숙한게 며칠전 읽은 <운수좋은 날> 뿐.

 <B사감과 러브레터>는 <운수좋은날>보다도 더 짧다. 10분도 안걸린다. 정말이지. 과거엔 왜 이렇게 짧은 단편들이 많았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한국 근대 소설에는 대부분 이와 같은 짧은 단편들 뿐이다. 지금 우리네 소설계는 적어도 최소한 400쪽 정도 두께의 한권짜리 소설이 제일 짧은거 아닌가? 누구 내게 이 의문점을 해소해주오.

 <B사감과 러브레터>. 등장인물. 여학생 셋. B사감. 남학생. 끝.

  여학교 기숙사를 담당하는 B사감. 절대 그녀의 손에 들어오는 러브레터는 온전치 못하다. 뜯어서 내용파악까지 다 하고 해당 여학생을 불러낸다. 이 남학생 어디서 만났어! 밖에서 행실치 온전치 못했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 아냐?! 등등등. 그 못생기고 주름진 얼굴에 안경위로 째려보는 그녀의 눈을 감당할  여학생은 없다. 그런데 어느날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여학생 셋 방에서 나와 소리나는 곳으로 조용히 걸어간다. 어이쿠. 이게 뭐냐. B사감의 문을 살짝 열어보니 이 노처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네. 웃찾사 동수를 불러다 내어 안고 애정행각을 하는 것인가. 허공에다 대고 뭔짓이래.

 그녀들의 반응이란,

 "저게 웬일이야"

 "아마 미쳤나 보아"

 "에그 불쌍해"

 세 여학생의 이 각양각색의 반응들. 첫번째의 놀라움과 두번째의 사실감과 세번째의 안쓰러움이 한데 엮여 전달되는 반응. 그랬군...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못생기고 늙어서 남자가 여태 없었지. 그리고 자기가 없으니깐 질투심에 여학생들에게도 남자들이 접근 못하게 하려고 했던게지. 그리고는 밤에 혼자 이상한 짓거리를 하며 가슴 속에 억눌린 욕망을 어떻게든 풀어보려 했던게지.

 인간의 욕망을 부정할 수는 없다. B사감이 학생들 앞에서 보여준 겉모습과 그녀들이 잠든 야밤의 B사감의 진실된 모습은 극명하게 다를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녀도 여자다. 흙. 그녀도 인간이다. 어찌 욕망이 없을소냐.

 도덕적 엄숙주의가 우리네 과거를 지배했다면 지금은 이것으로부터 많이 해방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하고, 자신의 마음을 해방시킨다. 욕망을 발산시킨다. 그렇담 이제 문제는 없는걸까. 또다른 의문이 생겨난다. 나의 마음 속에서.

 모순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B사감. 누구나 모순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나도 이를 부정하지 않겠다. 나 역시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분명 같지는 않다. 단정적으로 다르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같지는 않다. 나에게도 나의 내면에 타인에게 섣불리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다. 인간이라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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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마리 2005-07-24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근래에 현진건 작품을 새로 발견하게 되었는데...
인간 심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면이 여느 근대소설과 좀 다르게 보이더라구요.
빈처 등에서 지식인에 대한 자의식과 반성도 엿보이고..일본 사소설의 영향을 받은 듯도 보이고. 여튼 근대 소설에서 현진건은 분명 특수한 위치에 있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마늘빵 2005-07-24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찍 일어나셨네요? ^^ 좋은 아침입니다. 근데 덥네요. 현진건 말고도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읽어볼 생각이에요.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접하던 그 느낌이 아닌 다른 새로운 느낌을 받고 있는 중이거든요.

로즈마리 2005-07-2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그렇담, 이인직의 <혈의 누>도 추천해요. 친일파인 걸 의식하면서 보면 재미가 더 쏠쏠하답니다. 전 중고등학교 때, 지루한 책인 줄 알고 안 봤었는데, 최근 보니까, 그냥 드라마같은 책이더라구요. 문학적인 가치보다는 시대적인 가치가 더 높지만, 분명 새로운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얼마 전에 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유학와서 <혈의 누>를 가지고 논문 쓴다는 얘길 들었는데, 호오~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마늘빵 2005-07-26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네 ^^ <혈의 누> 영화도 있는데. 전혀 다른거죠? ㅋㅋ